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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각성(雇角城)에이르다〉
키리리리리릭! 파직!
더듬이를 떨며 기괴한 소리를 내던 충괴수(蟲怪獸)의 머리가 깨져 나갔다.
이미 장우의 수(水)속성 공격에 얼어붙어 있던 머리라 이어진 토(土)속성의 창 공격을 버티지 못한 것이다.
그 순간 장우는 죽은 충괴수의 몸에서 희미하게 흘러드는 진혈의 기운을 느꼈다.
그리고 역법반서복원대법에 그 진혈의 기운이 채워지는 고양감을 느꼈다.
‘됐다. 드디어 진혈의 기운이 가득 찼어.’
와, 그럼 장우님은 이제 죽어도 다시 부활할 수 있는 거네요?
장우의 속말에 몽이 나타나 기쁜 표정으로 대꾸했다.
‘그래도 죽고 싶지는 않다. 죽어봐야 득은 하나도 없으니까.’
아니죠. 한 번 죽었다가 살아나는 바람에 역법반서복원대법에 대해서도 많이 알게 된 거잖아요.
‘아무리 그렇다고 몽이 너는 내가 또 죽기를 바라는 거냐?’
그건 아니지만 다음에 죽어서 부활하면 또 뭘 더 얻을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긴 하죠.
‘싫다. 절대로 안 죽을 거다.’
뭐, 당연히 그래야 하긴 하는데, 그 역법반서복원대법이 있다는 걸 생각하면 든든하긴 하잖아요. 죽어도 다시 부활! 캬, 멋지다. 게다가 역법반서복원대법, 그거 몸뚱이가 완전히 사라져도 부활이 가능할 거 같다고 했죠?
‘그래, 이 역법반서복원대법이 자리잡은 곳이 의념공간이다. 의념공간 전체를 감싸고 대법의 기운이 덮여 있지. 그래서 죽어서 시체가 사라져도 부활이 가능할 거 같고.’
정말 신기한 대법이에요.
‘게다가 진혈 축적이 끝난 지금 알게 된 건데, 대법의 부과 효과도 있는 거 같다.’
네? 부활 말고 다른 효과도 있어요?
‘부활에 비해서는 그리 대단치 않지만 대법을 쓰기 위해 비축한 것 이상의 기운은 몸이나 영체를 회복하는데 도움이 된다.’
그러니까 다쳐도 회복이 된다고요?
‘그래. 비축된 진혈의 기운만 있다면.’
- 와, 회복으로 잘 죽지 않도록 해 주고, 그래도 어쩔 수 없이 죽게 되면 부활을 시켜주는 거군요? 멋져요!
장우의 말에 몽이가 크게 기뻐하며 탄성을 질렀다.
그런 중에 장우는 방금 죽인 층괴수의 몸에서 쓸 만한 것들을 추려 공간낭에 넣은 후, 훌쩍 하늘로 몸을 띄웠다.
그리고 의념을 퍼트려 자신이 가던 방향을 살폈다.
-뭐가있어요?
몽이가 장우의 얼굴 옆으로 날아 붙으며 물었다.
“음, 드디어 녹각성(鹿角城)에 도착한 모양이다. 저 앞에 인간들의 마을이 느껴진다.”
-마을이요?
“저계 수사와 범인들의 기척이 느껴지는 것을 보면, 그 너머로 녹각성의 영역이 있는 것이 아닌가 싶다.”
지금 있는 곳에선 이제 하늘에 반지천이 보이지 않는다.
그만큼 먼 곳까지 이동해 왔다는 소리다.
그 동안에 장우는 몇 개의 대성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고, 또 지나쳐 오기도 했다.
영체기 수사인 장우가 쉬지 않고 하늘을 날아 이동한 시간이 벌써 10년이 흘렀다.
그 긴 시간동안 사냥과 이동을 병행한 장우였다.
물론 이동 중에 때때로 비슷한 경지의 수사들을 찾아 여러 정보를 모으기도 했는데, 그 중에 가장 신경 쓴 것이 주변 지형에 대한 것이었다.
