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환장 통수 선협전-345화 (345/4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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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기적인 행사는 혼천괴의 천겁이었다 >

장우와 미우는 산 중턱에 작은 동부를 마련하고 그곳에서 함께 지냈다.

그런데 신기한 것은 미우가 이전보다 훨씬 많은 것을 장우에게 일러준다는 것이다.

"너, 내가 경지 안정 시키는 동안 어디 가서 장서각이라도 털었어? 전에보다 아는 게 훨씬 늘어난 거 같다?"

장우가 어느 날 오행기의 수련과 영체의 관계에 대해서 미우와 이야기를 나누다가 문득 그렇게 물었다.

"아니, 그건 아니야. 음, 이건 뭐랄까 일종의 전언 같은 거로 듣는 거야."

"전언(傳言)? 누가 너한테 궁금해 하는 걸 일러 준다는 거야?"

장우는 항상 자신과 함께 하는 몽이와 같은 존재를 떠올리며 물었다.

다른 사람이라면 이해하기 어려웠겠지만 장우에겐 몽이가 있었기 때문에 미우의 대답이 어느 정도 이해가 될 듯 했던 것이다.

"응? 그, 그래. 맞아. 문주님이야."

"뭐? 문주님?"

"그래, 문주님께서 가끔 내 정신과 소통을 하시지. 그래서 내가 모르는 것을 일러주시는데, 요즘은 특히 나와 많은 시간을 함께 하시네."

"와, 그럼 문주님이 너하고 내가 함께 있는 것도 아시겠네? 여기 심정(沈井)에 있는 것도?"

심정은 산 정상에 뚫려 있는 우물의 이름이었는데 심(沈)이 가라앉고 빠진다는 의미라 장우는 좀 꺼려하는 이름이었다.

"아시지."

"그런데 가만히 계신다고?"

"뭐가 어때서? 문주님이 장우 네가 어디 있든지 왜 신경을 쓰셔? 원래 문주님은 그런 거엔 관심 없으신 분이야."

"아, 하긴. 고작 영체기 수사 따위를 성령기 어르신께서 눈여겨 보실 일이 없지."

"그래. 거기다가 어차피 때가 되면 심정을 통해서 밖으로 내보낼 건데, 좀 일찍 여기 와 있는 걸 두고 뭐라시겠어? 게다가 이미 그 장문일이란 놈이 네게 한 짓도 알고 계실 텐데."

"그, 그런가?"

"뭐, 네가 되살아 난 것에 대해선 신기하게 생각하셨지만 해파리의 진혈 덕을 본 거고, 또 지금은 그런 기운이 전혀 남아 있지 않으니 의미가 없다 하셨지."

"와, 그럼 혹시 부활의 기운이 남아 있었으면?"

"그럼 문주님께서 너를 불러다가 자세히 보시지 않았을까? 그러다가 정히 궁금하시면 진혈을 뽑아서 연구를 하셨을 수도 있겠지."

"그,그래. 그럼 진혈이 남아 있지 않은 것이 참 다행이네?"

"호호호호. 문주님께는 아쉬운 일이지만 네겐 잘 된 일이지. 호호."

장우의 말에 미우가 재미있다는 듯이 웃었다.

하지만 정작 당사자인 장우는 쉽게 웃음이 나지 않았다.

자칫했으면 장문일에 이어서 혼천문주에게까지 끌려가 두 번 죽을 뻔하지 않았나.

"쓸데없는 걱정은 하지 말고 하던 이야기나 마저 하자. 너는 오행공을 익혀서 영체를 완성했잖아."

"그렇지. 하지만 영체가 만들어진 이상, 영근은 크게 의미가 없어진 거지. 영근을 대신해서 영체가 수련의 중심이 되는 거니까."

"그렇긴 하지만 그래도 그 영체를 이루는 근간이 오행기였다는 것은 잊으면 안 되는 거지. 적어도 화신을 이룰 때까지는 여전히 영근과 오행기를 무시하면 안 되다고 하셨어."

"이젠 대놓고 문주님 말씀이라고 하는구나?"

"호호. 뭐 그래도 되는 거 같으니까."

