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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상(大象)을 잡을 방법 >
= 제 주제를 모르는 놈이 어찌 태령기까지 올랐는지 모르지만, 오늘이 네 놈의 제삿날이다!
쿠구구궁! 콰과과과광!
홍률상의 외침과 함께 그 몸을 묶고 있는 삼백육십 개의 쇠사슬에서 온갖 술법들이 펼쳐졌다.
홍률상은 쇠사슬을 이루는 고리 하나하나에 깃들어 있는 모든 공법들을 임의로 발동시킬 수 있었던 것이다.
삼백육십 줄의 쇠사슬을 이루는 수 만 개의 쇠고리들에서 제가 쓰기 좋은 공법들을 골라 건우를 향해 쏘아 낸 홍률상.
하지만 건우도 쉽게 당할 정도로 허술한 이는 아니었다.
건우의 손짓 한 번에 천 개의 성광검이 건우를 옹위하며 날아오는 모든 공격을 베어냈다.
콰과과과광! 콰과과광! 쩌저정!
건우는 네 개의 팔은 팔짱을 끼고 두 손만 이리저리 움직이며 홍률상의 공격을 어렵지 않게 막아냈다.
허공에 우뚝 서 있는 건우를 중심으로 하늘과 땅 곳곳에서 화려한 폭발이 일어났다.
삼두육비의 거인이 화려한 불꽃놀이 속에 서 있는 것 같은 모습이었다.
"이런 정도로 나를 어찌 할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은 아니겠지요? 보아하니 고작해야 쇠고리 두서너 개로 이루어진 공법만 쓰고 있지 않습니까. 하려면 적어도 쇠고리 쉰 개 이 상에 담긴 공법을 쓰셔야지요. 이래시야 어디 제 머리털 하나라도 불태울 수 있겠습니까?"
느긋하게 팔짱을 끼고 홍률상을 바라보며 이죽거리는 건우.
홍률상은 그런 건우의 모습에 지금껏 한 번도 움직이지 않았던 코가 움찔거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홍률상은 코에도 몇 줄의 쇠사슬이 얽혀 있는 상태.
난동을 부리고 싶어도 할 수는 없는 상황이라 눈빛만 사납게 이글거릴 뿐이었다.
= 그래, 고작 이런 수법으로 너를 어찌할 수 있으리라 생각지는 않았다. 하지만 이곳 진대상총이 나의 영역임을 너는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홍률상은 건우를 공격하려면 자신이 감수해야 할 손해가 클 것임을 짐작했다.
그래서 방법을 달리 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우르르르르릉 ! 쿠르르르르륵 !
"음? 대상! 진정 이리 나올 것이냐!"
대상의 수작에 건우가 버럭 소리를 질렀다.
이전과 달리 그의 어투에는 존대가 완전히 사라져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홍률상이 건우가 아닌 건우가 지금껏 구축해 둔 진법을 공격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우선 대지를 흔들어 진법을 일그러뜨리고 삼백육십 쇠사슬에서 온갖 공격 술법을 펼쳐 허공에 숨겨진 진법을 타격했다.
그것은 그간 건우가 고심해서 준비한 것을 쓸모없게 만들겠다는 의미였지만, 그 이면에는 멸계에 이익이 되더라도 상관하지 않겠다는 일그러진 의지가 담겨 있는 것이다. 건우의 분노는 그런 일면 때문에 더욱 커진 것이었다.
"좋다, 이렇게 나온다면 나도 어쩔 수 없겠지."
건우가 마음의 결정을 내렸다는 듯이 그렇게 중얼거리며 거대해진 삼두육비의 몸 위로 황금빛 기운을 끌어냈다.
나타결공법에 금강패갑공을 더한 것이다.
동시에 건우는 아공간에 있는 유정정에게 은밀한 부탁을 했다.
'정정, 당신은 경보에게 좀 다녀 오시오. 내가 저 코끼리와 싸우는 동안에 환상 세계에 신경을 슬 여유가 없을 테니, 그 사이에 안에서 크게 이득을 보라 하시오. '
알았어요. 그런데 괜찮겠어요? 여차하면 제가 나가서 상공을 도울까요?
'괜잖소. 어차피 지금은 저 놈을 죽일 수가 없소. 저 놈이 죽게 되면 저 놈이 품고 있는 상두족도 함께 죽을 것이오. 그러니 일단 상두족들이 저 놈과 분리된 다음에나 목을 딸 수 있소'
하지만 환상 세계의 일이 금방 끝나지는 않을 텐데요?
