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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단을훔쳐 먹었다〉
장우의 의념이 연단로의 뚜껑 안으로 파고들기 시작했다.
그러자 혼연(混煙:혼탁한 연기)이 가득한 공간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곳이 바로 연단로의 안쪽.
이곳까지는 장우도 몇 번이나 들어와 확인했던 곳이다.
이곳에서 더욱 깊은 곳으로 내려가면 드디어 연기와 서광이 뒤섞인 곳에 이르게 된다.
‘흐음. 여전히 이곳의 기운은 신묘하기 짝이 없다.’
딱 이곳.
연단로의 혼탁한 연기와 서광이 공존하는 곳에서 장우는 약기운을 훔쳐왔다.
그리고 그 약기운으로 잔결독공의 독기에 허물어지는 몸을 추슬러 버틸 수가 있었던 것이다.
이곳의 약기운이 없었다면 장우의 몸은 이미 오래전에 녹아 없어졌을 것이다.
‘그렇게 버텼는데도 지금은 선천지기가 다해서 잔결독공이 멈출 위기지.’
장우는 이를 악물었다.
여기서 더 깊은 곳으로 내려가야 한다.
그래서 연단로에서 익어가고 있는 영단을 확인해야 몽이가 그것을 의념공간으로 옮겨 놓을 수 있다.
‘내려가자!’
장우는 다시 의념을 서광이 흘러나오는 아래쪽으로 뻗어가기 시작했다.
쿠구구구구궁! 우르르르릉!
‘크윽!’
그러자 곧바로 저항이 시작되었다.
지금까지 의념을 막아서던 느낌은 그저 장난에 불과했다는 듯이 엄청난 영기가 휘몰아치며 혼연과 서광이 태풍을 불러왔다.
그리고 그렇게 만들어진 거친 태풍, 그 혼연의 구름 속에서 거친 뇌성까지 들려왔다.
장우는 매번 여기까지였다.
이 이상으로 의념을 투사했다간 되돌아올 반서(反臟)를 감당할 자신이 없었다.
그래서 이쫌에서 의념을 물리고, 그저 약기운이나 훔쳐 먹는 것으로 만족했던 것이다.
하지만 이번에는 아니었다.
어차피 죽음을 앞둔 상황이었다.
장우의 의념이 뇌성 치는 혼연을 뚫고 거침없이 밑으로 내려갔다.
‘허어억!’
순간 장우는 자신의 정신이 일순간 혼연의 태풍에 빨려드는 것을 느끼고 애써 정신을 가다듬었다.
‘여기서 끌려가면 끝장이다!’
그것은 본능이었다.
어떻게든 정신을 차리고 의념을 놓치지 말아야 했다.
힘 내세요. 장우님.
몽이가 장우의 의념 끝에 매달리며 응원을 보냈다.
장우는 그런 몽이의 모습에 힘을 얻으며 더욱 깊은 곳으로 의념을 투사했다.
장장 수 만리.
고작 백여장 크기의 연단로 안에서 장우가 느끼는 의념의 투사는 그토록 깊었다.
우르르르릉! 쿠구구궁! 콰과광!
스화화화확!
장우는 의념을 찢어발기려는 번개와 정신을 홀리는 뇌성을 꿋꿋하게 버티며 계속해서 혼연의 태풍 아래로 의념을 투사했다. 그러자 어느 순간 장우의 의념이 구름을 뚫고 밑으로 빠져 나오게 되었다.
‘하아! 어찌 이런 곳이?!’
그러게요. 구름 밑에 이렇게 큰 호수가 있을 줄은 몰랐어요. 저기 보세요. 아홉 개의 섬이 있어요.
장우와 몽이는 같은 것을 보고 있었다.
연단로의 구름 아래에는 거대한 호수가 있었고, 그 호수에는 아홉 개의 섬이 가로 세로 세 개씩 가지런하게 배치되어 있었다
‘이곳은 연단로다. 그리고 저 모습은 바로 영단을 만드는 모습이 실체처럼 구현되어 보이는 것일 뿐이다.’
