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2)
<건우와 유정정이 간다 >
천지 법칙의 흐름이 막히며 고여 응결된 기운.
그것을 풀어내는 일은 실상 건우나 유정정이 간섭할 필요가 없는 일이다.
이미 응결되었던 기운은 천지 법칙이 다시 흐르기 시작하면서 자연스럽게 풀려나는 중이었다.
다만 그 때문에 멸계와 이어지는 공간 균열이 회복되어 통로가 열리는 것이 문제.
그것을 막기 위해 흘러나오는 기운을 조절하여 공간 균열이 복구되지 못하게 하는 것이 중요했다.
유정정과 다른 네 명의 수사들이 하던 일이 바로 그것이었다.
그런데 그들이 준비를 마치고 기운을 조율하기 시작한 후에 뜻하지 않게 태령기 과수들이 모여든 것이 문제였다.
그 괴수들이 기운에 홀려서 달려들게 되면 모든 것이 엉망이 될 터.
때문에 원래 예상했던 것보다 과도하게 기운을 억눌러야 할 상황이 되어 버렸던 것이다.
그 말은 다섯 수사가 써야 할 힘의 크기가 커졌다는 것이고 그 때문에 다섯 수사가 곤경에 처했던 것이다.
어쨌건 그 문제는 건우의 등장으로 해결이 되었고, 밖으로 나간 네 명의 수사들은 그동안의 분풀이를 여섯 태령기 과수에게 제대로 했을 것이다.
결계 공간 밖에서 한동안 소란이 인 후에 태령기 과수들의 기척이 느껴지지 않는 것을 봐도 알 수 있는 일이다. 먼 곳으로 끌고 가서 처리를 한 것인지, 내쫓은 것인지는 알 수 없지만 괴수들의 위협이 사라진 것은 사실이었다.
"이제 걱정할 일은 없겠구나."
유정정이 밖의 상황을 헤아리고는 그렇게 말했다.
건우 역시 고개를 끄덕였다.
"일이 제대로 된 것 같습니다. 이제는 구덩이에서 나오는 기운의 양을 조금 더 늘려도 되겠습니다."
"그래, 다만 그 기운이 공간 균열로 들어가는 것만 조심하면 되겠지. 이전에도 이럴 수 있었으면 굳이 기운을 억누르느라 애를 쓸 필요가 없었을 텐데."
"하하. 이미 지난 일이 아닙니까."
"너는 좋으냐? 이 기운을 이용하여 수련을 할 수 있으니?"
"이를 말입니까? 당연히 좋지요. 또 그래야 멸계전이 끝나 선계로 갈 때에 진선으로의 승경을 노려볼 수 있지 않겠습니까?"
"진선이 되어선 무얼 하려고?"
"네?"
"무얼 멀뚱거리는 것이냐? 진선이 되어 무엇을 할 것이냐 묻는데?"
잠시 당황했던 건우는 그렇게 되묻는 유정정의 눈빛에 짓궂은 기색이 담긴 것을 알아차렸다.
이 선자가 자신에게 장난을 걸고 있음이다.
"그야 당연히 정정 선자와 영생토록 함께 행복을 함께 누리려는 것이지요. 태령기로 있다간 결국 천겁을 견디지 못하지 않겠습니까?"
"흐응. 제법 눈치가 빨라졌구나."
"이 눈치가 어디 아무렇게나 쓰이겠습니까? 유독 정정 선자에게만 그런 것이지요. 하하하."
"흥, 잘도 그런 말을 하는구나."
유정정이 얼굴을 살짝 붉혔다.
그런 유정정을 향해 건우가 연리지 옥간을 내밀었다.
"그럼 이제부터 본격적으로 이것을 익혀봄이 어떻습니까? 아직 내 경지가 낮으니 정정 선자에겐 큰 도움이 되지 않겠지만."
"나는 이미 태령기 완경의 극에 이르러 어떤 수련으로도 경지를 더할 수는 없는 몸이다. 어떤 수련을 하더라도 경지에 도움이 되지는 않겠지. 하지만이 수련은 다르다."
