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6)
< 떡잎부터 다른 장우인건가? >
"어어어?"
하지만 장문일은 장우를 안아 줄 생각은 없었던 모양이다.
장우는 스승이 일으킨 의념에 붙잡혀 발이 땅에서 떨어진 상태로 허우적거렸다.
그러다가 스승이 의념을 풀자 철퍼덕 엉덩방아를 찧고 말았다.
"아구구. 너무하세요."
"너무하긴 이 놈아. 그 동안 무슨 일이 있었기에 벌써 연신기 5단공이 된 것이냐? 그리고 약초밭은 왜 또 저 모양이 되었고?"
"에헤헤. 그게요......."
장우는 스승의 질책에 헤퍼 보이는 웃음과 함께 뒷머리를 긁었다.
그리고 벌떡 일어나 스승의 곁으로 다가가 소매를 붙잡으며 장문일이 없었던 동안의 일을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두 사제(師弟)는 나란히 동부를 향해 걸어갔다.
"그러니까 오각 옥패에서 오행영기공을 찾아 냈다는 말이지. 그리고 그것을 삼선비기와 함께 운용하게 되었고?"
"네, 사부님."
"허어, 그것 참. 나는 그리 될 줄은 생각도 못하고 네가 오각 옥패에서 오행영기공을 찾아내 익히는 데에도 족히 십여 년은 걸릴 거라고 생각했다."
"그렇게나 오래요?"
"그래."
"제가 그렇게 모자라 보이셨어요?"
"놈! 그것도 그나마 자질이 뛰어난 놈들을 기준으로 생각한 것이다. 어찌 오행영기공을 삼선비기와 함께 운용할 생각을 했는지, 그리고 그것을 어떻게 성공시켰는지 나도 놀라울 따름이다."
"에헤헤. 그러니까 제가 잘 했다는 말씀이지요?"
"커엄. 그야 뭐, 썩 훌륭하게 해 내긴 했구나."
"감사합니다 사부님."
장우는 스승의 칭찬에 입을 헤벌쭉 벌리고 기뻐했다.
하지만 장문일은 장우를 칭찬하기만 할 생각은 없었던 모양이었다.
그는 갑자기 얼굴 표정을 굳혀 정색을 하며 장우를 바라보았다.
"하지만 내 너에게 반드시 물어볼 것이 하나 있느니라."
"네? 네. 사부님."
장우는 갑자기 찬바람이 부는 사부의 태도에 깜짝 놀라 긴장하며 대답했다.
"네가 정자 앞의 연못에서 붉은 해철(海重)을 잡아 연단 재료로 썼다고?"
그런 장우를 보며 붉은 해철에 대해서 묻는 장문일의 태도가 범상치 않았다.
그의 표정은 무척이나 심각하고 뿜어내는 기세 또한 서늘했다.
"네, 제가 수련 중에 연단술을 공부하게 되었는데, 마침 적광온옥해철(赤光溫玉海重)을 쓰는 연단 비방이 장서고에 있어서, 그것을 시험하느라
"적광온옥해철이라고?"
"네. 사부님."
"누가 그것을 적광온옥해철이라 하더냐?"
"네?"
장우는 사부의 물음에 자신이 잡아죽인 것이 어쩌면 적광온옥해철이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어 깜짝 놀라며 고개를 들었다.
"누가 그렇게 알려 주었느냐 물었다. 혹시 네가 읽은 옥간에 그와 같은 내용이 있었더냐?"
장문일이 그런 장우를 다그치며 다시 물었다.
"아, 아닙니다. 그게 아니라 연못에서 해파리를 발견하고 그 정체가 궁금하여 장서고를 찾았으나 답을 얻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제자가 너무 궁금하여 삼선문을 찾아가 영수를 기르는 곳에서 답을 구하였습니다."
"그랬더니 그곳에 있던 놈이 적광온옥해철이라 일러 주었단 말이냐?"
"그렇습니다. 은은한 붉은 색이 나는 주먹 크기의 해철이라 하니, 그리 일러 주었습니다."
"커어엄."
장우의 대답에 장문일은 크게 헛기침을 하고 말았다.
사실 그 해철은 장우가 알고 있는 것과 같은 적광온옥해철이 아니었다.
비슷하게 생기긴 했으나 훨씬 특별한 해철로, 장문일도 우연히 먼 곳의 금역에서 모험을 하던 중에 발견한 영호(靈湖)에서 얻은 것이었다.
