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환장 통수 선협전-322화 (322/4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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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끝나지 않는 멸계전의 이유 >

수미 세계의 중심, 수미산의 한 곳에 서른 가까운 태령기 완경 수사들이 모여 있었다.

그런데 서로를 바라보는 눈빛이나 언행을 보면 그들은 크게 두 패로 나뉜 듯 했다.

사실 그들은 지금까지 멸계전을 진두지휘하며 수미 세계의 수사들을 이끌었던 원로 수사들과, 멸계전 과정에서 승경하여 태령기 완경에 이른 이들로 나뉘어 의견 대립을 하고 있는 중이었다.

"벌써 2백 년 동안 새로 발견된 혼돈역은 없다고 합니다."

"그 동안 혼돈역을 찾는 특별한 공법을 새로 만들고 거듭 개량한 결과, 이제 수미 세계에 혼돈역은 없다고 단언해도 될 정도가 되었습니다."

먼저 문제 제기를 하기 시작한 것은 늦게 태령기 완경에 오른 신진 세력들이었다.

"하지만 그것을 확신할 수는 없는 일이 아닙니까."

원로들 중에 누군가가 슬쩍 반론으로 내어 놓았다.

"그야 그렇지요. 수미 세계가 어디 만만한 곳이랍니까. 아직 우리들이 모르는 곳이 허다하겠지요. 하지만 솔직히 남은 혼돈역이 있다고 하더라고 작금의 사태에 대한 원인은 다른 곳에 있다고 생각됩니다. 여러분도 그리 생각하지 않습니까?"

하지만 거기에 동조하는 듯 말을 시작한 신진 세력이 화제를 묘하게 전환시켰다.

"결국 근래에 대두되고 있는 그 이야기를 말 하려 하시는 것입니까?"

원로 쪽에서도 이미 짐작하고 있었다는 듯이 말을 받았다.

"그렇습니다. 사실 그 동안 의심은 하고 있었지만 차마 말하지 못했지요. 하지만 벌써 1 만 년에 가까운 시간이 흘렀습니다. 이 정도면 기다릴 만큼 기다렸다 하겠지요."

"하지만 우리가 몰려간다고 그가 순순히 인정하고 받아들이겠습니까?"

"그런 일이 벌어진다면 어쩔 수 없이 강제로라도……

"말조심 하십시오. 이곳에 있는 누가 나선들 그를 이길 수 있다는 말입니까? 또한 그가 멸계전에서 세운 공을 생각하면 감히 그런 말을 해서는 아니 될 것이지요."

누군가를 강제로 어찌 해 볼 수도 있다는 말에 원로 쪽에서 거친 반발이 터져 나왔다.

"하지만 이번 사태가 그로 인해서 벌어지고 있는 것이라면, 마땅히 그 책임을 묻지 않을 수 없지 않습니까?"

"책임이 아니라 의향을 묻는다 해야겠지요. 사실상 우리 수미 세계가 멸계전에서 승리할 수 있었던 것이 누구의 덕분입니까? 그리고 널리 알려진 이야기는 아니지만 애초에 수미 세계를 겨자씨의 봉인에서 푼 것도 그였다지 않습니까."

"그건 그저 떠도는 이야기일 뿐이지 않습니까."

"고계 수사들이 어디 그리 간단한 사람들이랍니까? 그런 이야기를 한 수사가 있었다면 마땅히 그만한 근거가 있었겠지요."

"어허, 지금 그 문제를 따지자고 우리가 여기 모인 것이 아니지 않습니까."

"무슨 소립니까. 어쨌거나 그것 역시 가늠할 수 없을 만큼 큰 공인데, 그것을 무시하려 하십니까?"

두 파벌은 이제 한 명의 수사를 화제의 중심에 두고 본격적으로 의견 대립을 하기 시작했다.

원로들 쪽에서는 그를 보호하려는 모습이고, 신진 세력들은 그에게 뭔가를 추궁하려는 태도였다.

"그래서 뭘 어쩌자는 것입니까? 이렇게 멸계전이 끝나지 않은 상태로 계속 시간을 보내자는 말입니까?"

결국 신진 세력들 중에 누군가가 대놓고 원로들을 향해 따지듯이 물었다.