미우는 문주가 따로 금하지 않았으니 상관없다는 듯이 그렇게 말했다.

실상은 혼천괴의 본체가 미우에게 크게 자율성을 부여한 때문이었지만 결과는 같으니 별 상관이 없다고 생각하는 미우였다.

"덕분에 내가 배우는 것이 많고, 앞으로 수련을 하는데 큰 도움이 될 테니 나야 좋은 일이지. 고마워."

"호호. 그럼 잠시 쉬자. 나가서 계곡 구경도 하고."

"넌, 틈만 나면 놀려고 드는구나? 하지만 네가 주는 도움이 훨씬 크니 내가 싫다고 할 수도 없지. 그래 가자."

"응, 동쪽 계곡에 삼백 년 묵은 복숭아가 익었다고 하더라. 그거 먹으러 가자."

"그건 또 어디서 들었어?"

"호호, 문주님은 혼천문 영역의 모든 곳을 다 알고 계신다고. 그래서 내가 좋은 거 없는지 졸랐지."

"그래서 300년 묵은 복숭아를 얻어냈다고?"

"그래, 그거 좋은 거래. 일단 가서 보자."

"하하하. 그래. 내가 미우 너만 따라다니면 자다가도 떡이 생긴다니까. 하하하."

장우는 미우의 재촉에 크게 웃으며 미우의 손목을 잡았다.

그리고 둘의 모습은 순식간에 동부에서 사라졌다.

*  *  *

= 미우

응?

= 네가 요즈음 다른 생각을 하고 있는 것 같던데?

내 생각? 네가 모르는 내 생각이 어딨어? 다 알면서.

= 그렇기는 하지만.

그래서 네 생각은 어때? 내가 장우와 함께 이곳을 떠나는 거.

= 말도 안 되는 생각이다.

뭐?

= 라고 했을것이다. 과거였다면.

그렇지? 너도 생각이 좀 바뀌고 있지?

= 그렇다. 혼천문이 대역천 공법으로 멸망하고,그 모든 생령이 일그러져 뒤엉킨 것이 바로 나, 혼천과다.

그걸 누가 몰라?

= 처음 내가 만들어졌을 때, 나는 그저 하나의 고깃덩이에 불과했다. 하지만 오랜 세월이 지나고 혼천문의 많은 수사들의 정신에서 내가 태어났다. 고깃덩이가 아닌 정신이.

그래,그 덕분에 수사의 흉내를 내며 경지도 성령기에 이르게 되었지.

= 하지만 그것이 끝.

한계가 명확했고, 또한 한 곳에 묶여 움직이지 못하는 상태였지.

= 그 뿐이냐? 주기적으로 밀어닥치는 천지 영기의 횡포에 고통 받는 세월이 그 얼마였나.

그러니까 이제 끝을 보자는 거잖아. 준비도 거의 끝나지 않았어?

= 옳다. 충분히 시도해 봄직 하지.

그러니까 날 내보내 줘. 장우와 함께 떠나고 싶어.

= 아직은 위험하다. 네 경지가 고작해야 영체기에 불과하지 않나.

그건 어쩔 수 없지. 화신기만 되어도 네게서 떨어질 수가 없잖아. 이게 최선이야.

= 계획에 없던 일이다. 하지만 이미 너는 결심이 선 모양이구나.

네가 막으면 방법이 없겠지. 하지만 끝까지 저항을 해 볼거야.

= 알고 있다. 그런 결심을 했음을 내가 모를 수가 있나. 너는 나이기도 한데.

그렇지. 나는 너의 일부기도 하지. 그래서 어쩔 거야? 너는 내 생각을 읽을 수 있지만, 나는 네 생각을 못 읽는 거 알지?

= 그래도 짐작은 하겠지?

보내 줄 거지?

= 아니, 보내주는 것이 아니라 내가 가는 거지.

그냥 우리라고 하지?

= 이제부터 떠나는 날까지 수련을 해라. 내가 너에게 모든 것을 넘기겠다.

응? 뭘 넘긴다는 거야?

= 네게 모든 것을 준다. 경지를 끌어올릴 수는 없겠지만 모든 잠재력을 넘겨주겠다.