'나와 저 놈의 싸움 역시 간단히 끝나진 않을 것이오. 적어도 3년 이상은 싸움을 끌어 볼 테니, 그 사이에 최선을 다해 보라 전하시오. '
네, 알았어요. 참, 루야는 어찌 할까요? 승경을 위해서 수련중이라 방해하긴 좀 곤란하잖아요.
'괜찮소. 루야의 도움이 없이도 아공간 구현을 할 수 있잖소. 그리고 루야가 없는 대신에 정정 당신이 있으니 여차하면 당신의 도움을 받아도 되고. '
호호, 상공께서 그리 저를 믿어 주시니 기쁘기 한량없네요. 그리고 상공께서 전력으로 법칙의 힘을 쓰시면 저 코끼리가 어찌 그것을 견디겠어요? 그런데도 그리 말씀을 해 주시니……. 아, 저는 이만 경보에게 다녀 올게요.
'조심하시오. 저 코끼리 놈의 경계가 평소와 다를 테니. '
- 네, 걱정하지 마시어요. 그럼.
유정정은 그렇게 건우와의 대화를 마치고 곧바로 허공에 몸을 감추고 아공간 밖으로 나섰다.
그 때, 건우는 유정정과 대화를 하는 중에도 거침없이 성광검을 휘둘러 대상의 공격을 막아내는 중이었다.
"대상 어디 한 번 놀아보자꾸나!"
건우는 유정정을 보내고 드디어 대상과 본격적으로 싸워볼 준비를 마쳤다.
그리고 건우의 일천 성광검이 방어적인 태세를 벗어나 본격적으로 대상을 공격하기 시작했다.
대상은 쇠사슬에 묶여서 움직일 수 없는 상태였기에 건우의 공격을 쇠사슬에 담긴 공법들을 이용해 막을 수밖에 없었다.
콰과광! 꽈릉! 퍼버버벙!
조금 전까지는 건우를 중심으로 이루어지던 불꽃놀이의 범위가 크게 넓어졌다.
이제는 진대상총 전체에서 폭발이 일어났다.
콰직! 서거거거걱!
= 이 노음!
그런 중에 간혹 건우의 성광검이 대상의 몸에 상처를 내기도 했다.
그래봐야 작은 흠집을 낸 정도에 불과했지만 그것은 겉으로 보이는 것일 뿐.
성광검에 담긴 검공법의 힘은 대상에게 적잖은 피해를 주었다.
건우의 성광검에는 영기와 혼돈기는 물론이고, 혼돈기로 포장된 극멸기까지 담겨 있었다.
영기와는 상극인 극멸기가 대상의 몸에 파고들었으니 영기나 혼돈기에 비해서 그 피해가 더 클 수밖에 없었다.
= 고작 이런 정도로 나를 어쩔 수 있을 것 같으냐? 내가 쓸 수 있는 기운은 무궁하다. 아무리 싸워도 네가 나를 이길 수는 없을 것이다.
대상은 건우를 향해 자신감을 드러냈다.
비록 가진 기운을 한꺼번에 모두 쓸 수는 없지만 이용할 수 있는 기운은 그 바닥을 알 수 없을 정도로 많았다.
게다가 쇠사슬에는 또 얼마나 많은 공법들이 담겨 있던가.
결국 지구전으로 가도 자신이 유리하다는 생각에 홍률상은 의기양양했다.
하지만 건우는 그런 홍률상이 가소롭기만 했다.
그는 전력을 다한다면 홍률상을 제압할 자신이 있었다.
우우우우우웅! 푸쉬쉬쉬쉬!
그런데 그 때였다.
삼백육십 줄의 쇠사슬 중에서 여섯 개가 한꺼번에 붉은 빛을 내며 뜨거운 김을 뿜어냈다.
순간 건우는 대상이 음흉한 흉계를 꾸미고 있었음을 알아차렸다.
크게 대단치 않은 공격을 이어가면서 속으로는 엄정난 공격을 준비하고 있었던 것이 아닌가.
자그마치 쇠고리 몇 백 개도 아니고 쇠사슬 여섯 줄의 공법을 하나로 묶은 술법이라니!
그것은 건우로서도 바짝 긴장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었다.
= 그만 죽어라!
대상의 고함과 함께 붉은 빛을 머금었던 여섯 줄의 쇠사슬이 일제히 허물을 벗듯 붉은 쇠사슬 허상을 떠올렸다.
그리고 그것은 뱀처럼 요동치며 건우를 향해 날아와 건우의 몸을 칭칭 휘감으려 들었다.
건우는 몸을 피하려 했지만 그 붉은 쇠사슬은 이미 진대상총의 공간 전체를 가두고 있었다.
