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환장 통수 선협전-318화 (318/499)

(317)

< 니들은 가라, 멸계로 >

상두족과 홍률상은 그야말로 앉은 자리에서 코가 베인 격이 되고 말았다.

그들은 건우가 홍률상의 기운을 1할도 가지고 가지 못하리라 예상했다.

하지만 건우는 홍률상이 그 동안 쌓은 기운을 불러일으키자 그것을 홍률상으로부터 떼어냈다.

그것은 마치 영기만이 아니라 그것을 쌓아둔 의념 공간 자체를 잘라내 가로챈 것이나 다름이 없는 모습이었다.

상두족의 두두들은 그 모습에 까무러질 정도로 놀라고 안타까워했지만, 그들이 할 수 있는 것은 그것뿐이었다.

발을 동동 구르며 아쉬워 할 지언정, 건우의 행사를 막을 명분이 없었던 것이다.

"이곳 진대상총에 구축한 진법과 바깥 대상총에 만든 것을 여러 수사들께서 확인해 보십시오. 저는 그것으로 멸계 수사들을 일망타진할 생각입니다."

건우는 상두족들에게 자신이 어떤 진법을 만들고 있는지를 확인시켜 주었고, 상두족의 두두들은 건우가 홍률상의 기운을 이용하는 것을 허락할 수밖에 없었다.

그만큼 건우가 만든 진법에는 엄청난 영기가 필요했던 것이다.

"이 방법이 성공하면 우리는 한순간에 멸계전에서 승리할 수 있습니다. 그리되면 이곳 수미 세계가 선계로 올라가게 될 것이니 여러분들의 경지 승격도 가능해 지겠지요. 제가 알기로 진선부터는 천겁도 없다 했으니 선계의 진선이 된다면 무엇이 아쉽겠습니까?"

이런 건우의 말에 상두족 두두들은 물론이고, 기운을 빼앗기는 당자사 홍률상도 반론을 제기하지 못했다.

더구나 홍률상은 부활하기 전에 저지른 일이 있어 제 의견을 주장할 입장도 아니었다.

그렇게 진대상총에서의 일이 대충 마무리가 되었다.

"호호, 상공께선 크게 이득을 보셨습니다. 홍률상이 그 동안 쌓은 기운을 얻은 것은 물론이고 상두족이 죽으며 남긴 많은 보물들도 챙기지 않았습니까."

"그렇게 말을 하면 정정 당신이라고 다르겠소? 당신도 적잖은 보물을 쟁긴 것으로 알고 있소만?"

"호호호. 저야 상공 덕분에 조금……

"그렇다면 그런 걸로 하십시다. 내가 정정의 주머니 속까지 파헤칠 이유야 없겠지."

"그리 말씀을 해 주시니 섭섭하기도 하고, 고맙기도 하고 그러네요. 그런데 상공."

"무슨 할 말이 있소?"

"그, 홍률상의 진혈은 어찌하실 생각이셔요?"

"음, 홍률상의 진혈?"

건우는 유정정의 물음에 살짝 곤혹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사실 이번 일에서 건우는 홍률상의 기운과 상두족의 보물뿐만이 아니라, 홍률상이 품고 있던 고위 영수의 진혈도 확보했던 것이다.

원래 태고 시대에 상두족들이 홍률상의 흙인형을 만들 때에 그 흙을 반죽하는데 물 대신에 사용한 것이 고위 영수의 진혈이었다. 이번에 건우는 홍률상의 몸에서 그 진혈 한 방울을 뽑아 낼 수 있었다.

상두족 두두들이 내부에서 동족의 영혼을 폭발시켜 홍률상의 존재가 사라지는 그 순간에 유정정이 슬쩍 진혈을 쥐한 것이다.

이런 일은 워낙 은밀하게 이루어진 것이라 유정정과 건우만 알 뿐, 진혈을 빼앗긴 홍률상도 알지 못했다.

어차피 지금의 홍률상은 원래의 홍률상이 아니라 이번에 새로 태어난 존재였다.

그러니 원래 자신의 몸에 얼마나 많은 진혈이 있었는지 알지 못했고, 그것이 아니라도 오랜 세월을 존재하며 진혈의 양도 자연스럽게 늘어난 상황이라 한 방울 정도는 크게 문제가 될 것도 아니었다.

홍률상이 진흙 인형에서 점차 고계 수사로 격이 높아지면서 진혈도 그만큼 늘어난 것이라 태령기 완경의 홍률상에게 한 방울의 진혈은 문제가 될 것이 없었다.

"좀 아쉽기는 하지. 몇 방울 더 얻었으면 종았을 텐데. 그랬으면 정정 당신도 무명공을 익혀봄직 하지 않았겠소?"

"호호. 우선 상공께서 익혀 보시고, 이후에 나쁘지 않으면 홍률상과 거래해서 진혈 한 방울을 얻어도 되지 않겠어요? 진혈이 귀하기는 하지만 한 방울 정도야 대가를 치른다면 얻지 못할 것도 아니지요."

애초에 쥐도 새도 모르게 슬쩍한 입장에서 할 말은 아니지만 유정정은 태연한 기색으로 그렇게 말했다.

