(360)
〈어? 여기서 준비된 통수가?〉
“모두들 긴장해야 합니다. 이곳은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섬입니다.”
“섬이라기엔 크기가 좀 커 보이는데요?”
구지보의 말을 해미정(咳美滯) 수사가 받았다.
구지보와 함께 화신기 후기의 경지에 있는 여성 수사의 이름이 해미정이었다.
“제법 규모가 있기는 하지만 어차피 이곳에는 구수신귀(九首神驅)만 사는 곳이라 대륙이라 부를 수는 없지요.”
“그런가요?”
“대륙이라 부르기엔 이 땅에 발붙이고 사는 것이 많이 부족하지요.”
“아, 구수신귀 때문에 생명체가 제대로 살지 못한다는 말이군요? 그러니 땅만 넓다고 대륙이라 불러 주기도 어렵다는 것이고.”
“옳습니다. 대륙이 되려면 그만한 내실을 갖춰야 하는데, 여긴 그렇지를 못하지요.”
“알았어요. 그런데 구수신귀라 하셨으니 머리가 아홉 달린 거북이란 뜻이겠군요? 그게 우리가 잡아야 할 영수인 것이고.”
해미정 수사가 종련문주 구지보와 대화를 나누며 사냥 대상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했다.
“이미 짐작하고 있겠지만 이곳 구수신귀의 섬은 우리 종련문에서만 알고 있는 비밀스러운 곳입니다. 이곳의 위치는 절대 알려져서는 안 되는 것이지요.”
“그렇다면 마땅히 그 이유가 있겠군요?”
종련문주의 말에 장우가 한 걸음 앞으로 나서며 물었다.
사실 해미정과 역사 수사, 삼안 수사는 물론이고 장우도 지금 그들이 있는 곳이 어딘지 정확히 알지 못했다.
종련문주는 비행 법보를 타고 암해로 들어온 후 일정 시간동안 외부를 살피지 못하도록 금했었다.
그렇게 영수가 있는 위치를 숨기고자 했던 것이다.
때문에 의뢰에 참가한 수사들은 암해에 들어서고 제법 시간이 흐른 후에야 바깥을 살필 수 있었는데, 그 때는 이미 넓은 바다로 나온 후였기에 위치를 가늠할 수가 없었다.
게다가 일을 마치고 돌아가는 길에도 이곳의 위치를 알 수 없게 암해 밖으로 나가기 전, 일정 기간 동안은 비행 법보의 공간 안에서 머물기로 약속까지 해 둔 상태였다.
그만큼 종련문에서 영수가 있다는 이곳의 위치들 중요하게 생각한다는 소리였다.
장우는 그 이유를 묻는 것이었다.
“실로 그렇습니다. 이제부터 그 이유를 말씀드리지요.”
종련문주 구지보는 그렇게 상황 설명을 시작했다.
그리고 그의 이야기는 듣는 이들을 놀라게 하기에 충분했다.
이곳 섬에 있다는 구수신귀는 태령기 완경의 머리 여덟 개를 가지고 있는 영수라 했다.
“태령기 완경의 영수? 그게 무슨 말입니까? 우리에겐 고작해야 입령기 초기라 하지 않았습니까?”
“태령기 완경, 그것도 여덟 개의 머리가 그 경지라 말한 것을 보면 머리 하나를 수사 하나로 보아야 한다는 말인 것 같은데? 그렇다면 상황이 더 위험한 것이 아닙니까?”
역사 수사와 삼안 수사가 구지보의 말에 거칠게 항의했다.
그도 그럴 것이 고작해야 화신기 수사들이 태령기 완경의 영수를 사냥하기 위해 나선 꼴이니 당연한 반발이었다.
“잠시 이야기를 더 들어 보지요. 설마 종련문주께서 태령기 완경의 영수를 잡자고 하시겠습니까? 그럴 정도로 생각이 없지는 않겠지요.”
그런 상황에서 장우가 나서며 두 수사를 진정시켰다.
그리고 한편으로 구지보의 말에도 침착하게 입을 닫고 있는 해미정의 여유로운 모습도 눈에 담았다.
‘해 수사가 뭔가 숨기고 있는 것이 분명해.’
- 제 생각도 그래요.
