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5)
〈 일이 잘풀리는 것 같다 어쩐지.〉
보는 순간 알 수 있었다.
봉인이 워낙 가볍게 걸려 있었기 때문이다.
장우는 그런 봉인으로 어떻게 분혼을 가둬 둘 수 있었는지 의아할 정도였다.
그런데 막상 정신을 집중하고 분혼이 들어 있는 수정함을 노려보니 답이 나왔다.
수정함 자체에 걸린 봉인은 강력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 수정함이 의념공간에 있다는 것이 중요했다.
장우의 의념공간은 일반적인 수사들과 다른 특별함이 있었다.
그래서 여러 물건을 넣어 놓는 창고처럼 쓸 수도 있는 것이 아닌가.
그런데 그 의념공간의 특별함은 그 뿐만이 아니다.
다른 어떤 봉인보다 강력한 봉인력을 지니고 있는 것이 장우의 의념 공간인 것이다.
이전에 태령기의 봉인도 뚫을 수 있다던 금은 방울의 소통까지 완벽하게 막아버린 일도 있지 않았던가.
그러니 사실상 그 의념 공간의 힘을 빌려 분혼을 가둬 놓은 것은 어려울 것이 없었다.
‘따로 봉인을 풀 것도 없겠네. 이 수정함을 의념공간 밖으로 꺼내기만 하면 곧바로 분혼이 몸을 찾아 떠나겠어.’
그렇겠네요. 그런데 지금 분혼에서 뭔가를 얻을 수는 없죠?
‘그래. 유혼결의 분혼은 육체를 얻기 전까지는 건드릴 수 없어. 건드려서도 안 되는 거고. 고작 할 수 있는 것이 이렇게 가둬두는 정도지.’
하아, 아깝네요. 지금 이 분혼과 합일할 수 있다면 과거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금방 알 수 있을 텐데요.
‘그러게 말이다.’
그건 장우로서도 아쉽기 짝이 없는 일이다.
하지만 장우는 되지 않는 일을 오래 붙들고 심력을 허비하는 성향이 아니었다.
안 되는 것은 일찍 포기하고 그보다 나은 것을 찾는 쪽에 가까운 사람이었다.
물론 조금의 가능성이라도 있다면 그것을 집요하게 파고들 수는 있겠지만.
‘이건 답이 없다.’
장우는 아쉬운 눈빛으로 유훈결의 분혼이 들어 있는 수정함을 의념으로 쓸어 보다가 몽이에게 심언을 보냈다.
‘밖으로 꺼내줘.’
-네,장우님.
몽이는 장우의 부탁에 곧바로 분혼이 들어 있는 수정함을 장우의 손바닥 위로 소환해 내었다.
샤아아아아아아!
수정함은 장우의 손에 놓이는 것과 동시에 밝은 빛을 뿜어냈다.
장우는 그 순간 수정함 속에 들어 있던 유혼결의 분혼이 어디론가 사라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아득히 먼 곳, 어딘가에서 분혼이 육체를 찾아 자리를 잡은 것도 알 수 있었다.
자연스럽게 장우의 시선이 하늘 저 먼 곳으로 향했다.
‘저 너머에 분혼이 있다. 아니 분혼이 육신을 얻었다.’
- 그래요? 멀어요? 인간이에요? 아니면 다른 이종족이에요? 어떤 몸을 얻었어요?
장우의 말에 몽이가 궁금하다는 듯이 연이어 질문을 던졌지만 장우는 고개를 저었다.
‘그건 알 수가 없네. 그저 저 쪽 방향에 있다는 것만 알 수 있을 뿐이다. 그리고 아마도 분혼이 수사가 되면 수련 경지 정도는 알 수 있지 않을까?’
- 그래요?
‘아, 당연히 분혼이 죽게 되면 그것도 알 수 있긴 하겠네.’
