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환장 통수 선협전-305화 (305/4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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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 함께 일을 좀 해 보십시다 >

상이 산맥의 바깥쪽, 상이해와 맞닿은 해안가에 수 백 장의 깎아지른 절벽이 있었다.

그런데 그 절벽이 길게 갈라져 마주보는 곳이 있었으니, 그 사이의 간격이 또한 백여 장에 이르렀다.

지금 그곳에 발밑으로 해수면을 두고 삼두육비의 모습을 한 건우와 진광이 마주하고 있었다.

"그 사이에 일을 참 거창하게도 벌이셨습니다."

"그것 참, 길 수사가 이리 변하다니 대단하십니다. 믿기지가 않는군요."

건우의 말에 등에 쇠그물을 짊어진 진광이 놀란 표정과 함께 경계어린 눈빛을 하며 말했다.

"제가 진광 수사와 같은 경지에 오른 것이 무에 그리 대수랍니까? 따지고 보면 진광 수사가 화신기에서 태령기 완경까지 오른 기간이 저보다 짧지 않습니까."

건우가 별 것 아니란 듯이 대수롭지 않은 기색으로 진광의 말을 받았다.

"그야 나는 진극멸기를 이용하는 편법을 쓴 것이라 그게 가능했지만, 보기에 길 수사는 나와는 다른 길을 걸은 듯 합니다만?"

진광은 건우가 나타결공법을 끌어 올려 삼두육비의 모습을 하고 있음에도 건우의 경지가 진극멸기를 이용한 것이 아님을 알아보았다.

"무슨 말씀입니까? 태령기에 오를 때에는 분명 진극멸기를 이용했습니다. 그 후에는 또 다른 수련을 하기는 했습니다만."

"그럴리가! 그런데 어찌 그리 정순한 기운을 풍길 수가 있단 말입니까! 태령기를 진극멸기로 뚫었다면 그럴 수 없을 텐데요?"

건우의 말에 진광은 말이 안 된다는 듯이 따지듯 물었다.

그도 그럴 것이 원래 멸계 수사들은 태령기에 오를 때에 벽을 쉽게 허무는 대신에 그 깨달음의 깊이가 얕을 수 밖에 없다.

그래서 가진 기운이 거질고 투박하며 정순하지 못한 경우가 많다.

물론 오랜 시간을 두고 경지를 다스리다 보면 조금씩 기운이 순후해지기도 하지만, 지금의 건우는 절대 그 경우에 해당할 수가 없었다.

"운이 좋아 한 가닥 깨우침을 얻은 덕분이지요. 뭐 별 것이 있겠습니까."

하지만 건우는 진광이 놀라거나 말거나 대수롭지 않다는 반응을 보일 뿐이었다.

"으음. 좋습니다. 어차피 길 수가가 나를 찾아 온 것은 뭔가 거래할 것이 있기 때문이 아니겠습니까? 그렇다면 내 궁금증에 대한 답을 얻는 것도 거래의 대가로 삼을 수 있겠지요."

하지만 진광은 어떻게든 건우의 승경에 대해서 자세히 알고 싶다는 욕심을 버리지 않고 드러냈다.

건우는 문득 진광이 진정으로 그 문제를 심각하게 생각하고 있음을 깨달았다.

'욕심이 난 모양이군. 진극멸기를 통한 승경의 부작용을 해결할 방법이 나에게 있다고 여기는 건가? '

그리고 곧바로 진광의 속내를 추측해 냈다.

하지만 건우로선 그런 진광의 모습이 우습기만 할 뿐이었다.

'가르쳐 주고 싶어도 가르쳐 줄 수 없는 방법인데 어쩌라고? '

건우는 내심 고개를 저으며 아까워했다.

정말 쓸만한 방법이 있다면 진광을 부리는 데 좋은 미끼가 될 수 있을 텐데 그렇지 못한 것이 안타까운 것이다.

"역시 진광 수사는 영민한 데가 있으십니다. 그렇지요. 제가 진광 수사를 찾은 것은 수사의 말대로 거래하기 위해서입니다."

건우는 복잡한 속셈은 일단 뒤로 미뤄두고 원래 용건부터 해결하기로했다.

"역시 그렇겠지요. 그게 아니고서야 길 수사가 나를 찾아올 이유가 있겠습니까? 뭐, 저를 제압하여 처리하겠다는 생각이 있다면 또 모를까."

진광은 그럴 일은 없을 거란 듯이 자신만만한 태도로 말했다.

건우는 그 모습에 세 머리의 여섯 눈썹이 일제히 꿈틀거렸다.

그가 자신을 무시하는 것처럼 느껴진 것이다.

"말을 가려 하시지요. 진광 수사는 내가 아직도 아래로 보이십니까?"

건우는 참지 않고 묵직한 음성으로 진광에게 경고를했다.

그러자 진광은 자신이 경솔했다고 생각했는지 빠르게 그물을 들지 않은 손을 내저었다.

