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환장 통수 선협전-308화 (308/4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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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건우는 무슨 큰 그림을 그리고 있을까 >

카라라라라랑!

여섯 개의 검이 현란하게 번뜩이며 아살을 향해 날아들고, 아살은 비수를 둘로 나누어 들고 그 공격을 막았다. 하지만 아살은 건우의 공세를 오래 버 틸 수가 없었다.

건우가 공격을 시작하는 것과 동시에 그에게 쏟아진 의념이 너무 강했다.

아살도 태령기 완경이었지만 건우와 비교하면 의념의 차이가 컸다.

아살 역시 나름의 수련으로 의념을 키워왔지만 건우에 비할 수는 없었던 것이다.

짧은 시간만에 의념이 짓눌리고, 그에 따라서 활용할 수 있는 극멸기의 양도 줄어드니 아살이 견딜 방도가 없었다.

하지만 아살은 고란사원의 암살자들 중에서도 최고의 경지에 오른 자.

그런 그가 숨겨둔 비장의 한 수가 없을까.

"죽이리라(殺)!"

푸푹!

"크으음."

아살이 고함을 지르더니 스스로 비수 하나를 자신의 심장에 박아 넣었다.

푸화화화확!

그러자 갑자기 그의 기운이 이전보다 몇 배는 증폭되었다.

건우는 물론이고 다른 수사들도 모두 아살이 숨겨 놓은 회심의 한 수를 쓰기 위해 목숨을 걸었음을 알아차렸다.

"하하하핫! 재미있구나! 어디 와 봐라!"

건우가 그 모습에 세 개의 얼굴 모두 크게 웃으며 여섯 팔을 벌려 아살을 도발했다.

아살은 그것을 보고 곧바로 모든 기운을 자신의 본명 법보인 검은 비수에 쏟아 넣었다.

그러자 아살의 몸까지 모두 검은 기운으로 변하더니 그 비수 하나에 스며들었고, 이어서 빛살 같은 속도로 비수가 건우의 가슴으로 향해 날아들었다.

"흥!"

하지만 그 순간 지금껏 옆으로 밀려나 있던 진광이 코웃음을 치며 자신의 쇠그물을 확 잡아 당겼다.

촤롸롸롸롹! 치리리리릭!

그러자 그물이 건우 앞으로 장막처럼 늘어졌고, 아살의 비수는 그 장막에 막혀 힘을 잃고 말았다.

진광의 그물이 날아오는 돌을 막는 비단 천처럼 아살의 비수에 담긴 속도와 힘, 날카로움을 흩어버렸기 때문이다.

"멍청한 놈, 네 놈들의 수작이 목표물에겐 강력한 힘을 보이지만 그 외의 간섭에는 이리 무력해짐을 내가 모를 줄 알았더냐?"

그렇게 비수를 막은 진광이 의기양양하게 거들먹거리며 말했다.

치이이이이이잉!

그 때, 건우가 검 하나를 뻗어 아살의 비수를 흡(吸)자결의 수법으로 검날에 붙여 들어 올렸다.

아살의 검은 비수는 건우의 성광검에 붙은 상태로 끌려올라가며 애처로운 도명(刀鳴)을 울렸다.

건우는 그렇게 들어 올린 아살의 검은 비수를 성광검의 검날 위에 올리고 이리저리 살피다가 홀연히 어디론가로 감춰 버렸다.

진광은 그 모습에 아까운 듯 입술을 핥았지만 건우에게 따지진 않았다.

아살의 첫 공격을 막아준 일도 있는데 보물을 탐내는 추태를 보일 수는 없었던 것이다.

치이잉 치이잉! 치리리링!

"크악!"

푸화화확!

"컥!"

그 때, 아살이 당하는 모습에 평정심을 잃었는지 고란사원의 원로 둘이 길매와 흑선풍의 공격을 버티지 못하고 비명과 함께 쓰러졌다.

길매가 만든 서른여섯 개의 수인은 그 하나하나가 각기 다른 공격 술법을 담고 있었는데, 때로는 그 수인들 여럿이 하나로 뭉쳐 더욱 강력한 술법을 만들곤 했다.

고란사원의 원로 하나는 쉼 없이 이어지는 수인들의 공세를 이기지 못하고 몸이 찢겨 죽었다.

그리고 다른 하나는 흑선풍의 몸을 이루는 흑금색의 매미들에게 휩싸여 흔적도 남기지 못하고 사라진 것이다.

"끝났군."

흑선풍이 원로 하나를 씹어 삼킨 흑금색 매미들을 몸으로 불러들이며 그렇게 말할 때, 그가 부리는 사슴벌레 입을 가진 거대 곤충 괴수가 이전에 허리를 잘랐던 원로의 영체를 씹어 삼키는 중이었다.

