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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드디어 그림이 완성되고 화룡점정(晝龍點睛)만 남았다 >
수미 세계에 멸계 진영을 뒤흔드는 엄청난 소문이 거칠게 퍼져 나갔다.
그 시작은 3백 년 전에 있었던 자미혈궁과 충림 토벌부터였다.
그 때, 자미혈궁과 충림을 뒤쫓던 거대 세력은 사명당(死命黨), 흑송림(黑松林), 보량현천(保良玄天), 상인문(喪人門)까지 네 곳이었다.
그런데 이들이 자미혈궁과 충림을 상이 산맥의 대상총으로 몰아넣었을 때, 소문이 퍼졌다.
길우몽이라는 삼두육비의 수사가 그들 두 세력을 멸계로 보내려 한다는 이야기였다.
이에 4대 세력은 그 많은 인원을 모두 본계로 보내는 것은 어려운 일이라 여기며 대상총을 포위하고 상황을 지켜보기로 했다.
그리고 그 결과 자미혈궁과 충림이 대상총 안으로 들어간 후 감쪽같이 종적을 감춰버렸다.
이에 4대 세력에서는 대상총 안으로 태령기의 고위 수사들 몇을 보내어 상황을 살피게 했다.
하지만 그들 역시 대상총이 있는 분지로 들어간 후 소식이 두절되기는 마찬가지였다.
이후 4대 세력은 대상총을 포위하고 금지로 공표한 후, 수사들의 왕래를 금했다.
안쪽에서 자미혈궁과 충림이 모습을 감주긴 했지만 여전히 그곳에 있으리라 판단한 것이다.
그리고 그런 추측은 대상총에 진대상총이라 하는 상두족의 영지(靈地)가 있다는 사실을 알아냈기 때문에 더욱 설득력을 얻었다.
그것이 벌써 3백 년 전의 일이었다.
하지만 이즈음 그와 관련된 새로운 소문이 멸계 진영 전체에 빠르게 퍼지기 시작했다.
멸계전에 참가하기 위해서 사오리 소계에서 새로 넘어오는 수사들을 통해 자미혈궁과 충림이 멸계로 귀환한 사실이 전해졌던 것이다.
사오리(沙換理) 소계(小界)와 인접한 소계에 자미혈궁과 충림이 돌아와 터전을 잡고 세력을 크게 키웠다는 이야기였다.
특히 본계로 돌아온 이들 중에 진선의 경지에 도전하기 위해 멸계의 심처로 사라진 이들도 몇 명이나 있다고 했다.
멸계에서 일정 경지에 오르기 위해서는 계의 중심과 가까운 곳으로 가야 했다.
영기 수사들이 입령기와 진선의 경지에 오르기 위해서는 영계와 선계로 가야 하는 것처럼 멸계에서도 넘어야 하는 선이 있었던 것이다.
그런 이유로 충림과 자미혈궁의 태령기 수사들이 심처를 향해 움직였다니 크게 소문이 날 수밖에 없었다.
결국 그 이야기가 사오리 소계까지 흘러와 멸계전에 참가하려는 이들에게 전해졌다.
당연히 그들이 수미 세계로 넘어오면서 자미혈궁과 충림의 이야기를 이쪽에서 알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리고 그 때문에 결국 4대 세력의 수장이 한 자리에 모이게 되었다. .
"이제 어찌 할 것입니까?"
제일 먼저 입을 연 것은 보량현천을 이끌고 있는 천주였다.
"어쩌긴, 우리가 마이 산맥까지 영기 수사 놈들을 밀어내고 있는 상황에서 뭐가 두렵다고?"
사명당의 당주는 상황이 못마땅하여 나오는 대로 불만을 터트렸다.
"그런 허상에 빠져 본질을 보지 못하니 문제지요. 사실 본계에서 넘어온 세력의 대부분은 이곳 상이 대륙에 자리를 잡고 있습니다. 특히 그 중에 절반은 이곳에 있지요. 그건 당주 역시 마찬가지 아닙니까?"
보량현천주가 곧바로 사명당주를 타박했다.
모두 알고 있는 일에 억지를 쓰려 하니 그럴 수밖에 없는 일이었다.
"클클클. 우리끼리 뭘 감주고 숨길 게 있다고 그리 말을 가려 하는지 모르겠군. 이미 이곳 대상총 주변에 아군 태령기 대부분이 모였다. 다른 곳으로 가라고 해도 갈 생각들을 하지 않지."
이번에는 검은 장포를 입은 흑송림주가 뻔한 사실을 숨기려 하는 것이 우습다는 듯이 자조적인 어조로 말했다.