그렇게 장우와 몽이가 상황을 살필 때, 구지보가 한 걸음 나서서 이목을 모으며 말했다.
“하하하. 장우 수사의 말이 옳습니다.”
그런 그의 모습에 다시 모두가 그를 바라보았다.
“고작 화신기도 벗어나지 못한 우리가 어떻게 태령기 영수를 도모하겠습니까. 당연히 불가능하지요. 그리고 이미 말씀을 드렸지만 구수신귀의 머리는 모두 합쳐서 아홉입니다. 그 중에 여덟이 태령기 완경이지요. 그렇지만 남은 하나는 고작 입령기 초기에 불과합니다.”
“아홉 머리가 하나의 몸에 붙었으니 이름이 구수신귀일 텐데, 그게 무슨 의미가 있다는 거지요?”
구지보의 말에 해미정이 아미를 찡그리며 물었다.
“하하하. 원래 이곳에 있는 구수신귀는 우리 종련문의 전대 문주, 정확하게는 십 대 전의 문주께서 발견을 하셨습니다.”
“그렇다면 그게 도대체 얼마나 오래 된 일이란 것입니까? 가히 까마득히 오래 전이 아닙니까?”
“그러게 말입니다.”
역사 수사와 삼안 수사가 구지보의 말에 놀라며 말했다.
“그렇지요. 그리고 더 중요한 것은 그 때 구수신귀의 아홉 번째 머리가 마침 태령기 완경에 들기 직전이었다는 것이지요.”
“아홉 번째 머리가 태령기 완경 직전? 하지만 지금은 입령기 초기라 하지 않았습니까?”
장우가 의아한 듯이 중간에 구지보의 말을 끊었다.
“하하. 거기에 우리 종련문의 비밀이 있는 것입니다. 처음 구수신귀를 발견하신 선대 문주께서 당시에 어렵게 그 아홉 번째 머리를 잘라내셨지요. 그리고 그 머리를 종련문의 재련과 제작 재료로 쓰셨고요.”
“으음? 구수신귀의 머리를 잘랐다고요? 그럼 다른 머리들은 움직이지 않았다는 말입니까?”
해미정이 뭔가 알아차렸다는 듯이 물었다.
“하하하. 그렇습니다. 지금 이 구수신귀는 일종의 공법을 수련 중인데, 아홉 개의 머리를 모두 태령기 완경으로 만들어야 하는 공법이지요.”
“그럼 다른 머리가 움직이지 못하는 것은 그 수련의 제약 때문이겠군요?”
“영민하십니다. 장 수사. 바로 그렇습니다. 그 여덟 개의 머리는 잠들어 있지요. 그리고 깨어난다고 해도 어떤 행동도 할 수가 없습니다. 혹여 조금이라도 움직였다가는 그 동안 쌓은 수련이 물거품이 되기 때문이지요.”
“그럼 그 선대 문주 이후로도 구수신귀의 아홉 번째 머리를 몇 번이나 잘라냈겠군요?”
장우가 문득 깨우친 것이 있어 그렇게 물었다.
종련문에서는 수시로 이곳으로 와서 구수신귀의 머리를 잘라냈을 것이다.
그래서 이곳의 위치를 그렇게 비밀스럽게 지키려 했던 것일 테고.
“옳습니다. 이제 상황을 아시겠지요? 이런 까닭으로 네 분 수사들께도 이곳의 위치를 비밀로 한 것입니다.”
구지보는 장우의 말을 부정하지 않고 도리어 확실하게 긍정해 주었다.
“확실히 종련문에서 비밀로 할 법 하겠네요. 이해했어요. 그런데 지금까지 몇 번이나 구수신귀의 머리를 잘랐던 거지요? 그리고 매번 이렇게 입령기 초기가되면 잘랐던 건가요?”
그 때, 해미정이 뭔가 마땅치 않다는 듯이 아미를 찡그리며 구지보에게 물었다.
“음, 종련문의 문주는 자신의 대에 한 번씩 구수신귀의 머리를 잘라야 합니다. 스스로 돌아보아서 성장의 한계에 이르렀다 싶으면 그에 맞춰서 구수신귀의 머리를 자르러 오는 것이지요.”
