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4)
< 윤회 이후에도 당신을 잊지 않을 좋은 방법을 찾았소 >
"그것을 묻다니요. 종선생께서는 제가 원하는 것을 진정 모르시겠다는 말씀입니까?"
"설마 상공의 부탁을 거절하려는 것은 아니겠지?"
건우와 유정정이 의념을 끌어 올린 것은 종선생이 비협조적으로 나온다는 느낌을 받았기 때문이다.
지금 상황에서 종선생을 찾아왔다면 원하는 것이야 뻔한 것인데, 그것을 묻다니.
건우와 유정정은 그것이 종선생이 거절의 뜻을 에둘러 표현한 것이라 받아들인 것이었다.
"어허, 어찌 이리 급한가. 그리고 유 선자께서도 좀 진정하시지요."
"흥 감히 상공의 부탁을 슬그머니 외면하려 하면서 진정하라고? 종 수사, 너의 오늘이 상공이 안 계셨으면 있기나 했을 것 같으냐? 그런 은혜를 입고도 감히 앞뒤를 재려 해?"
종선생이 깜짝 놀라 손을 내저었지만 유정정의 분노는 쉽게 수그러들지 않았다.
그 때, 건우가 유정정의 어깨를 잡으며 그녀를 진정시켰다.
"잠시 기다려 보시오. 보아하니 종 선생께서도 하실 말씀이 있으신 듯한데, 어디 들어나 보십시다."
"흥! 감히 되지도 않을 변설을 늘어놓는다면 오늘 반드시 저 자와 사생결단을 내고 말 것이어요."
"어허, 종 선생에게 깊은 뜻이 있겠지요. 내 입으로 말하기는 그렇지만 설마 은혜를 잊기야 했겠습니까?"
"커엄."
건우의 말에 종선생이 저도 모르게 헛기침을 했다.
사실 건우가 종선생을 홍애지 영계에서 수미 세계로 데리고 오기는 했지만, 그것이 어디 공짜로 했던 일인가.
적잖은 보상을 받고 했던 일인데, 제 입으로 은혜 운운하니 종선생으로서도 조금 거북한 느낌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는 것이다.
"어디 하고 싶은 말이 뭔지 해 보아라."
그 때, 건우의 만류에 어느 정도 진정이 되었는지 유정정이 종 선생을 노려보며 말했다.
종 선생은 조금 전의 헛기침은 없었던 일처럼 정색을 하며 건우와 유정정을 향해 입을 열었다.
"평범한 윤회는 원하지 않고, 특별히 법칙의 힘을 통하려 한다면 당연히 윤회로 인한 망각을 피하려는 것이겠지. 안 그런가?"
종 선생은 유정정의 시선을 피하며 건우를 향해 말했다.
"바로 보셨습니다. 사실 그것이 제가 가장 바라는 것이지요."
건우는 속일 것도 없었기에 순순히 대답했다.
"일단 이거 하나는 먼저 이야기를 해야겠군. 내가 윤회의 법칙으로 건우 수사의 영혼을 보호한다고 해도 특별히 어떤 기억을 따로 떼어 보호할 수 있는 것은 아니네."
"그게 무슨 말입니까?''
"쉽게 말해서 내가 윤회에 들어가는 건우 수사의 영혼을 법칙의 힘으로 보호할 수는 있지만 윤회의 과정에서 망각의 힘이 작용하면 그것을 건우 수사 스스로 버텨야 한다는 것이지."
"으음.
"하지만 기억을 모두 지킬 수는 없을 것이 분명하네. 그러니 결국 특별히 잊지 말아야 할 기억 몇 가지만 윤회 과정에서 스스로 정해야겠지."
"그렇습니까? 미리 제가 지정한 기억을 따로 보호해 줄 수는 없다는 것입니까?"
"그건 내가 깨우친 윤회 법칙에는 해당하지 않는 것이네. 내가 아는 윤회 법칙은 대상이 되는 영혼을 윤회의 흐름에 밀어 넣는 것일 뿐이지. 물론 그런 중에 특별히 그 흐름 속에서 어느 정도 정신을 유지할 수 있도록 법 칙의 힘을 부여해 주는 정도가 고작일세."