그 원로는 진광과 길매, 흑선풍이 아살과 다른 두 원로를 상대할 때에 틈을 보아 몸을 피하려 했지만 주위를 포위한 여섯 태령기 수사들에게 막혀 있다가 거대 곤충 괴수에게 잡아먹힌 것이다.

"진광 수사, 길매 수사, 흑 수사."

건우가 세 수사의 이름을 불러 그들을 한 곳으로 모았다.

"아시겠지만 이번 일은 절대 소문이 나서는 안 될 일입니다."

그리고 모인 세 수사를 향해서 엄중한 목소리로 다짐하듯 말했다.

"걱정하지 마라. 내가 데려온 녀석들은 금제에 걸려 있어 내 뜻을 거역치 못한다."

"우리 궁도들 역시 염려할 필요 없습니다. 제가 약속을 드리지요."

"내가 데려온 녀석들도 걱정할 필요 없다. 어차피 충림 소속은 개인보다 군체의 이익을 먼저 생각한다. 그러니 림주인 내 명을 거역하지 않을 것이다."

건우의 말에 진광과 길매, 흑선풍이 모두 비밀을 지킬 수 있다고 자신했다.

그러자 건우도 표정이 조금 풀어졌다.

"아시겠지만 이번 일로 7대 세력 중에 고란사원의 세력이 크게 약화되었습니다. 아울러서 태령기 수사도 이번 전쟁에서 목숨을 보장할 수 없다는 불안감도 커질 것입니다."

"이번 일이 아니어도 그 동안 길 수사가 죽인 태령기급 수사가 여덟은 되는 걸로 알고 있는데? 불안감이야 이미 이전부터 조금씩 퍼지던 중이지."

"맞아요. 하필 이곳 상이산맥에서 죽은 태령기 수사들이 많아, 영기 수사 놈들이 침투해서 일을 벌인다는 소문이 퍼지는 중이죠."

"그게 전부 길 수사가 이곳 상이산맥을 휩쓸고 다니며 공공연히 살육을 벌인 탓이지. 아무리 생각해도 길 수사의 재주는 놀랍기 짝이 없단 말이지."

제일 뒤에 흑선풍은 건우가 상이산맥에서 멸계 수사들을 죽이고 다니면서도 한 번도 정체가 드러나지 않은 것에 감탄하며 부러운 기색을 보였다.

몇 십 년 동안 상이산맥에서 신출귀몰하며 멸계 수사들을 잡은 건우의 행적에 놀라며 그 수법을 궁금하게 여기는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건우가 아공간의 비밀을 알려줄 일이 어디 있겠는가.

"쯧쯧. 흑 수사의 비기를 내가 탐내면 흑 수사는 기분이 좋겠습니까? 괜한 이야기로 서로 심기를 거스르는 일은 없었으면 합니다."

건우가 흑선풍을 보며 슬쩍 못마땅한 기색을 드러냈다.

그러자 곧바로 흑선풍이 손을 내저었다.

"원, 무에 그리 예민하게 굴어? 그저 농으로 한 말일 뿐인데?"

"농이라 하시니 넘어가겠습니다만, 이후로는 조심해 주시지요."

"쯧. 알았다. 내가 실수를 한 것 같으니 앞으로는 조심하지."

사실 흑선풍은 건우의 분혼이 거느린 권속인 바, 주인인 분혼이 각별히 대하라 명령한 건우를 거역할 수는 없는 입장이었다.

다만 지금 상황은 진광 앞에서 길매나 흑선풍과 특별한 사이가 아님을 꾸며 보이기 위한 모습이었다.

"자자, 왜들 그리 날을 세우나? 이번 일도 무사히 끝이 났으니 축하를 해도 모자랄 상황에."

진광이 슬그머니 건우와 흑선풍 사이로 끼어들며 분위기를 바꾸려 했다.

그러자 건우와 흑선풍이 서로를 외면하며 먼산을 보기 시작했다.

"어쨌건 이제 일의 절반은 이룬 것이지?"

그런 중에 진광이 건우의 눈치를 보며 물었다.

"이제 적당한 때를 보아서 귀환진에 대한 소문을 내야지요."

"그러면 그 다음은 제가 나서면 되겠군요? 아무래도 본계로 돌아가기 전에 크게 한 몫을 잡으려는 이들이 생길 테니 말입니다."

건우의 말에 길매가 대화에 끼어들었다.

건우의 계획은 멸계 본계로 돌아갈 수 있는 귀환진에 대한 소문을 퍼트리는 것이 끝이 아니었다.

그 소문을 듣고 몸이 달아오를 멸계 수사들을 유인하여 크게 세력을 꺾어 놓는 것도 계획에 들어 있는데, 그것은 1차적으로 길매가 담당하기로 한 것이다.

"나도 그에 맞춰서 준비를 하지. 제대로만 된다면 아주 큰 이득을 볼 수 있겠지."

"나도 정말 기대가 되는군."