그 과정에서 먼 타지에서 온 떠돌이 수사인 장우에게 불친절한 이들도 많았다.
하지만 장우는 항상 그런 자들을 적당히 위협해서 원하는 것을 얻어낼 수 있었다.
몇 번 다른 수사들과 다툼을 겪은 후에 장우는 자신의 의념이 같은 경지의 수사들에 비해서 월등히 강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던 것이다.
장우는 그 이유가 어쩌면 유혼결 때문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어쨌거나 같은 경지의 수사들에 비해서 네 배는 강력한 의념이라니.
유혼결을 두 번은 성공적으로 완성해야 얻을 수 있는 효과가 아닌가.
어쨌거나 네 배 강력한 의념이란 말은, 따지자면 한 단계 위의 경지에 있는 수사보다 뛰어나다는 뜻이다.
물론 의념의 크기는 같은 경지의 다른 수사들과 비슷한 수준이니 경거망동하여 날뛰긴 어려웠다.
하지만 비슷한 경지에 있는 수사라면?
감히 장우 앞에서 고개를 뻣뻣이 들 수 없게 만들기는 어렵지 않았다.
그래서 장우는 반지천 지역에서 이곳까지 이동하는 동안 여러 동도들의 자발적인 도움을 제법 많이 받아왔다.
- 녹각성이 근처에서는 가장 큰 성이라 했지요?
‘그래. 게다가 그곳에는 수많은 거대 수도 문파가 뒤엉켜 있다고 했지.’
- 그게 전부 그 녹각 때문이고요?
‘옳다. 녹각성의 장거리 전송진이 안록산(顔鹿山)으로 통하는데, 그곳이 여러 희귀 사슴들의 서식지라지. 그리고 그 안록산에서 녹각이 많이 나와 성의 이름이 녹각성인 것이고.’
- 아무튼 장우님은 녹각성의 경매장을 찾아가시는 거잖아요. 수련 자원을 마련하기 위해서요.
‘그곳 경매장은 선계의 거대 수도 문파들이 공동으로 운영하는 곳이라 비밀 보장이 철저하다잖아. 신분을 감추고 원하는 것을 얻기에는 더없이 좋은 곳이지.’
- 대신에 수수료가 높다는 것이 함정이죠.
‘네가 말한 것처럼 힘이 없는 놈이 보물을 가진 것은 죄가 되는 세상이다. 당연히 손해를 보더라도 나를 드러내지 않는 것이 제일이지.’
- 네, 그건 저도 인정! 그럼 어서 가요. 이번에 영찬을 팔아서 수련에 필요한 공법도 사고, 비행법기나 법보도 사고, 연단이나 재련 같은 것도 제대로 할 수 있도록 준비를 하자고요.
몽이는 영찬을 팔고 난 후에 사들일 것들을 나열하며 신이 난 모습을 보였다.
장우도 그런 몽이에게 장단을 맞추며 다시 하늘을 날아가기 시작했다.
“좋지. 일단 이번에는 화신기 이상을 바라볼 수 있을 수련 공법을 구해보자. 그리고 연단이나 재련 비방도 구하고, 그 재료들도 넉넉하게 사자꾸나.”
- 영찬 하나로 안 되면 서너 개를 팔아도 괜찮겠죠?
“제일 큰 것은 빼 두고, 작은 것이 일곱이나 되니, 서너 개 정도야 어떻겠냐.”
- 그죠? 그렇죠? 에헤헤헤.
* * *
대천 세계는 광활하다.
그리고 그 정점에 있는 선계는 그 아래에 있는 영계와 인계 전체를 합친 것보다 크다.
그러니 어지간한 경지의 수사는 선계 전체의 모습을 알 수 없다.
그것은 갓 진선에 오른 수사 정도로도 감히 가늠해보기 어려운 영역이다.
그러니 영체기 호기에 불과한 장우가 지금 자신이 있는 곳이 선계의 어디쯤인지를 아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저 녹각성이란 곳이 근처에서는 가장 이름난 곳이고, 그곳에 거대 수도 문파들이 모여 만든 경매장이 있다는 것을 알 뿐이다.
