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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건우는 윤회에 들고 유정정은 종적이 사라지다 >
"일은 순서대로 해야겠지요. 제일 먼저 해야 할 일은 멸계와 통하는 공간 통로를 파괴하여 멸계전을 끝내는 것입니다."
건우는 종 선생을 만난 자리에서 그렇게 말을 하고는 공간 법칙으로 분리해 두었던 멸계와의 통로를 불러내었다.
그리고 그 통로를 담고 있던 공간 자체를 찌그러뜨려 통로를 파괴했다.
파지지지지직! 쿠구구궁!
강렬한 기운의 파동과 함께 파괴되는 공간 통로.
그 즉시 수미 세계의 모든 존재가 격변을 알아차렸다.
수미 세계가 영계의 제약을 벗어던지고 선계의 격을 얻게 됨을 무의식적으로라도 알게 된 것이다.
거기에 수도계의 모든 존재는 자신들이 드디어 선계에 속하게 되었음을 분명히 알 수 있었다.
"오오오. 이리도 농염한 영기라니, 아니 이것은 선기라 하는 것이 옳겠군."
종선생도 그것을 느끼고 감격해 마지 않았다.
하지만 그 순간 건우는 자신에게 닥쳐오는 위기를 감지했다.
우르르르릉 우르르르르 콰르릉!
"아니 이게 무슨 일인가?"
종 선생이 놀라 고함을 질렀다.
자신의 거처 위로 보랏빛 구름이 무섭게 몰려들고 있었기 때문이다.
"처, 천겁이 다가오고 있지 않나! 이게 어찌 된 일이야!"
종선생이 겁에 질려 고함을 질렀다.
그도 그럴 것이 지금 몰려드는 보랏빛 구름은 그가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거대한 규모였기 때문이다.
"그리 놀랄 것 없습니다. 이 천겁은 종선생과는 상관없는 것입니다."
"그럼 이게 뭐란 말이냐?"
"천겁은 제게 오는 것입니다. 저는 극멸기를 깊게 익힌 탓에 선계에 속할 수 없지요."
"이게 그런 이유로 닥치는 천겁이라고?"
"그렇습니다. 그래서 제가 종선생께 윤회를 부탁드린 것입니다."
"으음. 도대체 극멸기의 경지가 얼마나 지고하기에 이토록 거대한 천겁이 내린단 말인지. 가히 가늠이 되지 않을 정도로군."
종선생은 수 천 만리의 하늘을 가득 메워버린 보랏빛 구름에 두려운 눈빛을 감추지 못했다.
"걱정할 일은 아닙니다. 천겁이 강한만큼 준비하는 시간도 길 것입니다. 그 전에 모든 일을 마무리하고 윤회에 든다면 천겁은 스스로 물러날 것입니다."
그런 종선생을 위해 건우가 담담한 표정으로 말했다.
그리고 곧바로 가부좌를 하고 앉아서 유혼결을 운용하기 시작했다.
유정정은 그 곁에서 건우의 상태를 살피며 종선생을 경계했다.
혹시라도 종선생이 건우와 유정정을 버리고 도망가기라도 한다면 큰 일이기 때문이었다.
물론 종선생은 절대 그럴 생각을 품지 않았다.
건우도 무섭지만 유정정 역시 절대 가볍게 볼 수 없는 오래 묵은 수사임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어설프게 도망을 쳤다가는 유정정의 화를 감당하기 어려울 것이다.
물론 상황이 크게 변하고 위험하다면 어쩔 수 없이 몸을 빼야겠지만 아직까지 그 정도는 아니었다.
"상공! 이제 가시면 얼마나 오랜 후에 다시 뵈올지……. 흐흐흑."
유정정은 유혼결을 펼쳐 분혼을 만들기 위해 애쓰고 있는 건우를 보며 흐느꼈다.