흑선풍까지 나서서 건우가 세운 계획에 대해서 이야기하자 진광이 눈빛을 반짝이며 끼어들었다.

"진광 수사는 그 전에 본계로 돌아간다 하지 않으셨나요? 애초에 진광 수사가 귀환진으로 돌아가는 모습을 보이는 것이 길 수사의 귀환진을 확인하는 마지막 과정이었잖아요."

진광의 말에 길매가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

원래 진광은 계획의 중간에 멸계로 돌아가기로 이야기가 되어 있었던 것이다.

무엇보다 본계 귀환을 원하는 진광을 건우의 계획에 끝까지 동참시키기 어렵다는 생각에 적당한 역할을 주고 중간에 돌려 보내기로 했었다.

그런데 갑자기 그가 떠난 뒤에 있을 일에 대해서 흥미를 보이니 길매가 의아해 하는 것이다.

"커엄. 귀환진이야 이미 진위 증명을 마쳤으니 내가 조금 늦게 간다고 해서 문제될 건 없을 것 같은데? 안 그래?"

진광은 건우에게 수련 자원을 지원하여 본계로 돌아갈 진법을 만들게 했다.

건우는 진광이 정해준 은밀한 곳에서 진법을 만들고 금제에 걸린 저계 수사 몇을 멸계로 보낸 후, 그들이 다시 수미 세계로 오도록 했다.

그 중에 몇은 멸계로 간 뒤에 죽어서 돌아오지 못했지만 절반 이상이 다시 돌아온 것으로 귀환진이 멸계로 안전하게 돌아갈 방법이 된다는 것을 증명했다.

진광은 그 과정을 모두 확인했기에 건우의 귀환진을 의심하지 않았다.

다만 건우도 진광을 이용할 곳이 있었기에 계획의 중간 과정까지 함께 하는 것으로 의논을 해 놓았던 상황이었다.

그런데 뜻밖에도 진광이 약속 했던 때에 돌아가지 않고 계속 남겠다는 뜻을 보이는 것이다.

"설마 돌아가지 않고 끝까지 남겠다는 말인가요?"

진광의 말에 길매가 눈을 매섭게 뜨고 노려보며 물었다.

"내가 원래 욕심이 없는 사람이라 그저 본계로 돌아가는 것만 생각을 했단 말이지. 그런데 막상 일이 이렇게 되고 보니 주머니를 두둑하게 채워 가는 것이 좋겠단 생각이 들지 뭐야?"

"진광 수사, 그냥 계획대로 하는 것이 좋겠다. 네가 끼어들면 우리의 몫이 줄어들게 되는데 누가 너를 반긴단 말이냐?"

진광의 말에 이번에는 흑선풍이 형형한 눈빛으로 그를 노려보며 거북한 기색을 드러냈다.

"내가 그냥 이익만 보겠다는 것은 아니다. 나도 적극적으로 나서서 일의 성공을 돕겠다. 그래서 내가 세운 공만큼 이득을 나눠 받겠다는 소리다."

"나는 별로 탐탁치않아요. 진광 수사가 없는 상태를 상정해서 계획을 세웠어요. 지금 와서 그걸 바꿀 이유는 없어요."

"나도 마찬가지다. 앞서 약조한 대로 하는 것이 좋겠다. 길 수사, 네 생각은 어떠냐?"

결국 흑선풍이 조용히 듣고만 있는 건우를 끌어들였다.

건우는 여섯 개의 팔을 교차하여 팔짱을 낀 상태로 진광과 길매, 흑선풍을 잠시 바라보다가 입을 열었다.

"지금 계획으론 마지막에 멸계 세력의 4할 정도를 끌어들일 수 있다고 보았습니다. 만약 진광 수사가 남아서 일을 돕는다면, 그 4할 이상 성과가 났을 때에만 이득을 나누는 것 으로 하지요. 대신에 4할 이상이 된 부분은 모두 진광 수사에게 드리는 걸로 하면 되지 않겠습니까?"

"4할까지는 우리 셋이 나누는 것이라면 찬성하겠어요."

"나는 마음에 들지 않지만 길 수사와 길매 수사가 동의했으니 어쩔 수 없군. 그렇게 하는 걸로 하지."

"끄응, 4할 이상이 쉽지는 않을 거 같은데? 하지만 운이 좋으면 7할, 아니 8할이라도 끌어들일 방도가 있겠지. 좋다. 나도 받아들이지."

길매, 흑선풍이 찬성하자 진광도 어쩔 수 없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그 뒤로는 진광을 내세워 귀환진이 실제로 효과가 있음을 증명하려던 계획을 어찌 바꿀지 의논하는 시간이 이어졌다.

그리고 얼마 후 그들은, 죽은 고란사원 원로들의 재물을 적당히 나눈 후에, 후일을 기약하며 각자의 길을 떠났다.

< 건우는 무슨 큰 그림을 그리고 있을까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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