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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한공이 사라졌다! >
해철(海g)은 해파리 다.
문일동부 앞마당의 연못에는 여러 가지 생명체가 살고 있었다.
잉어는 물론이고, 거북이, 메기나 가재, 조개 따위는 물론이고 연(蓮)을 비롯한 식물들도 다수 있었다.
그런데 그것들을 살피던 중에 장우는 우연찮게 해철,즉 해파리를 발견하게 되었다.
붉은 기운이 감도는 그 해파리는 고작 주먹 하나 크기였는데 항상 느긋하게 연못 속을 유영하고 다녔다.
장우가 그런 해파리를 진혈 채취의 대상으로 삼은 것은 별다른 이유가 없었다.
해파리가 연못에 사는 것이 신기하여 그 정체를 알아보았다.
하지만 동부의 허름한 장서고에는 그에 대한 정보가 없었기에 어쩔 수 없이 오랜만에 삼선문까지 가서 영수(S獸)를 돌보는 곳을 찾아 물어 보았다.
그랬더니 동부의 영천 같은 곳에 사는 붉은색 해파리는 적광온옥해철(赤光溫玉海 )이라는 종류라 했다.
붉은 빛을 띠는 따뜻한 옥해파리라는 뜻인데 연단이나 제련 등의 재료로 잘 쓰이고 때로는 수생 영물의 먹이로도 쓴다고 했다.
그 말은 그 해파리가 크게 귀한 것은 아니란 뜻이었다.
장우가 연못의 해파리에서 진혈을 채취하겠다고 생각한 것이 바로 그런 이유였다.
귀하지 않으니 사부에게 크게 혼이 날 일도 없을 것이고, 또 마침 연단 재료로도 많이 쓰이는 것이니 핑곗거리도 좋았다.
게다가 왠지 그 붉은 해파리는 장우의 마음에 꼭 들기도 했다.
이게 적광온옥해철(赤光溫玉海?)의 진혈이에요?
몽이가 허공에 떠 있는 한 방울의 액체를 보며 물었다.
붉은 기운이 감도는 투명한 액체에는 황금빛까지 감도는 듯 했다.
"맞아. 너도 봤잖아. 해파리의 진액을 모두 뽑아서 그것을 몇 번이나 정제하고 남은 것이 이거야."
예쁘네요.
"이게 얼마나 순도 높은 진혈일지는 나도 모르겠지만 그래도 영기를 품은 온옥해철에서 뽑아 낸 것이니 아주 조금이라도 진혈의 기운이 있겠지."
그랬으면 좋겠네요.
"뭐, 그건 무한공을 펼쳐 보면 확인이 되겠지. 무한공에 어울리지 않으면 술법이 발동하지 않을 거고, 조건에 맞으면 발동할 테니까."
그래서 수련공법이 나오면 곧바로 익힐 거예요?
"그래야지. 안 그러면 진혈만 아깝게 내버려야 하는데."
진혈에 무한공을 펼치면 술법이 발동되어 진혈에 어울리는 공법을 끌어온다.
그리고 그 공법은 진혈에 녹아들게 되고 이후 진혈을 복용하면 공법이 몸에 각인되는 것이다.
이후에 공법을 수련하면 장우가 아니라 장우에게 흡수된 진혈의 힘이 증가한다.
그래서 진혈을 이용한 공법은 장우 본인의 영근 성장과는 관계없이 따로 성장하게 되는 것이다.
물론 진혈 공법이 장우에게도 영향을 주기는 하겠지만 영근 수련과 구분되는 것은 확실했다.
- 그런데 사부님이 돌아와서 장우님이 이상한 공법을 익혔다고 화를 내면 어떻게 하죠?
"괜찮지 않을까? 나한테 손해가 되는 일도 아닌데 사부가 화를 낼 일이 뭐가 있겠어?"
- 그래도요.
"음. 그럼 이거 먹지 말까?"
몽이의 말에 장우도 슬그머니 겁이 나긴 했다.
사부의 허락 없이 마음대로 공법을 새로 익혀도 되는지 불안했던 것이다.
이전처럼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면 모를까 이미 장서고의 옥간들을 통해서 수도계에 대해 적지 않은 지식을 쌓은 상태였기에 자신의 잘못을 알게 된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무한공을 포기하고 싶지는 않았다.
