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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우가 나타났다 >
장우가 스승의 훈육에 시달리며 목적지인 미개지 깊은 곳에 도착한 것은 몇 년의 시간이 흐른 후였다.
그리고 장문일의 비행 법보가 도착했을 때, 그곳에는 이미 다섯 명의 화신기 초기 수사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그들 다섯에 장문일과 혜정, 막구까지 여덟 명이 이번 탐험의 주축이었던 것이다.
물론 그들은 호자 온 것이 아니라 모두 대여섯에서 열 명이 넘는 저계 수사를 데리고 왔다.
장우 하나만 데리고 온 장문일이 특이한 경우였는데, 실제로 데려온 저계 수사들이 하는 일이란 것이 잔심부름 정도라 굳이 데려온 이유를 장우는 알 수가 없었다.
원래 화신기 수사들이 제자나 수행원을 데리고 온 것은 필요에 따라서 그들을 미끼로 쓰거나 혹은 방패로 쓰기 위해서였지만 그럴 일이 없었기에 장우가 알아차리지 못한 것이다.
수백 만 리의 넓은 호수는 무척 거칠었다.
곳곳에 있는 작은 섬들에선 때로 화신기급의 요수, 마수, 괴수가 등장했다.
하지만 여덟 명의 화신기 수사들의 상대는 될 수 없었다.
그리고 그런 높은 등급의 위험 요소가 그리 많은 것도 아니었다.
때로 인간들이나 유사 인종이 살고 있는 섬들도 있었지만 경지 높은 수사들은 보이지 않았다.
그렇기에 화신기 초기의 여덟 수사가 주동이 되어 혼천괴를 찾아 가는 길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다만 섬의 중심부에서 수심 깊은 곳으로 내려가는 것이 어려웠지만 그조차도 화신기 수사들이 힘을 모으자 큰 문제없이 성공했다.
게다가 혼천괴라고 하는 엄청난 크기의 고깃덩어리는 호수 바닥에 박혀 있어서 꼼짝도 못하는 상태였고, 일행이 가까이 가자 스스로 구멍을 열어 일행을 받아들였다.
어렵게 뚫고 들어갈 필요가 없어졌기에 일행은 기뻐하며 그 구멍을 통해 혼천괴 내부로 들어갔다.
물론 위험이 있을 수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기에 무척 경계했는데, 결국은 아무 일도 없이 혼천괴 내부에 들어서게 되었다.
여기서 장우가 다른 수행원이나 제자들을 데리고 온 이유를 알 수 없게 된 상황이 벌어지고 말았다.
그것은 혼천교 내부가 장문일이나 혜정, 막구 등이 예상했던 것과는 전혀 다른 곳이었다는 것이다.
그곳에는 어떤 위험도 없었다.
그저 잘 정돈된 거대 수도 문파가 자리 잡고 있을 뿐이었다.
혼천괴 안에 과거에 사라졌다고 하던 혼천문이 깔끔한 모습 그대로 유지되고 있었던 것이다.
또한 혼천문에는 화신기 중기, 후기, 완경의 수사는 물론이고 입령기를 넘어 성령기에 이른 수사까지 있었다. 혼천문의 문주가 다름 아닌 성령기 경지의 수사였다.
이런 상황에서 장문일 일행이 할 수 있는 일은 그저 혼천문 제자의 지시를 고분고분 따르는 것 뿐이었다.
혼천문주인 성령기 수사가 아니라, 그 아래의 입령기 수사들 중에 하나만 나서도 장문일 일행은 날숨 한 번에 날아갈 판이었다.
저항할 수 없는 경지의 차이.
그런 처지가 되어 장문일 일행이 혼천문의 뜻을 고분고분 따르게 되었으니, 결국 함께 왔던 저계 수사들의 용도를 장우가 끝까지 알 수 없게 되었던 것이다.
그리고 지금, 장우는 참으로 한가한 처지가 되어 전각의 지붕에 누워 있었다. 이 전각은 혼천문에서 장문일의 거처로 내어준 것이었다.
장우는 당연히 장문일의 제자로 전각을 함께 쓰게 되었는데, 문제는 장문일이 전각에 머무는 날이 거의 없다는 것이다.
