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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환장 통수 선협전-306화 (306/4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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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밑밥을 뿌리면 입질이 오겠지 >

"좋아! 네 말이 사실이라면 마땅히 네 제안을 받아들일 생각이 있다."

진광은 고민할 것도 없다는 듯이 흔쾌히 답을 내렸다.

"그것 참 다행입니다. 하하하."

"하지만!"

"하지만 이라니요?"

"네 말이 사실임을 내가 확인해야 하지 않겠느냐? 그렇지 않고서야 내가 너를 어찌 믿고 거사를 도모한단 말이냐?"

그러나 진광도 건우로부터 확실한 증거를 보고자 했다.

그리고 건우도 그 정도는 예상하고 있었기에 별로 놀라지 않았다.

"좋습니다. 당연히 그렇게 해야지요. 제가 멸계로 갈 수 있는 공간 통로를 열어 보여 드리겠습니다."

"지금 여기서 말이냐?"

"하하하. 어찌 그것이 그리 쉽겠습니까. 마땅히 준비를 해야 하니 시간을 주셔야지요."

"으음?"

건우의 말에 진광이 의심스러운 눈초리를 보냈다.

그러자 건우가 다시 말을 이었다.

"그리 의심하지 마십시오. 진광 수사께서 은밀한 자리를 마련해 주시면 그곳에서 일을 진행할 것이니 말입니다."

"그러니까 내가 정해주는 곳에서 멸계로 갈 통로를 만들겠다고?"

"그렇습니다. 물론 거기에 들어가는 자원이야 마땅히 진광 수사께서 준비를 해 주셔야겠지요."

"음? 그걸 내가 책임져야 한다는 말이냐?"

"아니 그럼 진광 수사가 필요해서 만드는 것인데, 그것을 내 주머니를 털어 만들어야 한다는 말입니까? 그럴 것이면 내가 굳이 왜 그 일을 하겠습니까?"

건우가 약간 화가 난 표정으로 진광을 노려보며 말했다.

"거래는 길 수사가 청한 것이 아닌가. 그런데 그 소모 자원을 내가 대야 한다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은 듯 하니……?"

"그럼 없던 일로 하지요. 대신에 흑송림이나 상인문, 그도 아니면 중림을 찾아가서 제안을 해 보면 되겠지요."

건우가 뒷짐을 지고 수미 세계로 넘어온 멸계 기개 세력 중에 몇을 언급하며 말했다.

그러자 진광도 생각이 깊어진 얼굴로 고민을 하는 듯 하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좋다. 내가 필요한 자원을 대기로 하지. 그러니 따로 다른 놈들을 찾을 필요는 없다."

"하하. 그리 약속을 해 주신다면야 저로서도 다른 이들보다는 진광 수사와 일을 도모하는 것이 좋지요. 아무래도 모르는 이들보다야 좋지 않겠습니까."

"흥! 허튼 소리는 늘어놓을 것도 없다. 너는 그저 네 자신의 말을 증명하면 그 뿐이다."

"알겠습니다. 그것은 걱정하지 마십시오. 하지만 이것 하나는 알아두시기 바랍니다."

건우가 굳은 표정으로 단호하게 말했다.

"무엇을 말이냐?"

"이번에 멸계로 가는 통로를 열어 증명을 하긴 하겠지만, 그 통로를 진광 수사가 이용할 수는 없다는 것 말입니다."

"보여주기만 하겠다는 말이구나."

"그야 당연한 일이 아니겠습니까?"

"좋다. 그 역시 받아들이지."

"하하하. 확실히 일처리가 화통한 면이 있으십니다."

"그럼 준비가 되는 대로 다시 연락을 할 테니 기다리거라."

"그렇게 하지요."

"그런데……

나중에 다시 연락하자던 진광이 곧바로 자리를 뜨지 않고 주저하는 기색으로 건우를 보았다.

"무슨 일이십 니까? 또 남은 것이 있습니까?"

건우가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

"으음. 예전 그 때, 어떻게 내 습포흑질(襲拘黑蛭)을 벗어났던 것이냐? 분명히 의념공간에 녹아들어 성령기였던 네 수준으로는 어찌할 수 없었을 것인데?"

진광이 과거 건우가 알시평에서 도망쳤던 것을 두고 이해할 수 없다는 듯이 물었다.

당시에 건우는 고작 성령기에 불과했다.

그런 경지로는 자신의 습포흑질(襲拘黑蛭)을 절대 벗어날 수 없다고 확신하는 진광이었다. 그런데 그런 확신을 깨트린 이가 눈앞에 있으니 그 방법이 궁금한 것이다.

