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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홀로 연신기 관문을 뚫다 >
장우는 옥간에 집중했다
하지만 봉인을 걷어냈다고 옥간에 들어 있는 내용을 마음대로 읽어낼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수사들이 사용하는 옥간이라고 하는 것은 영기를 이용해서 내용을 기록한 것인데, 그것을 읽는다는 것은 옥간의 내용을 머릿속으로 옮기는 과정이다. 이르자면 뇌새김이라고 할까.
옥간 내용이 뇌에 새겨지는 것과 같은데, 문제는 그 역시 영기를 이용한다는 것이다.
장우가 그나마 사용할 수 있는 쥐꼬리 같은 영기로는 장 선인의 옥간 내용을 일만 분의 하나도 제대로 머릿속으로 옮기기 어려웠다.
"이거 뭐가 이렇게 어려워?"
장우는 옥간의 내용을 읽고는 저도 모르게 중얼거 렸다.
- 한 번에 안 되면 여러 번 해 보면 되지 않을까요?
그런 장우에게 몽이가 기운을 내라는 듯이 묘한 자세를 쥐해 보이며 말했다.
주먹을 불끈 쥐고 한쪽 무릎을 올리며 팔꿈치와 무릎이 닿을 듯한 자세.
장우는 그런 모습에 기운이 솟는 것을 느끼며 활짝 웃었다.
"그래, 몇 번이고 하다보면 되겠지. 고마워."
장우는 다시 옥간을 손에 들고 정신을 집중했다.
그러다가 문득 옥간을 들어 이마에 붙이고 정신을 집중하게 되었다.
자연스럽게 옥간에 의념을 투사하기에 가장 적합한 방법을 찾은 것이다.
그리고 그런 노력 덕분인지 이번에는 조금 더 많은 내용을 받아들일 수 있었다.
그렇게 또 몇 달의 시간이 지났다.
"와! 끝났다!"
그리고 입문식이 다섯 달 정도 남았을 때, 장우는 드디어 옥간의 내용을 모두 읽어내는데 성공했다.
"이거 굉장하구나? 자그마치 삼선비기(三仙秘技)래."
- 정말로 삼선문의 개파사조인 삼선의 공법열까요?
"그러니까 제목이 삼선비기 아닐까?"
- 하지만 그런 걸 왜 장우님께 줬을까요?
"그렇게 내가 마음에 들었나?"
- 어쩌면 그런 걸 수도…….
"어쨌건 이제 공법을 모두 얻었으니까 이걸 익혀도 되겠지? 장 선인께서 주신 거니까."
- 그렇겠죠. 장 선인께서 옥간의 내용을 읽을 수 있으면 엄청난 보상이 있을 거라고 했잖아요. 공법 자체가 보상이겠죠.
"헤헤헤. 그렇지? 와, 엄청 기대된다."
장우는 저도 모르게 헤픈 웃음을 터트리며 환호성을 올렸다.
그리고 곧이어 창고를 떠나 어디론가 가기 시작했다.
얼마 후, 장우가 도착한 곳은 삼선문의 수많은 하급 약초밭 중 한 곳이었다.
"안녕하세요. 고세지(括細枝) 선인님."
그리고 약초밭에서 아이들을 부리고 있는 선인에게 인사를 했다.
"장우로구나. 요즘은 무얼 하느라 얼굴 보기가 어려우냐?"
"헤헤, 제가 열심히 수련을 하느라 시간이 없었어요."
"수련을? 그럼 너 혹시?"
장우의 말에 고세지는 깜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은밀히 영기를 움직여 장우의 몸을 더듬었다.
"어엇? 정말?"
그리고 깜짝 놀라며 한 걸음 물러서기까지 했다.
"네? 왜요?"
장우가 영문을 몰라 눈을 크게 뜨며 물었다.
"너! 어찌 벌써 영기를 몸에 담았지?"
그런 장우를 향해 고세지가 야단치듯 물었다.
"에헤헤. 제가 영기를 움직이게 되면 선인께서 선물을 주신다고 하셨잖아요. 그래서 이렇게 온 건데요?"
