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환장 통수 선협전-353화 (353/499)

(353)

< 큰 그늘에 잠시 몸을 맡겨볼까 한다〉

장우는 우선 의 념 공간에서 의복을 소환해 몸에 둘렀다.

시체까지 사라진 상태에서 부활을 한 탓인지 몸에 걸치고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었던 것이다.

이후, 장우는 자신이 정신을 차린 곳이 어딘지 궁금했다.

그리고 또 한 가지, 자신이 얼마만에 부활에 성공했는지도 알아야 했다.

이전 미우 앞에서 되살아 날 때에는 죽고 나서 고작 한 나절 정도만 지났을 뿐이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사정이 많이 달랐다.

‘시체조차 남기지 못했지. 영체야 이전에도 장문일 그 자에게 흡수당했으니 이번처럼 산산조각 난 것과 다를 바는 없지만.’

중요한 것은 시체가 사라졌다는 사실이다.

그 상태에서 부활을 한다면 아무래도 몸이 남아 있을 때보다는 더 긴 시간? 필요했을 것이다.

그건 저도 몰라요.

장우가 몽이에게 물어보려 했지만 몽이도 알 수 없다고 했다.

장우님이 죽는 순간부터 깨어나실 때까지는 저도 아무 기억이 없어요.

‘그렇군. 어쩔수 없지.’

장우는 우선 자신의 상태를 먼저 알아보기로 했다.

느껴지기론 몸엔 아무 이상도 없었고, 경지상의 손해도 없는 것 같았다.

하지만 그것을 가볍게 확인하고 넘어갈 일은 아니었다.

그래서 세심하게 의념을 움직여 몸 상태를 확인했다.

그리고 다시 한 번 역법반서복원대법(逆法反臟復元大法)의 신묘함에 감탄했다.

‘완벽하다. 영체기 초기에서 내가 이룬 모든 것이 그대로야. 경지나의념, 영기 축적까지 손해 본 것은 아무것도 없다.’

있다면 죽는 순간에 걸쳤던 옷이나 가지고 있던 소소한 물품들 정도 뿐이었다.

게다가 장우는 자신의 상태를 확인하며 또 다른 한 가지를 알아차릴 수 있었다.

‘이득도 있다. 역법반서복원대법의 성취가 올랐다.’

죽었다가 살아나니 대법의 성취도가 상승했다.

그래서 대법의 효과인 재생력이 이전보다 훨씬 커진 것을 알 수 있었다.

물론 그 재생력이 효과를 보이려면 부활에 필요한 진혈의 기운을 모두 축적할 필요가 있겠지만.

‘좋아. 나쁘지 않아. 설마 신선이라고 하더라도 내가 죽은 다음에 다시 이리 부활한 것을 알아차리지 못하겠지. 만약 이것까지 알아차리면 신선이 나를 찾아오는 즉시 영찬을 바칠 수밖에 없는 거고.’ 그렇다고 살려줄 거란 보장은 없지만 정말로 부활까지 꿰뚫어 보고 찾아온다면 다른 방도는 없어 보였다.

‘뭐, 그건 말 그대로 불가항력, 천재지변 같은 거지. 그것까지 고민하다간 머리털이 다 빠지겠다. 쯧.’

장우는 그렇게 자신이 감당할 수 없는 일에 대해서는 걱정을 훌훌 털어 버리기로 했다. 자기가 할 수 있는 수를 쓴 마당에 근심 걱정을 해 봐야 의미가 없었기 때문이다.

‘자, 그럼 근처에 어디 만만한 수사가 없는지 찾아 볼까?’

그렇죠. 그게 제일 좋은 방법이죠.

장우의 말에 몽이가 활짝 웃으며 찬성했다.

그리고 이후 장우는 하늘로 솟아올라 의념을 넓게 펼친 후에 도움을 얻을 수사를 찾기 시작했다.

“영찬 쟁탈전이라? 그런 일이 있었는지 모르겠습니다.”