물론 그 경매장이 손님의 신분 보장을 확실히 해 준다고 여러 수사들이 입을 모아 말했기에 장우도 그걸 믿고 녹각성으로 향했던 것이다. 그런데 막상 도착해보니 녹각성은 장우가 생각했던 것과는 말이 달랐다.
녹각성은 정리되지 않은 혼란스러움의 극치였다.
‘여긴 완전히 시장통 같은데?’
그러게요. 게다가 수사들의 성향도 많이 거칠어 보이네요.
‘그러게 말이다.’
장우는 녹각성의 성문을 통과해 대로를 따라 걸으며 몽이와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그리고 둘의 대화처럼 녹각성에 대한 첫 인상은 무척 거칠고 혼란스럽다는 것이었다.
“하이고, 선배님, 녹각성에는 처음 오시는 모양이지요? 이 후배가 좋은 곳을 알고 있는데 길안내를 해도 되겠습니까?”
그 때, 성단기의 수가 하나가 옆으로 따라 붙으며 장우의 걸음을 붙잡았다.
직접 소매를 잡거나 하는 결례는 없었지만 뜬금없는 호객이라니, 장우로서는 지금껏 경험해 보지 못한 일이었다.
‘길안내를 하겠다고? 성단기 수사가 고작 그런 일을?’
성단기이니 장우님이 대가를 치를 때에도 그에 맞춰서 주시지 않겠어요? 그걸 생각하면 못할 일도 아닌거 같은데요?
‘그러니까 성단기는 성단기에 맞춰서 대가를 줘야 한다는 거구나? 나름 고급 인재이니 거기에 맞춰서?’
장우는 그런 생각을 하며 자신의 발걸음을 멈추게 한 수사를 바라봤다.
염소 수염을 달고 있는 키 작은 늙은이.
경지는 성단기 후기였고, 보아하니 수명이 그리 많이 남지는 않은 듯 보였다.
“네가내길안내를 하겠다고?”
장우가 그 수사를 보며 물었다.
“그렇습니다. 선배님.”
“선배라, 여기선 성단기가 영체기를 두고 선배라 부르는 모양이구나?”
“네? 아! 먼 곳에서 오셔서 이곳의 관습을 모르시는 모양이군요? 이곳에선 자신보다 경지가 높은 수사를 선배 혹은 어르신이라 칭합니다.”
“그래? 그럼 보통은 경지 차이가 적으면 선배, 많으면 어르신이라 하겠구나?”
“하하하. 네, 그, 그렇습지요."
“뭐, 그걸 따지자는 것은 아니다. 그저 나도 실수를 하지 않기 위해서 물어본 것 뿐이다. 그런데 네가 내 길안내를 하겠다고 했는데, 이곳 녹각성에서 그런 것이 필요하더냐?”
성 내에서 굳이 길안내를 받을 이유가 있느냐 하는 물음이었다.
차라리 도시의 정보를 대충 옥간 같은 것에 저장하여 넘겨받으면 될 일이 아닌가.
“세상이 잠시도 멈추지 않고 변하는데 어찌 녹각성이라고 그렇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저처럼 성의 사정에 익숙한 놈을 곁에 두시면 여러모로 편한 면이 있는 것입니다요.”
“흐음. 그래? 그렇다면 내가 너를 부리는 대가는 어찌 주어야 하느냐?”
장우는 이 늙은 수사를 고용하는 것도 고려해 볼 생각으로 비용을 물었다.
“고작 길안내에 많은 것을 바라겠습니까. 한 달에 중급 영석 한 개면 됩니다요.”
“중급 영석? 그놈 참 욕심이 과하구나."
장우가 살짝 인상을 찌푸렸다.
중급이라면 화신기 급에서나 쓸 법한 영석이다.
영체기인 자신도 중급 영석을 사용한 진법이나 술법, 결계 등은 몇 번 경험해 보지 못했다.
