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6)
< 심정(沈井)에 몸을 던지다 >
"심정의 뚜껑이 열렸어!"
어느 날, 미우가 급하게 장우의 석실로 달려와 소리졌다.
그 말에 장우는 곧바로 미우와 함께 산봉우리 위의 심정을 찾아갔다.
"아직 뚜껑을 연 건 아니네?"
그곳에서 본 심정의 덮개는 처음 봤을 때와 다름없이 그 자리에 그대로 놓여 있었다.
다만 다른 것이 있다면, 이전과 달리 덮개를 얽어매고 있던 기운이 거의 사라진 상태라는 것이었다.
완전히 기운이 사라진 것은 아니지만 이 정도면 영체기인 장우도 어찌어찌 덮개를 열 수 있을 듯 보였다.
장우가 어금니를 깨물며 심정(沈井)으로 다가갔다.
그러자 그 곁으로 미우 역시 바짝 따라 붙었다.
장우는 그런 미우와 눈빛을 교환하고는 둘이 동시에 심정의 덮개에 손을 대었다.
파시시시시식! 파지지지직!
"으윽."
"아윽!"
장우와 미우가 덮개에서 밀려드는 결계의 기운에 낮은 신음을 흘렸지만 둘 모두 물러서지 않고 덮개의 고리 손잡이를 잡고 당기기 시작했다.
까드드드드득! 끼이이이익!
두 사람의 손에 심정의 덮개가 반으로 갈라져 벌어지며 위로 들어올려졌다.
후우우우우웅!
"아!"
"조심!"
그리고 그 순간 강력한 흡입력이 심정 깊은 곳에서부터 발생하여 장우와 미우를 끌어당겼다.
하지만 다행히 둘은 덮개를 열기 위해 잡고 있던 고리 덕분에 안쪽으로 빨려들어가지 않을 수 있었다.
"여길 들어가면 되는 거야?"
간신히 몸의 균형을 잡은 후, 장우가 미우를 보며 물었다.
"응, 이곳으로 내려가면 밖으로 나갈 수 있어. 너도 우리 혼천문이 어디에 들어 있는진 알지?"
미우가 그 동안 이야기하기 꺼려했던 본체에 대한 것을 장우에게 물었다.
"그래, 혼천괴라 했지."
"맞아. 여긴 그러니까 그 혼천괴에서 외부로 나갈 수 있는 유일한 통로인 셈이야."
"그렇구나."
"자,저길 봐."
미우가 심정에서 몇 걸음 물러나 남쪽 하늘을 보며 말했다.
장우가 그곳을 보니 보랏빛 구름이 크게 부풀어 오르는 중이었다.
장우는 그 빛깔만으로도 섬뜩한 느낌에 소름이 돋는 것 같았다.
"저게 뭐야? 보라색 구름? 설마 저게 천겁을 내릴 때에 나타난다는 그 구름이야?"
장우가 처음 봤다는 듯이 물었다.
"승경 때에 봤잖아."
미우가 그런 장우에게 핀잔을 주듯이 말했다.
"아니지. 저게 그거랑 어떻게 같으냐? 격이 다르다고 격이."
장우는 미우의 말에 억울하다는 듯이 항변했다.
그도 그럴 것이 장우가 승경에서 만났던 천겁운을 지금 저 멀리 혼천문 전체를 감싸며 일어나는 것과 어떻게 비교할 수 있을까.
전혀 다른 것이라 해도 틀린 말이 아닐 것이다.
"규모의 차이지. 네가 말하는 혼천괴는 성령기의 존재야. 그런 존재가 천겁을 맞는데 그게 어디 간단하겠어?"
"저게 혼천괴의 천겁운이라고?"
장우가 놀라며 되물었다.
"맞아. 혼천문의 내부 행사라고 하는 것은 바로 천겁을 말하는 거였어. 그래서 외부인들을 살려주기 위해서 때마다 밖으로 내보낸 거지."
