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3)
< 죽었는데 살았습니다 >
삭막해 보이는 자그마한 석실.
미우의 거처로 정해진 그곳에 장우의 시체가 놓여 있었다.
"죽었구나 장우는."
미우가 곁에 앉아 장우의 얼굴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아직까지 생기가 감도는 것 같은 장우였지만 그 안에 영체는 사라지고 없는 상태였다.
미우는 죽음을 많이 봐 왔다.
미우의 경험은 본체인 혼천괴의 기억 일부에 불과했지만 죽음이 영원한 이별임은 잘 알고 있었다.
"다시 너와 이야기도 할 수 없고, 네가 날 봐 주는 일도 일어나지 않겠지?"
미우가 누워있는 장우의 이마에서 머리카락을 정리하며 중얼거렸다.
지금 미우의 정신은 무척 혼란스러웠다.
그녀에게 처음으로 특별한 감정을 주었던 장우였다.
아직도 그 간질간질 거리던 느낌을 언제든 되살릴 수 있다.
품에서 작은 옥함을 꺼내 여는 미우.
장우가 주었던 승경단은 오래도록 공기 중에 노출되어 그 효과가 거의 사라졌지만 그래도 미우에겐 특별한 물건이었다.
꺼내 볼 때마다 장우가 스스로의 이득을 포기하며 미우를 위해주던 그 때가 되살아났기 때문이다.
"많이 기다렸는데. 영체기가 되어 나오기를. 나와서 나와 함께 놀아주기를."
미우의 목소리는 담담한 듯 했지만 그 깊은 곳에 아쉬움과 안타까움이 늘어붙어 있었다.
"그 놈! 네 사부란 놈을 죽여 버릴까?"
문득 미우가 눈을 감고 있는 장우의 얼굴을 내려다보며 중얼거렸다.
미우 자체는 고작 영체기 수준밖에 되지 않지만 원한다면 얼마든 큰 힘을 쓸 수 있다.
이번에 장우의 시체를 빼 올 때에도 본체의 힘을 끌어 쓰지 않았던가.
그 방법을 쓰면 장문일이란 놈을 죽이는 것도 어렵지 않으리라.
하지만 미우는 망설였다.
복수란 개념을 떠올리면서도 그것을 실행하기엔 뭔가 하나가 모자랐다.
미우는 다시 한 번 장우의 얼굴을 보았다.
"장우, 내 친구……"
미우는 그렇게 중얼거리며 다시 한 번 마음속에서 복수란 개념을 떠올려 봤다.
그러자 이번에는 조금 더 크게 마음이 움직였다.
분명히 장문일에 대한 분노가 이전보다 커졌다.
미우는 다시 한 번 장우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장우의 얼굴을 쓰다듬고, 그의 냄새를 맡았다.
"하아, 너를 이리 보존해 둔다고, 그것이 너인 것은 아니겠지? 네가 아니야. 네가 될 수 없어."
미우가 그렇게 중얼거리다가 고개를 들었을 때,그녀의 표정은 이전과는 완전히 달라져 있었다.
애매한 복수심이나 분노는 사라지고, 이제는 명백한 살의(殺意)가 떠올라 있었다.
"죽이겠어 죽여 버리겠어!"
미우의 마음속에 드디어 장우를 잃어버린 것에 대한, 장우가 완전히 떠나버린 것에 대한, 상실과 이별의 감정이 정리되어 자리 잡았고, 그 결과는 장문일에 대한 격렬한 살의로 변했 다.
고오오오오오!
"캬하하하하하하. 죽일…거야!"
아름답던 미우의 얼굴이 기묘하게 일그러지며 이목구비가 흐릿해졌다.
그리고 동시에 미우가 머무르던 공간이 허물을 벗고 핏줄과 살덩이가 엉킨 흉한 모습을 드러냈다.
혼천과가 미우의 공간에 대한 통제를 잃은 것이다.
고오오오오!
"캬아! 방해하지 마라! 죽일 테다!"
그 때였다.
금방이라도 날뛸 것 같았던 미우가 뭔가에 방해를 받는 듯이 허공에 손을 휘두르며 고함을 질렀다.
기묘하게 뒤틀리고 손톱이 길게 자란, 미우의 손은 이미 인간의 것이 아닌 모습이었다.
고오오오! 우우우우웅!
"캬아아악! 죽일 테다! 죽일 테다!"
미우는 계속 소리를 지르며 허공을 할퀴고 있었지만 어쩐 일인지 제자리를 벗어나지는 못하고 있었다.
혼천괴와 미우 사이에 문제가 생긴 것이었다.
원래 미우는 혼천괴가 외부인을 상대로 개별 학습을 하기 위해 만들어낸 분체 중에 하나였다.