"어이구, 이거 내가 결례를 했소이다. 하지만 진정으로 말하자면 내가 길 수사를 무시한 것은 아닙니다. 사실 여기서 싸움이 벌어지면이 진광에게는 찾아줄 우군이 많이 있지만 길 수사는 그렇지 못하지 않습니까. 그런 것 때문에 은연중에 자만한 것이니 이해를 해 주십시오."

진광은 자신이 건우를 무시한 것이 아니라 이곳이 멸계 수사들의 영역이라 유리한 입장임을 역설했다.

= 상공, 제가 나서서 도울까요? 그러면 어렵지 않게 저 놈의 숨통을 끊을 수 있을 텐데요?

그 때, 건우의 머릿속으로 유정정의 목소리가 들렸다.

'아니요. 오늘은 저 놈을 죽이려 온 것이 아니라 멸계 놈들에게 큰 혼란을 주기 위해 온 것이니 참으시오. 오늘이 아니라도 기회는 많을 테니.'

= 호호, 알았어요. 그럼 상공께선 계속 일을 보시어요.

건우의 말에 유정정은 슬그머니 의식 연결을 줄였다.

하지만 건우는 그녀가 여전히 아공간 입구를 통해서 밖을 내다보고 있음을 알고 있었다.

아공간에서 유정정이 무엇을 하든 건우가 그것을 어찌 모를 수가 있을까.

"일단 그렇다고 합시다. 어차피 진광 수사의 말대로 싸우고자 찾아온 것은 아니니 말입니다."

"그래서,이 진광과 거래를 하겠다면 역시 그것입니까? 전쟁 중에 멸계로 돌아갈 방법?"

건우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진광이 기대 가득한 눈빛으로 건우를 보며 물었다.

"역시 짐작을 하셨습니까?"

건우는 그런 진광의 애를 태우지 않고 순순히 사실을 인정해 주었다.

"어허 그게 정말입니까? 정말로 멸계로 돌아갈 수가 있다는 말입니까? 전쟁이 끝나지 않았는데도?"

이번에는 진광도 정말 놀랐다는 듯이 눈을 크게 뜨며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기대는 하고 있었지만 속으로는 반신반의 하고 있었다.

그런데 건우의 입에서 가(可)라는 말이 나오니 절로 흥분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거짓을 고해서 무엇하겠습니까? 원하시면 지금 당장이라도 진광 수사를 멸계로 보내드릴 수 있습니다."

"지, 진정 그것이…….'

"네, 가능합니다. 하지만 아시는 것처럼 제가 굳이 그렇게 해 드려야 할 이유가 있겠습니까?"

"으음."

흥분했던 진광은 이어진 건우의 말에 낮은 신음소리를 내며 표정이 어두워졌다.

"사실 오래도록 수련을 하다가 나와 보니 상황이 크게 바뀌어 있더군요."

건우가 표정이 어두워진 진광을 향해 담담한 어조로 말을 이어갔다.

"그것이……

"이전에 듣기로는 진광 수사께서는 멸계로 돌아가는 것이 중요하다 하셨지요? 이곳에서의 전쟁이야 어찌 되든 크게 연연하지 않는다 하셨던 것 같습니다만."

뭐라 대답하려는 진광의 말을 끊으며 건우가 질책하듯 쏘아붙였다.

전쟁 결과에는 관심이 없다던 이가 상황을 이리 만들어 놓았느냐는 뜻이다.

하지만 그 질문에 진광은 도리어 기세가 살아났다.

"그야 당연한 일이 아닌가 내가 본계로 돌아갈 방법이 전쟁에서 승리하는 것밖에 없는 상황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한 것이 어찌 문제가 될꼬? 아, 물론 길 수사의 입장 에서야 멸계전의 패배가 꽤나 중요한 문제이긴 하겠군."

진광은 흥분해서 소리를 질렀는데 건우에게 하던 공대(恭待)도 두서가 없어진 모습이었다.

"으음. 그러니까 진광 수사가 그리 나섰던 것이 결국 멸계로 돌아갈 다른 방법이 없다고 여겼기 때문이란 말이군요?"

"그야 이를 말인가! 가능성이 낮아도 어쩔 수 없이 최선을 다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지."

"그래서 꽤나 크게 성공을 하셨습니다 그려. 벌써 수미 세계의 3할 정도를 차지하지 않았습니까."

"크하하하. 내 재주가 크게 을모가 있긴 했지."

건우의 말에 진광이 크게 웃으며 의기양양한 모습을 보였다.

"하지만 그렇다고 우리가 불리한 것은 절대 아니지요. 곧 수미산에서 본격적으로 반격에 나서면 멸계의 세력이야 오래지 않아 풍비박산(風飛雹散) 나고 말 것입니다."

"그거야 두고 보면 알 일이지. 어차피 우리들이야 모두 목숨을 걸고 전장으로 나온 입장인데 무엇이 두려울까. 그런 말로 우리를 겁줄 수 있을 것 같으냐?"