정정 역시 연리지 옥간을 꺼냈다.
"이 수련으로도 끝에서 멈춘 경지 자체를 어쩌진 못하겠지. 하지만 영기와 의념을 담을 그릇을 더 크게 할 수는 있을 것이다."
"하하. 그거라도 어딥니까? 그리고 저는 아직 올라갈 곳이 까마득히 남았으니 갈 길이 멀지요."
"이미 말했지만 너는 걱정할 필요가 없다. 함께이 쌍수수련을 하게 되면 내가 너의 승경을 도울 수 있을 테니까."
"미리 감사를 드리겠습니다."
"게다가 이곳에서 흘러나오는 기운은 특별한 바가 있다. 천지 법칙의 흐름에서 생겨난 기운이라 태초의 기운과 흡사하지. 따지고 보면 법칙의 힘이 뒤섞였다 할 수 있지 않겠느 냐."
"법칙의 힘이란 말입니까?"
"물론 이곳이 영계라 그 제약이 있을 수밖에 없지만 그래도 절대 예사로울 수는 없것!지. 그러니 너는 수련을 하면서 그 점을 유의해야 할 것이다."
"알겠습니다. 저 또한 태령기에 오르며 얻은 깨달음에서 법칙의 편린을 얻었으니 걱정하지 마십시오. 절대 정정 수사를 실망시키지 않겠습니다."
"호호호. 어찌 이리 예쁠……. 흠흠. 자, 그럼 함께 수련을 시작해 보자꾸나."
유정정은 잠깐 건우에 대한 속내를 드러냈다가 당황한 듯 얼굴이 붉어지 더니 눈을 감고 의념을 끌어냈다. 건우는 그 모습에 저도 모르게 웃음을 머금으며 의념을 펼쳐 유정정의 의념과 마주했다.
이후 두 사람은 서로의 의념을 엮어내고 거기에 영기를 흘리며 쌍수수련을 시작했다.
그런 중에도 깊은 구멍에서 흘러나오는 기운과 그 위에 있는 공간 균열을 살피며 시간이 흐르기 시작했다.
* * *
"정화(淨化)는 불순하고 더러운 것을 깨끗하게 한다는 의미죠. 그래서 제 법칙의 힘은 때로 무용할 수도 있어요."
"정화할 수 없는 대상에는 통하지 않는다는 말이구려?"
"그렇지요. 게다가 아무리 법칙의 힘이라 하더라도 같은 법칙의 힘과 대치하면 결국 강한 쪽이 승리하는 것은 당연한 이치기도 하고요."
"정정의 정화 법칙이 다른 삿된 법칙의 힘을 이기지 못할 수도 있다는 말이겠구려?"
"상공께서도 이미 아시지 않습니까. 그런 의미에서 상공께서 깨우친 법칙의 힘은 강력한 바가 있습니다."
"하지만 쓰기가 쉽지 않소. 공간이라는 것이 쉬이 다룰 수가 있는 것이 아니니."
"호호호. 엄살 피우지 마셔요. 공간 법칙을 이용한 상공의 금제 수단은 무섭기 짝이 없는 걸요?"
"그럴 리가. 어찌 정정이 나를 무서워한단 말이오? 설마 내가 정정을 위해할 일이 있겠소?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오."
"호호호호. 알았어요. 알았으니 그리 정색하지 마셔요. 어찌 이리 아이 같은 구석이 있으실까 모르겠네요."
"흠, 그러게 왜 그런 소리를 했답니까? 내가 정정을 얼마나……."
"그만 하시지요. 저기 소위의 문이 보입니다."
건우가 정정에게 섭섭한 투정을 하려는데 정정이 선수를 쳐서 까마득히 먼 곳, 지하 세계의 끝을 가리켰다.
건우는 어쩔 수 없이 부양도 밖으로 멀리 보이는 지평선 끝으로 시선을 던졌다.
그곳에 검붉은 색의 거대한 문이 보였다.
수 만 리를 뛰어 넘어 눈앞에 있는 듯이 문을 바라보던 건우가 고개를 저었다.