"후우. 그것하나 통제를 못한단 말입 니까?"
갈옷 상복을 입은 상인문의 문주가 한심스럽다는 듯이 중얼거렸다.
"통제를 못하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제자나 문도들을 이쪽으로 끌어 모으고 있는 거 아닌가? 솔직해 지자고 하는데도 체면을 차리려 하는군."
이에 흑송림주가 다시 한 번 어이가 없다는 표정으로 상인문주를 보며 말했다.
"하하하. 확실히 흑송림주는 혀가 날카롭습니다. 그래, 이왕 이렇게 된 거 다들 터놓고 이야기를 합시다."
"종다. 보량현천주가 그리 말을 하니 나도 숨기지 않겠다. 우리 흑송림은 모든 제자들을 이곳으로 모으는 중이다."
"나 역시 우리 사명당의 제자들에게 은밀히 이곳으로 오라 했다. 결국은 우리 모두 길우몽이란 놈의 귀환진을 탐내는 것이 아니냐."
"옳습니다. 이제 와서 아니라고 할 수가 있겠습니까? 얼마 전부터 수미 놈들이 곳곳에서 들고 일어나 우리를 공격하기 시작했습니다."
"우리가 이곳에 세력을 집중하고 있으니 다른 점령지역에 소홀할 수밖에 없지. 그나마 우리와 흑송림이 맡은 상이 대륙은 조금 나은 편이지만."
"지금 이런 상황에서도 제 얼굴에 금칠을 한단 말입니까? 이곳 상이 대륙에서 수미 놈들의 움직임이 덜한 것은 이곳에 우리 4대 세력이 모두 모여 있기 때문이지, 그것이 어디 사명당과 흑송림만의 공이라 할 수 있겠습니까?"
"어허, 보량현천주께서는 조금 진정하십시오. 어차피 이곳 상이 대륙에 우리 4대 세력의 전력이 거의 모인 상황이니 다른 지역 따위야 어찌되건 무슨 상관이겠습니까? 문제는 수미 놈들이 이곳 상이 산맥에서까지 우리를 이곳 대상총으로 몰고 있다는 것이지요."
"이곳으로 몬다기보다는 이곳에 핵심 전력이 있으니 감히 어쩌지 못하고 외곽에서부터 조이고 있다 보는 것이 옳지 않나?"
"클클클, 이유야 어찌 되었든! 우리가 지금 궁지에 몰리고 있다는 것은 사실이지."
"흐음."
"……. 그것 참."
흑송림주의 말을 끝으로 한동안 침묵이 흘렀다.
그들도 상황이 좋지 않다는 것을 알고 이 자리를 마련한 것이 아닌가.
이제는 정말 속을 털어놓고 난관을 해결할 방법을 찾아야 할 때였다.
"길우몽, 그 자가 대상총에서 귀환진을 열어주겠다고 했다지."
얼마 후 사명당의 당주가 다시 입을 열었다.
"클클. 대신에 요구하는 것이 너무 많지. 그것도 일단 절반은 먼저 내어 놓으라니……
"사실 우리 보량현전은 제자들이 모두 모이는 대로 대상총으로 들어갈 계획입니다."
"상인문 역시 다르지 않습니다. 이 전쟁은 가망이 없습니다. 고란사원은 오래 전에 무너졌고, 자미혈궁과 충림은 본계로 돌아갔습니다. 그 후로 전력의 차이가 심합니다."
보량현천주와 상인문주가 길우몽과 모종의 거래가 있음을 드러냈다.
그리고 멸계전이 이미 이쪽의 패배로 기울었음을 인정하는 말을 했다.
"따지고 보면 그것도 좀 이상한 일이야. 고란사원, 자미혈궁, 충림. 이들의 빈자리가 너무도 느리게 채워지고 있어."
"클클. 그야 알시평 혼돈역에 도착하는 놈들을 우리들이 갈라먹었기 때문이 아니냐. 다른 세력이 만들어질 여지를 주지 않았기에 그리 된 것을 지금 따져 무엇하자는 것인지?"
"흑송림주께서는 조금 진정하시지요. 그것을 고려하고도 사오리 소계에서 넘어오는 수사들의 수가 예상보다 적다는 뜻이 아니겠습니까."
"사실 전력보충만 원활했으면 조금 더 버텨볼 여지가 있기는 했지요."
사명당주의 발언을 시작으로 그들은 또 다시 현 상황에 대한 불만을 드러냈다.
멸계전이 그들의 생각과는 다르게 진행되는 것에 대한 짜증과 분노였다.