“진선경 신선들의 다툼으로 생긴 반지천이라, 아주 오래 전에 스치듯 들은 일이 있긴 합니다만.”

“녹각성? 모르는 곳입니다. 이 근처에는 없는 지명입니다.”

“얼마나 먼 곳에서 온 건지 모르겠지만 도통 알 수 없는 이야기를 하는군.”

“에잉. 반지천 이야기야 그렇다고 치지만 영찬 쟁탈전이라니! 감히 나를 놀리는 것이냐? 그런 이야기는 들은 바 없다!”

장우는 이후 몇 명의 영체기 수사들을 만나 녹각성이나 영찬 쟁탈전, 반지천 따위의 일을 물었다.

그런데 대부분의 수사가 모른다고 하였고, 그 중 한두 명이 그나마 반지천에 대해선 풍문에 들었다고 했다.

이로서 장우가 부활한 곳은 반지천에서도 굉장히 먼 곳임을 알 수 있었다.

물론 반지천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는 이들도 있으니 아주 뚝 떨어진 세상은 아닌 모양이지만.

그래서 이젠 어떻게 할 거예요?

‘어쩌긴, 수련을 해야지.’

어디서요?

‘이럴 때에는 그저 제일 좋은 방법이 어디 빌붙어 보는 거 아니겠냐?’

에? 설마 수도 문파에 적을 두시겠다는 거예요? 장우님 그런 거 싫어하잖아요.

‘꼭 어디에 소속될 필요는 없지. 아니 소속이 되긴 하는 건가?’

그게 무슨 말씀이에요?

‘너도 나하고 같이 돌아다녔으니 들었을 게 아니냐. 이쪽 수도계에 괴짜들이 있다는 이야기 말이다.’

에? 설마 거길 들어가신다고요? 그거 그냥 용병이나 다름이 없는데요?

‘내가 진짜로 용병 일을 할 필요는 없지. 그냥 용병 신분만 얻고, 그 그늘 아래에서 수련에 방해만 받지 않으면 될 일이니.’

우와, 장우님, 너무 좋은 쪽으로만 생각하시는 거 아니에요? 세상 어느 누가 남 좋은 일만 시키겠어요? 그 그늘에 있으려면 당연히 그만한 대가를 치러야 할 걸요?

‘그건 그렇겠지. 하지만 일감이야 내가 선택할 수 있는 것이니 적당히 부담이 없는 일을 골라서 면만 세우면 되지 않겠냐?’

음, 모르겠어요. 가능하기만 하다면야 좋은 방법이네요. 어차피 수련자원은 충분하니까요.

몽이는 이번에도 결국 장우의 계획에 동의해 줄 수밖에 없었다.

일단 부딪혀 보고, 생각과 전혀 다르다면 다시 다른 방법을 찾아도 될 일이 아닌가. 그리하여 장우는 해원곡(解系谷)으로 향하게 되었다.

*  *  *

“입곡(人谷)을 청한다고?”

장우가 해원곡을 찾아가 그 입구에 있는 허름한 객잔에 앉아 있으려니 누군가 그의 앞에 와서 앉으며 물었다.

그는 검은색의 장삼으로 몸을 가린 창백한 안색의 중년 수사였다.

장우는 그가 화신기 경지의 수사임을 알아보고 급히 몸을 일으켰다.

“말학 후배가 선배님을 뵙습니다. 장우라 합니다.”

“장우라……. 기억에 없는 이름인 것을 보니 멀리서 온 모양이군?”

장우의 인사에 그 화신기 수사가 스치듯 장우를 훑어보며 물었다.

“그렇습니다. 실상 후배도 이곳이 어딘지를 잘 모릅니다.”

“어찌 이곳까지……. 아니지 해원곡에 입곡을 청했는데 그런 것을 묻는 것은 규칙에 어긋나겠지.”

화신기 수사는 장우의 일이 궁금하지만 묻지 못하는 것이 아쉽다는 듯이 중얼거렸다.