그 때, 건우는 유혼결을 펼치는데 애를 먹고 있었는데, 그 이유는 수미 세계가 선계에 편입이 되고 있기는 하지만 아직 부족함이 많았기 때문이다.
수미 세계에 아직 영계의 영향력이 남아 있어, 건우의 유혼결을 방해했다.
'이대로 시간을 끌다간 천지 법칙의 재앙을 피하지 못한다. 머리 위에 쌓이는 천겁의 구름은 너무도 두껍고 짙구나. 힘을 내야 한다.'
우르르르릉! 쿠르르르르릉! 우르릉!
그런 중에 드디어 하늘에 몰려든 보랏빛 구름 안에서 샛노란 뇌전이 일어나 꿈틀거리기 시작했다.
"허억 어찌 저리 굵고 짙은 천겁뢰가! 저, 저건 스치기만 해도 소멸을 면치 못하겠군!"
종선생이 그 기미를 읽고 소스라쳐 놀랐다.
그리고 마침 그 때에 건우가 유혼결의 운용을 완성하고 분혼을 만드는데 성공했다.
건우의 이마에서 황금빛의 작은 불덩이가 빠져 나왔다.
"됐다!"
건우는 환호성을 지르며 일어나 자신이 만든 그 황금 불꽃의 분혼을 향해 공간 법칙을 사용했다.
그러자 분혼을 감싸며 아지랑이 같은 투명한 기운이 감돌더니 분혼의 모습이 씻은 듯이 사라져 버렸다.
"어엇?"
종선생도 그 모습을 지켜보았지만 건우의 공간법칙을 파악하지 못했다.
당연히 분혼이 아공간 안으로 사라진 것도 알 수 없었다.
건우는 분혼을 공간 법칙으로 봉인하여 아공간의 중심, 예전 수미산 상징이 있던 곳에 안치시켰던 것이다.
"상공! 성공하셨어요. 흐흐흑."
유정정은 그 모습에 크게 기뻐하며 동시에 또한 슬퍼했다.
이제 건우와 오랜 이별을 해야 함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정정, 진정하시오."
"흐윽, 네, 네. 저는 괜찮습니다. 괜찮고 말고요. 흐흑."
건우의 말에 유정정은 억지로 웃으려 애썼지만 여전히 눈물을 그치지 못했다.
건우는 그런 유정정의 모습이 안타까웠지만 더는 시간을 끌 수가 없었다.
쿠르르르릉! 쿠릉!
하늘의 보랏빛 구름에서는 당장이라도 천겁뢰가 쏟아질 듯, 커다란 뇌성이 터져 나오는 중이었기 때문이다.
"종선생 부탁하겠소!"
건우는 머뭇거리지 않고 유정정을 밀어낸 후, 종선생을 보며 고함을 질렀다.
그리고 동시에 건우는 다시 제 자리에 가부좌를 틀고 앉으며 자신의 모든 기운올 해방시키기 시작했다.
그것은 그가 그간 쌓아온 모든 것을 세계로 돌려주는 행위였으며 종선생이 사용할 윤회 법칙의 힘에 저항하지 않기 위해 약속한 수단이었다.
"건우 수사! 다시 대도의 길에서 웃으며 만날 수 있기를 바라네!"
종선생이 그런 건우를 보며 그 동안 준비했던 진법 결계를 발동시켰다.
동시에 건우를 에워싸며 수 백 개의 영보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 모든 것은 종선생이 사용할 윤회 법칙을 보조하기 위한 것이었다.
"정정! 다시 봅시다!"
건우가 마지막으로 유정정을 보며 소리쳤다.
유정정은 진법 결계 밖에서 건우를 향해 손을 뻗었지만 감히 달려들지 못하고 애만 태웠다.
그 순간이었다.
종선생이 이를 악물고 건우를 향해 윤회 법칙을 걸었다.
그러자 건우의 몸에서 영혼이 빠져 나가더니 빛과 같은 속도로 수미 세계의 천공을 빠져 나가 끝없이 망연한 우주 공간으로 날아갔다.