게다가 유정정은 거대한 체구를 지닌 코끼리 계열 영수의 진혈로 무명공을 익히고 싶지는 않았다.

이름난 영수들 중에는 아름답게 생기고, 기운이 좋은 것들이 많은데, 굳이 코끼리일 이유가 없었던 것이다.

게다가 유정정은 정화 법칙을 수련하는 입장이라 다른 이질적인 것을 받아들이는 것이 쉽지도 않았다.

물론 무명공을 익히며 거기에 정화 법칙을 곁들인다면 정말로 진혈의 순순한 기운을 이용할 수 있겠지만, 일단 코끼리 영수의 진혈은 끌리는 느낌이 없었다.

"알았소. 정정 그대의 생각이 그렇다면 그리 하도록 하지. 어차피 지금 당장은 나도 홍률상의 진혈로 무명공을 익히고 있을 여유도 없고."

"그래도 상두족이 돕기로 했으니 진법을 만드는 것이 훧씬 쉬워지지 않았습니까."

"쉬워진다고 내가 없이 될 일은 아니지 않소. 믿고 맡겨두고만 있긴 어려우니."

"상공께서 준비하신 진법이 워낙 대단한 까닭이지요. 게다가 처음보다 서너 배는 더 나은 것으로 고치고 계시잖아요."

유정정은 상두족과 홍률상의 협조를 받게 된 후로, 건우가 대상총과 진대상총에 만들고 있는 진법이 바뀌고 있음을 지적했다.

이전에도 강력한 진법이었는데, 지금은 그보다 훨씬 위력적인 모습으로 바뀌고 있었다.

"할 수 있는 만큼 해야지. 자칫 준비가 부족하면 멸계전이 얼마나 길어지겠소."

"물론 그렇기는 하지만요."

"그래서 최선을 다하려는 것 뿐이요. 더구나 쓸만한 일꾼이나 자원도 넘치니 이럴 때가 아니면 언제 이런 역사(役事)를 해 보겠소."

"호호호. 그래요. 상공 말이 맞긴 하네요. 태령기 완경이라도 누가 있어 상공처럼 거창한 일을 도모하겠어요. 수백이 넘을지도 모를 멸계 수사들을 한꺼번에 함정에 넣어 떼로 몰살을 시키려는 것인데 말이에요."

유정정은 결국 건우의 뜻을 기껍게 받아들였다. 그리고 그 후로 다시 시간이 흘렀다.

*  *  *

"놈들이 오고 있다."

"그들은 우리 자미혈궁과 흑 수사의 충림을 어떻게든 차지하려 하고 있어요."

흑선풍과 길매가 대상총으로 돌아온 것은 자미혈궁과 충림이 대상총에 도착하기로 했던 때였다.

그 때문에 그들은 자신들의 문파인 자미혈궁과 충림의 궁도와 제자들과 함께 대상총으로 들어왔다.

대상총에 도착할 즈음에 자미혈궁과 충림의 소식을 듣고 그들을 인솔해 온 것이다.

"상두족은 어찌 되었습니까?"

건우가 우선 길매와 흑선풍에게 맡겼던 일에 대해서 물었다.

"영체기 수준의 수사도 찾기 어려웠어요. 철위 산맥에서부터 함해, 니민달라 산맥를 거쳐 상이해, 상이산맥에 이르기까지 두루 살폈지만 제사장은 고사하고 쓸만한 상두족수 사도 보지 못했죠."

길매가 먼저 허탈하다는 듯이 대답했다.

그 곁에선 흑선풍 역시 쓸데없이 시간 낭비만 했다는 표정이 역력했다.

"좋습니다. 그렇다면 제가 일러드린 일은 어찌 되었습니까? 모두 차질없이 옥간들을 남겼습니까?"

이번에는 건우가 또 다른 것을 물었다.

"그 일은 걱정하지 마세요. 시키신 대로 옥간들을 정확하게 던져두고 왔어요."

"나 역시 그 일은 실수 없이 해 냈다."

건우의 물음에 길매와 흑선풍이 나름 자신있는 표정으로 대답했다.

"그렇다면 남은 일은 수미 세계의 수사들이 알아서 할 일이겠군요."

건우가 흑선풍과 길매를 통해 정해진 곳에 가져다 둔 옥간은 이전에 만났던 괴뢰선과 종선생, 종관과 예예 등에게 전하는 것이었다.

그 옥간에는 이번에 건우가 꾸민 일에 대한 내용과 거기에 수미 세계의 수사들이 어찌 대응을 해야 할지에 대한 것이 들어 있었다.

늦지 않게 옥간을 던져 뒀다니 그 네 수사들 중에 누구라도 옥간을 얻어 수미 세계의 수사들을 움직일 것이다.

그들도 모두 태령기 완경에 이른 수사들이니 그만한 일은 이룰 명성이 있을 것이다.

원래 건우가 길매와 흑선풍을 진대상총 밖으로 내보낸 것은 상두족의 제사장을 찾으려는 의도 이외에 옥간을 통해 이쪽 상황을 알리려는 것도 있었던 것이다.

