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환장 통수 선협전-302화 (302/4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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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연심을 드리겠습니다 >

"그럼, 잠시만 수고 하라고."

"그리 오래 걸리진 않을 테니 믿어."

"소승도 살계를 범할 각오를 크게 했으니 걱정하지 마십시오."

"일을 마치면 그대로 떠날 테니, 후일 밖에서 보도록 하지."

문줄도와 척제, 승려 혜형과 참마도의 비거둔이 한 마디씩 인사를 하고 결계 공간을 떠났다.

= 그럼 저희도 가보겠습니다.

= 이제 저희가 본체에게 돌아가면 지하 세계와 수미산 사이의 벽이

= 사라질 것입니다

= 이곳의 상황을 확인했으니 이제 결계 금제를 책임지는 문(門)으로서의 임무는

= 끝이 났다 하겠습니다. 그러니 금제 결계의 축이었던 소위는 영족 수사 소위로 돌아갈 것입니다.

= 건우 어르신께서는 돌아 나오실 때에

= 본체를 만나지 않기를 바라셔야 할 것입니다.

= 그 이유는 아시리라……. 이크! 안녕히 계십시오!

소위의 두 얼굴이 작별 인사와 함께 제 멋대로 떠들다가 유정정의 표정을 보고는 화들짝 놀라 둔광과 함께 모습을 감추었다. 유정정은 그렇게 도망치는 얼굴들의 모습에 혀를 자며 한심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녀가 허락하지 않았다면 고작 성령기 따위가 어찌 이곳을 떠날 수 있었을까.

오랜 세월 수미 세계를 위해서 지하 세계의 기운을 조율해 온 소위의 공을 생각하지 않았다면 건방진 두 얼굴을 곱게 보내지는 않았을 것이다.

어디 감히 건우를 놀린단 말인가!

유정정은 눈썹을 치켜 올리며 지금이라도 소위의 얼굴들을 다시 불러올까 잠시 고민했다.

"다들 떠났군요."

그 때, 건우가 유정정을 돌아보며 말했다.

이제 결계 공간에 남은 것은 그와 유정정 둘 뿐이었다.

유정정은 공간 균열 쪽으로 놓인 방석 위에 가볍게 올라앉으며 건우의 말을 받았다.

"그렇구나. 그럼 이제부터 우리도 애를 좀 써야겠구나. 저들 넷이 빠졌으니."

건우의 말에 대꾸하는 유정정은 애초에 소위의 두 얼굴 따위는 잊었다는 듯이 그들의 오고 감은 언급도 하지 않았다.

"그리 수고할 것도 없지 않겠습니까. 밖으로 나간 선배 수사님들이 일을 제대로 해 주기만 한다면야 정정 수사님과 제가 크게 부담이 될 일은 없겠지요."

"그건 그렇다만, 그래도 마음을 놓을 수는 없다."

"알겠습니다. 방심하지 않고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건우는 유정정의 걱정에 선뜻 그렇게 대답하고는 곧바로 결계의 진법들에 집중하며 구멍 속에서 흘러나오는 기운을 조절하기 시작했다.

유정정은 그런 건우의 모습을 슬며시 곁눈질하며 얼굴에 웃음을 머금었다.

이후 그녀 역시 결계의 진법을 이용하여 구멍에서 흘러나오는 기운을 조절하기 시작했다.

그와 동시에 그녀는 그 사이에 있었던 일들을 떠올리기 시작했다.

건우가 도착한 후, 결계 공간 안의 상황이 빠르게 바뀌기 시작했다.

건우가 합세하자 아슬아슬하게 밀리고 있던 다섯 수사에게 작은 여유가 생기게 된 것이다.

그리고 그 작은 여유는 오래지 않아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처음부터 다섯 수사의 힘이 크게 모자란 것이 아니었던 까닭이었다.

사실상 기운을 조율하는 데에 부족한 힘은 극히 미세한 정도에 지나지 않았다.

그들은 그 동안 그 부족함을 자신들의 근원 영기를 뽑아 쓰며 버텼던 것인데 그것이 오랜 세월 쌓여 다섯 수사들을 좀먹어 왔던 것이었다.

