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환장 통수 선협전-326화 (326/4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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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도무정(大道無情)이라 한다 >

"어서 가자꾸나."

"어머니, 굳이 가지 않아도 되지 않겠습니까?"

장우는 어머니 장씨의 재촉에 내키지 않는 표정을 지었다.

오늘은 선인들이 장씨촌을 찾는 날이다.

장씨촌이 이곳에 자리를 잡은 것이 벌써 수 백 년이 지났는데, 처음 장씨 일족이 이곳에 도착했을 때, 요괴를 퇴치하고 안전을 확보해 준 것이 선인들이었다.

그 이후로 장씨촌에는 10년에 한 번씩 선인들이 찾아왔다.

선인들이 장씨촌을 찾는 것은 장씨촌에서 준비하는 공물을 거두기 위함도 있지만, 동시에 장씨촌 아이들 중에서 선인 수련의 자질을 가진 아이들을 찾기 위함도 있었다.

장우는 10년 전에 나이가 네 살 밖에 되지 않아서 선인 왕림 축제에 참가하지 못했다.

하지만 이번 축제에는 어머니 장씨가 억적스럽게 장우의 손목을 끌고 가는 중이었다.

"이제 내가 살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 너도 짐작하겠지만 내가 죽고 나면 네 형들이 그나마 남은 전답을 모두 빼앗아 갈 것이 아니냐."

"무슨 그런 흉한 말씀을 다 하고 그러세요? 어머닌 오래오래 사실 겁니다."

"시끄럽다. 내가 죽더라도 마음 편히 죽으려면 네 앞가림은 해 놓고 가야 하는데, 마침 네가 선문의 제자가 된다면 얼마나 좋겠느냐. 그렇게만 된다면 내가 편히 눈을 감겠지."

"어머니!"

"여러 말 할 것 없다. 너는 그저 따라 나서거라. 게다가 네가 꼭 선문의 제자로 뽑힐 거라는 보장도 없지 않으냐. 우리 마을에서 고작해야 백 년에 한 명이 나올까 말까 한데."

장씨 부인은 그렇게 말을 하면서도 어쩐지 자신의 막내 아들은 선문의 제자로 뽑힐 것 같은 예감을 받고 있었다.

그리고 그것은 어린 장우 역시 마찬가지였다.

장우는 요즈음 기이한 느낌을 받고 있었는데, 그것이 어쩌면 선인들의 방문 때문일지 모른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래서 더더욱 선인 왕림 축제에 가지 않으려 하는 것이었다.

자신이 떠나면 어머니는 누가 모신다는 말인가.

비록 위로 형들이 많고, 제일 큰 형은 나이가 마흔이 넘었지만 대체로 그 형제들은 효심이 별로 없었다.

"불속성 효자에 가깝지."

"응? 뭐라 했느냐?"

"아닙니다. 또 헛소리를 한 모양입니다."

장우는 요즈음 자신도 뜻을 모를 말을 간혹 중얼거렸는데, 지금도 그런 경우였다.

"어서 가자."

장씨 부인은 막내 아들이 조금 걱정되긴 했지만 마음을 단단히 먹고 서둘러 마을 광장으로 향했다.

이미 작은 광장에는 커다란 상이 펼쳐지고 그 위에 온갖 음식들이 가득 차려져 있었다.

"어머니! 장우는 왜 데리고 왔어요?"

그 때였다.

장우의 큰 형이 화난 얼굴로 다가왔다.

"왜 데리고 오다니? 당연히 장우를 선인께 보이고 제자가 될 수 있는지 묻기 위해서지."

"에이, 저 녀석이 선문 제자가 될 수 있겠어요?"

"되면 좋지 않겠느냐. 우리 집안에서 신선이 나면 앞으로 세세토록 그 복을 받을 텐데."

"복이요? 해코지나 하지 않으면 다행이지."

장우의 큰 형인 장호로도 자신이 막내와 어머니에게 못되게 굴었던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러니 혹시 막내가 선문의 제자가 되면 자신과 자신의 가족들에게 해가 되지 않을까 걱정을 하는 것이다.

"시끄럽다. 냉큼 비키지 못해가 오늘 같은 날 소란을 피웠다가는 선인님들께서 크게 경을 치실 텐데, 그게 두렵지도 않으냐?"

장씨 부인이 큰아들에게 큰 목소리로 야단을 쳤다.

그러자 주변에 있던 다른 장씨 일족들이 부인과 아들에게 시선을 모았다.

그리되자 큰아들은 어쩔 수 없이 슬쩍 물러날 수밖에 없었다.

중요한 마을 행사에서 소란을 피웠다가는 자칫 마을 인심을 크게 잃을 것이다.

그리 되면 앞으로 손해가 이만저만이 아닐 것을 아는 것이다.

"저리 가자꾸나."

장씨 부인이 장우의 손을 잡고 한쪽으로 이끌었다.

그곳에는 오늘 선인들에게 선을 보일 아이들을 촌장이 일일이 확인하고 있었다.

"너는 이미 부(不)를 받지 않았느냐. 저리 빠지거라."

"촌장님, 그 사이에 제게 그 영근이란 것이 생겼을 수도 있잖아요. 네?"

"몇 번을 일렀느냐. 영근이라 하는 것은 태어날 때부터 가지는 것이라고. 필궁이 너는 헛된 생각을 접어야 할 것이다."

"그럼 태생이 글러먹은 놈은 신선 공부를 할 기회조차 없다는 것입니까? 노력으로 아니 된다는 거냐구요!"

