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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반지천 (半地天)을 뒤로 하고 튀어라〉
“실로 천지가 뒤집히는 일이었지요. 이르기는 진선경 이상의 신선 두 분이 다투었다 하였지요.”
“진선경 이상이라면 어떤 신선들인지는 알려지지 않았다는 것입니까?”
“우리같은 것들에게 그분들의 고명이 닿기나 하겠습니까? 그저 이러한 이야기도 전해진 것일 뿐, 제가 태어나기도 전의 일이 아닙니까.”
“하긴 그렇긴 합니다.”
태어나기도 전의 일이라 말하는 영체기 수사의 말에 장우는 멋쩍은 표정을 지으며 동의할 수밖에 없었다.
“하여간 장우 수사도 참으로 기이합니다. 아무리 산수라 하지만 어찌 그 일을 모를 수가 있는지.”
“하하하. 무지렁이로 산속에서만 살다가 어찌 선인의 기연을 만나 수련만 하다 나왔다 하지 않았습니까. 그러니 동도된 입장에서 좀 너그러이 봐 주십시오.”
“하하하. 이미 장우 수사에게 이야기값도 넉넉히 받았는데. 그리 사정할 필요는 없지요. 어쨌거나 다시 이야기하자면 그 때, 신선들의 싸움으로 땅과 하늘이 뒤집혔습니다. 그래서 저리 반지천(半地天)이 되었지요.”
장우는 조식오라 이름을 밝힌 영체기 수사의 말에 고개를 들어 하늘을 힐끗 바라봤다.
이전에 지상으로 올라와 처음 봤던 그대로 절반은 땅, 절반은 하늘의 모습을 하고 있는 반지천이 눈에 들어왔다.
반은 땅이고 반은 하늘이란 의미라는데 실제로 하늘을 반이나 가린 땅은 땅에서부터 비스듬히 사선으로 뻗어 올라간 것이다.
그러니 아주 먼 곳으로 갈수록 하늘은 넓어지고 하늘을 가린 땅은 줄어들 것이다.
“저기 반지천의 땅에도 수사들이 여럿 거하고 있겠군요?”
장우가 조식오 수사를 보며 물었다.
“이를 말이겠습니까. 여럿 있겠지요. 하지만 진선경 이상의 신선은 없을 것입니다. 대부분 저계 수사들 뿐이겠지요.”
“그건 또 왜 그렇습니까?”
“그야, 저것이 생긴 지가 겨우 3천 년이 되지 않았기 때문이 아니겠습니까. 그 시간 동안에 무엇이 자랐겠습니까?”
“아, 그렇군요. 오래 되어 보아야 3천년 정도 된 것들 뿐일 테니 수련 자원이 풍부할 수가 없겠습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영기가 쌓여 좋은 수련 자원을 만드는 것은 기본적인 상식이다.
그런데 천지가 뒤집어지는 상황에서 얼마나 많은 것이 살아남을 수 있었을까.
“그럼 저 반지천이 보이는 영역이라면 대부분 그와 비슷하지 않겠습니까?”
장우는 굳이 하늘 위로 뻗은 땅이 아니어도 이곳 역시 상황이 다르지 않을 거란 사실을 지적했다.
“조금 낫기야 하겠지만 장우 수사의 이야기가 틀린 것은 아닙니다. 그래서 근처에 경지 높은 수사가 드물지요.”
“그렇군요.”
장우가 조식오의 말에 아쉬운 표정을 지었다.
“생각해보십시오. 이런 천지번복을 만들어 냈던 신선들도 결국은 이곳은 살 곳이 못된다며 다른 곳을 찾아 떠났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그런 즉, 이 지역은 사실 수련에 좋은 환경은 절대 아니지요.”
“그렇습니까? 두 신선이 싸워서 승패를 낸 것이 아니라 다른 곳으로 떠났습니까?”
“전해지기론 그랬다고 합니다. 신선들끼리 끝을 보자고 싸워봐야 무슨 이득이 있겠습니까? 결국 다투다가 만 것이지요.”
“그럼 그 싸움은 애초에 왜 시작을 했답니까?”
“하하하. 그건 제가 좀 알지요. 원래 한쪽 신선은 땅 밑에 거하고 있던 지저 신선이고, 다른 한 신선은 그 위에 있는 거대 호수에 거하던 태호(太湖)의 신선이었다 합니다.”
“그래서요?”
“그런데 어느 날 태호의 바닥이 꺼지면서 지저 신선의 머리에 홍수가 쏟아진 것이지요.”
“아, 그래서 지저 신선이 화가나서 태호 신선과 싸웠다는 게로군요?”
“워낙 이야기가 비유적으로 축약된 감이 있기는 하지만 대략 그러한 이야기지요. 그런데 고작 머리가 좀 젖은 것으로 서로 죽자고 싸울 일이야 있었겠습니까?”
