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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잔결독공(蘿┲맹?)으로 승경에 도전하다〉
해원곡(解案谷)은 해원(解案)이란 이름으로 의뢰를 받는다.
원하는 것이 있는 이들은 해원곡에 의뢰를 하는 것인데, 일의 어려움에 따라서 해원 의뢰비용이 다르다.
당연히 어려운 임무일수록 그 일을 마쳤을 때, 해원곡에 머물 수 있는 시간을 길게 받을 수 있다.
게다가 임무가 끝나면 시간뿐만이 아니라 해원 비용을 따로 받을 수도 있다.
이를테면 수련에 필요한 자원을 곡(谷)으로부터 받을 수도 있다는 이야기다.
그것이 영석일 수도 있고, 수련 공법이거나 혹은 수련에 필요한 특별한 자원일 수도 있다.
그러니 일단 해원곡에 든 이들은 쉽게 해원곡을 떠나지 못하고 붙어 있게 된다.
‘아무튼 지긋지긋한 놈들이야.’
그래도 이제 3백 년은 걱정없이 수련에만 매진할 수 있게 되었잖아요.
몽이는 투덜거리는 장우를 그렇게 위로했다.
거의 50년을 오직 해원 의뢰에만 매달린 덕분에 이제 300년의 체류 자격을 얻었다.
그러니 작정하고 영체기 중기 승경에 도전해 볼 수 있게 된 것이다.
아울러서 승경에 도전한다고 하면 해원곡에서는 다른 수사들과 멀리 떨어진 거처를 따로 내어준다.
사실 긴 체류 기간을 획득한 이들에게만 특별한 거처를 배정하는 것이다.
다른 입곡자의 간섭을 받지 않고 자유롭게 수련을 할 수 있도록 배려를 해 주는 것이다.
‘아무튼 이것들이 차별 아닌 듯 하면서도 묘하게 차별을 한다니까.’
해원곡 입장에서는 당연한 일이죠. 열심히 해원에 나서 준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을 차별하는 거야 당연하죠. 뭐, 우리 입장에서는 얄밉기 짝이 없는 일이지만요.
‘어휴, 그래. 몽이 네 말대로 해원곡이 무슨 자선 단체도 아닌데 당연히 지들 이익을 위해서 움직이는 거겠지.’
자자, 앓은 소리는 그만하시고, 어서 가서 수련이나 하죠. 억울하고 서러운 것도 경지가 올라가면 어떻게든 갚아줄 수 있는 거 아니겠어요?
‘그래, 가자. 가!’
투덜거려 봐야 무슨 의미가 있을까.
몽이의 말대로 경지를 높이는 것만이 제 목소리를 낼 수 있는 길일 것이다.
그것이 수도계의 법(法)이 아니겠는가.
장우는 새로 배정받은 거처에 온갖 금제와 결계를 둘러쳤다.
이번 수련은 영체기 중기에 오르지 않으면 끝내지 않을 생각이라 그 과정에 외부의 간섭이나 방해를 철저히 배제하기로 한 것이다.
그렇게 준비를 마치고 수련장에 가부좌를 하고 앉은 장우는 새로 준비한 수련 공법을 꺼내 들었다.
장우가 꺼낸 것은 흑녹색의 옥간이었다.
그것은 이전 녹각성에서 구한 수련 공법인데 문제가 있는 것이라 헐값으로 얻은 것이었다.
[잔결독공(殘快毒功)]
장우가 옥간에 의념을 불어 넣자 머릿속에 하나의 공법이 떠올랐다.
그런데 공법이 장우의 머릿속에 새겨지는 것이 아니라 그저 책을 읽듯이 읽을 수만 있었다.
게다가 내용조차도 쉬이 머릿속에 기억되지 않는 것이 옥간에 특별한 금제가 있는 듯 했다.
하지만 장우는 그런 사실에 전혀 놀라지 않았다.
이미 옥간을 살 때부터 알고 있던 내용이었기 때문이다.