하지만 그렇다고 장우가 스스로 자신의 일을 밝히진 않았다.

화신기 수사는 내심 장우 스스로 사정을 털어놓기를 바라는 모양이지만 장우도 해원곡에 대해서 어느 정도 알아보고 온 상태였다.

“과거의 일은 묻지 않는 것이 우리 해원곡의 규칙이니 그건 넘어가자. 하지만 이건 물어봐야겠군.”

“하문(下問)하십시오.”

“네가 먼 곳에서 왔다니 혹여 큰 사고를 치고 쫓기는 것은 아니더냐? 그리고 네 뒤를 쫓는 이나 단체가 우리 해원곡에 해가 되지는 않겠느냐?”

“절대 그럴 일은 없습니다. 그리고 해원곡이 입곡 전에 있었던 일로 입곡자를 보호하는 일은 없지 않습니까.”

그러니 뒤쫓아 오는 이들이 있더라도 뭐가 문제냐는 뜻이다.

그 때는 해원곡이 장우를 모른척 하면 그만이다.

굳이 장우를 쫓아 온 이들과 다툼을 벌일 일이 없는 것이다.

그것이 또 해원곡의 규칙이었다.

“제법 공부를 하고 온 모양이구나. 그런데도 입곡을 청한 이유가 있으렷다?”

“이를 말씀이겠습니까. 곡(谷)이 과거의 은원에는 간섭하지 않지만 입곡 후에 곡(谷)의 일과 연관된 일에는 철저하게 입곡자를 보호해 준다고 들었습니다.”

“그야 그렇지."

“그러니 이 얼마나 든든한 일이겠습니까. 해원곡에 선배님은 물론이고 어르신들도 계시다 들었는데 말입니다.”

“흥, 제법 알아보고 온 모양이구나. 하지만 이것도 알아야 할 것이다. 우리 해원곡은 수도 문파가 아니다. 그러니 누가 누구를 가르치거나 하는 일은 없다는 것이다. 또한 곡 내에서 서로를 방해하는 일은 절대 없어야 함도 기억하거라.”

“네, 알겠습니다. 선배님.”

장우는 화신기 수사의 말에 공손하게 손을 모으고 허리를 굽혔다.

“좋다. 그러하면 이제 입곡 시험에 대해서 이야기를 해 보자꾸나. 너는 입곡 시험에 대해 아는 것이 있느냐?”

“죄송합니다. 후배의 견문이 거기까지는 미치지 못했습니다.”

“커엄. 그나마 다행이구나. 곡의 일이 거기까지 퍼졌다면 단속을 좀 해야 할듯 했는데 말이다.”

“크흐흐. 좋아. 아무튼 모른다니 내가 일러주마. 본 곡의 입곡 시험은 간단하게 두 가지 방법이 있다. 하나는 기부 입곡, 다른 하나는 해원 입곡이다.”

“기부 입곡은 일정 재물을 기부하는 것입니까?”

“그렇지. 너는 영체기 초기니 그에 맞춰서 기부를 하면 되겠지.”

“그럼 해원 입곡은 무엇입니까?”

“우리 해원곡이 어떤 일을 하느냐? 그리고 본 곡의 이름이 어째서 해원곡이더냐?”

“곡의 이름이 해원곡인 이유는 다른 이들의 원통함을 풀어준다는 뜻이 아닙니까. 그럼 입곡의 해원시험은 해원곡에 들어온 일감 중에 하나를 맡아 해결하는 것입니까?”

“크흐흐. 옳다. 제법 머리가 돌아가는구나. 그래서 너는 어찌 하겠느냐? 기부입곡을 하겠느냐 아니면 해원입곡을 하겠느냐? 참고로 기부든 해원이든 일정 기간에 한 번씩은 반드시 해야 하는 일이니라.”

해원곡에 머물기 위해서 지불해야 하는 대가가 있다는 이야기고 그것은 장우도 알고 온 것이었다.