그런 중에 건우가 나타나 여유를 만들어주니 잃었던 원기를 회복할 수 있게 되어, 문제를 모두 해결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이후, 그렇게 여유를 찾은 다음에는 네 명의 수사가 밖으로 나가 괴수를 정리할 준비만 남았었다.

그리고 그것을 위해서 결계 공간에 수 십 개의 진법을 다시 만들고, 자리를 비울 네 명의 수사들이 만약을 대비해 따로 자신들의 영기를 비축해 놓았다. 그렇게 준비를 마치고서야 드디어 네 수사가 결계 공간을 떠나 괴수 사냥에 나선 것이다.

그들은 이제 사냥이 끝나면 그대로 지하 세계를 벗어나 돌아오지 않을 것이다.

소위의 두 얼굴도 그것을 알기에 본체에게 돌아가기 위해 그들 네 수사를 뒤따라 떠난 것이다.

"이제 정말로 우리 둘만 남았구나."

그동안의 일을 떠올리던 유정정이 문득 공간 결계를 사이에 두고 마주 앉은 건우를 향해 말했다.

건우는 "둘만 남았다'는 말의 의미를 떠올리며 살짝 긴장한 표정으로 유정정을 바라보다가 표정을 풀며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실로 그렇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정정 수사와 함께 있으니 옛 생각이 절로 납니다."

"흥! 실로 그렇다? 옛 생각이 나? 그래 그럼 어떤 생각이 절로 난다는 거지?"

건우의 말에 유정정이 일부러 냉랭한 기색으로 코웃음을 치며 물었다.

"그게 어디 한두 가지 이겠습니까. 하지만 한 가지는 확실하지요."

건우가 대답했다.

"확실한 한 가지라고? 그게 무엇이냐?"

"말해 무엇 하겠습니까. 항상 정정 수사께서 저를 돌보아 주셨다는 그것이지요. 사실 지금도 믿기 어렵지만 정정 수사께서는 항상 저를 위해 주셨습니다."

"흥! 믿기 어려울 것이 뭐란 말이냐? 사실을 사실로 받아들이면 그만인 것을!"

건우의 말에 유정정은 살짝 토라진 기색을 보였다.

건우의 대답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뜻이리라.

"그렇지요. 옳습니다. 있는 그대로, 사실을 사실대로 받아들이면 그만이지요. 그런데이 수도계가 워낙 험악하니 그것이 쉽지 않았습니다. 그동안 겪은 것이 있으니 어찌 그렇지 않았겠습니까."

"쉽지 않았다는 것은 이제는 달라졌다는 말이냐? 정말 그러하냐?"

확인하듯 되묻는 유정정의 눈빛에 생기가 돌며 빛이 나는 듯했다.

"하하. 그렇습니다. 사실 태령기에 오르며 약간의 깨달음이 있었는데, 그 후로는 마음의 여유가 조금 생겼습니다."

"호호호. 그거 다행이구나. 그 작은 여유 덕분에 네가 변한 것 같으니 말이다. 그럼 이제는 네 마음에 내가 들어섰느냐?"

"으음."

건우는 거침없이 들어오는 유정정의 직설적인 질문에 놀란 듯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뭐냐? 아니란 말이냐?"

그 모습에 유정정의 눈빛이 매섭게 변해 건우를 노려보았다.

"아닙니다. 정정 수사의 말이 맞습니다. 저는 정정 수사를 있는 그대로 이해하기로 마음먹었습니다. 수사께서 제게 베푸신 은혜를……."

"굳이 그리 말을 해야 하느냐? 내가 너를 생각하는 것이 어찌 은혜가 된단 말이냐?"

"……. 그럼 제가 느끼고 이해한 그대로 말씀을 드리지요. 고맙습니다 정정 수사, 나를 마음에 품어 주셔서."

"흥, 그럼……."

"이제는 제가 말을 하지요. 저 역시 정정 수사께 제 연심을 드리겠습니다."

건우가 이전과 달리 적극적으로 나서며 유정정의 말을 중간에 끊고 제 마음을 드러냈다.

그 말에 유정정이 움찔 놀라더니 지그시 건우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한참을 그렇게 건우를 바라보던 유정정이 조용히 말을 시작했다.