그것은 멋대로 옥간의 내용을 복사하여 퍼트릴 수 없도록 하는 금제였다.
이는 중요한 내용을 기록한 옥간에 자주 사용되는 수법이기도 했다.
간혹 이런 금제가 걸린 옥간 중에는 내용을 읽을 수 있는 횟수에도 제한을 두기도 했다.
그나마 잔결독공(殘扶毒功)이 적힌 이 옥간에는 횟수 제한은 없으니 다행이라고 할까.
‘으음. 역시 보통은 익힐 수가 없는 공법이 분명하다.’ 장우는 한참이 지나서야 잔결독공의 내용을 일독(一讀)하고 속으로 중얼거렸다.
아니 독공을 익히는데 익히는 사람까지 피해를 입히면 어쩌라는 건지 모르겠네요.
‘그러니 죽을 각오를 하고 익혀야 하는 공법이라 소문이 났다지 않냐.’
하긴 오죽하면 너죽고 나죽자는 심정으로 익히는 것이라 해서 상잔(相殘) 독공이라고 불렸을까요.
‘그렇지.’
아니, 그건 아는 사람이 꼭 이런 걸 익혀야겠다고 고집을 피워요?
이야기를 나누던 몽이가 결국 버럭질을 하고 만다.
몽이는 아무리 생각해도 장우가 이런 독공을 익히는 것이 마땅치 않은 것이다.
비록 어느 정도 대비책이 있다고는 하지만.
‘상잔독공이라 불린 이유가 뭔지는 알지?’
그런 몽이에게 장우가 물었다.
또 절 설득하려는 거죠? 네, 알아요 알아. 독공의 성취가 어마무시하게 빨라서 경지를 끌어올리는 것이 무척 쉽다지요? 그래서 복수를 꿈꾸기 어려웠던 상위 경지의 원수와 함께 죽기에 딱이라고요.
‘그래, 너도 들었겠지만 그런 식으로 복수에 성공한 경우가 많아서 상잔독공이라 한다지 않더냐. 그만큼 빠른 경지 상승을 기대할 수 있다는 거지. 게다가 이 독공으로 화신기 중기까지 오른 수사도 있다고 했고.’
네네. 그랬죠. 그 화신기 중기에 올랐던 수사까지 결국은 독공에 녹아 내렸다는 게 함정이지만요.
‘하하하. 하지만 나는 걱정이 없잖아. 해파리 진혈의 효과로 재생력이 크게 늘어서 독공의 피해를 어느 정도 견딜 수 있다니까.’
그렇겠죠. 하지만 재생력도 한계가 있어요. 게다가그건 비축된 진혈의 기운이 다하면 끝나는 재생력이죠.
‘그 전에 영체기 중기에 오르면 될 일이 아니냐. 그렇게 되면……
장우도 다 생각이 있었다.
어차피 경지가 오르면 의념 공간이 확장될 것이고, 그렇게 되면 넓어진 의념공간에서 뭔가 새로운 것이 나올 것이다.
유혼결이 나왔으니 그 다음엔 분명히 봉인된 분혼이 나와야 한다.
그리고 분혼이 나온다면 곧바로 분혼을 풀어주어야 이후에 분혼과의 합일을 기약해 볼 수 있지 않겠는가.
‘그게 제일 급한 일이야. 분혼과 다시 합일을 해야, 지금의 내가 왜 이런 상태인지를 알 수 있어. 내가 승경을 서두르는 것이 그 때문인 걸 너도 알잖아.’
그래요. 일단 해원 의뢰를 하면서 부활에 필요한 진혈 기운은 모두 모아 뒀으니 장우님 하고 싶은 대로 하세요. 어떻게 말리겠어요? 하지만 준비 없이 상잔독공을 익히는 일은 없어야 해요. 알죠?
“녀석, 걱정도. 절대 그럴 일은 없을 테니 안심해라. 그리고 어쩌면 이 잔결독공으로 화신기까지 오를 수 있을지 어찌 알겠느냐?”