그리고 어느 순간 수많은 영혼이 강을 이루고 밀려가는 곳에 도착했는데, 문득 어떤 힘이 있어 건우의 영혼을 밀어내었다.
하지만 건우의 영혼에는 종선생이 둘러 준 윤회 법칙의 힘이 있었고, 그 힘이 건우의 영혼을 윤회하는 많은 영혼들 속으로 밀어 넣었다. 그렇게 건우의 영혼은 천지 법칙의 첫 관문을 통과한 것이다.
이후, 건우의 영혼은 찰나와 억겁을 구별할 수 없는 시간의 흐름을 겪으며 모든 기억이 씻겨나가게 되었다. 이것이 윤회에 든 모든 영혼이 겪게 되는 '망각의 씻음'이었다.
이에 건우는 어떻게든 자신의 기억을 지키려 했지만 천지 법칙의 강대한 힘을 견딜 수는 없었다.
그것은 말 그대로 불가항력이 무엇인가를 확실하게 깨닫게 해 주는 천지 법칙이었다.
그렇게 건우의 영혼은 조금씩 기억이 씻겨 나가며 윤회의 흐름에 따르기 시작했다.
반짝!
물론 그런 중에 종선생이 걸어 주었던 윤회 법칙의 힘이 미약하게나마 작용하여 건우의 어떤 기억 하나는 영혼에 묶어 두었는데 그것이 무엇인지는 알 수가 없었다.
이미 건우의 영혼은 새로운 삶을 위해 윤회의 흐름이 인도하는 길을 따라 가는 순수한 영혼이 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스흐흐흐흣!
그러던 어느 순간 건우의 영혼이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영혼이 모여 흐르는 흐름에서 빠져 나와 어딘가로 날아갔다.
그리고 윤회가 안배한 운명을 따라서 순천자의 몸에 깃들게 되었다.
"으앵!"
* * *
"어찌 되었지? 상공께선 윤회에 드셨나?"
"물론입니다."
"거짓은 아니겠지?"
"이를 말이겠습니까. 천지 법칙에 맹세컨대 건우 수사는 분명 윤회의 흐름에 들었습니다. 유선자께서는 걱정을 내려 놓으십시오."
"그럼 그 후는
"그야 저도 알 수 없는 일이 아니겠습니까. 윤회 법칙에 대한 저의 깨달음이 그 정도로 깊은 것은 아닙니다."
"그렇다면 상공께서 선계에서 다시 태어나는 건, 그건 확실할까?"
"이미 의논하지 않았습니까. 그 역시 가능성이 높을 뿐, 확신할 수는 없는 일이라고 말입니다."
"하아, 그렇지. 그래. 그랬어."
종선생을 다그치던 유정정은 어느 정도 정신을 차린 모양인지 먼 천공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그녀는 결국 건우의 부재를 인정하고 받아들이기로 한 것이다.
"유 선자께서는 이제 어찌 하실 생각이십니까?"
그런 유정정을 보며 종선생이 물었다.
"선계에 연화궁을 세울 것이다. 그리고 그 연화궁을 크게 키워 상공께서 어디에 계시든 내 이름을 듣게 만들 것이야. 그리하면 상공께서 조금이라도 더 쉽게 나를 찾으실 수 있겠지."
"그야 그렇겠지만 아직 진선도 되지 않은 유선자께서 그게 가능하시겠습니까?"
종선생이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물었다.
"상공과 익힌 쌍수수련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이제부터 이 연심을 키우고 또 키우며 상공을 기다릴 것이다."
그런데 유정정은 질문의 답과는 연관이 없어 보이는 말을 하고는 훌쩍 몸을 날려 허공으로 녹아들었다.
종선생은 그렇게 사라진 유정정의 기운을 잠시 쫓아보다가 고개를 저었다.
자신의 능력이 유정정에 미치지 못함을 깨닫고 포기한 것이다.
