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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 선인이 장우를 콕콕? >
장우의 눈앞에는 다섯 개의 소고가 둥둥 떠 있었다.
어린아이들이 가지고 노는 장난감 북.
손잡이 끝에 작은 북을 달고 그 북의 좌우에 줄에 달린 구슬이 있다.
북을 흔들거나 좌우 회전을 할 때마다 그 구슬이 북을 두드리는 장난감이다.
하지만 선인이 내 놓은 것이 어디 단순한 장난감에서 그칠까.
장우가 자세히 보니 다섯 개의 북 표면에는 각각 화수목금토의 속성을 알아볼 수 있는 문양이 선명하게 새겨져 있었다. 붉은 화염, 하늘색 물방울, 싱그러운 나무, 쇠를 떠올리게 하는 색과 느낌의 구슬, 황토색의 산.
"어떠냐? 너는 이 중에서 조금 전에 네가 골랐던 것을 다시 잦을 수 있겠느냐?"
장 선인이 다섯 개의 북을 세로로 세워 천천히 회전시키며 장우에게 물었다.
장우는 눈앞에서 돌아가는 다섯 개의 북을 노려보았다.
그리고 한참 후 장우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요. 없어요. 여긴 제가 골랐던 것이 없는 거 같아요."
- 맞아요. 없어요. 저 늙은이가 장우 님을 속이고 있는 것이 분명해요.
장우의 말에 몽이 흥분해서 목소리를 높였다.
물론 그런 몽의 모습와 목소리를 들을 수 있는 것은 장우 밖에 없었지만.
"없다 하였더냐?"
"네."
"정말로?"
"네에."
거듭 확인하는 장 선인의 모습에 장우의 목소리가 슬그머니 줄어들었다.
하지만 여전히 자신의 주장을 바꾸지는 않았다.
"크하하하. 고 놈, 신기한 놈이로세."
그러자 어느 순간 장 선인이 뒷짐을 지고 크게 웃었다.
5척이 조금 넘는 작은 키의 장 선인이었지만 그렇게 웃을 때에는 몸이 부풀어 오른 듯이 크게 느껴졌다.
장우는 움찔 어깨를 움츠리고 슬그머니 장 선인의 눈치를 살폈다.
"너는 네가 다섯 개의 영근을 가지고 있음을 알고 있느냐?"
처음 창고의 금제에서 곤욕을 치르고 나왔을 때, 장 선인이 그렇게 약속을 했었다.
자신의 시험을 통과하면 선물을 주겠다고.
"클클클, 자 그럼 이것을 받거라."
장우의 대답에 장 선인은 머뭇거림 없이 소매에서 한 개의 옥간을 꺼내 내밀었다.
"이게……. 옥간이지요? 선인 님들이 책처럼 읽는다고 하는 그거요."
"알고 있었더냐?"
"헤헤, 제가 지조각 일이 끝나면 이리저리 많이 돌아다녀요. 그래서 얻어 듣는 것도 많고요."
"그래서 네 녀석이 이곳까지 오기도 했지."
"헤헤, 그렇죠."
"어쨌거나 옥간이 뭔지 안다니 다행이구나. 하지만 그 옥간의 내용을 읽어 내는 것은 네가 알아서 해야 할 일이다. 그것까진 도와주지 않는다는 말이지."
"음, 옥간의 내용을 읽으려면 영기를 옥간에 불어 넣고, 의념을 집중해서 옥간을 연화해야 한다고 들었는데요?"
장우는 그걸 자기가 어떻게 하냐는 눈빛으로 장 선인을 바라봤다.
"그야 네가 알아서 해야지. 그래도 그 옥간은 너만 쓸 수 있도록 수작을 부려 뒀으니 그게 네게 조금은 도움이 될 것이다."
"다른 사람은 못 쓰게 한 것이 제겐 도움이 된다고요?"
"네게 맞춰 둔 것이니 당연히 그렇지."
"그렇군요. 그런데 여기 무슨 내용이 들어 있어요? 그건 알려 주실 수 있나요?"
"클클클, 그럼. 당연하지. 내용을 알면 그걸 얻기 위해서 훹씬 더 열심히 노력할 게 아니냐. 거기엔 삼선문의 기초 수련 공법이 들어 있느니라."
"네? 수련 공법이요?"
"그렇지. 너는 입문식도 하기 전에 수련 공법을 익힐 수 있게 된다는 이야기다."
"우와, 정말요?"