장문일을 비롯한 여덟 화신기 초기 수사들은 모두 끌려나가 뭔가 연구를 하고 있는데, 그 때문에 거처로 돌아오는 것이 몇 달에 한 번 정도뿐이었다. 그것도 거처에 와서 심신을 가다듬느라 명상수련만 하고는 또 금방 다시 불려나갔다.
그러다보니 장우는 버림받은 상태로 빈둥거리게 된 것이다.
물론 그렇다고 장우가 게으름을 피우며 매일같이 허송세월을 하고 있다는 것은 아니다.
장우도 나름 경지 수련에 힘쓰고 있긴 했다.
다만 이전처럼 장문일의 지원을 받지 못하니 수련 성취가 빠르게 오르지 않는 것이 문제라면 문제였다.
'혼천문의 사람들은 이상해.'
- 뭐가요?
'다른 사람들에게 크게 관심이 없다는 거. 뭐라고 할까? 자극에 대한 반응이 더디다고 해야 하나? 아니면 강한 자극이 아니면 느끼지 못한다고 해야 하나.'
그런 경향이 있기는 하죠. 장우님이 지나가도 관심을 두는 일이 거의 없잖아요. 억지로 붙들고 말을 걸어야 겨우 대꾸를 해 주는 정도죠.
'그러니까 하는 말이지. 그렇다고 붙들고 이야기를 한다고 뭐 그렇게 싹싹한 구석이 있는 것도 아니고.'
그래도 유독 친하게 지내는 사람들이 있긴 하잖아요. 그 혜정 어르신의 제자들 중에 몇은 혼천문 제자들 중에 친한 이들이 생겼다던데요?
'그것도 이상한 구석이 있다니까. 꼭 짝을 지은 것처럼 수사 하나에 혼천문 제자 하나, 이런 식이야. 여러명이 서로 친하게 지내는 경우는 없지. 게다가 더 이상한 건 뭔지 알아?'
- 알죠. 혼천문 사람들은 서로 이야기를 안 하죠. 그냥 뭐랄까 눈빛만 봐도 알아요. 하는 것처럼 착착착! 그런 느낌이랄까요?
'엄청난 시간 동안 이곳에 갇혀서 대를 이어왔기 때문이라고 하긴 하는데, 그걸로 설명이 되는 상황인지 모르겠다고.'
일반적인 심어보다는 이심전심의 느낌이죠. 뭐 그래도 같은 문파 소속들 사이에만 가능한 일이니 뭔가 방법이 있을 수도 있죠.
'그런가?'
아니라고 한들 어쩌겠어요? 혼천문 제자들 중에 장우님보다 경지가 낮은 제자를 본 적이 없는데요.
'쩝, 그렇긴 하지.'
장우는 몽이의 말에 내밀 반론이 없었다.
따지고 보면 장우는 이곳 혼천문에서 가장 경지가 낮은 이들 중에 하나였다.
어쩐 일인지 성단기 이하의 제자는 한 번도 보지 못했던 것이다.
오행영기공과 삼선비기는 여전히 나쁘지 않은 수련 공법이에요. 성단기를 지나 영체기까지 노려볼 수 있는 공법이죠.
'그렇지. 사부님도 영체기까지는 충분히 쓸만하다 하셨지.'
그러니까 열심히 정진하세요. 솔직히 사부님의 지원이 없어서 아쉽긴 하지만 그렇다고 수련을 멈출 수는 없죠.
"왜 이래? 내가 언제 수련을 멈췄어? 요즘도 죽어라 수련 중이라고."
장우님, 저한테 거짓말은 안 통해요. 요즘 장우님 집중력에 문제가 있는 거 같다고요.
- 역시 모든 것을 알고 있는 몽이! 무섭다."
장난치지 마시고요.
"알았다 알았어. 내가 널 어떻게 이기냐?"
장우는 몽이의 타박에 어쩔 수 없다는 듯이 몸을 일으켰다.
수련을 하러 가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몸을 일으키던 장우는 깜짝 놀라고 말았다.
언제 왔는지 머리맡의 용마루 기와 위에 여자 아이 하나가 앉아 있었던 것이다.
"누,누구냐!"
장우가 깜짝 놀라 몸을 일으키며 물었다.
그 서슬에 장우는 지붕의 비탈에 삐끗하며 미끄러질 뻔 했다.
"호호호, 너 재미있는 아이구나?"