"그것이 습포흑질이었습니까? 돌이켜 보니 그 때문에 이 길모가 크게 곤욕을 치렀던 일이 있었습니다 그려?"

건우가 그 말을 듣더니 세 얼굴 모두를 흉하게 일그러뜨리며 진광을 노려봤다.

마치 이제야 그것이 기억나기라도 한 듯이.

"허엄. 어찌 이러나? 이미 지난 일에 격한 반응을 보일 일이 뭐가 있다고!"

진광이 급히 몇 걸음 물러나며 과장되게 손을 내저었다.

그러면서도 진광은 당장이라도 등 뒤에 지고 있는 쇠그물을 던질 듯이 그물 쥔 손에 힘을 주고 있었다.

"그러게 말입니다. 지난 일이라 잊고자 했는데 진광 수사께서 그 일을 거론하니 묻어 두었던 감정이 되살아난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러기에 왜 그런 이야기를 꺼내셨답니까?"

건우가 여전히 표정을 풀지 않고 진광을 질책하며 말했다.

그 모습은 당장이라도 진광을 향해 달려들 것처럼 위험해 보였다.

"허어, 이것 참. 오래 있을 자리가 아니로군. 나는 이만 갈 테니, 마음을 잘 다스리게. 그리고 준비가 되는 대로 연락을 할 것이니 그리 알고."

진광은 건우의 기세가 심상치 않음을 느꼈는지 곧바로 흑석으로 된 패 하나를 던져주고 둔광과 함께 모습을 감췄다.

= 호호호호. 꽁지에 불이 붙은 망아지 같지 않습니까. 저리 꼴불견으로 도망을 가다니 말입니다.

그 모습을 아공간에서 지켜보고 있던 유정정이, 배를 잡고 웃었다.

그 소리에 건우 역시 표정을 풀고 피식 웃고 말았다.

'교활한 놈입니다. 어차피 내가 자신과 싸우지 않을 것을 알면서도 어리석은 척 스스로를 꾸민 것이 아니겠습니까.'

= 흐응, 그럴 수도 있겠네요. 그게 아니라도 조금만 시간이 흐르면 상공께서 자신을 해칠 뜻이 없음을 알아차렸겠지요.

'내가 어렵게 일을 만들어 놓고, 과거의 작은 일로 현재를 망치지 않을 거란 사실은 어렵지 않게 알 수 있는 일이니까요.'

= 어쨌거나 이번에 놈이 다시 연락을 해 오면 주머니를 제대로 털어 버리셔요. 호호호.

'그렇잖아도 그간 쓰기만 하고 채운 것이 없어 궁핍하던 상황이라 내 단단히 벼르고 있는 중입니다. 하하하하.'

= 제깟 것이 멸계와 이어지는 통로를 만드는데 무엇이 얼마나 쓰일지 어떻게 알겠어요. 상공 마음대로 해 버리셔요.

유정정이 잔뜩 기대가 된다는 듯이 흥분해서 떠들었다.

건우는 그 소리를 들으며 부양도를 소환하여 올라탔다.

진광이 패를 주고 갔으니 때가 되면 그것을 통해 연락을 하리라.

그 전에는 상이 산맥을 떠돌며 사냥에 힘써 볼 생각이었다.

사냥의 대상이야 마수나 괴수 혹은 요괴도 나쁘지 않지만 이왕이면 멸계 수사가 좋지 않을까? 부양도는 건우의 기대를 싣고 순식간에 상이산맥 깊은 곳으로 모습을 감추었다.

"궁주님 아뢸 말씀이 있습니다."

조용히 태사의에 앉아서 명상 수련을 하고 있는 길매를 혈궁의 궁인이 조심스럽게 깨웠다.

드러난 얼굴과 손에 문신이 가득한 수려한 외모의 중년 수사였다.

"무슨 일이더냐?"

길매가 눈을 뜨며 무심한 어조로 물었다.

"진광 수사의 행적을 살피던 아이가 소식을 전해왔습니다."

"진광? 그 자에게 무슨 일이 있다는 거지?"

진광이란 이름에 자미혈궁의 궁주, 길매의 눈빛 깊은 곳에서 이채가 번뜩였다.

"진광 수사가 은밀하게 일을 꾸미고 있다고 합니다."

"무슨 일을?"

"자세한 것은 모르지만 갖가지 수련 자원을 끌어 모으고 있다고 합니다."

"진광 수사가 자원을 모으고 있다? 그는 이미 태령기 완경이라 따로 수련을 할 만한 일이 없을 텐데?"

"그것만이 아닙니다. 얼마 전에 그가 한동안 종적을 감췄던 일이 있었다 합니다. 그 뒤에 돌아오고 나서부터 자원을 모으기 시작했다합니다."