그럼 저 아홉 개의 섬은 뭘까요?
‘당연히 이곳에서 연단되고 있는 영단이겠지.’
저 섬이 영단이라고요?
‘그럴 수도 있고, 아니면 섬 어딘가에 영단이 있을 수도 있고.’
그렇군요. 그럼 가 봐요.
몽이가 장우를 재촉했다.
장우는 어차피 내친 걸음이라 망설이지 않고 의념을 움직여 아홉 개의 섬 중에서 가장 중앙에 있는 섬으로 내려갔다.
촤아아아아악! 촤아아아악!
조심하세요. 장우님.
그 때였다.
섬이 있는 호수에서 거대한 용오름이 생겨나며 물기둥들이 만들어졌다.
그리고 그 물기둥들은 아홉 개의 섬을 휘감으며 장우의 의념이 다가오는 것을 막아섰다.
‘이것들도 연단로를 보호하기 위한 금제와 결계들이다. 저걸 뚫고 들어가야 영단을 얻을 수 있겠어!’
중간에 있는 섬은 너무 어렵겠어요. 제일 바깥 끄트머리에 있는 네 곳 중에 하나를 노려요!
몽이가 장우에게 방향을 바꾸자고 제안했다.
장우도 물기둥들의 배치가 그나마 느슨하게 느껴지는 곳이 아홉 개의 섬 중에서 모서리에 있는 네 곳임을 확인한 후였다. 그래서 곧바로 의념의 방향을 돌려 그 넷 중에 한 곳으로 향했다.
섬에서 느껴지는 기운이 모두 제각각인 거 같아요.
‘그렇구나.’
장우는 용오름의 거친 바람과 회전하는 물기둥의 사나운 기세를 뚫고 의념을 밀어 넣었다.
그리고 섬에 가까이 갈수록 아홉 섬이 각기 다른 기운을 품고 있음을 알아차렸다.
그리고 그 중에 장우가 향하는 섬에서는 무량한 생기가 느껴졌다.
다행이네요. 운이 좋았나 봐요. 생기(生氣)가 가득한 섬이에요.
몽이도 장우의 선택이 만족스러운 듯이 의념의 끝에 매달려서 활짝 웃었다.
그 때였다.
갑자기 장우의 의념이 뚫고 들어온 하늘에서 엄청난 뇌전이 떨어져 장우의 의념을 내리쳤다.
콰과과과광!
‘크으윽!’
아악! 저, 정신 차리세요 장우니임 !
갑작스러운 뇌전의 일격에 장우는 정신이 아득해지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한 순간 의념의 줄기가 끊어질 듯 갈라지며 찢겨 나갔다.
그 순간 장우는 여기서 의념을 유지하지 못하면 마지막임을 직감했다.
다시 연단로 안으로 들어와 기회를 엿볼 수는 없을 것이다.
벌써부터 혼연의 구름과 호수에서 기이한 기운이 일어나며 겹겹이 금빛 찬란한 결계를 만들어 내고 있지 않은가.
장우의 의념이 섬에까지 닿게 되자 지금껏 잠들어 있던 모종의 기운이 깨어나고 있었다.
‘도대체 여기서 무슨 영단을 만들고 있었던 거냐고!’
장우가 그런 변화에 두려움을 느끼며 기함할 듯 놀랐다.
장우니임 !
‘어쩔 수 없다. 여기서 포기할 수는 없어 !’
간절하게 자신을 부르는 몽이의 외침에 장우는 혀를 깨물며 정신을 집중하여 흩어지려는 의념을 추슬렀다.
그리고 곧바로 자신이 목표로 했던 섬을 향해 의념을 내리꽂았다.
조금 전에 자신을 향해 떨어지던 벼락의 기세를 그대로 의념에 담은 듯이 그렇게!