"흐으음. 어쨌거나 내 영혼을 윤회의 흐름에 밀어 넣는 것은 가능하다는 이야기가 아닙니까."
"음? 그야 어려울 것이 뭐가 있겠나. 당연히 가능하지."
건우의 물음에 종선생은 문제도 아니란 듯이 대답했다.
하지만 건우에겐 무엇보다 중요한 문제였기에 다시 확인하지 않을 수 없었다.
종선생이 천지 법칙에 의해서 배척받는 자신의 영혼을 진짜로 윤회에 넣어 줄 수 있는지.
"잘 보십시오. 어쩌면 그리 간단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니 내 영혼을 윤회에 확실하게 넣을 수 있는지 봐 달라는 말입니다."
"그것 참, 이상한 말을 하는군. 세상에 영혼을 지닌 존재 중에서 누가 윤회를 벗어날 수 있다는 말인가. 혹여 무슨 특별한 저주 술법에라도 걸렸다는 것인가? 아니면 마귀와 영혼을 두고 거래라도 했는가?"
종선생은 그렇게 중얼거리며 슬며시 의념을 끌어 올려 건우의 영혼을 살폈다.
건우는 종선생의 탐색이 시작되자 스스로 자신의 영혼 방벽을 모두 허물고 종선생의 의념을 받아들였다.
물론 그것은 유정정이라는 최고의 호위가 바로 곁에서 지켜보고 있기에 할 수 있는 행동이었다.
유정정은 건우와 쌍수수련으로 묶여 있었기에 이상이 생기면 그 즉시 알아차릴 수 있었다.
그러니 종선생이 건우에게 수작을 부리는 즉시 대응을 할 수 있을 터였다.
"흐으음. 기묘하군. 으음. 그것 참."
건우의 영혼을 살핀 종선생이 고심어린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어떻습니까. 장담하신 그대로 저를 윤회의 흐름에 넣어 주실 수 있겠습니까?"
종선생에게 그렇게 묻는 건우는 태령기 수사에 어울리지 않게 긴장으로 입술이 마르고 있었다.
"가능…은 하다. 하지만……
"하지만은 없는 것이다. 가능하다 했으니 종 수사는 그 말에 책임을 져라."
종 선생이 머뭇거리며 대답하다가 뭐라 뒷말을 붙이려 했지만 유정정의 말에 끊기고 말았다.
"휴우우. 유 선자. 이 종 모가 실로 다른 뜻이 있어서 하는 말이 아닙니다. 지금 건우 수사의 상황이 기이하기 이를 데 없습니다. 솔직히 제가 장악한 윤회 법칙으로 건우 수사를 윤회에 들게 하는 것은 어찌어찌 가능하겠 습니다."
"그런데 뭐가 문제란 말이냐?"
"건우 수사와 유 선자께서 저를 찾아오신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저 윤회만 하려는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 원하시는 것은 윤회에서 기억을 보존할 수 있도록 영혼을 보호하는 것도 포함되지 않습니까."
"그 말은 상공을 윤회에 넣을 수는 있지만 기억 보존을 위해서 영혼을 보호하는 것은 어렵다는 말이구나?"
"어려운 것이 아니라 거의 불가능할 듯 합니다."
"불가능? 거의?"
"막대한 수련자원을 투입하여 엄청난 진법을 세운다면 혹여 약간의 기억은 남길 수 있을 정도로 영혼의 보호를 더할 수는 있겠습니다만, 사실 들어가는 자원에 비하면 얻는 이득이 미미할 것입니다."
"어쨌거나 윤회할 수 있다는 것은 분명하다는 것이 아닙 니까."
종선생의 말에 건우는 절로 반색을 하며 확인하듯 되물었다.
"그야, 윤회까지라면 확실히 가능하지. 쉽지는 않지만 분명 가능해."
종선생이 건우의 물음에 다시 한 번 분명한 답을 내려 주었다.
