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환장 통수 선협전-321화 (321/4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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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멸계전이 끝나지 않는다 >

상이산맥, 대상총 분지에서 벌어진 큰 싸움은 결국 멸계 수사들의 전멸로 끝났다.

그런데 전투의 결과는 분명 멸계 수사들의 전멸로 예상한 바였지만 그 과정은 기대와 많이 달랐다.

애초에 몇 달 정도면 끝날 거라고 예상했던 전투가 십여 년을 끌었다.

그만큼 멸계 수사들의 저항이 강렬했다는 의미다.

이를 두고 수미 세계의 많은 수사들은 수사 개인의 전투 능력이 멸계 수사들에 비해 많이 부족하다는 평가를 내릴 수밖에 없었다.

대상총 분지 내부에는 처음부터 극멸기를 제약하는 강력한 진법이 설치되어 있었다.

수미 세계의 고계 수사들 사이에는 진법을 설치하고, 그 함정에 멸계 수사를 끌어들인 것이 건우라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었다.

다만 그렇게 모든 준비를 마친 후로 건우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는데, 이후 건우가 진대상총 안에서 진법을 통제하며 멸계 수사들이 분지 밖으로 나가는 것을 막고 있었음이 드러났다.

어쨌건 십여 년에 걸친 전쟁은 수미 수사들의 승리로 끝이 났다.

그 후에는 각 산맥과 거대 문파를 이끄는 고계 수사들이 나서서 그 동안 멸계 세력에게 빼앗겼던 바다와 산맥을 수복하기 시작했다.

이때에도 건우는 더 이상 앞으로 나서지 않았는데, 그런 건우가 다시 모습을 드러낸 곳은 알시평 혼돈역에서 가까운 함해의 작은 섬이었다.

부양도에 올라탄 건우가 섬에 이르자 섬에서 두 줄기 섬광이 늘어지며 길매와 혹선풍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들이 대상총을 떠난 후로 근 백여 년 만에 다시 만나는 것이었다.

건우가 이곳 함해까지 오는데 걸린 시간이 있었기 때문이다.

"오랜만에 뵈어요."

"드디어 왔군."

길매와 혹선풍이 부양도의 정자 앞에서 건우를 보며 인사를 했다.

건우는 정자 밖으로 나서서 그들을 맞이하며 물었다.

"어찌, 회포는 잘 풀었습니까?"

"아무리 긴 시간이었더라도 아쉬움이 남지 않을 수 있겠어요? 하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죠."

"석별의 인사야 이미 마쳤지. 주인님께서 길수사에게 전하기를 우리를 보내고 들어오라 하셨지."

건우의 말에 길매와 흑선풍이 각각 그렇게 말했다.

"이제 돌아가면 어찌 할 것입니까?"

건우가 다시 물었다.

"제가 이끄는 자미혙궁과 흑 수사의 충림이 서로 도우며 세력을 다지겠지요."

"이미 가 있던 자오로 등에 더하여 백 여 년 전에 권속 넷을 보냈으니 기반 다지기는 잘 되어 있을 테지. 일이 그렇게 잘 풀려 있다면 나와 길매 수사는 진선경에 도전하기 위해서 본계의 심처로 들어가야겠지."

"그래요. 상황이 나쁘지 않다면 진선경에 도전해야지요. 그래야 불로불사의 몸을 얻고, 언젠가 다시 상공을 만날 날을 기약하지 않겠어요?"

"이전에 보냈던 자오로 등은 천겁독 때문에 고생이 심할 텐데요?"

건우는 자오로의 이름에 문득 자신이 천겁독을 풀었던 네 수사를 떠올리며 물었다.

"상공께서 천겁독을 다룰 방법을 일러주셨으니 자오로와 다른 세 수사들을 더 잘 써 먹을 수 있을 거예요."

"그리 했단 말이군. 뭐, 상관없는 일이지."

건우는 분혼이 길매와 흑선풍에게 천겁독을 다룰 수 있는 공법을 넘겼다는 말에도 그리 놀라지 않았다.

어차피 이제 저들은 멸계로 돌아갈 것이고, 그 후로는 다시 보기 어려운 이들이다.