"그러니 이상하다는 것이 아니냐. 어찌 수련 공법도 없이 엉기를 몸에 쌓아? 그런 경우는 정말 뛰어난 수련 자질을 가진 경우여야 하는 것인데?"
"헤헤헤. 그럼 제가 그런 자질을 지 닌 것이 아닐까요?"
"휴우, 나는 모르겠다. 모르겠어. 그런데 정말로 너는 수련 공법을 익히지 않은 것이냐?"
고세지는 혼란스러운 표정으로 고개를 흔들다가 확인하듯이 장우를 보며 물었다.
"물론이지요. 이제 선인님께서 제게 작은 영단이라도 주시면 그걸 먹고 수련 공법을 익혀 볼 생각으로 온 거예요. 그러니까 아직 수련 공법을 익힌 적은 없는 거지요."
"음? 이제 수련 공법을 익힌다고?"
"네."
"네가 어디서 수련 공법이 나서 익힌단 말이냐? 아직 입문식도 하지 않았는데, 설마 누군가 네게 입문 제자의 기초 수련 공법을 몰래 알려주기라도 한 것이냐?"
고세지가 은밀한 목소리로 물었다.
간혹 마음에 드는 입문 대기자가 있으면 호감을 사기 위해 미리 수련 공법을 일러주는 경우가 있긴 했다.
윗사람들이 알면 크게 경을 칠 일이지만 그래도 연신기 제자들 사이에서 서로 자기 패거리로 끌어들이기 위해서 간혹 그런 일을 벌이는 것이다.
고세지는 혹시 장우에게 그런 이들이 접근한 것이 아닌가 걱정했다.
"음, 장 선인님이라고 창고를 지키는 분이 계시거든요? 그 분께서 저에게 옥간을 주시면서 그것을 읽어 내면 그 안의 것을 선물로 주신다고 하셨어요. 거기서 영기 수련 공법 하나를 얻었지요."
"장 선인? 어떤 수사더냐?"
"에, 이름은 알려주지 않으셨는데요 키는 5척을 조금 넘고 백발에 얼굴이 어린아이처럼 붉고 윤기가 나는 분이셨어요."
"그, 그러냐?"
고세지는 그런 수사를 쉽게 기억에서 떠올리지 못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한 가지는 확실히 알 수 있었다.
지금 장우가 말하는 선인이 연신기의 사형제는 아닐 거라는 사실이었다.
그렇게 나이가 든 외모의 사형제는 고세지가 모두 알고 있었다.
그런데 그 중에 없으니 그보다는 경지가 높은 수사가 아니겠는가.
그러니 지금 장우의 일에는 자신이 끼어들어서는 안 될 듯 했다.
"그래, 내가 너에게 약속한 것이 있으니 이것을 내어주마."
고세지는 곧바로 소매 안에서 목함 하나를 꺼내어 장우에게 건네 주었다.
"그것은 세신환(洗身九)이라 하는 것이다. 수도계에는 수많은 종류의 세신환이 있지만 그 중에서도 그것은 제법 효능이 좋은 축에 드는 것이다."
"그래요?"
"그러니 몸과 마음을 정갈히 하고 마음의 준비를 마친 후에 복용 하도록 해라. 그리고 그 전에 영고 사매에게 휴일을 얻는 것이 좋을 것이다. 세신환의 약효를 받아들이는데 시간이 오래 걸리면 지조 각에 가지 못할 수도 있으니."
아, 그렇구!. 알겠습니다. 반드시 영고 선인님께 허락을 받도록 하겠습니다."
"그래, 이걸 주면 영고 사매가 크게 나무라지는 않을 것이다."
고세지는 말과 함께 전언이 담긴 법부 한 장을 장우에게 내어 주었다.
그 법부에는 영고에게 상황을 설명하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감사합니다. 고세지 선인님."
장우는 깊이 허리를 숙여 고세지에게 인사를 하고는 팔랑팔랑 뛰어서 지조각으로 향했다.
"휴우, 잘 한 짓인지 모르겠네."
장우가 사라지자 고세지는 깊은 한숨을 내쉬며 아쉬운 눈빛을 감추지 못했다.