“그 말은 지저 세계에 홍수가 나고 재앙이 닥친 것이 지저 신선에겐 그리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는 말이 될 수도 있겠군요?”
“하하하. 결과가 그렇지 않습니까. 두 신선이 싸우다 말고 서로 다른 곳으로 떠났다니 말입니다.”
“하아, 그렇습니다. 실로 그렇군요.”
장우는 그렇게 대답하며 허탈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자신이 땅 밑에 파묻히고 벌써 3천년 가까운 시간이 흘렀단다.
그런데도 자신에게 천겁이 다가오는 느낌이 없는 것을 보면 그렇게 묻혀 있던 시간은 천지 법칙의 눈을 속였던 시간인 모양이었다.
몽이와 함께 의논해 본 결과로는 두 신선의 싸움에 휘말려 시간을 건너뛰었을 수도 있다고 봤다.
어쨌거나 가까운 시일 안에 천겁을 맞을 걱정을 던 것만으로도 얼마나 다행인지.
장우는 자신이 땅에 묻히고 3천 년 가까운 시간이 흘렀음을 알았을 때는 당장 천겁이 닥쳐 죽게 되지 않을까 무척 걱정했었다.
그래서 어떻게든 역법반서복원대법(逆法反臟復元大法)의 기운을 충전하여 부활할 방법을 만들어 놓으려 했었다.
하지만 얼마쯤 시간이 지나 마음을 진정하고 가만히 스스로를 돌아보니 천겁의 느낌은 전혀 없었다.
어느 정도 천겁이 다가오면 반드시 그 느낌을 받아서 대비할 시간이 생기는 것이 수도계의 정설이고 보면, 장우에게 천겁이 닥치려면 많은 시간이 남았다는 뜻인 것이다.
그래서 장우는 자신이 땅 밑에 묻혀 있는 시간을 천지 법칙이 알아차리지 못했거나 혹은 짧은 기간에 시간을 건너 뛴 것이라 생각했다.
세상이 뒤집어지고 반지천이 생긴 것을 보게 되니. 신선들의 세상에서는 시간을 건너뛰는 일도 가능할 듯싶었던 것이다.
“그래서 장우 수사께서는 이제 어쩌시렵니까?”
그 때, 조식오 수사가 장우를 보며 물었다.
그는 어느 날 자신을 찾아온 장우 수사가 적잖은 보상으로 내밀고 반지천에 얽힌 이야기를 물었을 때 의아해 했다.
이미 신화처럼 전해져 내려와 주위에서 모르는 이가 없는 일야기를 굳이 보상을 주며 들으려 하는 것이 이해가 되지 않았던 것이다.
하지만 장우는 끝내 보상을 내밀며 수사로서 조식오 수사가 알고 있는 이야기를 해 달라고 청했다.
조식오는 일반 범인들이나 저계 수사들에 비해선 그래도 그 일에 대해 조금은 더 많은 것을 알고 있으니 보상을 좀 받아도 되겠다는 자기변명을 하며 장우의 청을 수락했었다.
그렇게 둘이 마주 앉아 이야기를 나눈 것이 하루가 지나 이제는 더 해 줄 말도 없었다.
그래서 그는 이후에 장우가 어찌 할 것인지를 물어 본 것이다.
“산수(散修)가 달리 할 일이 뭐가 있겠습니까? 이제 다시 수련을 위해서 여기저기 떠돌며 수련 자원을 모아야지요.”
조식오의 물음에 장우는그렇게 덤덤한 대답을 내 놓았다.
그리고 조식오는 그 대답이 평범하면서도 또 가장 그럴듯한 대답이라 생각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오래 전의 신화 같은 이야기에 관심을 보인 이유는 모르겠지만 고작해야 영체기 수사가 아닌가.
조식오 자신도 같은 경지여서 알고 있지만, 영체기 수사는 참으로 고단한 경지다.
영체기가 되면 자연스럽게 천겁의 위험을 안게 된다.
인간 수사는 대략 3천 년 이내에 천겁을 맞게 되니, 그 전에 화신기로 승경하여야 살아남을 가능성이 생긴다.
왜냐하면 영체기 경지로는 아무리 약한 천겁이라도 버티지 못한다는 것이 정설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죽음을 피하기 위해서라도 죽어라 수련에 힘쓸 수밖에 없다.
이런 중에 배경이 없는 산수라면?
그 곤(困)함이 다른 수사들보다 휠씬 클 수밖에 없었다.
“이제 영체기 초기에 들었으니 앞으로 시간은 넉넉할 것입니다. 이 조식오, 장우 수사의 승승장구를 기원하겠습니다.”
조오식은 두 손을 모아 내밀며 장우의 앞날을 빌어 주었다.
장우는 그 모습에 피식 웃고는 마주 예를 취했다.