"역시 소위 수사는 이곳을 떠난 모양이구려. 남은 것은 금제 결계의 허물 뿐이니 말이오."
"호호호. 비록 소위 수사가 떠났다 하더라도 저곳에 남은 금제 결계가 어찌 허물이라 할 수 있겠어요? 지하 세계와 수미 세계의 서로 다른 기운을 적절히 조절해 주는 효용이 아 직도 건재하게 남았는데 말이에요."
"그래봐야 소위 수사가 있을 때와 비견할 수는 없지 않소."
"그래서 상공께선 제 말이 틀렸다 하시는 겁니까?"
"하하, 아니 내가 언제? 그런 뜻은 절대 아니오. 아무렴. 정정은 항상 옳소. 틀려도 옳고, 옳아도 옳소."
"호호호호."
- 에효, 제가요,두 분 때문에 두드러기를 긁어내느라 세월 가는 줄을 몰라요. 긁어도 긁어도 새로 솟으니 이를 어쩔 거냐구요.
'또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것이냐? 심심하면 수련을 하라 하지 않았더냐? '
- 헹, 이제는 저도 태령기라구요.
'내가 완경에 이를 동안 고작 중기에 발을 걸치고도 큰소리를 치는 것이냐? , 그야 건우 님은 정정 수사의 도움을 받아서 승경 시험을 쉽게 치렀잖아요.
'그러는 너도 내가 네 승경 시험을 도와줬는데? 나는 지금이라도 네가 태령기 후기에 도전하면 충분히 도와줄 수 있다만?
쳇, 됐어요 안 그래도 닭살 두드러기가 너무 심해서 폐관 수련이라도 할 참이었다고요!
루야는 토라진 듯 그렇게 심통을 부리고는 아공간 한 쪽에 있는 자신의 공간으로 들어가 버렸다.
건우가 애를 써서 자신의 의식이 닿지 않도록 만들어 준 루야만의 공간이었다.
의념 공간 안에 자신의 의식이 닿지 못하는 공간이라는 역설.
그것을 만들며 건우가 공간 법칙의 깨달음을 한층 깊이 얻었으니 그 보답으로 루야만의 공간이 과하다 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 아이가 또 뭐라 하여요?"
건우가 루야와 대화를 나눈 것을 알아차렸는지 유정정이 건우를 보며 물었다.
이미 유정정은 건우에 대한 이야기를 모두 알고 있었다.
서로 쌍수수련을 하는 중에 의념의 교환을 이룬 터라 숨기는 것이 없을 수밖에 없었다.
뜻밖에도 그들이 익힌 쌍수수련은 서로에 대한 제약이나 금제가 거의 없었다.
당장이라도 서로 등을 돌리고 갈라선다고 하더라도 크게 손해를 볼 것은 없었다.
그저 수련 중에 서로에 대해서 티끌 하나까지 알게 된 상황이고, 그 과정에서 깊어진 사랑과 정이 유별날 뿐이었다.
물론 쌍수수련을 포기하면 둘이 함께 할 수 있는 몇몇 공법을 쓰지 못하는 손해는 있겠지만 직접 경지나 영혼에 문제가 생길 일은 없었다. 건우와 유정정은 그것이 선계 쌍수수련의 장점이라 생각했다.
따지고 보면 선계라고 함께 살다가 갈라지는 일이 없겠으며, 둘 중에 어느 한 쪽이 화를 당하는 일이 없겠는가.
그런 것을 생각하면 부작용이 없는 쌍수수련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일이었다.
"하하. 항상 그렇듯이 부러워하는 것이오."
"그렇군요. 그 아이도 짝을 찾을 수 있으면 좋겠는데, 태생이 특별하여 그것이 어려우니 가여운 일이에요."
"그리 마음을 쓸 필요는 없다 하지 않았소. 아직은 루야도 부족함이 많은 상태라 짝을 이루기엔 너무 이르오. 아직은 어린 아이와 같으니."
"호호호 상공께서 하시는 말씀을 들으면 간혹 그런 생각이 들어요. 딸을 둔 아비 같다는."
"그런 것은 아니오만……."