그런데 삐끗하며 팔을 허우적 거린 것이 재미있게 보였는지 여자 아이가 손으로 입을 가리며 웃었다.
"재미는 무슨, 누구냐니까?"
"응. 나?"
"그럼 나겠냐?"
"호호호, 그래서 넌 누군데?"
"어휴, 혼천문 제자인 모양인데, 나는 장우라고 한다. 여긴 스승님과 함께 머무는 곳이고."
"그래서 뭐? 네 집이니까 나가라고?"
"그런 건 아니지. 어차피 여긴 혼천문인데 너보고 나가랄 수야 있냐? 그냥 일단은 내가 머무는 곳이니까 아무리 혼천문 제자라도 예의는 지켜야 하는 거 아니냐 뭐 그런 거지."
"결국 나보고 가란 거잖아!"
"아주 바보는 아닌 거 같은데 지금까지 자기 소개를 안 하는 건 일부러 그러는 거야?"
"으응?"
장우가 다시 이름을 묻자 소녀가 조금 당황한 표정을 지으며 움찔 거렸다.
그러다가 잠시 후 소녀가 장우를 보며 말했다.
"나, 미우(美®)라고 해. 응, 미우."
"그게 뭐냐? 아름다운 만남? 지금 막 지은 거 같잖아."
"아니야. 언젠가는 좋은 사람을 만나라는 의미로 지은 거라고 했어."
"뭐, 그렇다고 하자. 반가워 미우. 넌 혼천문의 다른 사람들보다는 무척 친절하구나?"
"응? 으응. 사실은 나도 잘 몰라. 왠지 너를 보니까 기분이 좋아."
"와, 그런 말을 잘도 태연하게 하는구나? 원래 그런 고백은 무척 수줍게 하는 거 아냐?"
"아니야. 그런 거. 그러니까 이건 뭐라고 할까, 그냥 보면 기분이 좋은 거라고."
장우의 말에 미우는 뭔가 억울하다는 듯이 고함을 질렀다.
장우는 그런 미우를 보며 빙긋 웃고 말았다.
뭔가 놀려 먹는 보람이 있어 보이는 아이가 아닌가.
지금까지 혼천문에서 만났던 다른 제자들과는 많이 다른 아이였다.
게다가 미우의 경지도 장우와 같은 성단기 초기라 경지 차이가 없어서 대하기도 쉬웠다.
"그런데 아깐 누구하고 이야기를 하고 있었어? 왜 혼자서 그렇게 떠들었어?"
이번에는 미우가 장우를 곤란하게 하는 질문을 던졌다.
한참 몽이와 마음속으로 이야기를 하다가 뒤에 가서 흥분하는 바람에 육성으로 떠들고 말았다.
그리고 그것을 미우가 들었던 것이고.
"아니, 그 전에 너는 어떻게 나도 모르게 거기에 와 있었던 거야? 나하고 같은 성단기 초긴데."
"흥. 그건 비밀이야. 알려주지 않을 거다."
"그래? 그럼 나도 누구하고 이야기하고 있었는지 안 알려줄 거야."
"그게 뭐야? 이상하잖아! 쳇, 얄미워. 그럼 뭐 내가 문주님께 여쭤볼 거야. 네가 누구하고 이야기했는지."
"뭐? 문주님? 설마 혼천문주님 말하는 거 아니지?"
장우가 문주라는 말에 깜짝 놀라며 물었다.
"왜 아니야? 여기 다른 문주님이 누가 있다고?"
하지만 미우의 대답은 장우가 걱정했던 그대로였다.
혼천문주라니!
장우는 팔뚝에 소름이 돋는 것 같았다.
"야, 그게 말이 되냐? 고작 성단기 밖에 안 된 네가 어떻게 까마득히 위에 계신 성령기 문주님께 뭘 물어보고 그래?"
장우는 절대로 아니길 바라며 그렇게 따져 물었다.
"흥, 나는 가능해! 내가 왜 못해?"
"야야야, 그러지마. 진짜라도 겁나고 아니라도 겁난다고. 감히 성령? 문주님을 입에 담다니."
장우는 정말로 깜짝 놀라 미우를 말리려 다급하게 달려들었다.
그리고 미우의 입을 손으로 틀어 막았다.
"읍읍읍!"
"우욱!"