장우는 화신기 수사의 물음에 조금도 머뭇거리지 않고 대답했다.

“첫 입곡은 일단 기부입곡으로 하겠습니다. 이후 다음 부터는 상황을 보아 해원으로 할까 합니다.”

“크흐흐. 일단 분위기를 살피겠다는 것이구나? 나쁘지 않다. 그렇다면 그리 하거라.”

화신기 수사는 장우의 말에 기분 나쁜 기색을 보이지 않았다.

차라리 장우의 선택을 칭찬하는 듯 했다.

그리고 장우는 그 자리에서 기부금을 내고 해원곡 소속을 증명하는 패를 얻을 수 있었다.

그 전에 화신기 수사는 장우에게 몇 곳의 지형을 예로 들어 머물고 싶은 곳을 물었고, 그에 맞춰서 패에 거처까지 지정해 주었다. 그렇게 장우는 낯선 곳에서 해원곡이란 곳에 자리를 잡게 되었다.

- 그래도 산수로 떠돌다가 홀로 거처를 정하는 것보다는 안전하겠죠?

‘그렇겠지. 그러자고 입곡을 한 것이니.’

장우와 몽이는 해원곡에 들어 배정받은 거처에 짐을 풀고 오랜만에 그렇게 여유를 가졌다.

하지만 장우와 몽이는 해원곡이 꽤나 교묘한 구석이 있는 곳임을 오래지 않아 알게 되었다.

*  *  *

“그러니까 10년에 한 번씩 기부를 해야 한다는 말입니까?”

“그렇다.”

“그것도 한 번에 장기 기부를 할 수가 없다는 규칙이 있다는 말씀이지요?”

“잘 알아 들었구나. 그래 이번에도 기부를 하고 입곡자의 신분을 유지할 테냐?”

“으음. 일단 그리하겠습니다.”

“그래? 알았으니 영석을 내 놓고 물러가거라.”

장우의 대답에 묵색 장삼의 화신기 수사는 그렇게 말을 하고는 모습을 감췄다. 게다가 이번에 나타난 화신기 수사의 모습은 진체가 아니라 환영에 불과했다.

사념을 남겨 화신기 수사의 뜻을 전하며 적절한 반응을 보이는 인형과 같은 환영이었다.

장우는 그 환영이 나타났던 탁자에 영석 주머니를 올리고 객잔을 나왔다.

와, 치사한 것들 결국 그런 꼼수가 있었어요.

‘10년에 한 번씩 나와서 기부를 해야 하니, 장기 수련이 불가능하다는 이야기지.’

그러니까요. 결국은 해원을 해야 한다는 거잖아요. 어쩐지 해원에 따라서 입곡자의 신분을 유지할 수 있는 기간이 따로 붙어 있는 것이 이상했어요.

‘제대로 수련을 하려면 적어도 몇 백 년 정도는 여유가 있어야 하는데, 그러자면 또 기간이 짧은 해원 임무는 여러 번 해야 할 것이고.’

기간이 긴 것은 그것대로 힘들고 어려운 것이겠지요. 아무튼 수도계는 참으로 팍팍한 곳인 거 같아요.

‘그러게 말이다. 또 그런데도 해원곡을 떠나서 홀로 수련을 하는 것보다는, 임무를 해서라도 해원곡에 머무는 것이 좋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는구나. 해원곡에 머무는 장점이 적지 않은데다가, 임무를 수행하는 중에 기대해 볼 수 있는 이득도 적지 않으니.’

- 그러니까 해원곡이 참으로 교묘한 수작을 부린다고 하는 거죠. 쳇.

장우의 말에 몽이가 혀를 찼다.

하지만 결국 장우와 몽이는 해원곡의 해원 임무를 맡는 쪽으로 생각을 바꿀 수밖에 없었다.

그리하여 장우는 해원곡에 들어온 지 20년 만에 해원 임무를 살피기 위해 거처를 나섰다.

< 큰 그늘에 잠시 몸을 맡겨볼까 한다〉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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