그런데 고작 성단기 놈이 중급 영석을 논해?
“선배님, 제가 그런 값을 바라는 것은 그만한 가치를 제가 가지고 있기 때문이 아니겠습니까. 절대 후회하지 않으실 것입니다.”
장우가 인상을 쓰자 염소 수염 늙은이가 자신만만한 표정으로 어깨를 펴며 말했다.
그 모습이 워낙 당당하여 장우는 정말 그런가 하는 생각마저 들 정도였다.
- 사기꾼이네요.
하지만 몽이는 단칼에 늙은 수사에 대한 평가를 사기꾼으로 내리고 말았다.
장우는 몽이의 판단을 듣고 다시 한번 꼼꼼하게 염소 수염 늙은이를 살폈다.
“으응?”
장우의 의념이 자신을 훑어 내리는 것을 느꼈던지 염소수염 늙은이가 인상을 와락 찡그렸다.
그 순간 장우가 그를 노려보며 중얼거렸다.
“경지를 속이고 내게 접근을 했다면 그게 좋은 의도는 아니겠군.”
“에잉, 들켜버렸군. 쯧,”
그러자 염소수염 늙은이는 인상을 쓰며 혀를 차더니 등을 돌려 장우에게서 멀어지기 시작했다. 장우는 곧바로 그 늙은수사의 뒷목을 잡고 싶었지만 손만 들었다가 다시 내릴 수밖에 없었다.
‘영체기 후기. 싸우자면 못 싸울 것도 없고, 질 것 같지도 않지만 여긴 수사들이 너무 많다.’
- 게다가 화신기나 그 이상의 수사들도 많은 곳이죠. 여기서 소란을 피우면 장우님만 손해를 볼 거예요.
장우의 말에 몽이도 냉철한 상황 판단을 내어 놓았다.
이곳 녹각성에 익숙한 염소수염 늙은이와 그렇지 못한 장우.
둘의 다툼이 벌어져서 문제가 생겼을 때, 일처리에서 장우가 불리할 수밖에 없었다.
그것을 알았기에 손을 쓰려던 장우가 애써 참아 낸 것이다.
“하하하. 이거 실패로군.”
그러자 등을 돌리고 멀어지던 염소수염 늙은이가 다시 장우 쪽을 보며 아쉽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장우는 그를 노려보며 차분한 음성으로 말했다.
“쌓인 악연은 언젠가는 풀어야겠지. 늙은이 나는 좀처럼 옛 일을 잊는 법이 없는 사람이다. 기억해 두어라.”
“에잉, 그래봐야 너만 손해일 텐데? 그냥 없던 일로 생각하고 잊는 것이 좋을 게다.”
“그거야두고보면 알 일이지.”
장우는 그렇게만 말을 하고는 등을 돌려 다시 대로를 따라 걷기 시작했다.
그렇게 멀어지는 장우의 뒷모습을 보면서 염소수염의 늙은 수사는 얼굴에 꺼림칙한 표정을 떠올렸다.
‘이거 괜한 짓을 한 건가? 어리숙해 보였는데 사실은 독을 품은 독사였던 거 같군.’
그는 마치 언제라도 뒤꿈치를 물릴 것 같은 섬뜩함에 소름이 돋는 느낌을 받았다.
- 그냥 모른 척 하시지 그랬어요? 왜 괜히 긁어 부스럼을 만들어요?
‘몰라. 성질이 뻗치는 걸 어떻게 하겠어? 뒷배가 있을 수도 있겠지만 그렇다고 먼저 당하고 고개까지 숙일 수는 없잖아!’
- 그건 그렇죠.
‘괜찮아. 녹각성은 제법 안전한 곳이라고 들었잖아.’
- 네, 뭐, 같은 영체기 수사의 눈치까지 보고 살 수는 없죠. 우리 장우님이 그런 취급을 받아서야…….
몽이는 결국 이번에도 장우의 편을 들고 만다.
항상 그랬던 것처럼.
〈 녹각성(鹿角城)에 이르다〉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