무엇보다 무한공은 자신의 의 념공간에서 발견된 것이 아닌가.
그렇다면 이 무한공이 자신과 밀접한 연관이 있을 것이 분명했다.
장우는 어쩌면 아주 오래 전에 조상들 중에 누군가가 자손에게 술법을 건 것이 아닌가 추측하고 있었다.
그 술법이 수사의 길을 걷게 된 장우에게 발현되어 의념 공간에 옥간이 전해진 것이라면?
모든 것을 자기 좋을 대로 판단한 것이지만 그만큼 무한공에 끌리는 장우였다.
- 일단 무한공을 펼쳐서 이 진혈에서 어떤 공법이 나오는지 확인해 보는 게 어때요? 그 후에 복용을 할 건지 버릴 건지 결정하면 되잖아요.
"그래! 그렇게 하자. 복용만 하지 않으면 문제 없는 거 아니겠어?"
장우는 몽이가 무척 좋았다.
이렇게 시원하게 고민을 해결해 주곤 하니까.
장우는 곧바로 머릿속에 새겨진 무한공의 법문을 떠올렸다.
그리고 그 법문 하나하나에 정신을 집중하며 눈앞에 의념으로 띄워놓은 적광온옥해철의 진혈에 법문을 새겨 넣었다.
- 조심하세요. 영기가 흩어지면 안 된다고요.
그런 장우의 옆에서 몽이가 긴장하며 조언을 해 주고 있었다.
무한공의 법문을 진혈에 새겨 넣는 것은 매우 세심한 작업이었다.
영기로 법문을 새기는 것이지만 그나마 법문을 정확하게 새기기만 하면 영기의 양은 문제가 아니어서 장우의 경지로도 무한공을 펼치는 것이 가능했다.
- 힘 내세요. 정신이 흩어지면 안 돼요.
간혹 법문의 획이 흐트러지면 몽이가 곧바로 장우를 일깨워 주었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결국 장우는 적광온옥해철의 진혈에 무한공의 법문을 모두 새겨 넣는데 성공했다.
스화화화화홧!
"어엇?"
마지막 법문이 새겨진 순간이었다.
진혈에서 엄청난 빛이 터져 나왔다.
그 빛은 수련실 전체를 가득 채워 장우의 시력을 빼앗아 갔다.
하지만 잠시 시력을 잃은 것은 문제도 아니었다.
"어어어어?"
장우가 어쩔 줄 몰라하며 당황성을 토해 내었다.
- 왜 그래요? 무슨 일이에요?
몽이가 깜짝 놀라 물었다.
"무한공! 무한공이 지워졌어!"
장우가 어쩔 줄 모르며 크게 고함을 질렀다.
적광온옥해철에서 큰 빛이 터져 나온 순간, 장우의 머릿속에 있던 무한공의 법문이 그 빛에 씻겨 나가듯 사라져버린 것이다.
스스스스스! 샤라라라라!
장우가 무한공이 사라진 충격에 정신이 없는 사이, 수련장을 가득 채웠던 빛이 전광온옥해철의 진혈로 몰려들어 흡수되었다.
그 후에 드러난 것은 이전보다 휠씬 붉은 빛과 황금빛이 강해진 진혈이었다.
- 보세요. 진혈에 굉장한 술법 문양이 생겼어요. 그런데 알아볼 수 있는 게 거의 없어요.
몽이가 그 진혈에 가까이 다가가 눈을 대고 들여다보며 말했다.
장우 역시 이전과 달라진 진혈의 모습을 확인했다.
하지만 그보다 급한 것은 머 릿속에 들어 있던 무한공이 사라진 것이었다.
장우는 그 때문에 무척 침울한 기분이 들었다.
- 장우님, 정신 차리세요. 이제 결정을 해야 해요.
"응? 뭐, 뭐라고?"
- 무한공이 사라졌다면서요?
"그래, 그렇지."
- 그럼 이제 이 적광은옥해철의 진혈을 복용할 건지 말 건지 결정을 해야죠. 이대로 두면 진혈과 공법이 흩어지게 될 거라고요.
몽이가 장우의 정신을 일깨웠다.
"사라진다고? 그런 이야긴 없었잖아."
- 보시면 아시잖아요. 진혈을 보세요. 저리 두면 술법이 오래 가지 못하겠어요. 안 보이세요?