그런데 미우는 다른 분체와 달리 특별한 감정과 기분을 학습했기에 본체가 미우를 귀하게 여겼다.
덕분에 미우는 다른 분체들에 비해서 더 많은 지원을 받을 수 있었는데, 이 지원이라는 것은 곧 분체의 독립적인 성향을 크게 하는 면이 있었다.
마치 분체가 아니라 독립된 개체에 가까울 정도의 자립성을 부여해 준 것이다.
물론 그것도 본체가 언제든 원하기만 하면 미우를 제어하고 흡수할 수 있다는 사실을 벗어난 것은 아니었다.
그런데 지금 미우가 복수심에 불타며 본체의 통제를 벗어나려 하고 있기에 본체가 그것을 통제하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지금도 혼천괴가 약간의 수고만 한다면 미우를 흡수해버리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다만 흔하지 않은 이상 반응을 보이는 미우란 분체를, 조금 더 살펴보려는 생각에 혼천괴가 미우를 흡수하지 않고 있을 뿐이었다.
그렇게 분체인 미우와 본체인 혼천과의 줄다리기가 잠깐동안 이어졌다.
죽었던 장우의 입에서 신음이 흘러나오기 직전까지는 그랬다.
하지만 장우가 신음을 흘리는 순간, 혼천괴는 곧바로 미우에 대한 간섭을 중지했다.
뭔가 엄청난 변화가 미우에게서 일어날 징조가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으으윽! 미…우?"
겨우 눈을 뜬 장우가 기괴한 모습으로 변해버린 미우를 어떻게 알아봤는지 작은 목소리로 그 이름을 불렀다.
그러자 미우의 모습이 기적처럼 변하기 시작했다.
살덩이와 핏줄이 뒤엉키고 종기처럼 두드러진 덩어리가 보이던 피부가 깨끗하게 변했다.
뼈가 뒤틀리고 손톱이 흉하게 자랐던 손과 팔도 제 모습을 찾았다.
게다가 마치 넝마처럼 변했던 옷까지 하늘거리는 경장으로 제 모습을 찾아갔다.
"장우? 장우야?!"
미우가 믿기지 않는 다는 듯이 눈을 크게 뜨며 장우 옆으로 다가와 꿇어앉으며 물었다.
그녀는 떨리는 손으로 장우의 얼굴을 쓰다듬으려 했지만 어쩐 일인지 직접 손을 대지는 못하고 약간 떨어진 상태로 얼굴을 허공에서 더듬었다.
"여기...가 어디야?"
장우가 느리고 힘없는 목소리로 물었다.
"으응? 여기? 여기는 내가 지내는 곳이야."
미우가 조금 당황한 모습으로 주변을 둘러보며 대답했다.
그러자 그녀의 시선이 닿는 곳마다 허물어져 있던 실내 모습이 정돈되며 작고 아담한 석실 공간이 제 모습을 되찾았다.
"아, 이런 곳에서 지내고 있었구나."
장우는 제대로 초점이 잡히는지도 의심스러운 눈으로 실내를 한 번 둘러보고는 희미한 웃음을 지었다.
"장우야, 너 기억 나? 무슨 일이 있었는지?"
"으음."
미우의 물음에 장우는 잠시 생각을 더듬는 듯 했다.
하지만 곳 피식 웃으며 말했다.
"뭐, 숨길 것도 없겠네. 그래, 기억해. 사부가 내 영체를 뽑아내고 나를 죽였지."
장우는 기억에 있는 그대로 대답했다.
솔직히 그 뒤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물어봐야 할 상황이라 거짓말을 할 수도 없었다.
"그런데 어떻게 된 거야? 왜 내가 여기 와 있어? 그리고 나 죽은 거 아니었어? 미우 니가 날 살린 거야?"
이어서 장우는 빠르게 미우에게 지금 상황을 물었다.
미우는 그런 장우의 질문에 당황하고 말았다.
자신이 장우를 살리다니 말도 안 되는 소리였다.
"아니야. 나는 그냥 그 장문일이란 놈에게서 너를 데리고 왔을 뿐이야. 그리고 그 때는 이미 네가 죽은 후였어."
미우도 거짓말을 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를 이야기했다.
"그렇구나. 나는 정말 영체를 빼앗기고 죽은 거였어. 그런데……
장우는 말을 하다말고 의념을 집중하여 자신의 의념 공간을 들여다봤다.
그리고 아까부터 느껴지던 자신의 영체를 확인했다.
한 뼘도 되지 않을 크기지만 자신의 영체가 분명히 그곳에 있었다.
기진맥진해서 잠들어 있는 듯한 모습이지만 자신의 영체를 알아보지 못할 수사는 없는 법이다.
영체는 곧 자신이므로.
