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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우는 예쁘다와 세월이 빠르다는 연관이 없지만 사실이다 >
"고맙다."
"정말?"
"그럼,어렵지 않게 할 수 있는데 보상은 좋은 일을 소개해 줬는데 안 고맙겠냐?"
"그럼 이제 나하고 남쪽 숲에 가자."
"그래, 약속했으니까 당연히 가야지"
장우는 미우가 내미는 손을 서슴없이 잡았다.
그리고 둘의 모습은 순간 둔광과 함께 사라졌다.
그렇게 둔술을 펼친 장우와 미우는 얼마 후, 혼천문의 남쪽 숲에 도작했다.
풍부한 영기를 머금고 자란 기이한 수목이 가득한 남쪽 숲은 연단에 쓰이는 약초를 채집하기에 무척 좋은 곳이다.
단순히 남쪽 숲이라고 했지만 그 넓이가 수 만 리에 해당하니 어디에 어떤 귀물이 숨어 있을지 모른다.
더구나 미우의 말로는 혼천문의 제자들은 채집 같은 건 별로 하지 않는다니 더욱 기대해 볼만한 곳이기도 했다.
"이리로 가자. 좋은 곳이 있어."
길안내는 미우의 몫이었다.
미우는 허공으로 몸을 날려 미끄러지듯 나아갔다.
장우 역시 그 뒤를 따랐다.
뒷짐을 지고 꼿꼿이 선 상태로 미우의 뒤를 따르는 건우.
"아이 참, 그게 뭐야? 이렇게 이렇게!"
그러자 미우가 장우를 타박하며 허공을 가로지르는 시범을 보였다.
직선이 아닌 곡선으로 나무와 나무 사이를 건너고, 능선과 능선을 지날 때에는 계곡 물을 살짝 밟고 뛰어 오르기도 하는 모습.
장우로선 그런 쓸데없는 짓을 왜 하는가 싶지만 보기에 나쁘진 않으니 흐뭇하게 바라볼 뿐이다.
"뭐야? 제대로 안 할 거야?"
하지만 미우는 그런 장우의 태도가 욕심에 찰 리가 없다.
곧바로 허리에 손을 올리고 장우를 노려본다.
"음, 이렇게?"
- 헤헤헤. 장우님 패(敗)!
마지못한 척 슬쩍 발을 굴러 허공으로 몸을 띄우는 장우를 몽이 놀렸다.
어쨌거나 미우는 장우의 노력이 싫지 않은 듯이 활짝 웃으며 없던 보조개 한 쌍을 만들어냈다.
"어? 보조개가 생겼네?"
"응! 예쁘지?"
"없었잖아."
"생겼지. 기분이 무척 좋아서."
"생겼지가 아니라 만들었지 아니냐? 너 이상한데 영기를 쓰는 재주가 있구나?"
"뭐래? 만든 거 아니야. 그냥 생긴 거야. 기분이 좋으면 생기는 거라고."
"나, 처음 봤을 때도 기분이 좋다고 하지 않았어? 보고만 있어도 좋다고."
"그거랑 달라!"
"음. 그러니까 그 때보다 지금이 훨씬 좋다는 거구나? 그래서 보조개도 나왔다는 거지?"
"너 나빠!"
퍽!
"아이구!"
장우는 미우의 손에 가슴을 맞고 추락하다가 겨우 몸을 바로 세웠다.
그리고 미우가 도망가는 모습을 노려봤다.
"이거 이상한데? 뭔가 쫒아가면 당하는 거 같은 느낌이야."
그렇죠? 그래서 안 갈 거예요?
"그럼 그게 또 더 안 좋은 일이 벌어질 거 같은데?"
그럼 어서 달려요!
"나 참. 이게 뭐 하는 짓인지."
장우는 고개를 흔들며 곧바로 미우를 향해 속도를 올렸다.
나뭇가지를 차고 곡선을 그리며 다음 나무로 향하고,또 때로는 연못의 연꽃잎도 밟고.
"잡으면 가만히 두지 않겠다아!"
장우님 그건 좀 너무 간 거 같은데요?
"몰라!"