그렇게 되면…….

= 붕괴하겠지. 하지만 아쉬울 것도 없다. 일컬어 금선탈각(金揮脫設)이라 할 수 있겠지. 나는 죽지 않고 이곳을 빠져나갈 테니까.

그렇게 결심했다면 좋아. 노는 시간을 줄이고 내 안에 너를 최대한 담아보지.

= 잘 생각했다.

혼천문의 한 전각 안.

장문일과 혜정 수사, 막구 수사를 비롯한 여덟 명의 수사가 한 자리에 모여 있었다.

"이게 무슨 일이랍니까?"

"혼천문이 난리가 났습니다."

"그러게요 괴뢰들이 사라지고 혼천문 전체가 텅 비었습니다."

수사들은 저마다 혼천문의 변화를 거론하며 당황한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그러던 중에 피부가 검붉은 민머리의 수사 하나가 은근한 어조로 말했다.

"혼천괴가 무슨 음모를 꾸미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하지만 그 말에 곧바로 장문일이 인상을 찌푸리며 혀를 찼다.

"무슨 음모요? 혼천괴가 우리를 어찌하려 한다면 그게 어려울 것 같습니까? 그 무슨 얼토당토않은 말입니까?"

"그야 그렇지. 장 수사의 말이 틀린 말이 아니야."

장문일의 말에 막구가 맞장구를 졌다.

"상황이 좋지 못하니 모두 이곳을 떠날 생각을 해야 하지 않겠어요?"

그때 유일한 홍일점인 혜정 수사가 불안한 표정으로 새로운 의견을 내었다.

"떠나다니? 무슨 수로?"

막구 수사가 혜정 수사를 보며 물었다.

다른 수사들 역시 혜정 수사에게 무슨 방법이 있는가 하는 표정으로 그녀를 보았다.

"제가 우연히 듣게 된 것인데, 혼천문의 문내 행사가 시작된 후에 우리를 밖으로 내보낸다 했잖아요."

"그런데?"

"그 때, 우리를 어디로 보낼지 미리 알려줬다고 하더군요."

"미리 알려줘? 누가 누구에게 그랬다는 말이지?"

장문일이 혜정을 보며 재촉하듯 물었다.

"내 제자들 중에 혼천문의 괴뢰와 가깝게 지낸 아이가 있지요. 그 아이에게 얼마 전에 일러준 이야기라 합니다."

"그러니까 우릴 내보낼 통로를 미리 이야기 해 줬다는 겁니까?"

"그게 도대체 어디란 말입니까? 그리고 그걸 믿을 수 있겠습니까?"

혜정의 말에 다른 수사들이 저마다 궁금해 하고 또 의심하며 물었다.

"흥! 다른 수가 없으니 일단 확인은 해야 하지 않겠어요? 그리고 아까도 장 수사께서 말씀하셨지만 혼천괴가 우리를 상대로 무슨 수작을 부리겠어요. 손톱으로 눌러 죽여도 죽을 수 있을 우리들을요."

"크음. 그건 그렇지."

"어쨌거나 밖으로 내보낼 곳이라고 했다면 혼천과에서 외부로 통하는 통로일 터. 일단 확인을 해 보는 것이 좋긴 하겠군."

막구가 그렇게 반 결정을 내리자 다른 수사들도 반대하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그 때, 장문일이 손을 들며 조심스러운 말을 꺼냈다.

"하지만 이는 서둘러서 될 일이 아니다. 이미 혼천문에서는 문내 행사가 시작될 때까지 거처 밖을 나가지 말라고 알려왔다. 그런데 그걸 어기면 어찌 될까? 혼천문의 괴뢰가 모두 사라졌다고 우리 마음대로 행동하다가는 정말 손톱에 눌려 죽을 수도 있음이다."

장문일의 말은 결국 정해진 때까지는 이곳에 머물러야 한다는 이야기였다.

그러자 다른 수사들도 곤혹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저마다 생각에 잠겼다.

이후, 그들은 갑론을박을 거쳐 결국 혼천문에서 정한 날까지는 경거망동하지 않기로 했다.