지금 조오식의 행동이 작별을 고하는 것임을 모르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를 테면, 볼 일이 끝났으니 이만 헤어지자라는 말을 돌려 한 것이 아니겠는가.
“고맙습니다.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언제고 또 뵐 날이 있기를 바라겠습니다.”
“아,가시렵니까? 그럼 안녕히……
“네, 조 수사도 안녕히 계십시오.”
장우는 그렇게 조식오와 인사를 나누고 그의 수련거처를 떠났다.
그렇게 조식오와 헤어진 장우가 향한 방향은 반지천에서 멀어지는 쪽이었다.
- 힘없는 자가 보물을 지니고 있는 것은 큰 죄가 되지요.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것이냐?,
- 장우님 의념 공간에 모셔져 있는 영찬(靈豫)을 말하는 거지 뭐겠어요? 그거 들켰다가는 정말 공공의 적이 될 수도 있어요.
‘의념 공간에 있는 것을 누가 알아본단 말이냐? 그런 걱정은 할 필요도 없다.’
- 그렇기는 하죠. 하지만 누가 영찬이 있던 곳을 발견하고 장우님의 뒤를 쫓기 시작하면 어쩔 거예요? 장우 님도 그게 겁나서 멀리 도망가는 거잖아요.
‘쯧, 도망은 무슨. 어디 좋은 수련 거처가 없을까 찾는 거지.’
장우는 몽이와 대화를 나누며 조식오를 만나기 전에 있었던 횡재를 떠올렸다.
그것은 정말 우연이었다.
장우가 반지천을 처음 보고 깜짝 놀라 한동안 넋을 잃고 있던 중이었다.
갑자기 하늘의 반을 덮고 있던 땅덩이에서 뭔가가 떨어진 것이다.
그것은 엄청난 속도로 떨어지더니 땅에 큰 구멍을 내고 처박혔다.
그런데 그 크기가 자그마치 수 천 장이나 되었다.
장우는 호기심에 그것이 떨어진 곳을 찾았고, 그곳에서 귀한 보물들을 발견할 수 있었던 것이다.
영찬은 여러 가지 이유로 만들어진다.
때론 수사들이 특수한 공법으로 만들 때도 있고, 때로는 자연의 흐름이 만들어 내기도 한다.
그런데 하늘에서 떨어진 거대한 암석이 쪼개지며 그 안에서 영찬이 나온 것이다.
원래 반지천의 하늘 절반을 가린 땅덩이는 지저 세계에서도 한없이 깊은 곳에 있던 땅이 솟구친 것이다.
그 탓에 영찬을 품고 키우던 암석까지 솟구쳐 올랐는데, 그것이 반지천의 대지에 박혀 있다가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떨어져 나온 것이다.
장우는 근처에 있다가 우연찮게 그것을 취하게 된 것이고.
모(母) 영찬 하나에 자(子)영찬 일곱이면 딱 봐도 영체기 수사 따위가 손에 넣을 수준의 보물은 아니죠. 에헤헤. 그걸 우리 장우님이 얻으셨단 말이죠.
“아직 영찬의 성질이나 효과도 알지 못한다. 그저 급하게 의념 공간에 밀어 넣고 몸을 피했으니까.”
게다가 한 번 넣고는 쉽게 꺼내지도 못하죠. 영찬의 기운이 오죽 강해야 말이죠. 꺼냈다가는 고계 수사들이 금방 알아차릴 걸요?
“이미 영찬(靈豫)이 들어 있던 암석이 깨어지며 영찬의 등장은 주위에 널리 알려졌을 것이다. 다만 의념 공간에 넣은 후로는 아무도 감지할 수 없게 되었을 테니 의아해 하겠지.”
그러니 이리 서둘러 몸을 피하는 것이지요.
“나중에 여유가 되면 자(子) 영찬 한둘 정도는 꺼내 팔아야지. 그러려면 대성을 찾아 안전하게 교역을 할 수 있는 단체를 만나야 하고.”
장우는 일단 반지천에 대한 정보 수집은 끝났으니 이제 본격적으로 수련 자원 확보를 위해 움직일 생각이었다.
운 좋게 얻은 영찬도 있으니 처신만 잘 하면 수련 자원은 어렵지 않게 얻을 수 있을거란 기대도 하고 있는 중이었다.
아니, 그 전에 비행 법기부터 하나 장만하는 것이 어떨까요? 네에?
‘음, 그것도 생각을 해 보자. 영체기나 되어서 매번 둔술로만 움직이는 것도 체면이 시지 않는 일이긴 하겠네.’
그렇죠? 맞죠?
'음.'
하지만 그건 나중의 일, 지금은 부지런히 둔술을 펼치며 반지천에서 멀어질 수밖에 없는 장우와 몽이었다.
< 반지천(半地天)을 뒤로 하고 튀어라〉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