“그러니까 문주께서는 스스로 입령기에 오를 자신이 없어서 이번에 구수신귀의 머리를 자르러 왔다는 말씀이군요?”
“해 선자의 말이 옳습니다. 내 스스로 입령기를 자신할 수 없으니 후환을 없애려는 것입니다.”
“후환이라니요?”
구지보의 말에 장우가 의아한 듯이 물었다.
후환이란 말이 묵직한 돌이 되어 가슴을 누르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구수신귀는 이미 우리 종련문에 대해서 알고 있기 때문이지요. 혹여라도 구수신귀가 아홉 개의 머리를 모두 태령기 완경에 이르는데 성공하면 그 즉시 영수에서 신수로 거듭나게 될 것입니다.”
“문주의 말은 단순히 높여 부르는 신수(神獸)가 아니라 진정한 신수, 그러니까 진선경을 넘어선다는 그 경지를 말하는 것인가요?”
그렇게 묻는 해미정의 표정은 이전보다 더 굳어 있었다.
“바로 그렇습니다. 혹여 구수신귀가 신수가 된다면 우리 종련문은 먼지도 남지 않게 되겠지요. 그러니 매번 이렇게 후환을 없애는 것이 문주의 책무라 할 수 있겠지요. 이는 처음 구수신귀의 머리를 자른 문주로부터 지금까지 이어진 업보입니다.”
“머리들 재료로 쓰기 위해서가 아니란 말입 니까?”
“하하. 장 수사. 물론 재료도 중요하지요. 그것이 우리 종련문을 유지하는 큰 자산이 되어 주는 것인데 말입니다.”
장우의 물음에 구지보가 욕심이 가득한 눈빛을 번뜩이며 대답했다.
“일이 생각보다 복잡하긴 하지만, 어쨌거나 우리 일곱이 입령기 영수 하나를 상대한다는 것에는 변함이 없다는 거군요?”
해미정 수사가 잠시 생각에 잠겨 있다가 구지보를 보며 그렇게 물었다.
그러자 구지보는 혹시라도 사냥을 거부할까 걱정하던 마음을 털어내며 활짝 웃었다.
“하하하. 그렇습니다. 그리고 사실 우리 일곱이 모이면 절대 실패할 일도 없고, 위험할 일도 없습니다.”
“위험하지 않다고요?”
“그게정말입니까?”
“그래도 입령기 영수인데 어찌……."
구지보의 말에 해미정과 역사 수사, 삼안 수사가 모두 믿기 어렵다는 표정으로 그를 보며 되물었다.
“하하하. 이미 아홉 번이나 그 머리를 잘라낸 우리 종련문입니다. 설마그 동안쌓인 비법이 없겠습니까. 걱정하지 않아도 됩니다.”
그런 세 수사의 반응에 구지보는 자신만만한 표정으로 그렇게 대답하고 장우까지 아울러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걱정하지 말라는 구지보의 그런 모습에 장우도 슬쩍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여러 번 성공했던 일이니 경험에서 얻은 요령이 있을 것이고, 그만큼 사냥은 쉬울 것이다.
그렇게 장우는 내심 여유를 가지고 웃음을 지었다.
“자, 그러니 걱정할 필요는 없습니다.”
“그럼 그 비법이란 것은 언제나 알려주실 건가요?”
구지보가 다시 한 번 일행을 안심시킬 때에 해미정 수사가 그를 향해 사냥의 비법을 재촉했다.
이에 구지보도 이제 털어놓을 것은 모두 털어 놓았다는 듯이 시원한 표정을 지으며 소매에서 네 개의 옥간을 꺼냈다.
그리고 슬쩍 허공에 옥간을 뿌려 장우와 해미정, 역사, 삼안의 네 수사에게 하나씩 날려 보냈다.
“거기에 지금껏 우리 종련문에서 파악한 구수신귀의 아홉 번째 머리에 대한 모든 것이 들어 있습니다. 그것을 보면 내가 어째서 사냥의 성공을 자신하는지 알 수 있을 것입니다.”
구지보는 그렇게 말했고, 해미정과 장우를 비롯한 네 수사는 묵묵히 옥간의 내용을 살피기 시작했다.
그런데 장우가 옥간의 내용에 심취하고 있을 때, 문득 해미정의 심언이 전해져 왔다.