지금 그가 장우에게 내어준 세신환(洗身九)은 그도 어렵게 구한 중급의 세신단환이었던 것이다.
장우를 둘러싼 상황이 심상치 않음을 느끼고 저도 모르게 귀한 영단을 내어줬지만 장우가 사라짐과 동시에 후회가 밀려온 상황이었다.
- 쯧, 괜한 짓을 했구나. 그래도 마음 씀씀이가 기꺼우니 이걸 주마.
그 때, 고세지의 머릿속으로 심언이 전해지며 눈앞에 목함 하나가 나타났다.
고세지가 급히 그것을 받아보니 뚜껑을 열지 않아도 그 안에 최상급의 세신환이 들어 있음을 알 수 있었다.
"감사합니다!"
고세지는 곧바로 땅바닥에 엎어지며 누군지 모를 수사에게 인사를 올렸다.
정체를 드러내지 않았으니 그에 대해서는 궁금해 하지도 말아야 할 일이지만 그래도 귀한 것을 받았으니 감사 인사는 해야겠다 싶었던 것이다.
하지만 고세지가 흙바닥에 엎어져 한참을 있어도 다시 심언은 들려오지 않았다.
대신 그가 부리던 아이들만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그를 지켜볼 뿐이었다.
***
세신환(洗身九)은 이름 그대로 몸을 씻어내는 효능을 지닌 영단이다.
범인이 영기 수련을 시작하면 그 첫 단계를 연신기라 한다.
말 그대로 몸을 영기에 맞게 연화시키는 과정이라 연신의 기간이라 부르는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몸을 영기에 적응시키려면 몸을 깨끗하게 하는 것이 반드시 필요하다.
범인으로 살면서 몸에 쌓은 탁기를 씻어내는 것이 기본이 된다는 것이다.
더러운 기운이 몸에 가득 쌓여 있는 상태에서 어찌 신선의 기운인 영기를 몸에 담을 수 있을까.
그러니 세신은 연신기에서 무적 중요한 과정이라 할 수 있고, 그것을 도와주는 것이 세신환(洗身九)이다.
물론 그 세신환에도 최하급, 하급,중급, 상급, 최상급의 보편적인 수도계 등급이 적용된다.
고세지가 장우에게 준 것은 그 중에서도 중급으로 연신기에도 들지 못한 장우가 취하기에는 무척 귀한 것이라 할 수 있다. 당연히 영단을 준 고세지도 장우가 그 약효를 모두 받아들이기는 어려울 것이라 생각했다.
"이게 영단이니까 이걸 먹고 수련 공법을 시작하면 좋겠지."
물론 장우는 그런 기초지식도 부족한 점이 많아서 세신환이 어떤 용도로 쓰이는지 제대로 알지 못했다.
거기에 고세지나 영고도 장우가 세신환을 먹을 것을 알면서도 그에 대해서는 자세히 일러주지 않았다.
어차피 세신환도 영기를 품고 있으니 복용 후에 수련 공법을 운공해서 문제가 될 것은 없다고 본 것이다.
그 과정에서 얼마나 많은 약효를 보느냐 하는 것은 모두 장우의 자질에 따른 것일 뿐이라 생각한 것이다.
"자, 그럼 먹어 볼까?"
- 공법은 모두 기억하신 거지요?
"따로 기억할 것도 없던데? 옥간의 내용을 읽으면 그게 머릿속에 그대로 기억이 되는 거였으니까."
- 그래도 이해를 한다거나 하는 그런 과정이 필요하지 않아요?
"음, 모르겠는데? 나는 그냥 옥간에 있는 그대로 영기 운용만 하면 된다고 알고 있는데? 옥간에 그렇게 되어 있었거든."
-네.장우님이 그렇다면 그런거겠죠.
"후우, 그런데 이 세신환이란 약은 참 신기해. 그렇지 않아?"
장우는 잠시 긴장을 추스르려는 듯이 몽이에게 세신환을 들어 보이며 말했다.
장우가 들고 있는 세신환은 한 입에 넣기 쉬울 정도의 크기였는데 표면에 은박이 씌워져 있었다.