"물론 옥간을 읽어 낼 수 있어야 가능하겠지만 말이다."
"할 수 있어요. 하고 말겠어요."
장우가 신이 나서 고함을 질렀다.
그런 장우를 보며 장 선인 또한 개구진 웃음을 감추지 않았다.
옥간의 내용을 읽기 위해서는 영기를 움직여야 하고, 자의로 영기를 움직이려면 적어도 연신기 1단공에는 들어야 한다.
1단공이 되기 위해서는 수련 공법을 익혀야 하고, 옥간에 있는 수련공법을 얻기 위해 1단공이 필요하니 앞뒤가 맞지 않는다.
그러니 장우로선 사실 방법이 없는 셈인 것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장 선인은 장우를 보며 뭔가를 기대하는 눈빛이었다.
"옥간을 읽게 되면 기초 수련 공법 뿐만이 아니라 다른 많은 것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니 부단히 노력해 보거라. 하지만 입문식이 열리기 전까지 성과가 있어야 할 것이다."
"아, 어차피 입문식을 하게 되면 수련 공법을 배울 수 있기 때문에 그런 거죠? 알았어요. 꼭 그 전에 옥간을 읽고 말 거예요."
상황을 알지 못하는 장우는 철없이 자신만만하게 말했고, 장 선인은 그런 장우를 보며 다시 한 번 묘한 웃음을 지었다.
그렇게 장 선인과의 인연은 끝나고 말았다.
다음 날, 장우가 창고를 찾았을 때에는 창고 문이 굳게 닫혀 있었고, 아무리 힘써 당겨도 열리지 않았던 것이다. 그리고 몇 번이나 고함을 질러 장 선인을 불러도 장 선인은 끝내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그래, 그러네. 자, 다시 시작해 보자. 의념이라 했으니 결국 정신의 힘이겠지."
장우는 그렇게 말을 하고는 창고 문 옆에 가부좌를 하고 앉아서 옥간에 정신을 집중했다.
그리고 그 옥간에 깃들어 있는 영기를 느끼고 그것을 움직여 보려 애썼다.
그런 장우의 머릿속에는 옥간의 표면에 숨겨져 있는 다섯 속성의 상징들이 보였다.
장 선인이 장우에게 보여줬던 다섯 개의 소고 표면에 있던 것과 같은 상징들이었다.
'이 다섯 상징에 깃든 영기를 중앙에 모으면 뭐가 되어도 될 것 같은데 말이지.'
그 동안 장우는 옥간과 씨름하며 그 정도까지 수확을 얻고 있었고, 장우의 예상은 틀린 바가 없었다.
그의 생각대로 다섯 상징에서 영기를 끌어내어 중앙에서 만나게 하면 옥간을 두르고 있는 봉인 금제가 풀릴 것이다.
"끌끌, 고놈 참. 누가 그 봉인을 풀라더냐? 그냥 표면에 기록된 수련 공법만 찾아내면 될 것을. 어째 그건 넘어가고 봉인을 잡고 씨름을 하고 있누?"
그리고 그런 장우의 곁에는 모습을 감춘 장 선인이 고개를 저으며 혀를 차고 있었다.
장우는 그것을 알지 못했다.
하지만 대신에 다른 것은 불현듯 깨우졌다.
"우와! 움직였다!"
- 정말이요? 네?
장우는 드디어 어떤 수련 공법의 도움도 없이 의념으로 영기를 움직이는 쾌거를 이룬 것이다.
장 선인이 장우에게 바란 것은 옥간을 연화하여 내용을 읽는 것이 아니라 옥간의 표면에 영기로 적어 놓은 수련 공법을 읽어내는 것이었다.
그것은 옥간을 연화하는 것과는 전혀 다른 문제였다.
이미 장우가 영기를 느끼는 감각이 뛰어나니 조금 더 수준을 높여 영기로 써 놓은 글을 읽는 정도를 기대한 것이다.
그런데 장우는 스스로 의념을 움직여 영기를 장악하는 쾌거를 이루어 내고 말았다.
"이런 괴물 같은 녀석이!"
장 선인 조차도 장우의 그런 성취에 입을 떡 벌리고 말았다.
"자, 이제 여기 무슨 내용이 들어 있나 살펴보자."
- 네, 좋아요. 어서 봐요. 무슨 내용이 있는지.
장우는 몽과 함께 옥간에 더욱더 집중하기 시작했다.
< 장 선인이 장우를 콕콕?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