이왕 망가진 거 뭐.
왜 그런 생각이 드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꽤나 얼굴이 뜨끈해지는 장우였다.
"어? 사부님"
"녀석, 어딜 그리 돌아다니는 것이냐?"
"헤헤, 혼천문 여기저기를 다니며 수련에 필요한 것을 얻고 있습니다."
"음? 수련에 필요한 것?"
"영단이나 수련 자원 같은 걸 구하느라 전각을 비웠습니다."
"으음. 그렇구나. 내가 이곳 혼천문에 온 뒤로 너를 돌보지 못했구나."
장문일은 장우의 대답이 마치 자신에게 투정을 부리는 것처럼 느껴졌는지 그렇게 말했다.
"아닙니다. 사부님께서 다른 어르신들과 큰 일을 하신다고 들었습니다. 저야 도움이 되지 못하지만 어찌 사부님을 번거롭게 할 수 있겠습니까. 저는 걱정하시 마십시오."
"놈, 말을 기특하게 하는구나. 하지만 너는 내 제자인 즉, 어찌 내가 너를 방치할 수 있겠느냐. 여기 이것을 받거라."
장문일은 장우의 대답에 기분이 좋아졌는지 밝은 표정으로 공간낭 하나를 내밀었다.
장우는 뜻밖의 선물에 당황하면서도 주는 공간낭을 마다하지 않았다.
"감사합니다. 사부님."
"너는 다른 것에 신경 쓸 것 없느니라. 거기 보면 네가 영체기에 오르기에 부족하지 않을 영단과 수련 자원들이 있을 것이다. 그러니 너는 어찌 되었건 수련 경지를 올리는데 전심전력 을 다해야 할 것이다."
장문일은 장우에게 내 준 공간낭을 바라보며 아쉬운 기색을 완전히 떨쳐내지는 못했다.
비록 화신기 수준에서는 크게 필요하지 않은 것이라 하더라도, 그 하나하나가 또 다른 재료로 사용될 수도 있었다.
그런데 그런 기초 재료의 대부분을 장우에게 내어 줬으니 속이 마냥 편하진 않았던 것이다.
하지만 당장 장우의 성장을 서둘러야 할 이유가 생겼으니 장문일도 어쩔 수 없이 최대한의 투자를 할 수밖에 없었다.
"고맙습니다. 사부님. 제자, 한 치의 게으름도 피우지 않겠습니다."
"그래, 그렇게 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네, 사부님."
"당분간 나는 이곳에 오지 못할 것이다. 그러니 너는 내가 올 때까지 수련에 정진하고 있어야 할 것이야."
"당분간이라면 얼마나 뵙지 못하는 것입니까? 화신기이신 사부님께서 당분간이라 하니 제자는 덜컥 겁이 납니다."
성단기와 화신기의 시간 개념이 어떻게 같을 수가 있을까.
성단기는 수명이 고작 천 년에 불과하지만 화신기는 크게 실수하지 않는다면 첫 번째 대천겁이 오는 1 만5천 년까지는 생존할 수 있다고 했다.
그러니 장우가 장문일의 '당분간'이란 말에 나름의 가늠을 할 수 없는 것이다.
"음, 대략 5백 년? 그 정도까지 될 수도 있겠구나. 하지만 이르면 3백 년 내로 다시 나올 수도 있을 게다."
"짧아야 3백 년이란 말씀입니까?"
스승의 말에 장우가 깜짝 놀라며 물었다.
"너는 워낙 빠르게 경지를 올렸으니 따지고 보면 네 수명은 아직도 천 4백 년 정도가 남지 않았느냐."
"그야 그렇다고 해도……
장문일의 말을 수긍하면서도 장우는 오랜 헤어짐에 표정이 어두워졌다.
"연신기가 되면 200년, 축기기가 되면 500년, 성단기가 되면 1천년의 수명이 늘어나는데, 너는 그 중에 고작 3백 년을 살았을 뿐이다. 그러니 내가 조금 늦게 나온다고 해도 네 수명이 9백 년은 남지 않겠느냐. 또 그 사이에 혹여 네가 영체기라도 되는 날에는……
"사부님도 참, 영체기를 어찌 몇 백 년 만에 오르겠어요. 너무 기대가 크신 거 같아요."