'이것은 수엽사 진광의 쇠그물보다 더욱 뛰어난 금제로군!'
건우는 곧바로 그 쇠사슬들의 효과를 알아 보았다.
대상을 가두고 묶어서 봉인하는 것.
그런 중에서도 매우 강력한 힘을 지닌 술법이었던 것이다.
"흥!"
하지만 건우는 코웃음을 치며 팔짱을 풀어 네 개의 손을 더하여 쇠사슬을 잡았다.
몸을 감으려는 여섯 개의 쇠사슬을 여섯 개의 손으로 움켜쥔 것이다.
그렇게 여섯 개의 쇠사슬을 통해서 건우와 대상(大象)이 의념을 겨루기 시작했다.
누구의 의념이 더욱 강력하고 단단하며 또 풍부한가.
그에 따라서 상대에게 투사할 수 있는 기운의 양도 달라지기 마련이다.
진대상총 안에 흐르는 기운을 누가 더 많이 장악할 수 있는가 하는 것에서부터 자신이 지 닌 기운을 상대에게 얼마나 쏟아 부을 수 있는가 하는 데까지. 이 모든 것은 의념 싸움에서 결판이 날 일이었다.
물론 그런 중에도 건우는 일천 개의 성광검으로 대상(大象)의 여러 공법들과 싸움을 벌이고 있었다.
밖에서는 성광검과 대상의 공격 술법이 쉼없이 부딪히고, 여섯 쇠사슬 허상을 통해서는 건우와 대상의 의념 싸움이 벌어졌다.
'이건 내가 바라던 바지. 이렇게 시간을 끌 수 있으면 나로선 나쁠 것이 없다. '
건우는 대상의 뱃속에서 일을 꾸미고 있을 경보를 떠올리며 그렇게 생각했다.
그리고 쌓아 놓은 기운이 엄청난 대상 또한 의념까지 팽팽하게 맞서는 이런 상황을 자신이 유리하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의념이 서로 엇비슷하다면 결국 을 수 있는 기운의 양에서 승패가 갈릴 것이기 때문이었다.
* * *
"경보, 자네가 나를 구했군. 아니 우리를 구했어."
"이제야 겨우 홍률상에 맞서 볼 정도가 되었을 뿐이지."
"아니지. 자네가 태령기 완경에 이른 우리를 먼저 구했으니 이제 뒷일은 그리 어려울 것이 없을 게야."
"이를 말인가. 아랫것들이야 구해내는 것이 별반 어려울 것이 없을 것이야."
환상 세계의 일면(一面).
홍률상의 눈을 피해서 상두족 여럿이 모여 있었다.
모여 있는 숫자는 모두 여 덟이었는데 그들은 모두 상아의 색이 달랐다.
그 중심에는 청동빛 상아를 지닌 경보가 있었다.
"그런데 그게 또 쉽지가 않습니다. 이미 많은 족인들이 홍률상에게 현혹되어 그 광신(狂信)이 도를 넘은 경우가 많습니다."
경보는 자신의 공을 치하하는 동족 수사들의 말에 어두운 표정으로 그렇게 말했다.
이미 홍률상에게 물든 이들 몇을 깨워 본 적이 있었다.
그런데 그들은 달콤한 꿈에 젖어서 도리어 현실로 끌어낸 경보를 욕하며 공격하곤 했다.
같은 태령기 완경이라도 그런 경우가 몇 번이나 있었는데, 그보다 경지가 낮은 족인들이야 오죽할까.
홍률상의 환상을 축복이라 믿으며 저주하고 공격하는 이들이 많을 것이다.
"그건 이미 예상했던 일이지. 경지가 낮은 경우는 그만큼 정신이 약할 수밖에 없음이니까."
"그럼 어찌하는 것이 좋겠습니까? 이대로 모두를 포기할 수는 없지 않습니까."
다른 상두족 수사가 걱정스런 표정으로 물었다.
그의 상아는 은홍색이었는데 상두족의 여러 부족 중에서도 다섯 손가락 안에 들 정도로 세력이 큰 부족의 두두(頭頭)였다.
"으음. 방법이 아주 없지는 않지."
아까부터 이야기를 주도하고 있는 이는 황금빛의 상아를 지닌 이로, 모든 상두족의 어른으로 추앙받던 상두족 전체의 대두두(大頭頭)였다.
"방법이 있단 말입니까? 그게 뭡니까?"
"홍률상을 우리가 통제하여, 현혹된 이들을 조금씩 치유하는 것이지. 시간이 오래 걸리기는 하겠지만 그리 하면 적어도 절반 이상은 구해 낼 수 있을 게야."