그런 이들에게 분혼이 나름의 선심을 썼다고 해서 뭐가 문제가 될까.

"그럼 둘은 곧바로 멸계로 돌아가도 되겠습니까?"

건우는 이들과 더 나눌 이야기가 없음을 깨닫고 그렇게 물었다.

"네, 최대한 빨리 가고 싶어요."

"이제 수미에서 할 일은 없다. 그러니 지금이라도 갈 수 있으면 가고 싶군."

그리고 길매와 흑선풍은 최대한 빨리 멸계로 돌아가고 싶다는 뜻을 비췄다.

특히 길매는 깊이 가라앉은 눈빛으로 애써 뭔가를 참는 기색이 역력했다.

건우도 그녀가 이곳, 정확히는 분혼의 곁을 떠나는 것을 아쉬워 한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하지만 수미 세계가 선계로 승격하게 되면 수미에 남은 멸계 수사들은 소멸을 면치 못할 것이다.

그러니 돌아갈 방법이 있다면 당연히 돌아가야 함이 옳았다.

"그럼 시간 끌 것 없겠습니다. 저도 미리 준비를 해 뒀으니 곧바로 귀환진을 발동시키겠습니다."

건우는 곧바로 둘을 멸계로 보낼 마음의 결단을 내렸다.

그런 그가 손을 들어 손바닥을 뒤집으며 영기를 뿜어내자 부양도의 표면에서 영기와 혼돈기가 치솟더니 허공에 진법 문양을 만들어 내기 시작했다.

건우는 곧바로 나타결공법을 펼쳐 삼두육비의 모습으로 변했다.

이어서 검은색의 머리를 이용하여 극멸기를 운용하기 시작했다.

멸계로 이어지는 공간 통로를 열기 위해서는 극멸기 역시 필요했기 때문이다.

"감사합니다. 길 수사."

"운명은 어찌 될지 알 수 없으니 후일을 기대해 보지. 잘 있어라."

건우가 공간 법칙을 이용하여 숨겨 놓았던 멸계와의 통로를 진법에 연결하자 길매와 흑선풍이 그렇게 마지막 인사를 하고는 훌쩍 몸을 날렸다. 건우는 그들이 공간통로로 사라지는 것을 지켜보다가 다시 공간법칙을 이용하여 멸계와 이어지는 공간통로를 회수했다. 그리고 망망대해에 홀로 떠 있는 작은 섬을 내려다 보았다.

- 제가 함께 가 드릴까요?

그런 건우의 머릿속에 유정정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공간에 머물던 유정정이 혹시라도 건우에게 도움이 될까 하는 마음에 물어보는 것이었다.

"괜잖소. 저 아래에 있는 분혼 역시 나인데, 무엇을 걱정하겠소."

하지만 건우는 슬쩍 고개를 흔들고는 출도령패를 꺼내어 부양도를 끌어넣고 미끄러지듯 섬으로 향했다.

그리고 섬의 중앙에 있는 작은 산에서 분혼이 세운 동부를 발견했다.

그런데 그가 동부 안으로 들어가려는 순간 엄청난 규모의 진법과 결계, 금제가 바다에서 떠올라 섬을 휘감기 시작했다.

그것은 외부로부터 섬을 보호하기 위한 것으로 건우가 보기에도 심오한 경지를 담고 있었다.

하지만 그것들이 건우를 만족시키기엔 조금 모자란 면이 있었다.

건우는 즉시 아공간을 열고 그 안에서 갖가지 진법 법기를 불러내어 섬을 에워싼 방어에 더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칠일 동안 진법과 결계, 금제를 더하여 완성시킨 건우가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동부 안으로 걸어들어갔다.

"왔군!"

그러자 동부의 전실 바닥에 가부좌를 하고 앉은 분혼이 건우를 맞이했다.

분혼은 멸계 수사로 태령기 완경에 이르러 있었는데 온 몸에 불길처럼 타오르는 검은 기운을 휘감고 있었다.

자세히 보니 그 검은 기운은 분혼의 몸을 이루는 일부란 사실을 알 수 있었다.