"쯧, 네가 몰라서 묻는 것이냐? 그토록 신선 공부를 익히고 싶다면 세상으로 나가서 기공술을 익히거라. 그리하여 큰 깨달음을 얻어 신선 세상을 엿볼 재주가 생기면 그 때는 어찌어찌 선문의 제자가 될 수도 있겠지. 그것이 영근을 얻지 못한 범인이 수도계에 들 수 있는 방법이라 하지 않았더냐!"

"누구는 운 좋게 영근을 가지고 태어나 어린 나이에 선문에 드는데, 누구는 늙어 죽을 때까지 고생해도 될까말까 하다는 거 아닙니까. 이런 불공평한 경우가 어디에 있답니까?"

장우는 억울하다 떠드는 장필궁을 잘 알고 있었다 나이가 올해 열아홉인데, 십년 전 아홉 살에 선인에게 검사를 받았지만 영근이 없어 간택되지 못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필궁은 어떻게든 선인이 되고 싶다고 노래를 부르고 다녔는데, 오늘 다시 선인에게 검사를 받고 싶다고 우기는 모양이었다.

"선인들은 무엇 하나 잊는 것이 없다. 네가 이미 탈락한 아이라는 것을 그 분들이 모를 수가 없지. 그런데 네가 다시 나선다면 네게 복 보다는 화가 미칠 것이다. 선인을 농락한다 하여 목숨을 잃을 수 도 있다는 말이다."

그런 필궁을 보며 촌장이 조근조근한 목소리로 설득하려 애썼다.

때로 신선들은 그들의 기분이 좋으면 이런식으로 선물을 주곤 했는데 촌장은 젊은 시절 이와 같은 상자를 한 번 받았던 경험이 있었다. 그런데 다시 사십 년이 흘러 같은 복을 또 누리게 된 것이다.

"실로 기쁜 일이다. 이곳 장씨촌의 기운이 좋은 것인지 이번에도 선문의 제자가 될 아이가 나왔구나. 그것도 하나가 아니라 둘이나."

그 때, 신선이 촌장에게 상자를 준 이유를 그렇게 설명했다.

그리고 아울러서 소매를 휘저어 옹기종기 모여 있던 십여 명의 아이들 중에 둘을 허공으로 끌어 올려 자신의 곁으로 데려갔다.

"자, 장우야!"

그 모습에 장우의 어머니가 깜짝 놀라 아들의 이름을 불렀다.

신선이 끌어간 두 명의 아이 중에 하나가 장우였던 것이다.

"아이고, 우리 호준이, 우리 호준이가 신선 공부를 할 수 있게 되었어요. 아이고 이런 경사가, 이런 경사가 있나!"

"그러게요. 흐흑."

또 다른 아이의 부모인 부부가 기쁨과 슬픔이 뒤섞인 표정으로 웃고 울며 호들갑을 떨었다.

장씨 촌의 촌장은 한꺼번에 두 명이나 되는 아이가 신선의 선택을 받은 것에 놀라 눈을 똥그랗게 떴다.

이런 일은 지금껏 없었던 일인 것이다.

"어머니!"

그 때, 장우가 신선의 곁에서 발이 묶인 듯 움직이지 못하게 되자 놀라며 어머니를 불렀다.

"음, 예서 오래 머물 이유는 없겠다. 준비된 공물을 챙기거라, 곧바로 떠날 것이니."

그 때, 신선들을 이끌고 있던 젊은 수사가 두어 걸음 뒤에 호종하고 있던 수사들에게 명령을 내렸다.

그러자 두 수사가 앞으로 나서서 장씨촌에서 준비한 공물을 챙겨 소매 안으로 모두 밀어 넣었다.

적잖은 부피의 물품이 소매 속으로 홀연히 사라지는 모습에 장우를 비롯한 장씨 마을 사람들이 모두 놀란 표정을 지었다.

"그럼 가자!"

그렇게 공물을 모두 챙기자 인솔 수사가 명을 내렸다.

그때였다.

장우가 다급하게 그 수사의 소매를 잡으며 외쳤다.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어머니와 작별 인사는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하지만 돌아오는 수사의 눈길은 차갑기 그지없었다.

"내 너에게 첫 가르침을 주겠다. 대도무정(大道無情), 역천지도를 걷는 수사의 길에 정은 있을 수 없다. 그러니 첫 시작을 모자지연을 끊은 것으로 하는 것도 좋은 가르침이 될 것이다."

인솔 수사는 그렇게 말을 하고는 장우와 장호준, 두 아이를 의념으로 붙잡고 허공으로 몸을 날렸다.

그리고 그 뒤를 다른 두 수사 역시 말없이 따랐다.

"흐흐흑!"

장우는 발 아래로 까마득히 멀어지는 장씨촌의 모습에 저도 모르게 눈물을 흘렸다.

그런데 그렇게 눈물을 흘리는 장우를 보며 인솔 수사는 말없이 기다려 주었다.

알고 보니 그들은 장씨촌의 광장이 훤히 보이는 구름 위에 있었던 것이다.

다만 그곳에 그들이 있는 것을 장씨촌의 사람들이 알지 못할 뿐이었다.

저 아래 광장에서 장우의 모친이 아들이 사라진 허공을 향해 손을 모으고 끝없이 머리를 조아리며 축원을 외우고 있었다. 막내의 앞길에 복이 깃들기를 비는 내용이었다.

멀리서도 그 목소리가 들리는 것은 수사들의 배려일 것이다.

말은 차갑게 하면서도 어미와 자식의 정을 외면하지 못하고 석별의 시간을 주고 있음이었다.

"늦었다. 이제는 가야 할 때다."

하지만 그것도 영원할 수는 없는 일.

결국 인솔 수사가 모두를 이끌고 다시 이동을 시작했다.

그렇게 장우는 십사 년을 살아온 장씨촌을 떠나 수사로서의 새로운 삶을 살게 되었다.

< 대도무정(大道無情)이라 한다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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