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7)
〈 천지가 무너지고 미우가 사라졌다.〉
막구와장문일, 혜정.
그 외에 삼선문의 세 문주와 또 다른 화신기 수사들의 대립.
하지만 그런 상황은 얼마 이어지지 못했다.
그렇다고 천겁 때문에 문제가 생긴 것도 아니었다.
그 전에 혼천괴가 이상해졌기 때문이다.
그것은 장우와 미우가 심정의 바닥에 발을 디딘 순간, 그 바닥이 허물어지면서 시작되었다.
혼천괴의 정수를 품고 있는 미우가 혼천괴로부터 완전히 떨어져 나간 순간.
혼천괴는 그 균형을 잃고 허물어지기 시작했다.
성령기 경지의 막대한 영기나 의념조차도 그것을 통제할 핵이 없는 이상 아무 의미가 없었다.
오래 전 혼천문이 천지 법칙의 재앙을 받아 괴멸할 때 그곳에 있던 많은 수사들의 념과 혼, 거기에 대역천 공법의 일부까지 더해져 태어난 것이 혼천괴었다. 그런 혼천괴의 중추라 할 수 있는 미우가 사라지자 남은 혼천괴는 그 예전에 죽었던 이들의 념과 혼이 제 멋대로 날뛰기 시작했다.
울컥 거리는 피와 꿀렁거리는 살덩이, 썩은 고름과 역천 공법의 비틀린 영기들까지.
혼천괴 내부는 그야말로 무질서한 힘의 충돌이 가득해졌다.
그 즈음 되었을 때는 이미 순서대로 심정을 통해서 밖으로 나가야 한다는 제약 따위는 의미가 없었다.
벌써 산이 무너지고 심정이 꺼져 내리는 중인데 그딴 조건 따위에 누가 신경을 쓴다는 말인가.
그 때부터 모든 수사들이 저마다 개미지옥처럼 빨려들어가는 심정을 향해 달려들었다.
제일 먼저 막구가 뛰어들었고, 이후에 화신기 중기 수사가 자리를 차지했으며 이후엔 무너지며 더 넓어진 구멍으로 알아서들 몸을 구겨 넣었다.
꽈르르르르르릉!
혼천괴 내부를 가득 채우고 있던 보랏빛 구름.
천겁운에서 엄청난 뇌전이 터져 나온 것은 그 순간이었다.
혼천괴가 원래의 상태였다면 어떻게든 그 천겁뢰를 막거나 소진시켰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의 혼천괴는 미우가 없어지고 이지를 상실한 상태.
육괴에 불과한 혼천괴는 도리어 내부에서 터진 천겁뢰를 몸을 받아들였다.
굶주린 아귀처럼 천겁운이 쏟아내는 천겁뢰를 거침없이 먹어치우는 혼천괴.
천겁운은 그런 겁 없는 혼천괴를 향해 쉬지 않고 천겁뢰를 뿜어냈다.
그리고 그 일이 일어났다.
쿠르르르르 쿠르르르르륵!
엄청난 크기의 혼천괴가 천겁뢰를 흡수하며 몸이 녹아 내리기 시작한 것이다.
애초에 혼천괴는 거대한 호수의 밑바닥에 틀어 박혀 있는 상태.
그리고 그 밑바닥의 구멍은 사실상 지저 세계와 통하는 통로였으니 일이 어떻게 되었겠나.
혼천괴의 몸이 녹기 시작하면서 당연히 구멍을 틀어막았던 역할을 제대로 할 수 없게 되고 말았다.
그러니 수압을 이기지 못한 혼천괴가 구멍 밑으로 쑤욱 밀리며 빠져 버렸고, 그렇게 뚫린 구멍으로 호수의 물이 함께 쏟아져 내렸다.
크기만 수십 만 리에 해당하는 혼천괴가 빠져나간 구멍 또한 그렇게 컸으니 쏟아지는 물이 얼마나 많았을까.
지저 세계는 아닌 밤중에 대홍수를 맞이하게 되었다.
하지만 불행은 그것이 끝이 아니었다.
혼천괴의 내부에서 천겁운이 여전히 천겁뢰를 쏟아냈고, 혼천괴는 그것을 계속 흡수했다.
제 몸이 녹아내리는 것도 아랑곳하지 않고 맛난 먹이를 먹어치우듯 천겁뢰를 흡수하던 혼천괴.
하지만 어찌 천지 법칙의 힘을 당할 수 있을까.
어느 순간 혼천괴의 몸은 한계를 넘기고 한순간에 녹아버렸다.
문제는 그 순간 혼천괴의 몸에 쌓였던 천겁뢰가 뿜어져 나왔다는 것이고, 그 당시 혼천괴는 하늘에서 쏟아지는 어마어마한 홍수의 중심에 있었다는 것이다.
일은 순리 대로 흘러갔다.
혼천괴에서 뿜어져 나온 엄청난 천겁뢰가 지하 세계를 뒤덮으며 휘몰아치던 대홍수에 녹아들어갔다.