건우는 지금껏 그런 모습의 수사를 본 일이 없기에 분혼이 도대체 어떤 종족의 몸을 얻은 것인지 무척 궁금했다.

하지만 그것을 물어볼 이유는 없었다.

어차피 하나가 되 면 모든 것을 알 수 있을 터.

"서로 구구절절 떠들 것은 없겠지. 시간 낭비 할 것 없이 바로 시작하자."

건우는 분혼의 앞에 가부좌를 하고 앉으며 그렇게 말했고, 분혼 역시 같은 생각이라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그렇게 하지."

이어서 건우와 분혼은 동시에 유혼결을 끌어 올렸고, 같은 공법을 운용하며 나누어졌던 혼을 하나로 결합시키기 시작했다. 그렇게 다시 시간이 흘렀다.

"그러니까 분혼이 얻은 육체가 멸계에서도 희귀한 영체족이었다는 거군요?"

"완전 영체는 아니고, 영체 중에서도 마기로 이루어진 반영제를 몸으로 하는 종족이었다오. 특별히 마기가 뭉친 곳에서 자연적으로 태어나는 종족인데, 태생부터가 수사에 가깝지."

"영첸데 수사가 아닌 범인으로 태어난다는 건가요?"

"그렇다고 하오. 조금 특별한 종족인 셈이지. 어쨌건 그리 태어난 후에는 길매에게 맡겨 놓은 것을 찾기 위해 험한 길을 걸었지."

"흥! 그래서 좋으셨어요?"

건우는 분혼을 흡수한 후, 두 배로 강력해진 의념을 안정시키느라 적잖은 시간을 보내야 했다.

그러고 그렇게 의념을 안정시킨 후에는 유정정에게 분혼이 멸계에서 지냈던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었다.

그 시작이 분혼이 새로운 몸을 얻는 것이었는데, 이야기를 시작하고 얼마 되지도 않아서 서늘한 표정으로 이해못할 질문을 던진 것이다.

"좋다니? 그게 무슨 말이오? 앞뒤를 모르니 당신이 무엇을 묻는지 알기가 어렵구려."

건우는 난처한 표정으로 그렇게 말했다.

"정말 무슨 말인지 몰라서 그리 시치미를 떼시는 것이어요?"

유정정이 다시 한 번 눈꼬리를 끌어올리며 물었다.

하지만 건우는 여전히 영문을 몰라 당황할 뿐이었다.

"도대체 왜 이러는 것이오? 내가 당신에게 무얼 잘못하기라도 한 것이오?"

"흥! 상공은 아니지만 또 상공이기도 하지요."

"그게 무슨……. 설마?"

건우는 유정정의 말에 어리둥절하다가 문득 떠오르는 것이 있어 눈을 크게 떴다.

"이제 아시겠사와요?"

"하지만 그건……

"상공이 아니었다 하시겠어요?"

"아니, 아니라고 할 수는 없지만 또 그렇다고 하기에도 억울한 바가 없지는 않지 않겠소?"

"그래서 길매는 마음에 전혀 없다는 말씀이어요?"

"커엄."

유정정의 말에 건우는 크게 헛기침을 할 수밖에 없었다.

아니라고 할 수도 있지만 그것은 도리어 유정정을 속이는 것이 될 것이라 내키지 않는데, 또 사실을 인정하자니 그것도 유정정에게 상처가 될 것 같아서 망설여진 것이다.

"흥, 그것 보아요! 내 이럴 줄 알았어요."

그런 모습에 유정정이 단단히 토라진 듯 팔짱을 끼고 등을 돌렸다.

"어허, 정정. 왜 이러시오. 이미 끝난 일이 아니오. 길매 수사는 이미 멸계로 돌아가 다시 볼 일이 없을 터인데, 어찌 이리 마음을 쓰시오."

건우가 그런 정정의 어깨를 뒤에서 보듬어 안으며 그 마음을 달래려 애썼다. 유정정이 화가 난 것은 분혼이 길매와 연정을 주고받은 일 때문이었던 것이다.