콰과과과과과과!
가요오오오! 가요오오오오!
그 의념의 끝에서 몽이가 한껏 고함을 질렀다.
그리고 결국 장우의 의념은 용오름의 바람과 물기둥의 기세를 모두 뚫어내고 섬의 한가운데에 닿을 수 있었다.
그렇게 도착한 섬의 중앙.
- 저게 무슨 나무일까요?
그곳에는 녹음이 무성한 나무 한 그루가 서 있었다.
굵고 짧은 기둥 위에 무성한 나뭇가지와 잎들이 버섯의 갓처럼 자라 있는 나무.
장우는 지금껏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나무였는데, 그도 그럴 것이 그 나무의 잎들은 매번 모양이 바뀌고 있었기에 나무의 종류를 특정할 수가 없었다. 솔잎에서 상수리 잎이 되었다가 풀잎처럼 변하고 또 그러다가 가시가 되기도 하는 모습.
‘실존하는 나무가 아니다. 저것 역시 이곳에서 만들어지는 영단의 다른 모습일 것이다.’
장우는 그렇게 말을 했고, 몽이가 나무로 다가가 그것을 의념 공간에 넣어보려 했지만 뜻대로 되지 않았다.
그런데 몽이가 나무를 의념공간에 넣으려는 그 순간 갑자기 하늘과 땅, 호수의 기세가 돌변했다.
이전보다 수 십 배는 더 흉하고 거칠게 변하며 장우의 의념을 쫓아내려 했다.
‘으윽, 이건 못 버틴다!’ 불가항력!
장우가 저항할 수 없는 거력이 자신의 의념으로 다가옴을 느꼈다.
바로 그때였다.
장우의 의념이 기이한 나무에서 뭔가를 발견했다.
‘열매!’
그리고 곧바로 몽이가 그것을 향해 날아갔다.
자두처럼 생긴 짙은 녹색의 열매가 잎들 사이에 숨어 있었다.
그런데 그 열매에 금색의 신비한 문양이 일렁거려서 장우가 그것을 알아볼 수 있었다.
정말로 천운이라 할 수밖에 없는 순간이었다.
잡았어요!
‘허어어억!’
몽이가 열매에 닿으며 그것을 장우의 의념공간으로 옮기는 순간 연단로와의 연결이 끊겼다.
그리고 그 반서로 장우는 큰 내상을 입고 말았다.
- 감히 어떤 놈이 !
그리고 그 때, 연단로 안에서 누군가의 고함 소리가 터져 나왔다.
하지만 그 때는 이미 장우의 의념이 연단로에서 떨어져버린 상태라 이후를 알 수 없었다.
장우님, 어서 영단을 복용하세요.
그런 상황에서 몽이는 서둘러 장우에게 영단 복용을 권했다.
지금 당장 잔결독공의 운공이 멈춘다고 해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장우의 선천지기가 말라붙었기 때문이다.
조금 전에 연단로에서 무리를 했던 것이 선천지기를 더 빠르게 고갈시켰다.
장우는 몽이의 외침에 잠시 망설이다가 곧바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몽이가 장우의 얼굴로 날아왔다.
입 벌리세요!
장우는 몽이가 시키는 대로 입을 벌렸고, 몽이는 짧은 팔을 장우의 입안에 넣고 금빛 문양이 신비로운 녹색 열매를 의념공간에서 소환했다.
스르르르륵! 스화홧!
그러자 녹색 열매가 장우의 입안에 나타나 곧바로 혀에 닿으며 녹아 버렸다.
“어어엇?!”
순간 장우는 온 몸을 휘감는 엄청난 기운에 저도 모르게 소리를 지르고 말았다.
어서 기운이 빠져나가지 않게 붙드세요.
몽이가 그런 장우에게 다시 한 번 고함을 질러 주의를 주었다.