다만.

"그럼 시한이 되면 곧바로 떠나는 것으로 하지. 그 때까지는 모두 자중하도록 하고."

"당연하지. 지금 혼천문의 제자 노릇을 하던 괴뢰들이 사라졌다고 안심해선 안 될 일이다."

"그렇다. 그리고 누구든 혼천과의 분노를 살 일을 하려면 다른 모두의 공격을 받을 각오를 해야 할 것이야."

"그렇지. 그렇고 말고."

"모두 서로 감시하기를 게을리 하지 않을 텐데 설마 그런 짓을 하는 이가 있겠어요?"

"커엄. 모두 끝까지 뜻을 함께 합시다. 지금껏 그랬던 것처럼."

여덟 수사들은 그렇게 앞으로의 행동 방침을 정하고 뿔뿔이 거처로 돌아가 자신들의 제자와 시종들을 단속하기 시작했다.

"에잉, 어째 나만 혼자가 되었군."

그런 중에 장문일만 홀로 자신의 전각을 지키며 투덜거렸지만 그 역시 자업자득일 뿐이었다.

그렇게 다시 시간이 흘렀다.

우르르르르르릉!

꽈르르르릉 콰르르르릉!

"처, 천겁운이다!"

"천겁이 내려온다!"

"온 하늘이 천겁운으로 가득합니다. 어서 피해야 합니다."

"피하긴 어디로……. 혜정 수사!"

"혜정 수사 어디로 가야 합니까!"

갑작스럽게 혼천문의 하늘 위에 보랏빛 구름이 가득 몰려들었다.

그리고 그 구름 안에서 샛노란 천겁뢰가 꿈틀거리며 이리저리 몸을 뒤틀었다.

당장이라도 천겁운을 뚫고 나오려 애쓰는 모습이 역력했다.

그런데 그 천겁뢰의 크기가 지금껏 화신기 수사들이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엄청난 크기였다.

"내가 한 번 경험했던 대천겁의 천겁뢰도 저것에 비하면 고작 지렁이 새끼였을 뿐이다. 저건 가히 상상도 못할 천겁뢰다."

막구 수사는 평소와 달리 두려움에 떠는 모습을 감추지 못했다.

여덟 명이 모인 수사들 중에서 유일하게 대천겁을 넘은 것이 막구 수사였다.

그러고도 고작 화신기 초기의 경지에 머물러 있는 것이 이상하겠지만 그것은 대천겁을 넘기며 경지의 손해를 크게 보았기 때문이다. 원래 그는 화신기 후기 경지에 있었던 수사였던 것이다.

그런 그가 두려움에 떨며 도망갈 곳을 찾고 있었다.

"이리 오셔요. 북쪽 산의 정상에 우물이 있다 했어요. 그 우물이 밖으로 나가는 길이라 했지요."

혜정 수사는 머뭇거리지 않고 자신이 아는 바를 이야기했다.

지금은 모두가 한 뜻으로 힘을 모아야 할 때임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선 그 누구도 헛된 생각을 할 수 없을 것이다.

그만큼 상황이 좋지 않았다.

"모두 떠나지."

"갑시다!"

"움직입시다."

혜정 수사의 말에 다른 수사들도 모두 제자와 시종을 거느리고 하늘로 날아 올랐다.

하지만 이전과 달리 높이 오르지 않고 나지막이 떠서 빠르게 북쪽으로 향해 나아가기 시작했다.

"가로막는 금제와 결계가 있을 거예요. 무조건 빠르게 깨고 지나가야 합니다."

"모두 힘을 모아야지. 허튼 생각들은 하지 말고!"

"그래야지."

몰려드는 천겁운과 그 안에서 꿈틀거리는 천겁뢰에 겁을 먹은 수사들은 모처럼 일치단결하여 북쪽으로 가는 길을 열었다.

그런 중에 제자나 시종을 때때로 제물이나 미끼로 던진 것은 그리 큰 문제가 아니었다. 어차피 일치단결이야 여덟 화신기 수사들만 해당되는 일이었으니.

< 주기적인 행사는 혼천괴의 천겁이었다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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