건우로선 억울할 법도 한 일이지만, 따지자면 분혼 역시 그 자신이니 변명을 하기도 구차했다.

더구나 분혼이 가지고 있던 길매에 대한 마음, 분혼에게 주었던 길매의 깊은 애정이 또한 건우의 마음을 심란하게 하기도 했다.

두 혼이 하나가 되면서 분혼의 모든 것이 건우의 것이 되었으니 길매와의 연심 역시 건우에게 온전히 전해진 탓이었다.

"그 년이 멸계로 가지 않았다면 어찌 되었겠어요? 상공께서 그 년을 내칠 수 있었겠어요? 흥! 제가 상공의 마음을 모를 줄 아시어요?"

하지만 유정정은 쉽게 마음을 풀지 않았다.

쌍수수련을 하며 서로의 마음을 나누고 있는 유정정은 건우의 마음속에 들어와 있는 길매의 모습을 뚜렷하게 알아차릴 수 있었던 것이다.

건우 역시 그런 사실을 깨닫고는 지은 죄도 없이 죄인이 되어 유정정을 달래려 애써야 했다.

"정정, 다시 말하지만 이미 끊어진 인연이오. 솔직히 분혼 때문에 내 마음속에 길매 수사에 대한 연심이 남아 있기는 하오. 하지만 다시 만날 수 없는 인연을 두고 무슨 이유로 질투를 한단 말이오?"

"질투라니요? 제가 언제 질투를 하였답니까? 그저 상공의 마음에 다른 여인이 들어 있는 것이 못마땅할 뿐이지요."

"그건 분명 정정 당신에게 잘못한 것이 맞소. 하지만 내 사정도 이해를 해 주시구려. 아니면 차라리 의념의 강화를 포기하고 유혼결의 일부를 버리는 것은 어떻겠소? 그리하면 혹여 분혼으로부터 얻은 것을 되돌릴 수 있을지도 모르니."

"그 무슨 말씀이어요? 어렵게 얻은 성취를 어찌 버린단 말씀이어요?"

"하지만 길매 수사 때문에 우리의 쌍수수련도 지장을 받는 듯 하니, 우리 둘을 위해서라면 차라리 유혼결의 일부를 버리는 것이 좋을 수도 있지 않겠소?"

"흥! 되었어요. 상공께서도 제가 조금만 마음을 돌리면 쌍수수련의 문제는 사라질 것을 아시면서 그런 말씀을 하시는 것이지요?"

"알긴 내가 무얼 안다고 그러시오?"

"그리 말씀을 하셔도, 다 알고 있습니다. 지금 당장은 아니어도 제가 마음을 넉넉히 먹도록 해 보겠어요. 그리하여 상공의 모든 것을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 있다면 우리의 쌍수수련도 걸림돌을 치울 수 있겠지요. 그러니 조금만 기다리셔요."

"무슨 말을 그리 하오. 내가 마냥 기다리기만 할 수야 있겠소? 내 넘치는 사랑으로 정정 당신을 위로하리다. 그리하면 그대의 마음이 더 빨리 풀어지지 않겠소?"

"뭐, 그건 마음대로 하셔요. 흥!"

정정은 건우의 설득에 못이기는 척 져 주었다.

하지만 다른 여인을 가슴에 품고 있는 이를 이해하고 받아들여 쌍수수련을 온전하게 하는 데에는 오랜 시간이 필요했다.

이후로 건우와 유정정은 함해의 고도(孤島)에서 정을 쌓고 사랑을 나누며 수련에 몰두했다.

그 동안 수미의 수사들은 멸계 수사들을 몰아내고, 알시평 혼돈역에서 일곱 개의 공간 통로를 찾아내어 파괴했다.

하지만 무슨 일인지, 공간통로를 모두 처리했음에도 멸계전은 끝나지 않았고, 수미의 수사들은 혹시 혼돈역들 중 어딘가에 멸계로 통하는 공간 통로가 있을지 모른다는 의심을 하게 되었다.

이후 수미 세계에 존재하는 모든 혼돈역을 찾아 정리하는데 수 천 년의 시간이 흐르게 되었다.

< 멸계전이 끝나지 않는다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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