- 그 외엔 아무것도 알 수 없다는 거잖아요. 원래 유혼결의 분혼과는 의식 소통이 자유로운 경우도 있다면서요?
‘나에겐 그런 운이 없는 모양이다. 아까 말했던 그 이상은 알 수 없을 게 분명해.’
그것은 유혼결을 익힌 주체인 장우가 분명히 알 수 있는 것이었다.
유혼결에 숨어 있는 술법의 힘이 그것을 알려주고 있었으니까.
- 에휴, 어쩔 수 없죠. 뭐. 자, 그럼 이제 어떻게 해요?
몽이가 잠깐 잊고 있었던 일을 장우에게 일깨워 주었다.
‘하아, 영체기 후기에 오른 것은 좋은데, 문제는 잔결독공을 견딜 수 있는 한계가 다가오고 있다는 거지.’
장우가 내심 깊은 한숨을 쉬며 말했다.
그 말처럼 장우는 잔결독공의 독기를 버티는 데 한계를 느끼고 있는 중이었다.
이 문제를 해결할 가장 쉬운 방법은 역법반서복원대법을 믿고 잔결독공의 수련을 멈추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곧바로 독기가 폭주하여 죽음에 이르게 될 테니까.
- 하지만 시간이 별로 없어요. 이제 해원곡에 머물 수 있는 기간이 곧 끝나요.
‘그것도 문제긴 하네. 그럼 어쩔 수 없이 죽어도 밖에 나가서 죽어야겠네. 아무도 모르게. 그리고 다시 해원곡으로 돌아와야지.’
- 중요한 건 그렇게 하더라도 잔결독공의 독기에 몸이 녹아버리는 것은 막아야 한다는 거죠. 안 그러면 역법반서복원대법으로 되살아나도 어딘지 모를 곳이 될 확률이 높아요.
‘그래. 그게 문제네.’
장우는 그렇게 몽이와 의논을 해 가며 다시 해원곡의 의뢰를 살필 수 있는 객잔으로 향했다. 그리고 그곳에서 의뢰 하나를 수락한 장우는 곧바로 해원곡을 떠났다.
* * *
“해원곡에서 오셨습니까?”
“그렇다.”
장우는 다 무너진 산문에서 자신을 맞이하는 축기기 수사를 향해 냉랭한 어조로 대답했다.
“이리 와주시니 감사합니다. 이리로 드시지요.”
축기기 수사는 장우의 등장에 감격하며 그를 안쪽으로 안내했다.
장우가 도착한 곳은 한 때 크게 번창했었지만 지금은 그 세가 급격히 기울어 이제는 축기기 수사와 연신기 수사만 남은 몰락 수도 문파였다.
그들은 자신의 문파 안에서 오래 전에 봉인해 두었던 금제가 풀려났는데 독기가 워낙 강하여 그나마 유지하던 문파마저도 터전을 잃을 상황이 되었다.
이에 그 금제를 해결해 줄 것을 해원곡에 청했고, 그 보상으로 금제 안에서 나오는 모든 것을 가져도 좋다고 했다.
원래 해원곡에서도 고작 축기기 수사가 문주로 있는 몰락 문파의 의뢰를 그리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하지만 장우로선 마침 독기가 가득한 금제라는 데에 호기심을 느껴 그 의뢰를 받아들인 것이었다.
‘독이 있는 곳에 약도 있는 법이라지?’
그야 독을 깊이 있게 파고들기 위해서는 안전을 보장받아야 하니 당연히 해독에도 신경을 썼겠죠. 그래서 장우님이 이곳에 오신 거잖아요.
‘솔직히 지푸라기 잡는 심정이지. 이 잔결독공은 생각외로 극악한 공법이야. 반드시 죽을 수밖에 없는 공법이라니.’
장우는 수도없이 잔결독공의 문제를 해결할 방법을 모색했다.
하지만 결국 지금까지 그 방법을 찾아내지 못했다.