죽도록 고통스럽겠죠. 쳇.
결국 몽이는 또 다시 혀차는 소리를 내며 등을 돌리고 말았다.
더 반대하지는 않겠다는 일종의 항복 표시였다.
장우는 손을 뻗어 그런 몽이의 머리를 쓰다듬는 흉내를 냈다.
몽이의 몸은 여전히 허상처럼 존재할 뿐이어서 실제로 쓰다듬을 수는 없었다.
독(毒)이 이로운 경우는 거의 없다.
그래서 예로부터 독공을 익히는 수사들도 독 자체를 몸에 쌓는 것은 꺼렸다.
대부분 독공을 익히는 이들은 독을 따로 지참하는 방식을 취했는데 병이나 주머니에 넣어 다니는 것에서부터 독을 품은 금수충어(禽獸蟲魚) 따위를 부리는 방식을 주로 썼다.
하지만 잔결독공은 독을 몸에 직접 흡수하여 축적하는 방식을 썼다.
재미있는 것은 연신기, 축기기, 성단기 까지는 육신에 독기를 쌓다가 영체기 부터는 육신과 더불어 영체에도 독기를 쌓는다는 것이다.
이 말은 영체까지 독에 중독이 된다는 뜻이며, 그것은 영체기 경지의 잔결독공으로 다른 수사의 영체까지 중독 시킬 수 있다는 말이 된다.
장우는 잔결독공의 수련을 시작하면서 그 동안 얻었던 수많은 독들을 차례로 흡수했다.
잔결독공은 독의 종류를 따지지 않았다.
온갗 독을 흡수하여 그것을 잔결독기로 만들어 내는 것이 잔결독공의 힘이었다.
물론 강한 독일수록 공법 수련에 도움이 되는 것은 당연했다.
다만.
"크으으."
독공 수련 중에 장우기 신음을 흘리며 가부좌 자세가 흔들렸다.
그와 동시에 장우의 피부가 탄력을 잃고 흘러내렸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피부가 떨어져 나가기 전에 재생력이 발동하여 무너지던 육신을 바로잡았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런 현상은 의념공간에 있는 영체에서도 비슷하게 나타나고 있었다.
손바닥 크기의 영체도 가부좌를 하고 잔결독공을 수련하고 있었는데, 그 피부역시 수시로 녹아내리다가 재생되는 과정을 반복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럼에도 장우는 쉬지 않고 독공의 재료들을 늘어놓으며 그것들을 잔결독공법으로 흡수하기를 멈추지 않았다.
‘잘못 익혔다.’
그러면서도 장우는 자신이 잔결독공을 익히기 시작한 것을 후회하는 중이었다.
‘이건 멈출 수가 없다. 멈추는 순간 독기가 역류하면 모든 것을 녹여 버릴 것이다. 이 독공은 주인을 죽일 독을 먼저 품는 괴공이다.’
독공을 익히기 전에는 몰랐던 내용이다.
이 독공은 한 번이라도 운용하여 독을 품게 되면 그 후에는 멈추고 싶어도 멈출 수가 없는 것이었다.
독공의 운용을 멈추는 순간 몸에 있는 독이 폭주하여 그 주인을 죽이는 공법.
대신에 공법의 성취는 들었던 그대로 굉장히 빨랐다.
장우는 영체기 중기 승경을 위해 필요하리라 예상하고 준비했던 독의 절반도 쓰기 전에 벌써 승경의 기미를 느끼고 있었다.
영체기의 경지가 오르는 것은 그만큼 영체를 성장시켰을 때에나 가능한 일이다.
그런데 잔결독공의 독기가 쌓인 영체는 무슨 일인지 엄청난 속도로 성장하고 있었다.
‘비정상적이다. 이건 정말로 수련을 멈출 수가 없는 괴공이야. 멈추는 순간, 죽는다. 하지만 잔결독공에 뭔가 특별한 것이 있다. 그리고 영기를 자극하여 폭증시킨다.’
