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환장 통수 선협전-323화 (323/4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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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윤회 법칙이 필요합니다. >

한 번 터진 유정정의 울음은 꽤나 길게 이어졌다.

건우는 그런 유정정을 품에 안고 다독였다.

"상공께서 선계에 들지 못하는 이유가 극멸기 때문이 아닙니까. 그렇다면 제가 장악한 정화 법칙을 이용하여 상공의 극멸기를 소멸시키면 어떻겠습니까."

한동안 눈물을 흘리며 쌓인 설움을 풀어 낸 유정정이 몸을 돌려 얼굴을 고쳐 다듬고는 건우를 보며 물었다.

"물론 극멸기가 문제가 되는 것은 사실이오. 더구나 멸계 수사로 태령기 완경에 이른 분혼을 흡수하였으니 더욱 문제가 될 수밖에 없었지."

"그러니 드리는 말씀이 아니어요."

"하지만 문제는 그 뿐이 아니라오. 정정 당신의 정화 법칙의 힘으로 극멸기는 어찌어찌 해결할 수 있을지도 모르오. 그로 인해 내 경지에 손해가 적지 않겠지만 그 또한 시간을 두고 궁구하면 회복하지 못할 것은 아니지."

"그럼 그렇게 하면 되는 것이 아니어요?"

"문제는 그만한 시간이 없을 거란 사실이오. 수미 세계의 멸계전은 이제 오래지 않아서 결론을 내려야 할 것인 즉."

"그럼 그 전에 극멸기만 정화하고, 이후 선계에 이르러 잃은 경지를 회복하면 되지 않아요? 소첩의 생각으로는 문제될 것이 없어 보이어요."

"휴우. 나도 거기까지는 생각을 했더랬소. 그래서 희망을 가졌었지."

건우는 깊은 한숨을 쉬며 그렇게 말했다.

유정정은 건우에게 또 다른 문제가 있음을 알아차리고 얼굴빛이 장백해졌다.

"뭐여요? 무엇이 상공을 그리 곤란하게 하는 것이어요?"

유정정이 걱정스럽게 물었다.

"이것은 실로 내가 특별한 존재이기 때문에 생긴 문제라오."

"특별한 존재라면? 설마 상공께서 대천 세계가 아닌 다른 세계에서 오셨다는 그것 말이어요?"

"후우, 바로 그렇소. 정정에게도 말했던 것처럼 나는 대천 세계가 아닌 전혀 다른 세계에서 건너온 사람이오. 그곳에서 수미 세계가 들어 있는 겨자씨를 받아서 그것을 이곳 대천 세계로 옮기는 역할을 떠맡은 것이었지."

"그래서요? 그게 무슨 문제가 되는 것이어요?"

"들어보시오. 내가 있던 세계를 주관하는 이가 있소. 이곳에선 천지 법칙과 같다고 볼 수 있겠지."

"그런데요?"

"그 존재가 나를 그쪽 세상에서 이곳 대천 세계로 쫓아내지 않았겠소? 하지만 문제는 그렇게 쫓겨 온 이곳 대천 세계가 나를 온전히 받아주지 않았다는 것이오."

"받아주지 않아요?"

"인계나 영계까지는 어찌어찌 허락을 해 주었지만 대천 세계의 중심이라 할 수 있는 선계엔 들어갈 자격을 주지 않았다는 것이오."

"아니 어찌 그럴 수가 있어요. 수사가 경지에 이르면 선계로 오르는 도전을 하는 것이 당연한 일인데. 어찌 상공께는 그런 기회조차 주지 않는단 말이어요? 게다가 이번 수미 세계의 멸계전에서 상공이 세운 공이 얼마나 큰가요. 그런데 천지 법칙이 그것을 인정하지 않는 것은 잘못된 것이 아닌가요?"

유정정은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다는 듯이 열변을 토했다.

하지만 건우는 슬픈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비록 역천에 도전하는 것이 수사의 길이라지만, 나는 천지 법칙이 내리는 벌을 이길 수가 없다오. 누가 있어 천지 법칙을 거역하겠소. 수사의 불로불사, 그 역천도 사실은 천지 법칙이 실낱같은 틈을 내어주기에 가능한 것이거늘."

"이럴 수는 없사와요. 어찌 이럴 수가 있답니까. 그럼, 그럼. 상공께서 다른 영계로 가시면 되지 않을까요? 영계까지는 괜찮다 하시지 않으셨어요? 소첩도 상공을 따라 함께 가면....."

유정정은 그것이 별 의미가 없음을 알면서도 그렇게 묻지 않을 수 없었다.

"그래봐야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지 않소. 선계에 오르지 못하는 이상, 몇 번의 천겁과 대천겁을 견딜 수 있을 뿐, 언젠가는 천겁에 불타 소멸하고 말 것이 분명하잖소."