"아니 홍률상을 살려두자는 말입니까? 그건 말도 안 됩니다."
검은 상아를 지 닌 수사가 버럭 소리를 지르며 분노를 드러냈다.
"홍률상은 매우 강력한 힘을 지니고 있지. 일단 홍률상의 자아를 소멸시키고 족인들을 얽어맨 집혼(執魂) 공법을 우리가 조종할 수 있다면 우리 상두족의 번성을 절반은 지킬 수 있을 거라는 말이지."
"음, 그리하면 결국 홍률상은 죽는 것이나 다름이 없으니 나쁘지 않다 생각됩니다. 하지만 어찌 홍률상의 자아를 소멸시킨다는 말입니까?"
대두두의 설명에 어느 정도 분노를 가라앉힌 검은 상아의 수사가 차분해진 음성으로 물었다.
"그야 당연히 먼저 우리가 이 환상 세계를 장악해야지. 그렇게 하여 홍률상에게 흘러가는 족인들의 기원이나 신앙을 모두 단절시키면 홍률상은 존재 기반 자체가 사라지는 것 이지."
"하지만 진대상총 밖의 구산팔해에 흩어져 있는 족인들이 아주 없는 것은 아닙니다. 그들이 있는 이상은 홍률상의 존재는 사라질 수가 없습니다."
"그건 다른 방법이 있네."
"다른 방법이요?"
"이곳 환상 세계를 홍률상에게서 떼어내고 이후 진대상총도 수미 세계와 완전히 단절시키면 되는 것이네."
"완전한 단절이라면 결국 기원이나 기도, 믿음의 염 따위도 전해지지 못하게 한다는 말이 아닙니까. 하지만 그것은 불가능합니다."
대두두의 말에 은홍색 상아를 지닌 수사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그렇습니다. 그런 류의 의념은 공간을 초월하는 법입니다. 어찌 그것을 막는다는 말입니까?"
그러자 경보 역시 불가능하다는 의견을 내었다.
염원이니, 기원이니, 신앙이니 하는 종류의 의념은 차단하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알려진 것이었기 때문이다.
"오래 막을 이유는 없네. 아주 짧게, 찰나의 시간만 끊어도 되는 것이지. 그것만으로 홍률상은 이전의 홍률상이 아니게 될 터이니."
하지만 대두두는 여전히 그것이 가능하다는 듯이 말하고 있었다.
"아무리 짧은 시간이라도 끊어내기만 하면 홍률상이 소멸할 것이란 말입니까?"
그러자 지금까지 조용히 이야기를 듣고 있던 청옥빛 상아의 여성 수사가 대두두를 보며 물었다.
그녀 역시 대두두와 거의 비슷하게 오랜 세월을 살아온 수사였다.
"그것이 신앙을 기반으로 한 존재의 약점이지. 다시 상두족의 념과 이어지면 홍률상이 되살아나겠지. 하지만 그렇게 되살아난 놈은 불순한 부분이 완전히 사라지게 되겠지. 부활은 우리 상두족 전체의 기원과 바람, 염원, 신앙에 의한 것이니까. 그런 즉, 일을 그리 할 수만 있다면 오랜 시간동안 불순하게 만들어진 지금의 홍률상의 모든 것은 사라진다고 봐야지."
대두두는 지그시 눈을 감고 그렇게 말을 하며 고개를 주억 거렸다.
"허면, 무슨 수로 진대상총을 외부와 완전히 단절시킨다는 말씀입니까?"
경보가 더는 못참겠다는 듯이 대두두를 보며 그렇게 물었다.
"아주 강력한 기운을 폭발시켜서 외부에서 들어오는 모든 것을 차단하는 방법을 쓰는 것이지. 특히 홍률상의 존재 기반이 될 수 있는 종류의 의념을 폭발시키는 것이 제일 좋겠지."
대두두가 눈을 뜨며 말했다.
"그렇군요. 마짐 거기에 딱 알맞은 자원이 이곳에 참으로 많이 있기도 하고 말입니다."
그러자 다른 일곱 수사들 중에 하나가 문득 깨달은 바가 있는지 그렇게 말했고, 나머지 상두족 수사들도 오래지 않아서 대두두가 말한 것이 무엇인지 알아차렸다.
"이미 돌이킬 수 없는 상태가 된 족인들을 이용하자는 말씀이군요. 거기에 더해서 오래 전에 죽었어야 하는데 죽지 못하고 홍률상에게 잡혀 있는 조상들까지."
경보가 마지막으로 그 모든 내용을 확인하듯 중얼거렸다.
대두두와 다른 수사들도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 대상(大象)을 잡을 방법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