당연히 그 물에 닿는 지하 세계의 모든 생령들이 일순간에 재가 되어 사라져 버렸다.
지금껏 보지 못했던 엄청난 재앙이 지하 세계에 몰아닥친 것이다.
일순간 지하 세계의 수 백 만리가 천겁뢰에 씻기며 죽음의 땅이 되고 말았다.
아니 그곳에는 죽음 조차 없었다.
천겁뢰에 당한 모든 것은 존재가 사라지고 영혼조차 제 형체를 유지하지 못했던 것이다.
그나마 홍수를 감지하고 하늘로 몸을 피했던 생명들만 조금 살아남았는데, 그조차도 아주 높은 곳까지 오르지 못한 것들은 갈기갈기 갈라지며 허공으로 퍼지는 천겁뢰를 피하지 못하고 대부분 죽고 말았다.
“끔찍하네.”
“그러게. 상상도 못했던 모습이야."
장우와 미우는 혼천괴의 몸이 녹아내리다가 결국 마개처럼 막고 있던 구멍에서 빠져 나오는 것을 목격했다.
아니 그 징조가 보일 때부터 장우는 급하게 하늘 위로 날아올랐다.
혼천괴가 구멍에서 빠지면 그 위에 있던 호숫물이 쏟아질 것은 깊이 생각하지 않아도 알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가장 안전할 거라고 생각한 곳이 위쪽 천정에 가까운 허공이었던 것이다.
문제는 그들이 그렇게 도망을 칠 때에 혼천괴의 심정 바닥을 통해서 또 다른 누군가가 모습을 드러냈다는 것.
장우와 미우가 급히 더 높은 하늘로 날아올라 바위틈에 몸을 숨길 수밖에 없었던 이유가 그 때문이었다.
그리고 다행스럽게도 심정에서 빠져 나온 수사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어디론가 사라졌고, 바위틈에 몸을 숨긴 장우와 미우는 끝까지 꼼짝도 않고 재앙을 지켜보고 있었다.
그것이 벌써 두 달 전의 일이다.
그 동안 꼼짝도 못했던 장우가 이제야 안심하고 말문을 튼 것이다.
당연히 그 이유는 혼천괴가 무너지기 전에 쏟아져 나온 수사들 때문이었다.
화신기 수사는 물론이고 영체기와 성단기 수사 몇이 혼천괴가 추락하기 전에 빠져 나왔는데, 그들은 제각각 흩어져 살 길을 도모했다.
그 중에 몇은 장우와 미우가 숨어 있는 천정 쪽으로 올라와 머물렀는데, 그들이 떠난 것이 열흘 전이었다.
그럼에도 장우와 미우는 끝까지 조심하여 움직이지 않다가 이제야 기척을 낸 것이다.
“이제 어디로 가지?”
미우가 물었다.
“그야 당연히 다시 올라가야지. 호숫물도 이젠 거의 쏟아지지 않으니까 밖으로 나갈 수 있을 걸?”
“원래 장우 네가 있던 곳으로 가자고?”
“응? 왜? 싫어?”
“거기 뭐가 있는데? 삼선문이란 곳에 갈 것도 아니고, 장문일이란 수사를 찾아갈 것도 아니잖아.”
“그렇긴 하지.”
“그런데 굳이 원래 있던 곳으로 갈 이유가 있어? 호수까지 올 때도 고생을 많이 했다면서?”
“그렇긴 한데, 저 아래를 보면 솔직히 내려가고 싶은 생각이 안 들잖아.”
장우는 천겁뢰를 품은 홍수에 쑥대밭이 되어 버린 지상 쪽을 가리키며 말했다.
까마득한 아래쪽, 수사의 시력이 아니면 아무것도 볼 수 없을 정도로 먼 바닥.
거기엔 아무것도 없었다.
그저 홍수에 뒤집어진 토사들만 가득할 뿐.
“뭐 살아 있는 건 없다고 봐야겠네.”
장우의 손짓에 미우도 지상 쪽을 보며 그렇게 말했다.
“그런데도 저길 내려가자고?”
장우는 미우의 표정을 놓치지 않고 읽어 냈다.
지금 미우는 지상으로 내려가길 바라고 있었다.
"응."
“왜?”
“그야 주인 없는 보물이 많이 있을 거 같으니까?”
“응? 뭐라고?”
“들었잖아. 한바탕 난리가 난 바람에 수백 만리가 텅텅 비었다고. 저길 뒤져보면 우리가 쓸만한 보물이 좀 있지 않을까?”
“얘가 세상 무서운 줄을 모르네.”
장우는 순간 혹할 뻔 했지만 금방 정신을 차렸다.
“뭐가?”
그런 장우를 향해 미우가 천진한 표정으로 물었다.
“우리도 홍수를 피해서 살아남았는데, 우리보다 경지가 높은 수사들이 쉽게 죽었겠냐?”
“어?”
“어는 무슨. 저기서 도둑질 하려다간 골로 가는 수가 있어. 아마 저곳으로 갔다가 마주치는 이들은 대부분 경지가 제법 높은 이들일 거야. 우리보다 강한 수사를 만날 가능성이 그렇지 않을 확률보다 높겠지.”