장우는 그 사실을 알아차린 순간 이 괴공이 일종의 잠력 폭발과 연관되어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수사들 중에서도 간혹 마지막 한 수로 일시간 경지를 크게 끌어올리는 방법을 쓰기도 한다.
그런 방법을 쓰게 되면 내상을 입고 경지의 손해를 보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하지만 그래도 죽을 위기를 넘길 수 있다면 무조건 이득이 아닌가.
그래서 혹시라도 그런 수법은 익힐 기회가 있다면 어떤 수사도 그것을 거부하진 않을 것이다.
잔결독공은 그런 류의 공법과 많이 닮아 있었다.
‘그래도 멈추지 못하고, 언젠가는 반드시 죽게 되는 공법이라면 누가 익힌단 말인가.’
장우는 자신의 재생력이면 공법을 어느 정도까진 익혀내도 버틸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잔결독공이 중간에서 수련을 멈출 수 없는 것임을 알았다면 절대 익히지 않았을 것이다.
‘어쩔 수 없지. 이미 돌이킬 수 없게 되었으니.’
장우는 결국 마음을 차분하게 가라앉히고 공법 수련에 집중하기로 했다.
어차피 죽을 거라면 최대한 이득을 보겠다는 생각이었다.
그리고 그 후 몇 년 지나지 않아서 장우는 결국 영체기 중기 승경에 성공하고 말았다.
당시 장우의 상황을 알고 있던 해원곡 고계 수사들은 장우의 승경이 너무도 빨리 이루어져 깜짝 놀랐는데, 이상하게 승경 후에 경지를 안정시키고도 남았을 시간이 흘러도 장우가 거처 밖으로 나오지 않아 많은 이들이 궁금하게 여겼다. 그렇게 다시 세월이 흘렀다.
“미쳤지, 미쳤어. 다시는 잔결독공 따위는 익히지 않겠어!”
정말이요? 그래도 단번에 경지를 끌어올리는 데는 좋았잖아요. 벌써 영체기 후기라니 다들 놀랄 걸요?
장우의 말에 몽이가 이전과 달리 오히려 웃는 얼굴로 그렇게 말했다.
그도 그럴 것이 장우는 고작 300년도 되지 않아서 영체기 중기를 거쳐 영체기 후기까지 올라선 것이다. 이렇게 빠르게 경지가 오르는 것은 그리 흔치 않은 일일 것이다.
애초에 영체기가 되면 3천 년 후에 천겁을 맞게 되는데 그 사이에 화신기에 오르는 것도 빠듯하다고 한다. 그러니 영체기에서 화신기가 되지 못하고 죽는 수사들이 허다한 것이 아니겠는가.
그런데 영체기 초기에서 후기까지 오르는데 고작 300년이라니.
수련 자질이 극도로 뛰어난 불세출의 기재도 이루기 어려운 업적일 것이다.
“후우, 그렇지 않아도 걱정이다. 이제 나를 이상한 눈으로 쳐다보는 이들이 어디 한 둘이겠냐?”
그럼 그냥 잔결독공을 던져 주면 되잖아요. 다시는 쓰지 않을 거라면서요?
“끄응. 애먼 소리는 그만 두고, 이제 그거나 찾아보자.”
장우가 몽이의 잡설을 일축하고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
그러자 몽이도 정색을 하고 한 마디를 남기고 모습을 감췄다.
네. 이번에는 분명 나올 거예요. 누가 먼저 찾나 내기해요.
“아니 내 의념공간에서 찾는 건데 내기는 무슨.”
장우는 몽이의 엉뚱한 행동에 피식 웃고는 정신을 집중하여 의념 공간을 살피기 시작했다.
그러자 이번 승경으로 넓어진 의념 공간에서 어렵지 않게 낯선 뭔가를 발견할 수 있었다.
그리고 장우는 그것을 찾는 순간 알 수 있었다.
‘유혼결의 봉인된 분혼이다!’
< 잔결독공(殘扶毒功)으로 승경에 도전하다〉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