실로 그 영호의 주인은 당시 영체기에 불과했던 장문일이 감당할 수 없는 상대였는데, 그 영호 주인의 새끼가 바로 그 해철, 해파리였다.
운이 좋게 영호의 주인을 속이고 새끼를 훔쳐 나올 수 있었는데, 이후 그 금역은 다시 들어갈 길이 막혀버렸다.
어쨌거나 장문일은 그 작은 해파리가 거대한 영수 해파리의 새끼임을 알고 정성을 들여 키우는 중이었다.
사실상 정자 앞 연못은 그 해파리를 키우기 위해 조성한 환경이었던 것이다.
해파리 새끼는 가끔 자신보다 큰 잉어나 자라 따위를 잡아 먹으며 조금씩 성장하는 중이었다.
장문일은 그렇게 새끼 해파리가 커가는 모습을 지켜보며 기꺼워 하고 있었는데 그것을 장우가 죽여 연단재료로 써 버린 것이다.
"왜 그러십니까? 혹시 제자가 크게 잘못을 한 것입니까?"
"끄응, 되었다. 내가 너에게 주의를 주지 않은 것이 문제겠지. 네 잘못이라 할 수는 없다."
"네?"
"네가 내 제자이니 어지간한 것이야 당연히 네 마음대로 쓸 수 있다. 어찌 제자에게 그 정도 아량도 없겠느냐. 하지만 스승이 따로 아끼고 귀하게 여기는 것은 너도 함부로 해서는 안 되는 것이겠지."
"그야 이를 말씀입 니까. 사부께서 아끼시는 것을 제자가 어찌 범하겠습니까."
"그래, 그런데 사실 연못의 그 해철은 이 사부가 애정을 가지고 있는 것이었다."
"네? 적광온옥해철을요?"
"끄응, 고작 그런 것이라 하더라도 사람마다 남다른 의미가 있을 수도 있지."
"아, 그렇군요."
장우는 실망하는 스승의 표정에 저도 모르게 주눅이 들고 말았다.
자신이 스승이 아끼는 애완영수를 죽인 것이 아닌가.
"괜찮다. 미리 이야기하지 않은 내 잘못이니라."
장문일은 마음과 달리 겉으로는 장우를 위로했다.
사실 적광온옥해철이 아닌 신비로운 해철의 새끼이긴 하지만 이미 죽고 없는 것을 어쩌겠는가.
그렇다고 어린 제자에게 그것이 귀한 것이니 어쩌니 하면서 타박을 하기에도 체면이 서지 않았다.
그러니 그냥 제자가 적광온옥해철로 알게 두는 것이 좋으리라 생각했다.
"사부님, 제가 어떻게든 새로 적광온옥해철을 구해 오겠습니다. 연못에 있던 것보다 훨씬 빛깔이 곱고 아담한 것으로요."
그런 속도 모르고 장우는 사부에게 어이없는 말을 늘어놓으며 결의를 다지고 있었다.
그 때문에 장문일은 애써 터져 나오는 한숨을 삼켜야 했다.
"끄응, 되었다. 그게 뭐가 그리 중요하겠느냐. 지나가 돌이킬 수 없는 일에 집착하는 것은 수련에도 좋지 않다. 그러니 잊어버리고 이제부터는 수련에만 열중하거라. 괜히 수련 자원을 구하겠다느니 하면서 삼선문에 기웃거릴 생각은 하지도 말고."
"가, 감사합니다. 스승님."
장우는 장문일의 말에 감격하여 의자에서 내려와 바닥에 엎드렸다.
"허허허. 그리 격식을 차릴 것이 뭐가 있다고. 어서 일어나거라. 나는 그런 과한 예를 좋아 하지 않느니."
장문일은 그런 제자의 모습에 기꺼운 표정을 지으며 애써 장우를 일으켜 세웠다.
그리고 그 후, 장우는 장문일의 후원을 받으며 수련에 매진하게 되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장문일은 장우에게 수련에 필요한 자원을 부족하지 않게 내어 주었지만 수련 자체에 대한 깨우침을 전해주지 않았다.
그 때문에 장우는 모든 수련을 스스로 해 나가야 하는 처지가 되었다.
- 그런데 장우님.
"응?"
- 왜 장우님은 사부님께 무한공이나 의념공간에 대해서 감추고 계세요?