그 말에 건우는 깊은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어쨌거나 수미 세계가 선계로 편입될 때에 영혼까지 소멸당할 위험은 피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물론 건우와 달리 유정정은 종선생의 대답이 전혀 만족스러울 수가 없었다.
"윤회만으로 끝날 문제가 아니란 것을 종 수사는 정말 몰라서 그런 말을 하는 것이냐? 상공께서 모든 기억을 잃고 윤회에 들어 새로 태어나게 된다면 나와의 인연까지도 사라지게 되는 것인데, 그런 윤회를 하느니 차라 리 내가 상공과 남은 시간을 함께 하다 연리지를 나눠 품고 윤회에 드는 것이 좋겠지. 상공만 윤회로 돌려보내는 것보다는 그 쪽이 훨씬 나을 것 같지 않으냐? 종 수사 너는 어찌 생각하느냐?"
"유 선자. 그것을 어찌 제가 왈가왈부 할 수 있겠습니까. 감히 제 입으로 논할 문제는 아닌 듯 합니다."
"흥!"
종선생의 대답에 유정정은 차가운 콧소리만 내었다.
그리고 다시 건우를 애틋한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상공, 어찌 합니까?"
"어쩌긴, 그래도 종 선생이 티끌같은 기억이라도 유지할 수 있게 해 준다니 그것을 믿어 볼 수밖에 없지 않겠소?"
"하지만, 하지만... 흐흐흑, 결국 상공께서 저를 잊으실 것이 아닙니까. 소첩은 그것이 너무도 가슴이 아픕니다. 그리고 저를 잊으시면 결국 다시 저를 찾지 않으실 수도 있겠지요. 저는 선계의 진선으로 불로불사하며 영영 세세토록 상공을 기다리다 돌이 되지 않겠습니까. 흐흐혹."
유정정은 서러움을 견디지 못하고 건우의 가슴에 얼굴을 묻고 울기 시작했다.
건우는 난처한 표정으로 유정정을 안아주며 머리를 쓰다듬었다.
"커어엄."
종선생 또한 시선 둘 곳을 찾지 못하여 눈을 지그시 감으며 헛기침만 할 뿐이었다.
"상공, 어찌 합니까? 상공께서 윤회에 들 수 있다는 것은 다행이지만 기억을 유지할 수단이 마땅치 않으니 그것이 걱정입니다."
"그러게 말이오. 그나마 아주 믿을 구석이 없는 것은 아니오만."
"네? 무슨 방법이라도 있다는 것이어요?"
건우의 말에 유정정이 반색을 하며 다가들었다.
그들은 종 선생과 윤회에 대해 의논한 후에 잠시 따로 떨어져 생각을 정리하기로 한 상태였다.
종 선생은 건우를 윤회에 넣어주는 한편, 최대한 기억을 유지할 수 있도록 힘을 써 주겠다고 약속했다.
하지만 기억 유지에 최대한 애를 써 보기는 하겠지만 그 효과를 장담할 수는 없다는 것.
종 선생이 윤회 법칙에 대해서 깨달은 바가 워낙 미천하여 그 이상은 하려 해도 방법이 없다는 것이다.
그 조차도 수많은 보조 진법과 결계, 영기, 영보의 도움을 받아야만 가능하다고 했다.
물론 종 선생의 입장에서는 어차피 윤회에 들어갈 사람이 무엇을 아까워 하냐는 것이지만, 막상 건우로서는 그게 또 그렇지가 않았다.
왜냐하면.
"내가 지닌 아공간은 본래 저 쪽 세상에서부터 가지고 있던 것으로 수미 세계를 담았던 겨자씨를 바탕으로 한 것이오."
"네,그것은 소첩도 알고 있지요. 그런데요?"
"그런데 그 아공간은 실상 내 영혼과 연결되어 있는 것으로 영혼이 소멸하지 않는 한, 계속 유지될 것이오."
"윤회에 들더라도 말인가요? 윤회에서 영혼이 씻겨 나가고 새로 태어나도 그 아공간이 유지될까요?"
"나는 그렇게 될 거라고 믿소. 그리고 그것이 내가 믿을 구석이라고 말한 그것이오."