"아니,나는 작금의 상황이 뭐가 문젠지 모르겠습니다. 시간이 얼마가 걸리든 그게 무슨 상관입니까? 어차피 멸계전이 이어지는 상황이라 천겁도 없는 마당에 느긋하게 자신의 수련을 견고히 하다보면 언젠가는 선계 승격이 이루어질 텐데요."

"다들 마음이 성급해서 그런 것이지요. 어떻게든 선계에 빨리 오르고 싶어서 선후도 생각지 않고 안달을 하는 것이 아닙니까."

"그러게 말입니다. 이래서 급하게 경지가 오른 수사들이 문제라는 것이 아닙니까. 얕아도 너무 얕아요."

하지만 돌아오는 원로들의 반응은 신진 세력을 비웃으며 한심하게 여기는 것 뿐이었다.

"지금 우리를 두고 하시는 말씀입니까?"

"그러게 말입니다. 우리가 뭐가 어쨌단 말입니까?"

당장 신진 세력들 사이에서 반발이 나왔다.

하지만 원로들이라고 성질이 유순한 이들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다들 주위를 둘러보십시오. 그러면 지금 선계 승격이 되지 않는다고 떠드는 이들이 누군지 보일 것입니다. 그리고 그런 분들의 특징이 태령기 완경에 오른지 그리 오래 되지 않은 분들임을 알 수 있지요."

"허어, 그러고 보면 그렇기도 하군요."

"역시, 제대로 야물지 못한 티를 내는 것이었습니다 그려."

원로들은 신진 세력에 속한 수사들의 경지가 부족하다는 듯이 몰아갔다.

"거 말 조심 좀 하십시오. 어차피 태령기 완경으로 같은 경지인데 무얼 잘난 척을 하는 것입니까?"

"태령기 완경이라고 다 같은 태령기 완경이 아니니 그런 것이지요. 그것 참, 요즘 얘들은."

"요, 요즘 얘들이라니! 그 무슨 망발을!"

"되었습니다. 그리 따지고 싶으면 각자 알아서 하고 싶은 대로 하십시오. 괜스레 우리까지 끌어들여 공론화 하려 하지 말고."

"그러게 말입니다. 이렇게 선계 승격이 늦어지면 그만큼 넉넉한 시간으로 스스로를 견고히 할 생각은 아니하고. 쯧쯧쯔."

"지, 지금 우리를 무시하는 것입니까?"

"그만들 하고 돌아가서 다시 생각해 보십시오. 그래도 뭔가를 해야겠다면 각자 알아서들 하면 될 일입니다. 이번 안건은 사실 우리 모두가 나설 일은 아니지요."

"옳습니다. 그냥 두어도 언젠가는 천지 법칙의 흐름이 모든 것을 제자리로 돌려놓을 텐데, 그것을 알지 못하다니, 경지가 아까운 일이지요."

"그러게 말입니다. 태령기 완경에 올랐다면서 깨달음이라곤 병아리 눈물만큼도 엿보지 못한 모양입니다. 그것 참."

"그러게요. 그런 주제에 자신을 돌아볼 생각은 하지도 않고 선계에 오르지 못한다고 저리 수선을 떨다니. 통탄할 일입니다."

"그렇지요. 그렇고 말고요."

원로들은 그 동안 참았던 것을 한 번에 풀어내듯이 거침없이 신진 세력의 후배 수사들을 욕보였다.

이에 신진 세력들은 얼굴을 붉히며 분노를 감추지 못했다.

"이이익! 두고 봅시다."

"우리를 이리 홀대하다니!"

"도대체 우리의 주장이 뭐가 잘못이란 말입니까? 개인이 수미 세계 전체의 흐름을 막고 있는 것이나 다름이 없는데. 그것을 지적한 우리를 도리어 나무라다니!"

"가십시다. 차라리 그 자를 직접 찾아가서 이야기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으음. 그럴까요?"

그리고 어차피 원로들의 지지를 받지 못할 것이라면 자신들끼리 움직여 상황 변화를 모색해 보리라는 판단을 하게 되었다.

하지만 그렇게 결론을 내리고도 막상 일을 저지르기엔 상대의 명성이 너무도 높았다.

사실 직접 본 이들은 많지 않아도 그가 이룬 공적을 모르는 이는 없었던 것이다.