그런데 장우가 신기하다고 말한 것은 그 은박의 표면에 기이한 문양이 희미한 빛을 내며 나타나 있었기 때문이었다.
장우는 그것이 일종의 영기 운용을 드러내는 것임을 알았지만 정확히 어떤 의미인지는 파악해내지 못했다.
그리고 누군가 다른 수사가 있어서 장우가 영단 표면의 문양을 읽고 있음을 알았다면 크게 놀랐을 것이다.
그런 일은 뛰어난 연단술사나 되어야 할 수 있는 일이기 때문이다.
영단의 표면에 드러난 문양은 보통 수사들은 제대로 볼 수도 없으며 본다고 해도 그 뜻을 헤아릴 수 없다.
그런데 장우는 아무것도 배운 것이 없으면서도 영단 표면의 문양을 뚜렷하게 보고 있었던 것이다.
"후우우, 흐음."
장우는 길게 한숨을 쉬며 몽이와 눈빛을 교환하고는 세신환을 한입에 꿀꺽 삼켰다.
역시 일반 범인들의 약과는 달리 입에 들어가는 순간 청량한 액체가 되어 장우의 목구멍으로 흘러들어가는 세신환이었다.
그리고 그 직후, 장우는 몸 안에서 뜨거운 물결이 일어나 자신의 몸을 씻어내는 느낌을 받았다.
그것은 마치 뜨거운 아랫목에 몇 겹의 이불을 덮어 쓰고 열병을 앓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히, 힘들어!'
장우는 온 몸이 뜨거워 진땀이 흐르며 정신이 아득해지는 것을 느꼈다.
하지만 그 순간, 장우는 자신이 정신을 잃어서는 안 된다는 사실을 기억해냈다.
그리고 눈을 감고 있음에도 몽이의 모습이 어렴풋이 보이는 것을 느꼈다.
장우는 최대한 정신을 추스르며 몽이의 모습에 집중하려 애썼다.
하지만 그럴수록 몽이의 모습은 사라지고 대신에 장 선인이 보여줬던 소고의 다섯 가지 상징만 뚜렷해졌다.
장우는 어느 순간 그것이 자신의 의념 공간임을 깨달았고,그 다섯 상징이 자신의 영근임도 깨우졌다.
'삼선비기!'
그리고 의념 공간을 인식한 순간, 장우는 옥간에서 배운 삼선비기를 떠올렸고, 그에 맞추어 영기를 움직이려 애썼다.
'영기! 영기는?'
그리고 애타게 영기를 찾던 장우는 세신환에서 흘러나온 뜨거운 기운이 영기의 한 종류임을 깨닫고 그것을 삼선비기라는 영기 운용법에 따라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러자 세신환의 효과는 또 다시 몇 배는 증폭되어 더욱 장우를 힘들게 만들었다.
그것은 마치 끓는 쇳물에 뛰어들어 제 몸을 녹이는 것처럼 느껴질 정도였다.
하지만 장우는 그런 괴로움을 떨쳐내고 오직 의념 공간에만 집중하며 삼선비기로 움직인 영기를 의념공간으로 끌어들이기 위해 애썼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고, 아무도 알아보지 못하는 몽이만 발을 구르며 장우의 곁을 지켰다.
"우아아아아아!"
그러던 어느 순간 장우가 알아듣지 못할 괴성을 지르며 눈을 떴다.
그리고 무언가를 잃은 듯이 안타까운 눈빛으로 한참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끌끌, 이 녀석아! 맛이 어떠냐? 그것이 바로 법열이라 하는 것이다. 첫 법열의 맛이 아주 황홀하지?"
장우의 앞에 언제 나타났는지 장 선인이 모습을 드러내고 짓궂은 표정으로 장우를 놀렸다.
그런데도 장우는 한동안 제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잃어버린 것을 찾는 안타까운 표정으로 허우적거렸다.
하지만 그런 장우의 모습도 어여쁘기만 한지 장 선인의 눈빛은 그렇게 부드러울 수 없다 할 정도로 부드러웠다.
< 홀로 연신기 관문을 뚫다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