"그럼 위험하게 만들 생각 같은 건 없었다는 말이네?"
"뭐하러 위험하게 해? 그래서 득이 될 게 뭐가 있다고? 아, 아주 오래 전에는 외부인을 좀 그렇게 대한 때도 있긴 했지. 그 때는 혼천괴의 생각이 지금과 많이 달랐으니까."
"그, 그래?"
"맞아. 오랜 시간 혼천괴도 이런 저런 변화를 많이 겪었지. 하지만 외부인을 죽이지 않고 내보내게 된 건 꽤나 오래 전부터였어. 그건 확실해."
"그렇구나. 그런데 미우야."
"뭐?"
장우의 태도가 조심스러웠기에 미우도 의아한 표정을 지으며 그를 바라봤다.
"저렇게 강력한 천겁이면 혼천문의 제자들은 어떻게 되는 거야? 외부인들은 모두 밖으로 내보내지만 제자들은 그렇게 못 하잖아."
장우가 걱정스럽다는 표정으로 미우를 보며 물었다.
"날 걱정하는 거야?"
"그럼 걱정을 안 해? 저거 봐! 온 세상을 불태우고도 남을 것 같다고."
장우가 어느새 머리 위까지 뻗쳐 온 보랏빛 구름과 그 안에서 꿈틀거리는 노란 뇌전을 가리키며 말했다.
정말로 저 뇌전이 터진다면 이곳 혼천괴의 내부는 그대로 흔적도 없이 사라질 것만 같았다.
이런 곳에서 미우는 어떻게 되는 걸까.
장우는 걱정이 되지 않을 수 없었다.
"호호. 역시 장우 너는 좋은 친구야. 그래, 나도 솔직히 말해 줄게."
미우는 그렇게 말을 하고는 깊이 심호흡을 했다.
지금부터 하려는 말이 쉽지 않은 내용임을 뜻하는 것이라 장우도 긴장할 수밖에 없었다.
"애초에 혼천괴라 부르는 것의 내부에는 아무것도 없었어. 저길 봐."
미우가 멀리 남쪽을 가리켰다.
장우가 시력을 높여 그곳을 바라보자 혼천문의 건물은 물론이고 약초밭이나 숲, 계곡, 산, 강과 개울, 연못 등이 모두 허물어지고 있었다.
그리고 그렇게 풍경이 허물어진 자리에는 장우가 미우의 방에서 스치듯 본 기억이 있는 흉물스러운 살덩이와 핏줄들이 나타났다.
"어?"
"맞아. 혼천문엔 사람이 없었어. 모두가 너희가 혼천괴라고 부르는 육괴(肉現)가 만들어낸 괴뢰들 뿐이었지. 넌, 과거 혼천문을 그대로 복원해 낸 것을 본 거야."
"그럼 넌? 미우 너도 혼천괴가 만든 괴뢰야?"
"뭐 맞아. 그리고 사실 괴뢰 하나하나는 곧 본체와 다를 바가 없어. 모두 본체와 연결이 되어 있었으니까."
"그, 그래?"
"왜? 이제 내가 이상하게 보여?"
미우가 문득 더듬거리는 장우를 보며 물었다.
장우는 그런 미우의 눈동자 깊은 곳에서 초조함과 두려움을 읽을 수 있었다.
"뭐가 이상해? 미우 네가 여전히 미우 너라면 내가 널 이상하게 볼 일이 뭐가 있겠어? 다만 네가 여전히 미우일 때의 이야기지만."
장우는 그렇게 솔직하게 대답했다.
거짓말을 해 봐야 미우가 그것을 모르진 않을 테니까 솔직한 것이 좋다고 생각한 것이다.
"호호. 그래, 그러면 걱정 없는 거야. 괜찮아. 괜잖아."
그러자 미우가 양 볼에 보조개를 피워 내며 활짝 웃었다.
장우는 그 웃음을 보는 순간 마음이 푸근하게 놓이는 것을 느꼈다.
미우는 여전히 미우인 것이다.