"새로운 공법을 익히려는 것은 아니고?"

"끌어 모으는 자원이 워낙 다양하여 공법 수련으로 보기는 어렵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그 자가 그리 적극적으로 움직일 일은 오직 한 가지뿐이지."

길매가 굳이 깊이 고민할 것도 없다는 듯이 중얼거렸다.

수엽사 진광은 이미 오래전부터 본계로 돌아가는 것이 소망이라 떠들던 이였다.

그리고 그것 때문에 오래전에 7대 세력의 우두머리들과 갈등을 빚은 적도 있었다.

당시에 진광이 길우몽을 7대 세력의 우두머리들에게 소개했고, 그 우두머리들은 길우몽에게 엄청난 수련자원을 투자한 일이 있었다. 그런데 그 직후 길우몽이 알시평 혼돈역에서 모습을 감추었으니 당연히 7대 세력의 우두머리들은 성령기인 길우몽 보다는 진광을 의심했다. 진광이 길우몽을 내세워 그들의 수련자원을 빼돌렸다고 생각한 것이다.

길매는 그 일이 있고 한참 뒤에야 수미 세계로 넘어왔지만 당시에 꽤나 큰 소란이 있었음을 들어서 알고 있었다.

진광과 7대 세력의 수장들이 알시평 혼돈역의 곳곳에서 싸움을 벌였다던가?

어쨌거나 그런 진광이 다시 어떤 일을 벌이고 있다면 그것은 분명히 본계로 돌아갈 수단에 대한 것일 가능성이 높았다.

그리고 그 일에 길우몽이 연관되어 있을 가능성도 염두에 둬야 할 일이었다.

길매가 특별한 관심을 가지는 것도 바로 그 길우몽 때문이었다.

"알았으니 물러가거라. 그리고 진광 수사에 대한 감시를 더 강화하도록 해라."

"하지만 궁주님……?"

"감시란 것이 꼭 몰래 숨어서만 해야 한다더냐? 이유를 만들어 사람을 보내 상황을 알아보면 될 일이 아니냐!"

"아, 알겠습니다 궁주님."

태령기 완경의 진광을 감시하는 것은 어렵다는 말을 하려던 수하가 길매의 호통에 화들짝 놀라며 인사를 하고는 물러났다.

길매는 그런 자오로의 뒷모습을 보며 혀를 찼다.

과거 태령기 후기였던 그가 지금은 태령기 초기로 경지가 내려앉았다.

그것을 생각하면 불쌍한 생각이 들지 않는 것도 아니지만, 천겁독에 대한 처방은 그녀도 알지 못했다.

이전 길우몽이라 자처한 수사가 상공에게 전하라 했던 옥간에 그 내용이 들어 있었지만 그것은 상공만이 읽을 수 있었다.

따로 조건을 걸지 않았기에 그녀도 옥간을 받아 호기심에 살펴본 바가 있었지만 읽을 수 없었던 경험이 있었다.

건우가 옥간에 금제를 걸어 같은 영혼이 아니면 살필 수 없게 했었기 때문이지만 당시의 길매는 그것을 알지 못했었다.

'분명히 그 자와 상공은 깊은 연관이 있음이 분명하다. 아마도 그 옥간을 생각하면 둘은 같은 영혼을 나눈 동일 존재일 가능성이 높겠지.'

길매도 이제는 어느 정도 상공과 길우몽이란 수사의 관계를 추측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렇더라도 주(主)는 상공이 되어야 한다. 나와 함께 했던 분은 상공이시니까.' 그럼에도 길매는 둘을 같은 존재로 보지 않고 나누어 구별하고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멸계에서 건우의 분혼이 어찌 성장했는지를 처음부터 지켜봤기에 특별한 감정을 가질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기이하게도 자신을 구해 준 길우몽에게 보은을 결심했던 길매가 이제는 길우몽보다 분혼을 더 중히 여기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내 이런 마음을 아시면 상공께서 실망하시겠지. 그러니 나는 그저 상공의 뜻을 받드는 것만 생각해야지. 아무렴 그래야지.'

길매는 잠시 상공과 길우몽이란 수사를 비교하다가 화들짝 놀라며 마음을 추슬렀다.

그리고 잠시 생각에 잠겨 있다가 손바닥을 뒤집어 붉은 구슬 하나를 불러냈다.

핏빛의 구슬은 수박처럼 컸는데 길매가 소매로 쓸어 내자 그 안쪽에서 누군가의 모습이 보이기 시작했다.

= 어쩐 일이냐?

혈주(血珠) 안의 인형이 길매를 향해 물었다.

< 밑밥을 뿌리면 입질이 오겠지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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