"돌아보면 참으로 영웅이 아닌가. 두 번의 멸계전을 거친 것도 그렇지만, 그 멸계전에 기여한 공이 얼마나 지대한가."
그리고 문득 건우가 지금껏 쌓은 업적을 떠올리며 그렇게 감탄했다.
"아! 멸계전에 크게 공을 세우면 당연히 천지 법칙이 그에 대한 보상을 준다 하지 않았나? 인계에서 영계로,영계에서 선계로, 두 번의 멸계전에서 지대한 공을 세운 건우 수사는 과연 무슨 보상을 받았을꼬?"
종선생은 실로 그것이 궁금해졌지만 이미 윤회에 들어 어디로 갔는지도 모를 건우였기에 그것을 확인할 방법은 없었다.
하지만 종선생은 윤회에 들었더라도 건우에게 반드시 천지 법칙의 보상이 있었을 거라고 믿었다.
역천의 길을 걷는 수사들이라도 감히 거역하지 못하고 기대곤 하는 천지 법칙에 대한 믿음이 종선생에게도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로부터 수많은 세월이 흐르고서야 수미 세계는 온전히 선계의 일부가 되었으며, 유정정이 세운 연화궁은 크게 세력을 넓혀 많은 수사들의 입에 오르내렸다.
하지만 그 연화궁의 이름도 또다시 오랜 시간이 흐른 후, 덧없이 잊히고 유정정의 종적도 사라지고 말았으니 남은 것은 연화주(連花珠)라는 구슬에 대한 전설뿐이었다.
* * *
"우(遇)아야, 무얼 하고 있니?"
"아, 어머니."
"무얼 하고 있기에 그리 넋을 잃고 있어?"
"모르겠어요. 요즘은 까닭 없이 가끔 혼이 빠진 듯. 정신을 차려보면 시간이 훌쩍 흘러버리곤 하네요."
"어쩌면 좋을까. 선인(仙人)들께서 오실 때가 되니 우리 우에게 뭔가 징조가 보이는 것일 수도 있겠네."
어머니는 얼굴에 근심이 드러났다.
마흔이 넘어 뒤늦게 낳은 막내가 품에서 떠날 수도 있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설마 그렇기야 하겠어요? 선인들께서 고작 저같은 아이를 뽑지는 않으실 거예요."
"우리 우가 어디가 어때서?"
"에이, 그럼 어머니께선 제가 선인이 되어 집을 떠나기를 바라세요?"
"어쩌면 그게 좋을 수도……. 이제 이 어미도 늙어서 너를 돌봐줄 수가 없으니 차라리 선인의 제자가 되는 것이 좋을 수도 있겠지. 누구나 바라는 일인데, 어미의 욕심으로 너를 품에 안고만 있으려 했구나."
생각해보면 어린 아들이 선인의 제자가 되는 것은 무척 좋은 일이었다.
늙은 자신이 죽고 나면 어린 자식은 나이 많은 형제들 사이에서 구박만 받을 것이 분명했다.
장씨 부인이 생각하기에도 장성한 아들들은 믿을 만한 구석이 별로 없었다.
"그런 말씀 마세요. 이젠 어머니께서 저를 돌보는 것이 아니라, 제가 어머니를 모셔야지요. 하하핫. 자,그만 들어가셔요."
"그, 그래. 어차피 인력으로 어찌할 수 없는 일인데, 너와 내가 무얼 따진단 말이냐?"
혹시라도 아들인 장우가 선인의 간택을 받게 된다면 그 뜻을 어찌 거부할까.
어차피 선택은 그들 모자의 몫이 아니었다.
장씨 부인도 그것을 떠올리고는 걱정 근심을 내려 놓기로 했다.
그렇게 두 모자는 허름한 모옥(某屋)으로 향했다.
장씨 촌에 선인들이 오기 보름 전의 일이었다.
< 건우는 윤회에 들고 유정정은 종적이 사라지다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