하지만 그것은 그리 길게 이어지지 못했다.
어차피 이 자리는 멸계전을 피해 본계로 돌아가는 것을 의논하기 위한 자리가 아닌가.
"쯧, 이만하지. 여기 있는 모두가 조만간 대상총으로 들어갈 생각을 하고 있는 모양인데, 딴 소리 할 게 뭐가 있나?"
결국 사명당주가 속 시원하게 이야기의 물꼬를 터 버렸다.
"사명당주께서는 길 수사가 요구하는 대로 귀환진을 발동시키는 대가의 절반을 먼저 내어 주기로 하신 것입니까?"
사명당주의 말에 상인문의 문주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아니면 방법이 있나? 벌써 알시평 혼돈역으로 수미 놈들이 밀려들고 있다는데? 그 놈들이 공간 통로 일곱을 모두 파괴하면? 그것으로 전쟁이 끝나게 될 터인데?"
사명당주가 거리낄 것도 없다는 듯이 그들 모두가 궁지에 몰려 있음을 지적했다. 그 말에 네 수사의 분위기는 더욱 어두워졌다.
"시간 끌 것 없습니다. 모두 상황을 알고 있는 것이 아닙니까. 우리가 지금 여기서 결정할 것은 대상총으로 들어가는 것과 그 이후의 귀환, 귀환 후 본계에서의 행보에 대한 것 들일 것입니다. 저는 우리 넷이 모두 하나의 수도 문파를 만드는 것이 어떨까합니다만."
그런 중에 보량현천주가 세력의 규합을 제안했다.
"음, 그럼 문파의 주인은 어찌 하자는 것이냐?"
"사명당주, 어차피 본계로 돌아간 후에 우리는 승경을 위해 심처로 향해야 합니다. 어차피 직접 손에 쥐고 있을 수도 없습니다."
"그래도 아랫것들에게 괜찮은 세력 하나를 맡겨 두면, 이후에 심처에서 세력을 일구는데 도움이 되기는 하겠지. 우리가 심처로 간다고 손에 쥐었던 것을 그냥 버리고 갈 수야 없지 클클클."
"옳습니다. 그야 그렇지요. 하지만 아시는 것처럼 각각의 세력은 본계로 넘어갔을 때, 그리 강력하지 못합니다. 그러니 하나로 뭉치는 것이 나쁠 것은 없지요."
"그리되면 하나의 이름 아래에 네 개의 파벌이 생기는 셈이지만, 그도 나쁠 것은 없지. 겉으로는 하나의 이름으로 뭉치고, 안으로는 경쟁을 하는 모양이 될 테니까."
"좋다. 나 또한 우리 네 세력의 연합에 동의하지."
"클클, 종다. 외부의 적은 함께 맞서고, 안에서는 경쟁을 하자? 나쁘지 않다."
"저 역시 동의하겠습니다. 그럼 이제 길우몽과의 협상도 하나가 된 연합의 이름으로 하면 되겠습니다."
"그래야지. 복잡하게 따로따로 그 자를 만날 이유는 없겠지."
"그리고 일단 본계로 돌아가 자리를 잡을 때까지는 그냥 사세연합(四勢聯合)이란 이름을 쓰기로 하지."
"좋습니다. 이름이야 이후에 다시 지어도 될 일이지요. 그럼 길우몽 그 자와의 의논은 어찌……"
"일단 그 자가 요구하는 대가를 정리해서 우리가……"
"클클. 이왕이면 우리 연합 전체가 함께……"
사세연합이란 말까지 나오자, 그 이후의 이야기는 빠르게 진행이 되기 시작했다.
그 동안 이야기의 진행을 가로막던 대부분의 것들이 사세연합이란 이름 앞에서 의미 없는 것이 되어 버렸기 때문이었다.
"상공! 상공!"
° 음?"
건우는 거대한 비석 기둥 위에 올라 앉아 명상을 하다가 유정정의 부름에 눈을 떴다.
그런 건우의 모습은 이제 삼두육비의 형상을 버리고 원래 건우의 모습으로 돌아와 있었다.
"죄송하여요. 상공의 수련을 이리 방해 하였네요."
"괜찮소. 이제 막 이 비석에 담긴 비의를 모두 쥐하고 머릿속에서 정리를 하던 참이었소."
"그래요? 호호. 그렇다면 그나마 다행이네요."
"그래서 무슨 일이오. 멸계 놈들의 연락이 오기라도 했소?"
"어머, 어찌 아셨어요? 설마 명상 수련을 하시면서도 바깥 상황을 살피고 계셨어요?"