혹여 그가 노하기라도 한다면 태령기 완경이라도 큰 화를 입을 수도 있었다.

수도계에서 상대의 심기를 상하게 하려면 그만한 자신이 있어야 하는 일이다.

태령기 완경이나 된 이들이 그 간단한 이치를 모를 턱이 없었다.

그러니 막상 일을 벌이려니 겁이 날 밖에.

"하지만 여럿이 우르르르 몰려가면 오해를 할 소지가 있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뭘 어쩌자는 겁니까? 일단 우리의 뜻을 전하긴 해야 할 거 아닙니까."

"거 참, 직접 찾아가지는 말고 적당히 소문이 흘러들어가게 만드는 방향으로 하지요. 이번에 이곳에서 있었던 일을 그 자가 있는 섬에 은근히 흘려 넣으면 되지 않겠습니까?"

"섬이라고 해 봐야 그리 크지도 않고, 수사라고 해도 고작해야 인계 수준의 저계 수사들만 있는 곳인데, 소문을 낸다고 해도 우리가 뒤에 있음을 금방 알아차릴 텐데요?"

"그게 무슨 상관입니까? 중요한 것은 이곳에서 있었던 일을 그자가 알게 하는 것입니다. 그 정도만 되어도 적잖은 압박을 받지 않겠습니까?"

"그건 그럴 수도 있겠습니다."

"그러니 일단 그렇게라도 해 보십시다."

"좋습니 다."

"그리 하지요. 덕분에 일이 좋게 풀리면 오늘 우리를 두고 손가락질 했던 이들이 모두 잘못을 인정하겠지요."

"그 늙은이들이 그럴 것 같지는 않지만 일단 우리는 우리 할 일이나 제대로 하십시다. 누가 소문을 퍼트리는 것이 좋겠습니까? 또 방법은 어떤 것이 좋을까요?"

결국 그들은 원로들에게 무시만 당하자 자신들끼리 일을 꾸며 보기로 결정을 내렸다.

그것도 아주 순한 맛 방법을 찾아서.

함해의 망망대해에 위치한 고도(孤島).

벌써 1 만 년 가까운 시간동안 은연중에 금지로 불리며 특별한 일이 아니면 손님을 받지 않는 그곳.

사실 그곳은 건우와 유정정의 영역으로 인정되어 주위 천만리 안쪽으로는 수사들이 출입을 삼가고 있었다.

건우와 유정정은 그곳에서 지금껏 서로의 정을 쌓고 사랑을 나누며 시간을 희롱하고 있었다.

오늘도 그들은 이즈음 새로운 단계를 바라보고 있는 쌍수수련에 전심전력을 다하던 중이었다.

"하아, 상공. 너무도 좋아요."

"그러게 말이오. 이렇게 서로의 의념이 하나의 거리낌도 없이 뒤섞이니, 이런 황홀경이 또 없소이다. 여기서 한 발만 더 나갈 수 있다면 더 바랄 것이 없을 것 같은데……

"그것은 선계의 진선이 되어서나 가능하지 않을까요?"

"어찌 잘만 하면 굳이 진선이 아니라도 가능할 듯 하지 않소?"

"지금껏 그런 기대로 수련에 매진했지만 역시 이 또한 천지 법칙의 제약이 있는 듯 해요. 그래도 요즘은 수련의 극에 이르러 간혹 그 건너를 맛보는 경우가 있으니……

"커엄. 솔직히 그 때문에 더욱 안달이 나지 않소. 더더욱 진선의 경지에 대한 갈망만 커지고 말이오."

"그렇기는 하지요. 사실 진선에 오르기만 한다면 우리의 쌍수수련도 더욱 진일보 하여 그 황홀함이 휠씬 지극할 텐데요."

"크으음. 그건 그렇지. 확실히 우리가 익힌 쌍수수련은 최고인 것 같소. 개인의 수련 경지를 견고하게 하는 것은 물론이고 작은 폐해들까지 씻어 주니 말이오."

"덕분에 우리가 익힌 모든 공법들을 태령기 완경의 극한까지 이루었지요. 남은 것은 쌍수수련의 벽을 넘는 것이라 여겼는데, 그것은 이제 불가능함을 깨달았네요."