"뭐? 어디?"
장우는 급히 진혈을 자세히 살폈다.
그러자 보이지 않았던 것이 눈에 들어왔다.
진혈을 감싸고 있는 투명한 기운이 느껴진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점점 약해지고 있었다.
보기만 해도 그 투명한 기운이 진혈을 보호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이런!"
- 어? 장우님, 그렇다고 그걸 그대로 먹어버리시면…….
장우는 본능이 시키는 대로 진혈을 손에 들고 입에 털어 넣었다.
그리고 곧바로 가부좌를 하고 앉아 몸 안에 들어온 진혈의 움직임을 살폈다.
그러자 진혈이 장우의 몸에 안개처럼 퍼져 안착되며 머릿속에 새로운 기억이 각인되었다.
[逆法反際復元大法]
- 이르기를 법을 거역하고 되돌려 복원시키는 큰 법이니라.
"역법반서복원대법?" 장우가 머릿속에 떠오른 기억을 되새김질 하듯 중얼거렸다.
네? 뭐라고요?
"진혈에서 나온 공법의 이름이야."
묘한 이름이네요? 그래서 어떤 효과가 있는 거예요?
"죽음을 되돌려서 원래의 상태로 회복하는 공법."
네? 그게 무슨 말이에요?
"어지간해선 안 죽는다는 이야기지. 그런데 어째서 이런 공법이 나온 건지 모르겠네."
정말 안 죽어요? 굉장한데요?
몽이가 장우의 설명을 듣고는 신이 난 얼굴로 호들갑을 떨었다.
하지만 장우는 고개를 저었다.
"지금으로선 효과를 제대로 알 수가 없다. 그저 공법이 그러하다는 것만 알 뿐이야."
네? 그게 뭐예요? 공법 수련은 어떻게 하는 건데요?
"그것도 알 수가 없어. 진혈의 기운이 몸에 흡수되더니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린 터라서."
- 그럼 수련은 어떻게 해요?
"몰라."
네?
"진혈이 흡수되어 사라진 후로 남은 것은 공법의 효과 정도 뿐이야. 나머지는 알 수가 없어."
이상한 일이네요. 어쩌면 장우님의 경지가 너무 낮아서 그런 걸 수도 있겠네요.
"음, 맞아. 그래서 내 몸에 흡수된 진혈조차 찾아내지 못하는 거겠지. 그러니 진혈을 통해야 하는 공법조차 숨어버린 것이고."
장우도 몽과 같은 결론을 내렸다.
그렇다면 당장 장우가 할 수 있는 일은 없는 셈이다.
결국 다시 이전의 생활로 돌아가는 것만 남게 되었다.
"이제부턴 연단술 연습이나 하자. 어차피 그러려고 진혈을 뽑고 남은 적광온옥해철도 장만을 해 두었으니까."
그래요. 단약을 만들면 장우님의 수련 속도도 올릴 수 있겠네요.
"뭐, 사부님께 댈 핑계도 필요한 거니까."
장우는 그렇게 중얼거리며 사부가 돌아오더라도 무한공에 대해서 먼저 이야기하지는 말아야겠다고 생각했다.
어차피 진혈이 모습을 감췄으니 혹시 사부가 알아보지 못하면 그냥 넘어가도 될 것 같았던 것이다.
물론 사부가 먼저 알아차리고 물어온다면 그에 맞춰서 적당히 둘러대면 될 일이고.
"먼저 연신기 수련에 도움이 되는 건 역시 세신환인데,그 종류가 꽤나 다양하거든? 그 중에서도 우리 약초밭에 있는 것들을 중심으로 만들 수 있는 세신환이…… 장우는 수련장을 벗어나며 몽이에게 연단술로 제일 먼저 만들어 볼 단약에 대해서 설명하기 시작했다.
"아, 부족한 거? 그거야 뭐 약초밭에 있는 것들로 교환해 오면 되는 거지. 아. 그래도 될 거야. 괜찮을 걸?"
***
슈루루루룽! 퍼벙!
문일동부의 대나무 숲에서 연녹색의 물 덩어리가 날아가 대나무 하나를 타격했다.
대나무는 물 덩어리에 맞아서 크게 휘청거리며 몸을 떨었다.
번쩍!