"아공간을 믿는다면 그게 어떤 의미여요?"
"그야 지금의 내 기억을 모두 아공간에 남겨 두겠다는 말을 하는 것이오. 언젠가 내가 아공간을 열게 되면 그 기억을 읽고 지금의 나를 되찾을 수 있게 말이오."
"하지만 그것은 단지 기록을 읽는 것일 뿐, 그것이 어찌 지금의 상공과 같다 하겠어요. 그렇지 않은가요?"
건우는 괜찮은 방법이라 생각했지만 유정정은 아쉬움을 숨기지 못했다.
건우가 옥간을 통해 지금까지의 모든 것을 알게 된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다른 사람의 일기를 읽는 것과 같을 거란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정정, 진정하시오. 이는 그저 지금의 기억을 그대로 옥간에 남기는 것과는 다른 방법이오. 내가 아공간을 열기만 하면 지금의 나를 완전히 되찾을 수도 있는 방법이오."
"네? 그게 무슨 말씀이어요? 어떻게요?"
건우의 말에 유정정이 깜짝 놀라며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물었다.
"내게는 유혼결을 한 번 더 펼칠 수 있는 기회가 있소. 그것이면 설명이 되겠소?"
"선계에서 한 번 더 유혼결을 펼칠 수 있다는 것은 소첩도 알지요. 그런데 그걸 어떻게……"
"바로 그것이오. 이제 수미 세계가 선계에 오른다면, 나는 그 때에 유혼결로 분혼을 만들 수 있소. 물론 천지 법칙이 나를 그냥 두지 않으려 하겠지만 얼마간 시간은 있을 거라 생각하오. 그 사이에 분혼을 만들어 공간 법칙으로 봉인하여 둘 생각이오."
"네? 분혼을 만들어 공간에 봉인을 하신다고요?"
"그렇소, 당연히 아공간과 연결하여 봉인을 해야겠지. 어차피 그 분혼 역시 천지 법칙이 선계에 머물도록 허락하지 않을 테니까 말이오."
"그래서 이후에 아공간을 열면 그 봉인을 풀고 분혼을 흡수하여 지금의 상공을 되찾겠다는 것이군요?"
건우의 말에 유정정의 눈에 생기가 감돌며 반짝였다.
"물론 문제가 아주 없는 것은 아니오. 아공간에 유혼결을 남겨 윤회한 내가 그것을 익혀야 한다는 제약이 있고, 아공간에 봉인한 분혼을 꺼낼 수 있어야 한다는 점도 문제요."
"봉인하지 않고 그냥 아공간에 두면 안 되는 건가요?"
"그렇게 하면 분혼은 자연스럽게 새로운 육신을 찾아 떠나게 될 것이오. 당연히 윤회하지 않은 영혼이니 또 다시 천지 법칙의 제약을 받게 되겠지."
"하지만 그건 분혼을 흡수하여도 문제가 되는 것이 아닌가요?"
"아니오. 내가 본혼이니 윤회를 거친 후라면 분혼을 홉수하여도 문제가 생기진 않을 것이오."
"그리 되면 다행이긴 하겠지만……
"어쨌건 지금까지의 일을 옥간으로 기록하여 아공간에 남기고, 윤회한 나로 하여금 분혼이 들어 있는 공간 봉인을 풀게 하여 유혼결로 흡수케 하면, 그것으로 모든 문제는 해결이 될 것이오. 지금의 내가 뜻하지 않게 멸 계의 길매를 가슴에 품은 것과 같은 상황이 될 테니 말이오."
"흥, 만족할 수는 없지만 그나마 좋은 방법이긴 하네요."
건우의 말에 코웃음을 치면서도 유정정의 표정은 한결 밝아졌다.
그 후로 둘은 건우가 생각한 방법을 더욱 세밀하게 점검하며 시간을 보냈다. 그리고 몇 년 후, 건우와 유정정은 다시 종선생을 찾았다.
< 윤회 이후에도 당신을 잊지 않을 좋은 방법을 찾았소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