"아니오. 이곳 진대상총에서 어찌 대상총을 그리 쉽게 살피겠소?''
"하려면 못할 것은 또 무엇이어요? 상공께서 대상총과 진대상총의 모든 진법을 손에 쥐고 계시는데."
"애써 대상총의 상황까지 살피진 않았다는 이야기요. 정정 당신이 이리 신경을 써 주니 내가 마음을 놓고 수련에 집중했던 것이지."
"호호, 참으로 간지러운 말씀을 이리도 서슴없이 하고 그러십니다."
°그래서 싫소?"
"호호호. 어찌 싫겠어요? 상공께서 저를 아끼시는 마음인데. 아참, 상공 말씀대로 멸계 놈들이 이제 완전히 포기한 모양이어요. 연합으로 세를 규합하고 그 이름으로 상공께서 요구한 대가를 준비했다 하여요."
"그럼 그것을 받은 후에 그들을 대상총으로 받아들이면 되겠군."
"그렇지요. 이제 참으로 큰 역사가 벌어지는 것이지요. 상공 홀로 영계에서 벌어진 멸계전을 승리로 이끄는 것이니 말이에요."
"하하. 어찌 나 홀로 이룬 일이란 말이오. 정정 그대는 물론이고 수미의 많은 수사들도 애쓴 바가 크오. 게다가 따지자면 길매와 흑선풍 같은 이들도 적잖은 공을 세웠지."
"아, 다른 이들은 몰라도 길매 수사와 흑선풍 수사의 공은 작다고 하지 못하겠네요."
"이를 말이겠소. 절대 작은 공이 아니지."
"그래서 자미혈궁과 충림을 멸계로 보내 준 것이잖아요."
"그런 이유도 있지만 사실 약간의 시간이 더 필요하다는 이유도 있었소."
"시간이요?"
"사실 멸계전을 끝내는 방법은 어찌보면 간단하오. 무언지 정정 당신도 알고 있지 않소?"
"그야 멸계에서 이곳 수미로 넘어오는 공간 통로를 완전히 닫아버리면 되는 일이지요. 그것이 멸계전 승리의 조건이 아닙니까."
"그런데 왜 초기에 공간 통로를 닫아버리지 않았는지도 아시오?"
"아이, 저를 뭐라 보시는 거여요? 공간 통로가 안정되지 않았으니 없애는 것도 어렵지요. 없애봐야 새로 다른 곳으로 길이 열리니 완전히 없애는 것이 불가능했지요."
"바로 그거요. 내가 300년 전에 이곳에서 일을 마무리 하려 했는데, 문득 수미 선문의 문주로부터 의념이 전해져 왔었소."
"수미 선문에서요? 그게 어찌 가능하죠?"
"하하하. 따지자면 명확한 의념이라 할 수는 없고, 그저 짧은 단상처럼 전해지는 몇 마디의 말이었을 뿐이오. 그 먼 거리를 격하고 어디에 있는지도 모를 나에게 소식을 전한 것만으로도 대단하긴 하지만."
"그래서요? 수미 선문의 문주가 뭐라 했기에 당시의 계획을 바꾼 거여요? 설마 공간 통로가 아직 완전히 굳어지지 않았다는 이야기였던 건가요?"
"역시 당신은 영민하오. 바로 그거요. 이제 거의 공간 통로가 안정되어 틀이 굳은 상태긴 하지만 미심쩍은 바가 있으니 300년 정도 시간을 더 두는 것이 좋겠다는 것이었지."
"호호호. 결국 자미혈궁과 충림을 돌려보낸 것에는 어쩔 수 없었던 면도 있었다는 말이네요?"
"애초의 계획대로 했으면 좀 더 많은 이득을 볼 수 있었겠지. 하지만 상황이 그렇다니 수미선문 문주의 바람을 안 들어줄 수도 없었소."
"호호호. 자미혈궁과 충림이 그 득을 크게 보았네요. 덕분이 길매 수사와 흑선풍 수사에게 진 마음의 빚을 조금 갚았으니 다행이라 해야겠지요."
"그리보면 또 그렇기도 하고."
"뭐, 어쨌거나 이제는 그 모든 것을 마무리 할 때가 되었네요. 자, 이만 일어나시어요. 밖에서 사세연합의 수좌들이 기다리고 있사와요."
유정정이 활짝 웃으며 건우에게 날아들어 손목을 잡아 끌었다.
건우는 그런 유정정에게 이끌려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어느 순간 둘의 모습은 밝은 둔광과 함께 씻은 듯이 사라졌다.
< 드디어 그림이 완성되고 화룡점정(晝龍點睛)만 남았다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