그거 면 되 었다고 장우는 생각했다.
"우와, 이럴 때가 아니다. 벌써 수사들이 이곳으로 출발했어. 그들이 도착하기 전에 빨리 들어가자. 얽혀서 좋을 건 없잖아?"
그 때, 미우가 문득 화들짝 놀란 표정을 지으며 장우의 소매를 잡고 심정 가까이로 다가갔다.
여전히 심정은 큰 흡입력으로 공기를 빨아들이는 중이었다.
"그냥 들어가면 되나?"
장우가 미우를 보며 물었다.
"응, 들어가면 쑤우욱 하고 밖으로 나가게 된다고 했어. 아, 그리고 알아보니까 이쪽으로 나가면 장우 니가 들어왔던 세계가 아니래."
"뭐? 그게 무슨 소리야?"
"원래 대천 세계는 수많은 세상이 얽혀 있잖아. 그런데 지금 혼천괴는 두 세계의 통로를 콱 틀어 막고 있는 상태거든."
"그러니까 호수 밑에 있는 혼천괴는 사실 두 세계의 통로를 막고 있는 거였다고?"
"맞아. 그래서 이쪽으로 들어가면 반대쪽 세상인 지저(地底) 세계로 가게 되는 거지."
"으음. 그래서 그쪽으로 간 수사들이 다시 원래 세상으로 돌아오지 못해서 소식이 전해지지 않았던 거라고?"
"그래, 그럴 가능성이 높아. 내가 짐작할 수 있는 건 이 정도가 끝이야."
"좋아. 어쨌거나 혼천과가 해코지를 하지 않는다면 문제 없겠지."
장우는 그렇게 말을 하고는 심정 가까이 다가섰다.
그런데 그런 장우의 손이 미우의 손목을 잡고 있었다.
"함께 갈 거지?"
그리고 심정으로 뛰어들기 전에 미우를 보며 물었다.
미우는 그 물음에 활짝 웃었다.
"응, 갈 거야. 그렇게 하기로 했어. 여기 있어봐야 봉인을 풀고 자유로워 질 수 있을 거 같지 않아. 그래서 본체를 버리기로 했지. 그건 다 장우 네 덕분이야."
"하하하. 그래? 뭐,잘은 몰라도 좋은 일이지?"
"그래, 좋은 일이야. 물론 내가 떠나면 본체가 통제를 잃고 붕괴하겠지만, 그거야 뭐."
"뭐라고? 그럼 어떻게 되는 거야? 두 세계의 통로를 막고 있는 혼천괴가……
"흥. 그걸 내가 알아서 뭐 해? 난 모르는 일이야."
"야야, 어어어!"
쉬이이이이이잉!
"아직 마음의 준비가아아아…."
"괜잖아. 나만 믿어!"
미우가 장우를 끌고 심정으로 몸을 던진 것은 순식간이었다.
장우 역시 미우의 행동에 크게 저항하지 않았다.
그렇게 둘이 사라진 산봉우리는 한동안 정막에 휩싸였다.
그런데 그 얼마 후,심정을 중심으로 수많은 수사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 중에는 장문일과 혜정, 마구를 비롯한 여덟 수사와 그 제자, 시종도 있었다.
하지만 그것이 끝이 아니었다.
"오랜만에 뵙습니다. 태상원로."
"끄응, 삼선문의 문주들이 어떻게 여기에 있지?"
"어쩌다보니 일이 이렇게 되었습니다. 저희도 태상원로께서 혼천문에 계신 줄을 몰랐습니다. 아, 이쪽은 저희와 함께 했던 선배님들입니다."
"흐음. 화신기 중기와 후기 선배님들이군."
장문일은 삼선문의 세 문주가 이곳에 모습을 드러낸 이유를 어느 정도 짐작할 수 있었다.
자신을 도모하기 위해 뒤를 쫒았던 것이 분명했다.
그러다가 자신과 마찬가지로 혼천괴에게 붙들려 지금까지 이런저런 연구를 하며 지냈으리라.