"내가 묻고 싶은 말이야. 어떻게 된 건지. 죽었던 장우 네가 어떻게 되살아났어? 영체를 빼앗겼는데 되살아나다니, 그게 어떻게 가능해?"
장우가 영체를 확인하는 사이에 이번에는 미우가 도리어 궁금하다는 듯이 물어왔다.
미우에게선 조금 전까지 장우를 잃고 느끼던 슬픔과 분노, 살의는 찾아볼 수 없었다.
지금 미우에겐 기쁨과 놀라움, 즐거움 등이 뒤섞인 기분만이 느껴질 뿐이었다.
"으음? 솔직히 나도 모르는데? 나는 미우 네가 나를 살려준 게 아닌가 했다고."
장우가 슬쩍 몸을 일으켜 앉으며 말했다.
그 사이에 장우의 몸은 어느 정도 회복이 되어 있었다.
어차피 몸에 특별한 이상은 없었다.
원래 몸에서 영체만 뽑혔던 것이라, 사라졌던 영체가 되돌아 오자 내상도 없이 회복이 되었다.
그저 영체가 무척 지쳐 있는 것이 문제인데, 그것은 장우가 영체기에 오르고 경지 안정을 시키지 못한 상태였기에 당연한 모습이기도 했다.
"아니라고 했잖아. 넌 그냥 살아났어. 나는 널 여기 데리고 와서 지켜보기만 했을 뿐이라고."
"그래? 그런데 조금 전에 보니까 너, 이상한 모습을 하고 있었던 거 같은데?"
"아니야! 잊어! 그런 일 없었던 거야!"
장우의 말에 미우가 버럭 고함을 질렀다.
그런다고 있었던 일이 없어지진 않겠지만 장우는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으응, 알았어. 기억에서 지워줄게. 그럼 되는 거지?"
"그래, 빠른 판단 좋았어. 그래야지. 호호."
장우의 대답에 미우는 기분이 좋아진 듯이 보조개를 만들며 웃었다.
장우는 미우가 굉장히 기분이 좋다는 것을 그 보조개를 보며 알 수 있었다.
미우의 보조개는 쉽게 볼 수 있는 것이 아니었으니까.
그녀가 지금 상황을 얼마나 기뻐하고 있는지 알 수 있는 모습이었다.
하지만 곧 장우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응? 왜 그래?"
미우가 그런 장우를 보며 물었다.
"사부, 아니 장문일 수사가 내가 살아 있다는 것을 알게 되면 가만히 있지 않을 거 같아서."
장우는 정말 걱정이 된다는 표정으로 대답했다.
"응, 안 만나면 되는 거 아냐?"
미우가 물었다.
"곧 혼천문의 문내 행사가 있다며? 그 때 외부인은 모두 나가야 하고."
"그렇지."
"그럼 그 때, 어쩔 수 없이 그 사람을 만나야 하잖아."
"아, 그렇게 되겠구나? 그럼 어쩌지?"
미우는 고민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그러다가 번쩍 고개를 들며 환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뭐, 좀 일찍 나가면 되지. 내가 밖으로 나가는 길을 안내해 줄게."
"그, 그래도 될까?"
장우는 그런 미우의 말에 걱정스럽게 되물었다.
문파의 규칙을 어기는 것은 큰 죄가 된다.
혹시 미우가 자신을 돕기 위해 그런 위험한 일을 하려는 것은 아닌가 걱정이 되었던 것이다.
"응? 왜?"
"아니, 너 그러다가 문파 어른들에게 야단을 맞을 수도 있잖아. 그래서……."
"호호호. 걱정하지 마. 널 내보내는 것이 아니라 나가는 길 가까운 곳에 먼저 데려다 주는 거야. 그곳에 있다가 때가 되면 먼저 떠나는 거지."
"그래?"
"응,그러니까 걱정하지 말고 일단 몸부터 챙겨. 너 아직 영체기 경지도 제대로 수습하지 못했잖아."
"그렇긴 한데, 그래도 될까?"
"걱정하지 마, 행사가 시작되려면 아직 몇 십 년 남았으니까. 그 동안 경지를 안정시키고, 밖으로 나가는 통로 가까운 곳에 가 있자. 그러면 될 거야."
미우는 걱정하는 장우에게 자신만만한 표정을 지어 보이며 웃었다.
장우는 어쩔 수 없이 그런 미우를 믿고 영기 운공을 시작했다.
미우의 말대로 일단 경지를 안정시키는 것이 급했던 것이다.
"고마워."
장우는 그렇게 인사를 하고는 가부좌를 틀고 망아의 상태를 향해 나아갔다.
그러자 미우 역시 장우 옆에 앉아서 수련 삼매에 빠져들었다.
그렇게 다시 세월이 흘렀다.
< 죽었는데 살았습니다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