"흐흐혹. 그래도, 그래도 조금이라도 더 상공과 함께 할 수 있다면 소첩 그 길도 마다하지 않을 것입니다. 상공과 제가 쌍수수련의 힘으로 천겁을 버틴다면 앞으로 수 만 년은 더 함께 할 수 있을 테지요. 그렇다면 저는그 리 할 것입니다. 저 홀로 선계에 올라 불로불사가 되는 것 따위는 욕심나지 않아요."

유정정은 다시 건우의 가슴에 얼굴을 묻고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건우는 차분히 유정정의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다.

그리고 얼마 후,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내 그 동안 고민을 하던 끝에 한 가지 방법을 생각해 내었소."

"네? 정말이어요?"

건우의 말이 유정정이 번쩍 고개를 들어 건우와 눈을 맞추었다.

"지금의 문제는 내가 대천 세계에서 이방인으로 받아들여지는 것이오."

"그래서요?"

"이를 벗어나기 위해서는 천지 법칙의 큰 흐름 중에 하나인 윤회를 이용할 수밖에 없소."

"아니 그게 무슨 말씀이어요? 상공께서 윤회를 하시겠다는 말씀이어요?"

"그렇소. 그것만이 내 영혼이 이곳 대천 세계에 받아들여질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오."

"하지만 윤회를 거치면 모든 기억을 잃게 되잖아요. 그러면 무슨 소용이 있답니까. 아, 상공과 제가 수련한 쌍수수련과 연리지 옥간을 이용한다면 죽어 다시 태어나도 운명적으로 다시 연인이 될 인연은 묶어둘 수 있을지 도 모르겠네요. 기억은 없더라도 자연스럽게 서로에게 끌리며 운명적인 연인이 되도록."

"으음. 그런 방법도 있겠구려."

건우는 유정정이 번뜩이는 감각으로 찾아낸 방책을 듣고 속으로 감탄을 금치 못했다.

그 짧은 순간에 그런 방법을 생각해 내다니.

하지만 건우는 유정정의 방법을 쓸 생각은 없었다.

"하지만 그것도 그리 쉽지는 않을 것이오."

"왜요?"

"내가 죽더라도 윤회에 들어갈 수 있다는 보장이 없기 때문이오."

건우가 걱정하는 문제 중에는 이 부분도 매우 심각했다.

윤회를 하려고 해도 건우의 영혼이 윤회 자체를 할 수 없을 지도 모른 다는 것.

"아, 상공께서 이곳 대천 세계에 속하지 않으셨으니 윤회에도 받아들여지지 않을 것이란 말씀이군요?"

"바로 그렇소. 그러니 그것을 해결할 방법을 찾아야지."

"그래서 찾으셨어요?"

"음, 내 오래된 기록들을 살피다가 여러 법칙들 중에서 윤회 법칙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소."

"윤회 법칙이요?"

"매우 강력한 법칙으로 윤회에 간섭할 수 있는 엄청난 법칙이라 하오."

"그런 법칙도 있답니까? 그래서요?"

"혹여 이곳 수미 세계의 수사들 중에 그 윤회 법칙을 일부라도 장악한 수사가 있다면, 그가 나를 윤회에 넣어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오. 아울러서 정정 당신에 대한 기억도 가지고 갈 수 있겠지."

"그, 그게 가능할까요? 그렇다면 소녀도 상공을 따라서……

"그건 아니오."

건우가 유정정의 말을 막았다.

"어찌 그러셔요?"

"윤회를 거치면 나는 범인으로 태어나게 될 것이오. 그리고 다시 수도자의 길을 걷겠지."

"그야 당연하지요."

"그리고 언젠가는 반드시 진선의 경지에 이를 것이오. 그런데 그 사이에 정정 당신도 나와 같은 길을 걸어 다시 진선이 된다는 보장이 있겠소?"

"네?"

"차라리 정정 당신은 이번에 선계에 들어 진선으로 나를 기다리는 것이 훨씬 좋지 않겠는가 하는 말이오. 어쩌면 당신이 윤회한 나를 찾아 도울 수도 있겠고, 그게 아니어도 그대가 어찌 쌓은 수련 경진데 그것을 쉽게 저 버린단 말이오?"

"아, 상공! 흐흐혹!"

"울지 마시오. 내 그동안 이리저리 생각해보며 방법을 찾고 있었는데, 그나마 가장 가능성이 높은 것이 윤회  법칙을 익힌 수사의 도움을 받는 것이었소."

"네, 네. 알았어요. 반드시 찾을 수 있을 것이어요. 분명히 그럴 것이어요."

유정정은 건우가 내 놓은 작은 희망에 제 몸을 던져 스스로를 불태우기라도 할 듯이 적극적으로 대들었다.

이후, 유정정은 서둘러 섬의 수련동부를 정리하여 세간들을 공간낭에 밀어 넣고 건우의 외유를 재촉했다.

건우 역시 이제는 더 미룰 수 없음을 깨닫고 있었기에 아쉽지만 유정정과의 달콤한 시간을 끝내기로 했다.