"감추기는 내가 뭘?"
- 하지만…….
"그리고 원래 수도계란 곳이 항상 경계하고 조심해야 하는 곳이잖아. 장서고의 수많은 옥간들이 그렇게 말하고 있었고."
- 그야 그렇지만, 그렇다고 사부님한테까지 그럴 건 없지 않아요?
"무슨 소릴! 사부님은 나에게 부모님이나 마찬가지지. 그만큼 고맙고 감사한 분이야. 그래서 더더욱 사부님께서는 내가 이렇게 수사로서의 기본적인 마음가짐을 잘 지키는 것을 더 기꺼워 하실 거야. 넌 그렇게 생각하지 않냐?"
- 말은 장우님의 말씀이 옳긴 하지만, 그래도 사부님을 속이는 마음이 불편하잖아요.
"그런 나약한 마음 자체가 사부님을 실망시키는 것이 될 거란 생각은 안해?"
- 네?
"수사로서 제대로 커나가는 것, 그것이 사부의 은혜에 보답하는 길이지."
- 그래서 감출 건 감추고, 숨길 건 숨기고 그러는 게 당연하다고요?
"사부님께서도 나중에 알게 되시면 잘 했다고 하실 거야. 분명히."
- 설마 장우님, 저한테도 속마음을 숨기고 뭐 그러시는 거예요?
"어? 음? 알아차렸냐?"
- 그래봐야 의미도 없는데 왜 그러세요? 제가 장우님 마음을 모를 거 같아요? 장우님 사실은 사부님을 완전히 믿진 못하는 거잖아요.
"뭐, 솔직히 잘해 줘도 너무 잘 해 주시잖아. 깨달음에 대한 가르침은 안 주신다지만 그 외에 수련에 필요한 것을 부족하지 않게 밀어 주시고 말이야."
- 그렇죠.
"그런데 한 번도 나한테 원하는 것에 대해선 말씀을 안 하셨단 말이지."
- 그야…….
"그냥 자질이 뛰어난 제자를 크게 키우고 싶다는 뭐 그런 마음이실 거라고 생각하고 싶지만, 솔직히 수도계란 곳이 그렇게 호락호락한 곳이 아니잖아."
- 그래서 의심하시는 건가요?
"이제야 축기기를 앞두고 있는 주제에 화신기 초기의 사부님을 의심해 봐야 뭘 할 수 있겠냐만, 그래도 완전히 믿기는……"
- 솔직히 저도 그런 마음이 들긴 해요.
"너하고 나는 결국은 같은 결론을 내리곤 하지."
- 그러게요. 그래서 어쩌시려구요?
"어쩌긴, 그냥 시키는 대로 열심히 수련을 해야지.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게 뭐가 있겠어? 그렇다고 수련을 게을리 해? 그건 더 미친 짓이지. 스스로 성장을 지연시키는 짓을 해서 좋을 게 뭐겠어?"
- 문제는 사부님께서 장우님의 성장을 바라신다는 거죠.
"어쩔 수 없어. 그렇다고 수련을 안 할 수도 없고."
- 그렇긴 하죠.
"답 없는 이야긴 오래 해 봐야 답답하기만 하다. 그냥 수련이나 더 하자."
- 네, 장우님. 저도 열심히 도울게요.
장우의 말에 몽이는 주먹을 쥐고 팔꿈치와 무릎을 서로 당겨 맞닿게 하는 묘한 동작으로 장우를 응원했다. 장우 역시 몽이의 행동을 따라 했다.
- 아자아자!
"그래, 뭔지 몰라도 아자아자!"
***
"연신기는 영기를 이용하여 몸을 닦아 내는 것이다. 범인의 육체가 영기에 적응하여 영기 수련을 가능하게 하는 것이지. 이 연신기에 들기만 하여도 수명이 200년으로 늘어난다. 연신기 200년, 축기기 500년, 성단기 1천년, 영 체기 3천년, 화신기 1만년. 이게 인간 수사들의 평균 수명이다."
"인간만 수명이 너무 짧은 거 같아요. 다른 종족들은 수사가 되지 못해도 수 백 년을 살고, 수사가 되면 연신기만 되어도 천 년을 사는 경우도 허다한데요."
장우는 사부의 설명에 화가 난다는 듯이 말했다.
"하지만 대신에 인간이 다른 종족에 비하여 깨달음에 이르는 벽을 잘 넘는다."