하지만 장우는 그럴 정신도 없었고, 그럴 필요도 없었다.
이름 모를 영단의 기운은 장우의 몸 밖으로 한 올도 빠져 나가지 않고 있었다.
그것은 장우의 입에서 녹은 후에 장우의 몸과 영체에 골고루 퍼졌고, 이후에는 역법반서복원대법의 부족한 진혈기를 채웠다.
그것뿐만이 아니었다.
영단의 기운이 역법반서복원대법의 성취를 크게 끌어 올리더니 결국 새로운 효과를 이끌어 냈다.
‘선천지기가..?복구되고 있다.’
역법반서복원대법이 장우의 메마른 선천지기를 다시 채워주고 있었다.
게다가 성취가 높아진 역법반서복원대법의 재생력은 영체기 후기의 잔결독공이 뿜는 독기를 아무렇지도 않게 받아내고 있었다. 기연도 이런 기연이 없을 일이었다.
어? 장우님, 의념공간에 아까 그 열매가 다시 나타났어요.
그 때였다.
장우의 의념공간에 장우가 먹은 녹색 열매 모양의 영단이 다시 모습을 드러냈다.
그런데 그 열매는 이전과 달리 영체의 가슴에 문신처럼 새겨져 있었다.
그 말은 열매가 실체가 아닌 개념으로 존재한다는 뜻.
‘내가 흡수하지 못한 영단의 기운이 저렇게 뭉쳐서 남았다는 거로군.’
장우는 영체의 가슴에 새겨진 열매의 의미를 어렵지 않게 알아차릴 수 있었다.
물론 지금 당장 장우의 능력으로는 영체에 숨어버린 영단의 기운을 건드릴 수 없었다.
‘도대체 얼마나 대단한 영단이었던 걸까?’
쿠구구구구구궁!
장우가 그런 생각을 했을 때 갑자기 연단로가 흔들리기 시작했다.
수 백 장 크기의 연단로가 요동을 치며 엄청난 열기를 뿜어냈다.
뚜껑에 올라앉아 있던 장우는 감히 그 열기를 버틸 생각을 하지 못했다.
‘연단로가 깨어났다. 이건 위험하다.’
자신이 영단 하나를 훔쳤기 때문에 일어난 변화가 분명했다.
이 상태에서 장우가 해야 할 일은 단 한 가지 뿐이었다.
‘몸을 피해야 한다. 이 거대 연단로는 내가 감당할 수 있는 물건이 아니다. 게다가 여기서 이런 소란이 일어나면 이곳을 감춘 금제도 금방 드러나게 될 것이다.’
장우의 머리는 영활하게 돌아갔다.
어차피 잔결독공의 위기에선 완전히 벗어난 상태였다.
적어도 화신기 경지에 오를 때까지는 아무 걱정도 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선천지기도 완전히 회복이 되었고, 재생력도 차고 넘친다.
그렇다면 어디 먼 곳으로 가서 조용히 화신기 승경을 준비하는 것이 최선의 선택일 것이다.
‘일단 벗어나서 생각하자.’
장우는 결심과 동시에 연단실 밖으로 몸을 날렸다.
어차피 연단실을 가리고 있는 것은 자신이 펼친 금제와 결계라 움직임에 거침이 없었다.
다만 장우가 그렇게 빠져나간 직후, 거대한 연단실에 큰 변화가 생겼다.
연단로에서 뿜어져 나온 기운이 이리저리 뒤엉키며 엄청난 금제를 발동시킨 것이다.
그 금제는 폭발하듯 영역을 넓혀 일순간 수천 리를 장악했지만 장우는 다행히 그 범위를 벗어날 수 있었다.
그 뒤로도 계속해서 변화가 일어 났기에 장우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머나먼 곳으로 줄행랑을 놓았다.
그렇게 장우는 수도계에 새로운 풍파를 만들어 내고 모습을 감추었다.
〈영단을 훔쳐 먹었다〉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