"클클클. 그래도 숙제를 주고 가는 것이 좋지 않겠느냐. 그래야 네가 때때로 사부의 숙제를 기억하고 게을러지려는 스스로를 추스를 수 있겠지."
"헤헤, 그건 그러네요."
"그러니 너는 항상 이 스승을 생각하며 수련에 최선을 다해야 할 것이다."
"네에, 스승님 걱정하지 마세요."
장우는 스승의 거듭된 다짐에 거침없이 큰소리를 쳤다.
그리고 그 후로 장문일은 장우의 수련에 도움이 될 몇 가지 술법들을 옥간으로 전해주고 다시 혼천문 깊은 곳으로 연구를 위해 떠났다.
장우는 그 날부터.
"히야, 적어도 300년은 자유다아!"
- 사부님이 아시면 단단히 경을 치셨을 거예요.
"뭐 어때? 솔직히 생각보다 내 수련 성취가 많이 빠르다고 했잖아. 그러니까 적당히 쉬면서 해도 될 거라고."
- 저는 말리고 싶지만 장우님이 그렇게 하고 싶다면 하셔야죠.
"그리고 솔직히 미우하고 돌아다니며 배우는 것도 많다니까? 걔가 보기보다 아는 것이 많아서 깨달음에 도움이 된다고. 그것도 많이."
- 네네, 그러시겠죠. 누가 아니래요?
"그나저나 사부님이 주신 공간낭! 기대했던 것보다 훨씬 빵빵하지 않냐? 영체기 승경에 도움이 되는 영단도 세 개나 있어."
보통 승경에 도전할 때에는 평소보다 휠씬 많은 영기가 필요하다.
게다가 축기기에 든 이후로는 천지 법칙의 승경 시험이 무척 사나워졌다.
불로불사를 꿈꾸는 역천자의 성장을 천지 법칙은 기꺼워하지 않는다.
그래서 승경에 도전하는 수사에게 시험을 내리는데 그 대부분이 천겁뢰로 도전자를 공격하는 방식이다.
그것을 이겨내고 깨달음에 도달하면 승경에 성공하는 것이고, 그렇지 못하면 승경에 실패하며 적잖은 경지상의 손해를 입게 된다.
아주 가끔은 승경 실패로 죽음을 맞기도 하고.
그런 때에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영약도 있는데, 장문일이 장우에게 준 공간낭에는 영체기에 도전할 때,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영단이 세 개나 들어 있었던 것이다. 만금이 있더라도 연이 닿지 않으면 구하기 어려운 영단인데 세 개나.
- 그 뿐만이 아니죠. 장우님에게 맞춘 오행 속성의 영단들도 가득하다고요. 정말 사부님이 다시 오시기 전에 영체기에 도전할 수도 있겠어요.
"그럴까?"
- 네. 미우하고 좀 더 놀면요.
"노는 거 아니라니까. 배우는 게 많다고."
- 그럼 그 배움에 좀 더 치중을 하셔야죠. 놀 거 다 놀면서 얻어 걸리는 게 배움이잖아요.
"야, 미우가 어디 체계적으로 뭘 가르치고 그럴 아이는 아니잖아. 지금처럼 같이 놀면서 배우는 게 최선이라고."
- 하긴, 미우가 좀 그렇긴 하죠.
조금은 더 수련을 했으면 하던 몽이도 결국 장우의 말을 인정하고 말았다.
그만큼 미우는 통제 불능의 제멋대로인 면이 많았기 때문이다.
"그래도 나쁘진 않잖아. 미우는 좋은 아이야."
- 그야 머…….
스승이 자리를 비운 오늘도 장우는 미우를 만나기 위해 전각을 나섰다.
* * *
"있잖아. 장우."
"왜?"
"넌, 좀 이상하지 않아?"
"뭐가?"
장우는 평소와 달리 굳은 표정의 미우를 보며 이상하다는 생각을 하며 물었다.
"우리 혼천문 사람들 말이야."