"정말요? 그건 왜 그런데요?"
"그야 인간이 다른 종족에 비해서 훨씬 창의적인 사고를 하기 때문이겠지. 사실 그조차도 확실한 것은 아니다만. 아무튼 다른 종족에 비해서 깨달음을 쉽게 얻는 것은 확실하다. 수도계의 정설이니."
"그래도 결국 수명이 긴 덕분에 다른 종족들도 경지를 넘는 것은 비슷하잖아요. 시간이 좀 더 걸리는 것만 빼면."
"그래서 어쩌겠느냐. 인간으로 태어난 것을 돌이킬 수 있는 것도 아닌데."
장문일은 방법이 없다며 고개를 저었다.
그런데 그 때, 장우가 다시 질문을 던졌다.
"그런데요. 이상한 것이 있어요."
"뭐가?"
"화신기가 되면 범인의 몸을 버리고 새로운 종족으로 태어난다고 들었어요. 범인의 육체는 완전히 없어지는 거라고요."
"그렇지."
"그런데 왜 수명은 그대로예요?"
"응?"
"예를 들어서 용족이 화신기가 되면 천겁이 1 만 년에 한 번씩 오기도 한다면서요? 그런데 왜 인간 화신기 수사는 천겁이 3천 년에 한 번씩 오고, 네 번의 천겁 뒤에는 대천겁 한 번을 겪어야 하는 거냐구요."
"용족 수사는 1 만 년마다 천겁을 거쳐 5만 년 째에 대천겁을 맞이하는데 유독 인간 수사는 1만 5천년에 대천겁을 맞으니 억울하다는 거로구나?"
"그렇죠."
"하지만 그 또한 어쩔 수 없는 것이 아니냐. 태생이 그러하여 타고난 운명이 그런 것을."
"쳇, 역시 진선이 되어서 불로불사를 이루어야만 그런 불공평을 뛰어 넘을 수 있는 거겠네요."
"녀석, 축기기 승경에 도전한다더니 뭔 잡설을 이리 길게 하는 것이냐? 너도 축기기 승경은 걱정이 되는 것이냐?"
장문일은 제자의 긴장을 이해한다는 듯이 빙긋 웃으며 그렇게 물었다.
하지만 그것은 질문이 아니라 괜찮다는 다독임이었다.
그리고 이어진 장문일의 말도 그러했다.
"승경에 한두 번 실패해 보는 것도 큰 공부가 된다. 항상 성공하기만 해서는 후에 더 높은 경지에서 더 큰 고생을 할 수도 있음이다."
"지금 제가 승경에 실패하기라도 바라시는 거예요? 그건 아니시죠?"
"반반이라 하자꾸나."
"너무하세요!"
장우는 오랜만에 스승에게 어리광을 부렸다.
장문일의 말대로 축기기 승경을 앞두고 걱정과 긴장, 흥분이 뒤섞인 기분이 진정되지 않았던 것이다.
"더 지체한다고 달라질 것은 없겠지. 여기 준비해 놓은 축기단을 먹고 영기 운공에 들거라. 특별히 오행의 다섯 가지 속성을 담아 놓은 축기단이니 큰 도움이 될 것이다."
하지만 장문일은 장우가 시간을 끌어봐야 좋을 것이 없다고 생각하고 곧바로 축기단이 들어 있던 목함의 뚜껑을 열었다.
영단은 공기중에 오래 노출되면 약효가 감소하기 마련이다.
목함의 뚜껑을 연 이상, 최대한 빠르게 복용하는 것이 답이었다.
장우는 조금은 원망스러운 눈빛으로 장문일을 바라보며 목함 속의 축기단을 의념으로 끌어당겨 한 입에 삼켰다.
"괜찮다. 애써도 안 되면 다음이 또 있으니. 너는 앞으로 100년의 수명이 더 남지 않았더냐. 클클클."
축기단을 삼키고 승경에 도전하는 장우는 무아지경에 들기 전에 그렇게 자신을 다독이는 장문일의 목소리를 들었다.
그래서인지 영기 운공을 하며 삼매경에 빠진 장우의 입가에 희미한 미소가 감돌고 있었다.
- 자신이 없죠? 승경에 실패할 자신이!
몽이가 그런 장우의 심상에 나타나 활짝 웃으며 말했다.
< 떡잎부터 다른 장우인건가?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