잠력을 폭발시켜 끝까지 끌어내는 공법이니 어쩔 수 없죠. 따지고 보면 결국 잔결독공의 독기도 문제지만그것이 어느 순간 폭주하는 것이 더 문제죠. 에휴.
몽이는 한숨까지 쉬면서 안타까워했다.
잔결독공의 독이 매우 강력한 것은 이미 충분히 인지하고 있는 사실이었다.
그런데 공법을 파고들다보니 또 다른 사실을 알게 된 것이다.
독기가 강력하기는 해도 어떻게든 방법을 찾으면 해독을 하거나 중화시킬 방법이 없지는 않을 것 같았다.
하지만 그럼에도 잔결독공을 익힌 이가 절대 살아남을 수 없는 것은 공법이 지속적으로 잠력을 소비시키기 때문이다.
따지자면 선천지기가 계속 빠져나가는 격이고 그 선천지기가 더 이상 남아 있지 않으면 잔결독공의 수련이 불가능해진다.
그렇게 되면 자연스럽게 공법의 폭주가 일어나서 죽을 수밖에 없다.
아주 그냥 몇 단계나 함정을 깔아 놓은 건지 모르겠다니까요.
‘생각해보면 독공을 만들어서 그걸로 복수를 한 것이 아니라, 독공을 익히도록 해서 복수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어.’
장우는 문득 그런 생각을 떠올리며 말했다.
네에? 그럴 수도 있을까요? 뭐, 익히게만 하면 상대를 죽일 수 있으니 그랬을 것 같기도 하지만요. 아니, 그런데 지금 이런 이야기가 무슨 소용이 있어요? 어차피 장우님도 빠져나갈 길이 없다는 건데요.
‘푸우, 그래. 몽이 니 말이 맞다. 그냥 금제나 풀어 보자꾸나.’
장우는 뼈를 때리는 몽이의 말에 깊게 한숨을 쉬고는 의뢰받은 금제를 향해 다가갔다.
이미 그를 안내하던 축기기 수사는 오래전에 모습을 감추었다.
독기를 견디지 못해 독이 퍼지지 않은 곳까지만 안내를 하고 돌아가버린 것이다.
‘오호? 이거 별 기대는 안 했는데 운이 좋을지도 모르겠는데?’
장우는 독이 흘러 나오는 금제 공간으로 들어서며 눈빛을 반짝였다.
이야, 저기 있는 게연단로 맞죠?
몽이도 장우와 마찬가지로 흥분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금제가 걸려 있는 입구의 문틈으로 수백 장 높이의 연단로가 보였기 때문이다.
독은 갈라진 틈으로 흘러나오고 있었는데, 그 안에는 수 천 장 넓이의 석실이 있고, 높이가 수백 장에 이르는 연단로가 세 개의 다리를 바닥에 박은 상태로 서 있었다.
게다가 그 연단로 아래에는 지금도 영기가 타오르며 연단을 이어가는 중이었다.
설마 이 독기운이 연단을 하는 과정에서 나오는 폐기(廢氣)일까요?
몽이의 말대로 연단 과정에서 정화되어 나오는 기운이 독기의 형태로 퍼져 나가고 있는 것이 확실해 보였다.
그렇다면 저 연단로에서 단련되고 있는 영단은 도대체 얼마나 뛰어난 것이란 말인가.
‘쓰읍. 욕심은 나는데 저걸 내가 감당할수 있을지 걱정이네.’
그래서요? 설마 물러나시겠다는 거예요?
‘그럴 리가 있겠냐? 언제 죽을지 모르는 몸인데, 두려울 게 뭐가 있다고!’
장우는 그렇게 말을 하고는 거침없이 앞을 가로막고 있는 금제를 풀어내기 시작했다.
원래는 얼마나 강력한 금제였는지 짐작도 되지 않지만, 세월과 독기에 녹아내려 장우가 어찌어찌 처리할 수 있을 정도는 될 것 같았다.