그와 거의 동시에 휘청이는 대나무 곁으로 장우의 모습이 나타났다.
이전과 달리 팔뚝과 발목에 토시를 묶은 모습의 장우였다.
이마에도 연녹색의 영웅건을 둘러 시원한 이마를 드러내고 있었다.
"와! 성공이다!"
그러네요. 수폭공의 타격에 맞춰서 둔술을 성공시켰네요.
"하하하. 수폭이 날아가는 동안에 둔술을 준비해서 펼칠 정도가 되었으니 많이 익숙해 졌다고 할 수 있겠지?"
그것도 그렇지만 장우님은 신기해요.
"뭐가?"
다른 수사들은 절대 연신기 단공에 둔술을 그렇게 쉽게 펼치지 못한다고요. 둔술은 축기기는 되어야 그나마 자유롭게 펼치는 것인데.
"내가 다른 건 몰라도 영기 운용에는 탁월한 감각이 있는 거지. 이상하게 영기를 사용한 모든 일이 쉽다니까?"
그 잘난 척에 반론을 펼칠 수 없다는 것이, 에헤헤 신나요. 역시 장우님이 최고예요.
뭔가 못마땅해 했던 모습은 장난이었던 모양인지 몽이 중간에 말을 확 바꾸었다.
그리고 그런 몽이의 모습에 장우는 활짝 웃었다.
언제나 자기편에 서 주는 몽이 너무도 고맙고 예쁜 장우였다.
"그나저나 이제 장서고에도 더는 남은 옥간이 없으니 이제 어쩌지? 삼선문에 가서 방법을 찾아 봐야 하나?"
장우가 문득 심각한 표정으로 몽이를 보며 물었다.
그도 그럴 것이 허름한 장서고에 쌓여 있던 옥간을 모두 섭렵한 것이 벌써 4년 전이었다.
그리고 그 옥간들 중에서 그나마 쓸만한 공격 술법과 둔술을 찾아 익히며 시간을 보냈지만 그조차도 이젠 마무리가 되었다.
그냥 오행영기공과 삼선비기를 더 수련하는 것이 어떨까요?
몽이가 장우에게 경지 상승을 위한 수련을 권했다.
"음, 그럼 단약을 새로 만들어야 하나? 거의 다 쓰고 없는데?"
장우는 몽이의 말에 살짝 갈등어린 표정을 지었다.
그런 장우의 시선은 한쪽 귀퉁이가 휑하게 비어버린 약초밭으로 향했다.
"아무래도 약초밭에 더 이상 손을 댔다가는 무사하지 못할 거 같은데?"
단약을 만드는 것은 아무래도 어려울 거란 생각이 들었다.
스승의 재산을 축내는 것도 어느 정도까지지 약초밭의 비어버린 모퉁이를 보면 이미 선을 넘은 것 같기도 했다.
예서 더 나갔다간 정말 크게 경을 칠 것이란 예감이 들었다.
- 그럼 어쩌시게요?
"삼선문에서 일을 좀 찾아 봐야 할까? 일을 하고 대가를 받으면 수련에 도움이 될 것을 구할 수 있지 않을까?"
- 그렇긴 하지만, 허비하는 시간이 너무 많지 않을까요?
"다른 수사들은 대부분 그렇게 하잖아. 솔직히 나는 스승님 덕분에 지금까지 편하게 수련을 했던 거지."
- 하긴, 삼선문에 입문한 제자들 중에 고작 30년이 되기 전에 연신기 5단공에 이르는 경우는 없죠. 30년이면 3단공이 되는 것도 성취가 빠르다고 하니까요.
"그렇지. 그러니까 내가 삼선문의 일을 하면서 수련 자원을 구하는 것은 일반적인 수사들의 행로일 뿐인 거지. 그러니까……"
"고놈! 슬데없는 짓을 하려는구나. 누가 이 장문일의 제자에게 그런 일을 하게 한다더냐?!"
"아, 사부님!"
장우가 삼선문에서 일을 하겠다는 말을 하는데 불현 듯 장문일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장우와 몇 걸음 떨어진 곳에 장문일이 원래부터 거기 있었다는 듯이 그림처럼 서 있었다.
장우는 너무 반가운 마음에 사부를 부르며 그의 품으로 달려들었다.
< 무한공이 사라졌다!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