"응? 그 사람들이 왜?"
"너도 벌써 몇 백 년이나 봤으면 알 거 아냐? 평범하진 않지?"
"그야 뭐 아주 아니라곤 못하겠지."
장우는 미우의 질문을 대충 얼버무렸다.
사실 시간이 지나면서 장우는 혼천문에 있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일종의 괴뢰임을 알게 되었다.
괴뢰는 원래 다양한 재료로 만들어지는데, 이곳 혼천문의 괴뢰들은 정말 살아 있는 생명체처럼 만들어졌다.
흙이나 돌, 쇠나 나무가 아닌 피와 살과 뼈가 있는 괴뢰였던 것이다.
"그래 너도 알고 있구나?"
"야, 나 아무 말도 안 했거든?"
"말 안한다고 모를 정도로 내가 널 모르겠어? 우리가 함께 지낸 시간이 벌써 3백 년이나 되어 가는데? 네가 살아온 절반을 나하고 같이 지냈단 말이지."
"와, 듣고 보니 무섭네. 너랑 지낸 시간이 내 삶의 절반이었어?"
"흥! 또 장난치는 거 봐. 그러지 마. 지금은 심각하다고."
장우의 말에 미우가 눈을 사납게 떴다.
장우는 움찔 머리를 어깨 사이로 파묻었다.
"하여간 너는 매번 그렇게 장난스러워. 뭐 그게 귀엽긴 하지만."
"야, 귀엽다니. 그건 남자한테 할 말이 아니라고."
"됐어. 난 네가 남자든 여자든 상관없어. 너도 알잖아. 내가 너를 남자로 좋아하는 건 아니란 거."
"뭐, 그건 그렇지. 좀 아쉽기는 하지만."
"거짓말, 너는 이상하게 나한테 그런 쪽으론 관심이 없잖아. 무슨 병이라도 있는 것처럼."
"워워워, 아니거든. 나 멀쩡하거든?"
"그래, 6백년 모태 홀몸이 정말 멀쩡한지는 모르겠다만 그렇다고 해 주지. 아니! 아니지. 지금 진지해야 하는 상황이라고!"
미우는 한참 장우와 대화를 하다가 어느새 이야기가 장난스럽게 흐르고 있음을 알고는 버럭 화를 냈다.
장우도 이번엔 좀 잘못했다는 생각이 들었는지 두 손을 뒤 옆으로 들었다가 진지한 표정을 지으며 내렸다.
"뭐야? 무슨 이야기를 하려고?"
장우가 물었다.
"너도 알게 된 것처럼 이곳 혼천문에는 정상적인 사람이 몇 없어. 그리고 그런 사람들은 대부분 밖에서 들어온 사람들과 친하게 지내지."
"이상하게 일대 일이란 것이 좀 이상하긴 하지만."
"그건 어쩔 수 없어. 딱 보는 순간 마음에 드는 사람이 있으면 꽂히는 거니까. 왜 그런지는 설명할 수 없고."
"그래, 알았어. 너도 그래서 나한테 꽂힌 거잖아."
"맞아. 그런데 좀 문제가 있어. 조금 있으면 우리 혼천문에 큰 행사가 있어."
"행사?"
"그래, 그리고 그 때가 되면 외부인들은 모두 밖으로 내보내야 해."
"음? 밖으로?"
장우는 미우의 말에 뭔가 잘못된 것을 느꼈다.
자신이 사부에게 듣기로는 혼천괴에 대한 이야기는 널리 알려진 것이 아니었다.
그런데 이런 식으로 일정 기간마다 밖으로 내보낸 사람들이 있다면 그렇게 혼천과에 대한 이야기가 비밀스럽긴 어려울 것이다. 결국 그 말은 혼천괴에서 밖으로 나간 사람이 거의 없다는 것인데, 미우는 주기적으로 모두 내보냈다고 한다.
'밖으로 내보낸 사람들 중에서 무사히 나간 사람이 없다는 거네.'
장우는 등골이 서늘해지는 것을 느꼈다.
< 미우는 예쁘다와 세월이 빠르다는 연관이 없지만 사실이다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