그럼에도 서로 마주치지 않았던 것은 혼천괴가 저들과 자신의 일행을 서로 분리해서 다루었기 때문일 것이고.
"이럴 때가 아니어요. 어서 여기를 탈출해야 합니다."
장문일과 삼선문의 세 문주가 서로 신경전을 벌이고 있을 때, 혜정 수사가 고함을 질렀다.
그도 그럴 것이 하늘의 보랏빛 구름과 샛노란 뇌전이 더욱 사나워졌기 때문이다.
이젠 언제든 뇌전이 뿜어져 나와도 이상하지 않을 상태로 보였다.
"너희는 잠시 기다려라."
그런데 그 때, 삼선문의 문주와 함께 있었다는 수사 둘 중에 하나가 의념을 펼쳐내며 묵직한 음성으로 말했다.
화신기 후기의 수사로, 이곳에 있는 누구보다 경지가 높은 이였다.
"무슨 말을 하려는 것이냐?"
그 때, 막구 수사가 앞으로 나서며 그 화신기 후기의 수사를 보며 물었다.
"오호? 막구 수사께서 계셨습니다 그려?"
그러자 상대 수사도 막구를 알아보았다.
"긴박한 상황이니 어서 하고 싶은 말을 해라. 시간을 끈다면 나도 더는 대화를 하지 않을 것이니."
"으음. 고작 화신기 초기로 경지가 떨어진 마당에 나를 보고 그리 고압적으로 말을 하다니,겁이 없어진 거 같소이다?"
막구가 상대 수사를 윽박지르자 상대 역시 맞서며 인상을 구겼다.
"함께 죽고 싶다면 그렇게 하던가."
그런데 막구 수사는 대수롭지 않다는 듯이 말을 하며 의념을 끌어 올려 몸집을 부풀리더니 그 힘을 심정 쪽으로 겨누었다.
"무, 무슨 짓이냐?"
"보면 모르느냐? 네가 시간을 끌다가 다급한 상황에서 우리를 좌지우지 하려는 꼴은 보지 않겠다는 뜻이지."
놀라는 화신기 후기 수사를 보며 막구 수사가 이죽거렸다.
"끄응, 알았다. 알았으니 대화를 하자. 저 우물로 한꺼번에 모두 뛰어드는 것은 불가하다. 너무 많은 수가 들어가면 반드시 문제가 생길 것이다. 그러니 순서와 간격을 정해서 뛰어들어 야 한다."
"좋다. 그럼 어떻게 하자는 것이냐?"
"당연히 내가 먼저 가는 것이야 당연하지. 다만 내가 나선 것은 너희는 우리가 모두 갈 때까지 기다리라 하려던 것이지만."
"개소리를 잘도 하는군."
"음, 그래서 결정했다."
"뭐냐?"
"나는 이만 갈 테니, 다음은 너희가 알아서 결정해라."
"뭐라?"
뜻밖의 말에 막구가 놀라는 사이에 그 화신기 후기의 수사는 둔광을 번뜩여 심정 위에 모습을 드러내더니 흡입력을 따라서 밑으로 빨려 들어갔다.
"허어, 이, 무슨 이런 일이!"
막구가 어이가 없다는 듯이 허탈한 표정을 짓더니 급히 몸을 움직여 심정 곁에 섰다.
이젠 누구도 막구를 지나 심정으로 들어갈 수 없으리라.
"뭐 하자는 것이냐?!"
"놈, 비켜서라!"
"저 놈이?"
그러자 단번에 삼선문의 세 문주와 그 일행인 화신기 중기 수사가 기세를 뿜으며 막구를 노리기 시작했다.
장문일과 그 일행들도 그런 수사들과 대치하며 동시에 막구가 먼저 심정으로 뛰어들지 않을까 경계했다.
지금 이 순간 상황은 혼란 그 자체로 빠져들고 있었다.
< 심정(沈井)에 몸을 던지다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