"이제 사명당과 흑송림, 보량현천, 상인문이 모두 이곳으로 몰려올 것인데, 그들이 대상총으로 뛰어들까요?"

그 때, 길매가 조금 걱정된다는 듯이 건우를 보며 물었다.

자미혈궁과 충림이 미끼가 되어서 다른 네 개의 세력을 이곳 대상총으로 유인하기는 했다.

하지만 이곳에 자미혈궁과 충림이 있다고 해서, 그 네 세력의 전력이 모두 모일 가능성은 그리 높지 않았다.

"자미혈궁과 충림의 제자들이 모두 멸계로 돌아가면 어찌 될 것 같습니까?"

그런 길매의 질문에 건우가 의외의 반문을 던졌다.

"저희 궁과 충림이 멸계로요? 여기서 다른 이들과 싸우는 것이 아니라요?"

"서로 상잔시켜 세력을 줄이는 것이 목적이 아니었습니까?"

건우의 말에 길매와 흑선풍이 놀란 표정으로 물었다.

"서로 죽고 죽이는 것도 나쁘진 않지만 자미혈궁과 충림이 멸계로 돌아가는 방법도 나쁘지 않은 것 같지 않습니까?"

"돌아갈 수 있다면 좋겠지요. 하지만 길 수사께서 우리 멸계 수사들의 사정을 보아주시려는 이유가 뭔지 모르겠습니다."

"어차피 영기 수련 수사와 우리 극멸기 수련 수사는 태생이 전적인 관계인데, 굳이 천적을 살려주려는 이유가 있나?"

건우의 태도는 건우의 분혼을 섬기는 길매와 흑선풍으로서도 이해가 되지 않는 모양이었다.

"어렵게 생각할 거 없습니다. 아무래도 그 놈들, 그러니까 자미혈궁과 충림을 제외한 놈들이 이곳 대상총으로 몽땅 들어오진 않을 거 같아서 생각한 방책일 뿐입니다."

그런 둘을 보며 건우가 말했다.

"그래서요? 우리 궁과 충림이 멸계로 돌아가면 그들이 모든 세력을 이끌고 대상총으로 들어올 거란 말인가요?"

"바로 그겁니다. 길매 수사의 말대로 되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자미혈궁과 층림이 이곳에서 멸계로 무사히 돌아간 것을 그들이 알게 된다면 어찌 되겠습니까?"

"음, 고란사원의 세력이 많이 꺾어졌고, 자미혈궁과 우리 충림까지 본계로 돌아가면, 남은 네 세력이 무척 곤란하겠군."

"옳습니다. 흑 수사 말대로 일곱 세력 중에 고작 넷만 남는 꼴이 되는데 어찌 그렇지 않겠습니까. 그리고 그리 되면. . . . . .

"길 수사를 통해서 멸계로 돌아가려는 결정을 할 확률이 높다는 말이지요?"

건우의 말을 길매가 가로챘다.

"그렇습니다. 게다가 이번에 소식을 보내 수미 세계 수사들을 대대적으로 동원할 생각이니, 그것까지 이루어지면 네 세력은 더욱 궁지에 몰릴 것입니다."

"아하! 결국 어차피 죽게 될 거면 본계로 돌아갈 기회를 잡자는 생각을 하겠군. 더구나 이곳에서 자미혈궁과 본 림이 멸계로 돌아간 것을 확인하면 더더욱 그렇겠어."

흑선풍도 감탄한 듯 탄성을 터트렸다.

"자미혈궁과 층림이 멸계로 돌아가면 시간은 좀 걸릴지 몰라도 그 소식은 반드시 다른 세력들의 귀에도 들어가겠지요. 저는 그것을 노리는 것입니다."

"하지만 길 수사의 방법으로 본계로 돌아가는 곳이 사오리 소계는 아니라 했잖아요. 자칫 사오리 소계와 너무 먼 곳으로 가게 되면 소식이 전해지는데 오래 걸릴 수도 있어요."

건우의 말에 길매는 또 다른 걸림돌을 찾아내었다.

"그건 걱정할 필요가 없습니다. 사오리 소계와 연결된 인접 소계로 이동될 테니 걱정하지 마십시오."

길매의 말에 건우가 웃으며 대답했다.

어차피 수미 세계와 멸계전을 벌이기 위해서 연결되는 공간 통로였다.

당연히 멸계전이 벌어지고 있는 곳에서 너무 먼 곳이면 멸계전의 공평성이 무너지게 된다.

적어도 천지 법칙이 허용하는 범위 내의 소계와 연결이 되어야 한다는 이야기다.

태령기 완경에 이른 덕분에 천지 법칙의 흐름을 그 정도는 짐작할 수 있게 된 건우였다.

"흠. 충림을 살려 보내 주겠다니 고마워해야겠군."

"저 역시 길 수사께 감사드려요. 일이 그렇게만 진행이 된다면 정말 종겠어요."

흑선풍과 길매가 결국 건우에게 고마운 마음을 담아 손을 모아 공수하고 고개를 숙였다.

< 니들은 가라, 멸계로 > 끝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