그 서슬에 미우가 깜짝 놀라 발길질을 했는데 장우는 영 좋지 못한 곳을 미우의 무릎에 맞고 말았다.
그 때문에 장우가 깜짝 놀라는데 그 틈을 타서 미우가 장우의 손에서 빠져나가 훌쩍 허공으로 몸을 날렸다.
"너, 기다리고 있어. 문주님께 여쭤보고 올 테니까."
"야, 야. 그건 아니지!"
장우가 급히 미우를 불렀지만 미우는 붉은 빛의 둔광을 남기고 사라져 버렸다.
"와, 이거 큰 일 나는 거 아냐?
- 그러게 말입니다.
장우의 말에 몽이조차 잔뜩 주눅 든 표정으로 말했다.
그리고 다시 며칠 후, 장우가 그 사이에 별다른 일이 일어나지 않자 어느 정도 안심하며 지붕에 누워 있을 때였다.
"흥! 아무도 없으면서 괜히 혼자 떠든 거면서."
다시 장우의 머리맡에서 미우의 목소리가 들렸다.
장우가 깜짝 놀라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처음 미우를 만날 때 그랬던 것처럼 삐끗하며 팔을 허우적거렸다.
"호호호."
미우는 그 모습에 웃음을 터트렸고, 장우는 같은 실수를 또 했다는 겸연쩍음에 뒷머리를 긁었다.
그렇게 장우와 미우의 만남이 다시 이루어졌다.
"그런데 무슨 소리야? 내가 혼잣말을 했다고?"
그러다가 문득 장우가 미우에게 물었다.
"맞잖아. 문주님께서 그러셨다고, 너는 때로 혼잣말을 한다고. 그것도 마치 누가 있는 것처럼 대화하듯이."
"야, 그거 아니거든. 여기 내 친구 몽이가 있거든?"
장우는 어쩐 일인지 미우가 자신을 거짓말쟁이로 보는 것이 싫었다.
그래서 급히 변명을 하며 눈앞의 몽이를 가리켰다.
하지만 미우는 코웃음을 쳤다.
"정신 차려. 문주님이 그러셨는데 그런 거 일종의 정신분열이라고 했어. 수련자들 중에 의외로 그런 경우가 많긴 하지만 좋은 건 아니라고 하셨다고."
"야, 난 그런 거 아니거든!"
"헹, 아무리 그래도 문주님의 이목을 속일 수는 없다고. 설마 그 몽이가 태령기나 진선 경지의 존재라는 건 아니겠지?"
"아니 그건……
장우는 말문이 막히고 말았다.
눈앞에 있는 몽이는 절대 그런 경지라고 할 수는 없었던 것이다.
그럼에도 성령기 수사의 이목에 걸리지 않는다면?
'어마무시 대단한 거지. 우리 몽이.'
- 그럼요. 당연하죠.
장우는 절대 몽이를 환상이나 자기 상상의 산물로 볼 수 없었다.
그러니 몽이는 성령기 수사의 이목에서도 벗어난 굉장한 존재가 될 수밖에.
물론 그렇다고 미우에게 그것을 계속 주장할 생각도 없었다.
말해 봐야 믿지도 않을 거고, 또 거짓말이라고 할 것이 분명하니까.
그러느니 차라리 몽이에 대해선 이야기 하지 않는 것이 좋겠다 싶었다.
"좋아. 그럼 앞으로 몽이에 대해선 이야기 하지 말자. 내 정신분열이건 뭐건,네가 상관할 문제는 아니지."
"응? 너 삐진 거야?"
"무슨 소리야! 삐지다니, 말도 안 되는 소리를!"
"그래, 아니면 말고. 그런데 넌 왜 매일 여기서 이러고 있어? 안 심심해?"
"수련하다가 잠시 쉬는 거야."
"흐응, 그렇구나. 그럼 쉬는 김에 나하고 놀러 갈까?"
"응?"
"가자, 내가 좋은 곳을 알려줄 테니까."
"그, 그래."
장우는 미우의 꼬임에 자발적으로 넘어가 주었다.
혹시 아는가, 수련에 도움이 될 것을 얻을 수 있을지.
그리고 얼마 후 장우는, 영단 하나를 손에 들고, 미우를 따라 나서기로 했던 일전의 자신을 대견해 하고 있었다.
< 미우가 나타났다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