“생각해 보니까 그러네.”
“그러니까 우리는 그냥 혼천괴가 빠진 구멍을 통해서 지상으로 올라가자.”
“으응, 장우 네 말을 들어보니 그게 좋을 거 같다. 그렇게 하자.”
미우는 의외로 고집을 피우지 않았고, 장우는 다행이라 생각하며 혼천괴가 빠지고 생긴 구멍을 향해 날아가려 했다.
그런데 그 순간이었다.
“아아? 장우야!”
"으응."
미우가 급히 장우를 부르는 것과 동시에 장우도 뭔가 잘못된 것을 느꼈다.
아득히 먼 곳에서부터 세상을 짓누르는 기운이 몰려오고 있었다.
장우와 미우는 꼼짝도 하지 못하고 바위틈에 눌러 붙을 듯이 몸을 밀어 넣었다.
그것은 두려움을 피하기 위한 자연스러운 행동일 뿐, 그 행동이 의미가 있을 거란 생각은 하지도 않았다.
혼천괴에게 내렸던 천겁운과 그 안에서 꿈틀거리던 천겁뢰조차 별 것 아니게 느껴지게 만들 정도의 존재감이 몰려오는 중이었다.
장우는 두려움 속에서 힐끔 눈을 떠서 혼천괴가 빠지고 생긴 천정의 구멍 쪽을 바라봤다.
그리고 그 순간 장우는 누군가와 눈이 마주쳤다.
그리고 그 시선은 장우를 무심히 훑고 지나갔고 장우는 까무룩 정신을 잃고 말았다.
★ ★ ★
“끄으응!”
장우는 묵직한 고통과 함께 정 신을 차렸다.
그리고 자신이 흙더미 속에 묻혀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어떻게 된 거지?
- 장우님 .
‘몽이?’
-네,장우님.
‘어떻게 된 거야? 너 혹시 아는 거 있어?’
별로요. 그냥 장우님이 기절했을 때, 그 수사가 미우를 끌고 간 건 알아요.
‘응? 수사?’
장우님을 기절시킨 그 수사요.
‘그게 수사였다고?’
네. 그 수사가 미우를 끌고 갔죠. 그리고 며칠 후에 엄청난 일이 벌어졌어요.
‘엄청난일이라니?’
세상이 뒤집어 졌어요. 엄청난 영기 파동이 수도 없이 터지고, 불과 얼음과 번개와 폭풍이 번갈아가며 휘몰아쳤죠.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다는 거야?’
잘은 모르겠는데 그런 중에 엄청난 말다툼이 있었던 건 분명해요.
‘말다툼?’
그러니까 정확하게는 심언이 천지 사방에 울려 퍼진 거죠.
‘무슨 소린지 모르겠네. 아무튼 미우를 데리고 간 그 수사와 다른 수사가 싸웠다는 거지?’
네.
‘그 뒤에는?’
엄청난 싸움이 벌어지고 장우님이 계시던 천정이 무너져 내렸죠. 그 때문에 저도 더 아는 건 없어요. 충격 때문에 조금 전까지 정신을 잃고 있었거든요.
‘으음. 결국 미우는 누가 어디로 데리고 갔는지 알 수 없다는 거구나.’
대충 짐작은 할 수 있죠. 지저 세계의 수사가 지상으로 가는 도중에 미우를 발견하고 혼천괴와 연관이 있다는 것을 한 눈에 알아본 거죠. 그래서 데리고 갔을 거예요.
‘나는 고작 영체기라 쓸모도 없으니 그냥 지나치고?’
그런 거죠.
‘그럼 미우는 괜찮을까?’
그것까진 어떻게 알겠어요?
‘하긴. 게다가 보아하니 그 수사란 자는 못해도 태령기 이상일 거 같은데, 내가 당장 어쩔 방법은 없겠지. 그저 무탈하게 잘 있기를 바랄 수밖에.’
냉정하게 말하자면 장우님이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는 거죠. 그저 이번 일에 대해서 조금 더 자세히 알아보는 것 밖에는.
‘그렇겠지. 후우. 그나저나 여기서 빠져나가는 것이 먼전데, 얼마나 깊이 파묻혔는지 모르겠네.’
그러게요. 에휴.
장우의 말에 몽이가 깊은 한숨을 쉬었다.
하지만 장우는 의념을 펼쳐 자신을 감싸고 있는 토사를 밀어 내고 작은 공간부터 만들어냈다.
그 후, 가부좌를 하고 앉아서 의념을 통해 자신을 뒤덮고 있는 흙의 두께를 가늠해 보았다.
“후우, 괜찮아. 고작 5리 정도의 깊이일 뿐이야. 몇 달 애쓰면 그 정도는 뚫고 올라갈 수 있을 거야.”
한참 후, 장우는 그나마 다행이 라는 듯이 그렇게 중얼 거 렸다.
마치 스스로를 안심시키고 위로하듯 작은 육성으로.
< 천지가 무너지고 미우가 사라졌다.〉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