= 장 수사, 잠시 이야기를 좀 할 수 있겠습니까?
장우는 그런 해미정의 심언에도 놀라는 기색을 드러내지 않고 여전히 옥간에 집중한 모습을 유지했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해미정에게 심언을 보냈다.
고작 화신기 초기인 장우가 다른 수사들에게 들키지 않고 심언을 보내는 것은 어려운 일이었지만 해미정과 장우의 거리가 가깝고 장우의 의념이 강력하여 들키지 않을 수 있었다.
거기에 삼안 수사가 옥간의 내용에 대해서 구지보에게 소소한 질문을 던지는 중이라 더욱 둘의 대화를 숨기기에 좋았다.
= 들려주실 고언이라도 있으십니까?
장우가 해미정에게 물었다.
= 장 수사는 이 사냥에 대해서 어찌 생각하시는지요?
= 어찌 생각하다니요?
= 구수신귀는 마땅히 신수가 되어야 할 귀한 존재입 니다. 그런데 종련문이 그것을 이리 막아도 되는 것인가 하는 말입니다.
= 으음.
= 게다가 구지보 문주가 말하지 않은 것이 있습니다.
= 말하지 않은 것이라니요?
= 구수신귀가 스스로 수련을 깨트리고 아홉 번째 머리를 포기해도 수련을 망치지 않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 그래요?
= 다만 그 때에는 선(善)한 신수가 아니라 악(惡)한 신수가 되겠지요. 대천 세계에 재앙이 하나 더 늘어난다는 말입니다.
= 그럴 수도 있습니까?
= 그렇습니다. 다만 구수신귀는 스스로 재앙이 되기 싫어 지금까지 묵묵히 참아 온 것일 뿐입니다. 태생이 선하게 태어난 영수인 까닭이지요.
= 으음.
장우는 해미정의 말에 깊은 신음을 터트렸다.
이는 구수신귀 때문이 아니라 해미정 때문이었다.
해미정의 말을 들어보니 이미 그녀는 종련문의 행사에 반하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게다가 둘이 심언을 주고 받는 동안 삼안 수사와 역사 수사가 종련문 수사들을 귀찮게 하는 것을 보면 이미 그들도 해미정 수사와 뜻을 같이하고 있음이 분명했다.
= 어떤가요? 이미 짐작했겠지만 저와 다른 두분은 이미 종련문의 세 악적들을 벌하기로 마음먹었어요. 장 수사께서도 함께 하시는 것이 좋을 거 같은데요.
= 제가 종련문의 편을 들면 어쩌려고 이런 말을 쉽게 하십니까?
장우는 슬쩍 튕기듯이 그렇게 물었다.
= 저들을 처리하고 종련문의 비행 법보를 취하면 장우 수사가 손해볼 일은 없지 않겠어요? 게다가 일이 성공하면 구수신귀께서도 보상을 주시겠다 하셨답니다.
= 구수신귀와 이야기가 되었다는 말입니까?
= 그렇지 않으면 내가 왜 이런 모험을 하겠어요? 그리고 이번에도 머리가 잘린다면 구수신귀께선 그대로 그 아홉 번째 머리를 포기하겠다 하셨어요. 그리되면…….
= 재앙이 떨어지겠군요. 그리고 이곳에 있는 일곱 중에 누구도 살아남을 수 없을 것이고 말입니다.
= 호호호. 그렇다고 봐야겠지요. 이러니 내가 장수사에게 거칠 것 없이 제안을 하는 것이기도 하지요.
= 거부할 수 없는 제안이란 이런 것이겠군요. 게다가 종련문의 비행 법기를 얻는 것은 물론이고 구수신귀의 보상까지 더해진다는데 마다할 이유도 없고 말입니다. 하하하. 좋습니다. 함께 하겠습니다 장우는 시원하게 웃으며 해미정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원래 받을 보상은 물론이고 거기에 구수신귀의 보상까지 더해진다는데 마다할 이유가 어디에 있을까.
‘거기다가 선계의 재앙 하나를 줄인다는 명분도 있고.’
- 그렇죠. 보상도 곱이 되고 말이죠.
‘그러게 말이다.’
〈어? 여기서 준비된 통수가?〉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