"두고 보아요. 선계에 올라 우리 사이에 아이가 생기면 그 때 어쩌시나 볼 거예요."
유정정이 그렇게 말을 하며 건우의 시선을 외면하고 얼굴을 붉혔다.
생각만 해도 간질간질 부끄러운 말을 하고 만 것이 아닌가.
"자, 이제 소위의 문에 닿았으니 상황을 알아보고 곧바로 수미산으로 나가도록 하십시다."
건우는 그런 유정정의 마음을 짐작하고 슬쩍 말을 돌렸다.
벌써 수 만 리를 날아와 부양도는 검붉은 얼굴이 조각된 거대한 문 앞에 멈춰 있었다.
"네에, 상공 그리 하지요. 그럼 제가 한 번 살펴보겠어요."
유정정은 건우의 말에 쑥스러움을 피할 좋은 방도라 여기고는 급히 몸을 날려 소위의 얼굴로 향했다.
하지만 거대한 문에 새겨진 소위의 얼굴은 이전과 달리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이미 소위가 떠나고 없는 터라 문이 반응을 보이지 않는 것이었다.
유정정은 이미 그것을 알고 있었기에 문으로 다가가 손을 대고 의념을 불어넣었다.
그리고 소위의 문을 통해서 지금 지하 세계와 수미산 사이를 막고 있는 결계에 대한 정보를 파악하기 시작했다.
소위가 빠져나갔다고는 하지만 아직은 두 세계 사이를 가로막고 기운의 흐름을 통제하는 거대한 금제였다.
그럼에도 태령기 완경의 유정정 앞에서는 힘을 쓰지 못하고 그 속을 훤히 내보이고 마는 금제였다.
한동안 의념을 집중하여 상황을 살핀 유정정이 다시 둔광과 함께 부양도에 있는 건우 곁으로 돌아왔다.
"어찌 되었소?"
"예상대로 소위 수사는 떠나고 없어요. 그리고 남은 금제 결계도 정상적으로 작동을 하고 있어요. 아마 오랜 시간이 흘러 이곳과 바깥의 기운이 평형을 이루면 이곳 지하 세계에 서도 수사들이 태어날 수 있겠지요."
"그 전까지는 이대로 두면 된다는 말이구려?"
"그렇지요. 멸계 수사들이 이곳에 들어올 일만 없다면요."
"그것은 걱정하지 마시오. 이곳을 떠나기 전에 내가 적절히 손을 써 두고 갈 터이니, 멸계에서 수미 세계로 오는 공간 통로가 이쪽으로 열리는 일은 없을 것이오."
"흥, 상공의 힘으로 수미 세계 전체에 그런 수단을 쓸 수 있으면 좋겠어요. 그러면 멸계전은 그대로 끝이 날 텐데 말이에요."
"하하하. 그건 너무 과한 욕심이지 않소. 이곳에는 특별히 천지 법칙의 흐름이 응결된 기운이 있으니 내가공간 법칙의 힘을 크게 쓸 수 있지만 밖으로 나가면 형편없이 쫄아들 능 력이 아니오."
"흥, 무에 그리 엄살을 부리고 그러세요? 상공의 능력을 제가 모를까요? 다른 것은 몰라도 싸움으로 치자면 상공을 이길 수사가 어디에 있겠어요? 분혼결과 진염결로 다져진의 념에 아공간 현실 구현을 쓰고, 거기에 루야까지 합세하면 저 같은 수사가 셋이라도 상공께는 안 될 걸요. 아, 거기에 공간 법칙은 또 얼마가 강력하고요?"
유정정이 자랑스러운 표정을 감추지 못하며 건우의 자랑을 면전에 주르르륵 늘어 놓았다.
건우는 얼굴이 뜨거워지는 것을 느끼며 서둘러 소위의 문 안으로 부양도를 밀어 넣었다.
과거와 달리 소위의 문 안쪽 통로에서도 어느 정도 술법을 사용할 수 있게 된 까닭이었다.
그렇게 건우와 유정정이 오랜 세월을 건너 수미 세계로 나서게 되었다.
<건우와 유정정이 간다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