금제의 틈 사이로 보이는 거대한 연단로가 장우를 자꾸만 재촉하고 있었다.
“참으로 그 놈이 죽은 것은 분명합니다. 하지만……
정 선인이 뭔가 꺼림칙한 기색으로 말꼬리를 흘렸다.
그러자 앞에 있던 갈협이 살짝 인상을 찌푸렸다.
“그야 편 가라는 어린 아이들 통해 이미 확인한 것이 아닙니까. 설마 영체기 따위가 내 추혼술에 감춘 것이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그런 이야기는 아닙니다. 분명히 그 장우라는 아이가 다른 어린 것 넷과 함께 폭사한 것은 분명하지요.”
정 선인은 장우가 네 명의 수사들과 함께 결계에 묶여 폭사한 것을 이미 확인했다.
그것을 갈협 선인도 직접 편가라는 영체기 놈에게 추혼술을 펼쳐 검증까지 한 마당이었다.
그럼에도 정 선인은 석연찮은 느낌을 버리지 못했다.
“정 선인, 자꾸 감추려 하지 말고속 시원하게 털어 놓으십시오. 뭐가문제입니까?”
그런 정 선인을 보며 갈협이 재촉하듯 물었다.
정 선인은 이대로 모른 척 하는 것도 생각해 보았다.
하지만 그래봐야 갈협이 완전히 이번 일에서 손을 뗄 것 같지는 않았다.
괜한 의심을 쌓아봐야 좋을 것도 없고, 자신의 생각을 말해 준다고 해도 큰 문제가 될 것도 없었다.
“그 놈이 죽기 전에 가진 모든 것을 어딘지 모를 공간으로 던져 넣었다 하지 않았습니까.”
정 선인이 그 동안 알아낸 내용을 근거로 말을 시작했다.
“그런데요?”
“하지만 그것이 정말 장우란 놈의 말대로 어딘지 모를 공간이겠습니까?”
“네? 그게 무슨 말입니까? 그럼 장우 그 놈이 따로 가진 어떤 공간이었을 수도 있다는 겁니까?”
“그렇지요. 그래야 이야기가 되는 것이 있지 않습니까.”
“아아, 그렇군요. 우리 둘이 영찬황의 기운을 느끼지 못하고 있지요. 고작 영체기 놈이 영찬황을 어디에 두었기에 우리가 알아차릴 수 없었을까요?”
갈협도 드디어 정 선인이 이상하게 생각하는 부분을 알아차린 모양이었다.
덕분에 정 선인도 말을 하기 쉬워졌다.
“놈이 죽은 것은 분명하지만 그 놈이 영찬황을 보관하고 또 다른 어린놈들의 재물을 던져 놓은 곳이 같은 곳일 가능성이 있지요.”
“옳습니다. 우린 줄곧 영찬황의 기운을 찾지 못했지요. 그러니 그 어린 것이 특별한 재주가 있었던 것이 분명합니다.”
“그러니 그 놈의 종적을 거슬러가며 알아보다보면 분명히 놈이 영찬황을 숨긴 곳을 찾을 수 있을 겝니다.”
“단순히 어딘지 모를 공간이 아니라 놈이 살아온 행적에 영찬황을 숨긴 내역이 분명 있을 거란 말이지요?”
“그렇지요. 이제 알아들으셨습니다 그려?”
“고맙습니다. 우둔하여 정 선인의 뜻을 이제야 알아차렸습니다. 하하하.”
갈협은 크게 웃으며 정 선인을 향해 두 손을 모아 공수를 해 보였다.
그리고 그 후 갈협과 정 선인은 장우의 행적을 거꾸로 거슬러가며 장우가 숨긴 봉인이나 금제를 찾기 시작했다.
장우를 뒤쫓는 신선들의 움직임은 그렇게 계속되고 있었다.
좀 어긋난 방향이긴 했지만.
〈일이 잘풀리는 것같다 어쩐지?.〉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