"그것을 깨달은 것이 또 하나의 성장이라 할 수 있겠지. 하지만 이로써 우리가 정체될 수밖에 없게 되었음은 분명하오."

"그렇지요."

유정정은 그렇게 대답하고는 조용히 건우를 바라보았다.

"어찌 그러시오?"

평소와 다른 유정정의 모습에 건우가 눈빛 깊은 곳에 긴장을 억누르며 물었다.

"휴우, 상공께서도 아시지 않으셔요."

"내가 뭘 안단 말이오?"

"밖에 수사들이 이제는 참을 만큼 참은 모양인지 웅성거리기 시작했어요."

"멸계전이 지속되는 것에 대한 이야기요?"

"그게 아니면 무엇이겠어요?"

"이전에 내가 인계에서 경험했던 멸계전은 자그마치 수 백 만년을 이어졌소. 수미 세계의 멸계전이라고 해 봐야 이제 고작 2만 년이 조금 지났을 뿐이오."

"그거야 상공의 생각이지요. 하지만 눈앞에 먹음직한 음식이 있는데 먹지를 못하는 심정이야 오죽하겠어요?"

"언제든 때를 기다리면 선계로 올라갈 것인데, 서두르기는."

건우가 못마땅하다는 듯이 중얼거렸다.

"어찌 하시려고 그러셔요? 저야 상공께서 하시는 대로 따를 것이지만요."

"흐음. 내가 이대로 있으면 멸계전은 끝나지 않고 엍마든 이어지겠지. 하지만 그 또한 영원하진 못할 겁니다. 천지 법칙이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을 테니 말이오."

"그래도 상공의 경험을 생각하면 수 백 만 년 정도는……

"아니오. 그 때는 뭔가 다른 이유가 있어 그렇게 방치가 되었던 것이지 원래 멸계전이 그리 길게 이어질 수는 없는 것이오. 이곳 수미의 멸계전도 이렇게 답보 상태로 늘어지면 오래지 않아서 천지 법칙의 개입이 있을 것 이오."

"개입이라면?"

"좋은 쪽은 아니겠지. 어쩌면 처음부터 다시 멸계전을 치르게 될지도 모르고."

"어머, 그건 곤란하지 않을까요?"

"멸계전에 큰 공을 세운 내가 또한 멸계전을 훼방놓고 있는 격이니, 천지 법칙이 어떤 판결을 내릴지 모를 일이 아니겠소."

"그럼……. 어찌 하여요?"

유정정은 결국 묻고 싶지 않았던 것을 묻고 말았다.

그녀가 생각하기에 둘만의 시간은 이제 끝이 날 때가 되었던 것이다.

이대로 계속 고집을 부리다가는 건우와 자신, 모두에게 불행만 있을 것이다.

그런 사실을 고계 수사의 예감으로 느끼고 있으니 이제는 정말 뭔가를 해야 할 때였다.

"지금 멸계전이 끝나지 않는 것은 내가 공간 법칙의 힘으로 숨겨 놓은 그것 때문이오."

"네에. 저도 짐작하고 있어요."

"아마 다른 고계 수사들 몇도 이미 짐작하고 있을 것이오. 그럼에도 모른 척 하는 것은 나와 당신이 멸계전에서 세운 공적을 보아 배려한 것이겠지."

"네."

"솔직히 멸계전을 끝내는 것이야 간단한 문제요. 내가 숨겨 놓은 공간 통로를 파괴하면 그것으로 수미 세계는 선계로 편입될 것이 분명하오."

"하지만……. 상공께 문제가 있지 아니하여요? 상공께선……. 상공께서는……. 흑!"

"그렇소, 나는 선계에 들지 못하오. 아마 수미 세계가 선계로 편입되는 과정에 들어가게 되면 천지 법칙이 나에게 천겁을 내릴 것이오. 그리고 그것은 절대 막거나 피할 수 없는 것이겠지. 대천겁도 우습게 보일 그런 천겁 이 내릴 테니."

건우는 이미 그런 사실을 예상하고 있었기에 담담한 음성으로 말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 말을 듣는 유정정의 얼굴은 눈물바다가 되어 있었다.

< 끝나지 않는 멸계전의 이유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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