그렇게 둘은 함해의 고도를 떠나 윤회 법칙을 익힌 수사를 찾기 위한 여정에 올랐다.

"실로 그런 이유로 나를 찾아올 줄은 몰랐군."

종선생이 건우와 유정정을 보며 말했다.

"저도 윤회 법칙을 깨달았다는 수사가 설마 종선생일 줄은 몰랐습니다. 그런데 보아하니 과거와는 많이 달라진 듯합니다."

"그것이 보이는가? 건우 수사도 또한 그 깨달음이 얕지 않군."

건우의 말에 종선생이 놀란 표정을 지었다.

"여쭙자면 종선생께서는 진정 종선생이십니까? 아니면 기기현문의 갈편주 수사입니까?"

건우는 그런 종선생을 향해 의혹의 눈빛을 던지며 물었다.

원래 종선생은 기기현문의 갈편주와 영혼이 하나로 묶였던 일이 있었다.

덕분에 종선생의 경지가 크게 올랐지만 대신에 갈편주의 경지는 또 떨어져서 천겁을 이길 수 없는 상황이 되었었다.

그런 종선생을 건우가 천겁이 멈춘 수미 세계로 데리고 왔다.

따지자면 지금까지 종선생이 살아 있는 것은 건우의 덕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지금 건우가 살펴보니 종선생의 몸에 하나의 영혼만 존재하고 있는 것이다.

그 영혼이 종선생의 것인지 아니면 갈편주의 것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영혼 하나가 사라진 것은 분명했다.

"나는 과거부터 건우 수사와 인연이 깊은 종가일세. 나와 함께 있던 갈 수사는 윤회 법칙의 깨달음과 함께 떨어져 나가 윤회에 들었지."

"서로 싸워 종선생께서 이겼다는 말로 들립 니다만."

"하하하. 말하자면 그렇다 할 수도 있겠지. 한 몸에 두 영혼이 거하는 상황인데, 따로따로 있는 것도 아니고 서로 뒤섞여 있으니 결국 문제가 되었지. 영혼이라 하는 것은 그리 변질되어서는 안 되는 것이니 말일세."

"그래서요?"

"그래서는 무슨, 그런 상황에서 어떻게든 살아보려고 영혼을 분리하려 애썼지. 그러다가 문득 깨달음이 있어 윤회 법칙의 티끌 같은 조각을 장악하게 되었네. 이로서 갈편주, 갈 수사를 윤회로 돌려보낼 수 있었지."

"일이 그렇게 된 것이군요."

"윤회 법칙의 힘이 워낙 강력하니 뒤섞여 있는 영혼조차 깔끔하게 갈라내어 윤회에 밀어 넣을 수 있더군."

"감축드릴 일입니다. 어쨌거나 갈 수사나, 종 수사나 서로에게 좋게 되지 않았습니까."

"윤회라는 것은 또 다른 기회일 터. 사실 나는 별반 갈 수사에게 미안함 같은 것은 없다네."

"그렇겠지요. 윤회라도 허락한 것은 승자인 종선생의 배려가 아니겠습니까."

"하하하. 그렇다고 해야겠지. 그나저나 건우 수사가 내게 윤회를 부탁한다는 말이지?"

종선생이 이런저런 과거 이야기를 거쳐서 결국 본론을 꺼내 들었다.

건우는 그런 종선생을 보며 담담한 표정으로 말했다.

"아시는지 모르지만 이제 곧 수미 세계를 선계로 올려야 할 때가 다가오고 있습니다. 제가 언제까지나 멸계전의 결론을 미루고 있을 수는 없지요."

"역시 그러했군."

종선생이 멸계전이 끝나지 않는 사정을 짐작하고 있었다는 듯이 대꾸했다.

"바로 그런 이유로 제가 윤회에 들 필요가 생겼습니다. 극멸기를 익힌 몸으로는 선계에 들지 못하기 때문이지요."

건우는 자신이 다른 세상에서 왔다는 이유는 드러내지 않고 극멸기를 핑계로 대었다.

"그래서 윤회를 하고 싶다고? 윤회 때문에 나를 찾았다면 단순한 윤회를 원하는 것은 아니겠군?"

"이를 말이겠습니까. 스스로 목숨을 끊고 윤회에 들 것이면 굳이 종선생을 찾을 이유가 없지요."

실은 스스로 목숨을 끊어도 윤회에 들지 못할 가능성이 높지만 건우는 일단 그런 이야기는 미뤄 두고 있었다.

지금은 그보다 종선생의 태도를 먼저 살피려는 생각이었다.

"그렇지. 그래서 건우 수사가 바라는 것은 무엇인가?"

종선생이 자신의 힘을 빌어서 건우가 윤회를 통해 얻고자 하는 것을 물었다.

그 순간 건우와 곁에서 있는 유정정이 일제히 의념을 끌어 올리며 종선생을 노려보았다.

< 윤회 법칙이 필요합니다.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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