진광은 마치 배수진을 치고 죽음을 각오한 장수처럼 말했다. 그는 이제 건우에게 완전히 하대(下待)를 하고 있었다.

하지만 건우는 그런 진광의 태도에 별 관심이 없다는 듯이 덤덤한 표정으로 피식 웃었다.

"노옴! 지금 나를 비웃는 것이냐?"

진광이 버럭 화를 냈다.

"왜 굳이 어려운 길을 가려 합니까? 이곳 수미 세계에서 멸계전이 시작된 것이 벌써 1만 년이 넘었습니다."

건우가 차분한 목소리로 대화를 이어갔다.

"그래서 어쨌다는 것이냐?"

"좀, 진득하니 들어 보십시오. 지난 1만 년 동안 멸계에서 온 많은 이들이 원하는 것을 얻었을 것입니다."

"원하는 것을? 무엇을 얻었다는 것이냐?"

"그걸 몰라서 물으십니까? 진광 수사가 이전부터 전쟁을 뒤로하고 멸계로 돌아가고 싶어 했던 이유가 무엇입니까? 수사께서는 이미 태령기 완경으로 더 오를 곳이 없기 때문이 아니었습니까. 물론 멸계전에서 승리하면 큰 보상이 기다리고 있겠지만 진광 수사께서는 그조차도 필요없다 하시고 본계로 가겠다 하셨지요? 어째서였습니까?"

"그야. . . . . . . ."

"이미 쌓아둔 진극멸기가 넘쳐나기 때문이 아닙니까. 그것을 가지고 본계로 돌아가면 진선(眞仙)에 오르기에 충분하다 판단한 것이겠지요. 아닙니까?"

". . . . . . . ."

진광은 건우의 말에 대답하지 않고 침묵을 지켰다.

하지만 그것은 대답을 한 것이나 다름없는 반응이었다.

"지금도 멸계의 많은 수사들이 갖가지 방법으로 진극멸기를 모으고 있지 않습니까? 그리고 그 중에는 벌써 태령기 완경에 이르러 승경의 한계에 닿은 이들도 있을 것입니다."

"그야 그렇지. 1만 년의 시간이 짧지는 않았으니."

"그럴 것입니다. 그런데 이제부터 점자 싸움이 격해지면 어찌 되겠습니까?"

"응?"

"지금까지야 태령기 수사가 죽는 일이 거의 없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본격적인 싸움이 시작되면 태령기 완경이라도 목숨을 보장할 수는 없겠지요? 그것이 멸계의 수사든, 수미의 수사든 말입니다."

"전쟁이니 당연한 일이겠지."

"그러다 운이 없으면 진광 수사라 하더라도……."

"재수 없게 그런 말은 하지 말고, 네가 하려는 말이나 해라.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것이냐?"

진광이 자신의 죽음을 이야기 하려는 건우를 향해 버럭 화를 냈다.

"하하하. 그래서 드리는 말씀이 아닙니까. 내게는 수사를 멸계로 보내드릴 방법이 있다고 말입니다."

"그래서 어찌하면 나를 본계로 보내 줄 것이냐?"

진광은 이미 짐작했다는 듯이 건우를 보며 물었다.

"분위기를 좀 만들어야지요."

건우가 말했다.

"분위기?"

"지금 진광 수사와 내가 나서서 멸계로 돌려보내 줄 테니 가라고 하면 몇 명이나 그렇게 하겠다고 하겠습니까?"

"본계로 확실히 갈 수 있다면 많은 놈들이 나서지 않겠느냐?"

"큭, 정말 그럴까요? 수사들의 욕심을 너무 가볍게 보시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제 생각에는 돌아갈 방법이 있다고 하더라도 좀 더 많은 것을 얻은 후에 가겠다고 미룰 것 같습니 다만?"

"음, 확실히 그렇기도 하겠구나. 게다가 전쟁을 이기면 굳이 네게 의지하지 않아도 될 거라는 생각도 할 것이고."

"그렇다면 이제 진광 수사가 본계로 가기 위해서는 무엇을 해야 하겠습니까?"

"그래서 분위기라 한 것이구나? 불안하게 만들어 서둘러 본계로 돌아가려는 마음이 들게 해야 한다? 맞느냐?"

"그렇지요. 제가 드리고 싶은 말씀이 바로 그것입니다. 하하하."

건우가 음흉한 표정으로 진광을 보며 크게 웃었다.

"그러니 진광 수사. 우리 함께 일을 하나 해 보십시다."

"일이라……

"그저 대충 멸계 쪽의 세력을 좀 갉아 먹고, 이후에 고계 수사들 몇을 죽이면 되는 일이지요. 아, 당연히 그 과정에서 나오는 진극멸기는 모두 진광 수사에게 내어 드리겠습니다. 저에겐 필요가 없는 것이니 말입니다."

구밀복검 (□蜜腹劍).

건우의 달콤한 말이 진광의 마음을 뒤흔들었다.

<그러니 함께 일을 좀 해 보십시다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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