"수도계에 입문하여 수사가 된 것이 어언 수 백 만 년. 그 오랜 시간을 어제처럼 되돌아보면 항상 아쉬움이 남는다."

"수사가 된 것이 그리 오래 되지 않았지만 저 역시 후회와 아쉬움이 많습니다."

"그래, 그런데 그 중에서도 우리들 수도자들에게 특히 문제가 되는 것은 마음을 나눌 사람이 없다는 것이다."

"옳습니다. 처음 수련을 하며 만났던 수사들 중에 지금까지 남은 이가 없는 것은 물론이고, 그 사이에 인연이 있었던 이들도 대부분 시간이 흐르면서 사라졌지요."

유정정은 오랜 세월을 사는 수사들의 외로움에 대해 이야기했고, 건우는 자신도 그녀와 다르지 않음을 솔직하게 털어놓았다.

"실로 그런 것이 우리들의 문제이다. 아무리 수사라 하더라도 어찌 홀로 유아독존 할 수 있겠느냐."

"수련을 하는 일조자 홀로 모든 것을 이룰 수 없어서 항상 무리를 지어야 하는데, 그런 중에 또 누구와도 진정한 교류를 하기 어려우니 그것이 마음의 병이 되기 쉽습니다."

"너의 깨달음이 범상치 않았던 모양이구나. 그 말이 옳고도 옳다. 그리하여 나는 항상 영생을 함께 할 반려를 바라마지 않았거니와, 죽음을 피하기 위해 연꽃에 봉인되었다가 풀 려나 너를 보는 순간 나는 너에게 내 마음을 주어버렸더니라."

"그 때에는 정정 수사의 본의가 아닌 면이 적잖이 있었을 것입니다."

건우는 당시 유정정의 상태를 떠올리며 그렇게 말했다.

"그것도 인정한다. 온전치 못한 정신에 알에서 깨어난 새처럼 너를 각인했다 할 수 있겠지.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내 자신을 추스르게 된 후에도 내 마음은 변하지 않았다."

"감사할 따름입니다. 부족한 저를 그리 아껴 주셨으니."

"내 마음에서 경중(輕重)과 고하(高下)를 따지지 않았으니 너의 부족함은 그저 아쉬웠을 뿐, 흠이 될 것은 아니었지."

"그렇더라도 감사하고 고마운 일이지요."

"오랜 봉인에서 깨어난 후, 내 마음을 네게 준 것은 실로 설명할 필요도 이유도 없는 일이다. 그저 그렇게 되었을 뿐이니."

유정정은 그렇게 말을 하고는 건우를 바라보았다.

그저 그렇게 된 것이었다.

그것은 태령기 완경의 경지로도 설명할 길이 없었다.

"그러하면 마음을 받은 제가 오늘 이렇게 답을 드립니다. 늦었지만 받아주십시오."

건우가 진지한 표정으로 그렇게 말했고, 유정정이 그를 보며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단지 말뿐이지만 그것으로 족했다.

서로의 마음을 확인했으니 무엇이 더 필요할까.

적어도이 순간만은 충분히 족하다 여겨졌다.

"이전부터 그러했습니다. 지극한 마음을 받으니 어찌 제 마음이 움직이지 않았겠습니까. 하지만 어리석게도 스스로 자격이 없다하여 의식치 않으려 했었습니다."

"나 또한 알고 있었지만 강요할 수는 없었느니."

"제가 또 그렇게 정정 수사를 상심케 했지요. 하지만 저 또한 외로움과 안타까움을 가진 자로서 어느 순간 정정 수사의 마음을 욕심내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다행히 태령기에 올 라 선자를 정정 수사라 부를 수 있게 되 었지요."

"흥, 그것은 그저 핑계였을 뿐이다. 그리고 항시 이름을 불러줄 때가 오기 바라는 마음을 그리 에둘러 표현했던 것일 뿐이다. 나도 부끄러움이 있으니."

유정정이 낯빛을 붉혔다.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지금 생각해보면 경지나 세월 따위가 무슨 상관이 있겠습니까. 선계에 들기만 하면 장생불사 할 텐데 말입니다."

"그렇지. 생각해보면 선계에 올라 영생을 얻게 된 후에도 홀로 살자면 그 외로움이 얼마나 클까 두렵기 짝이 없다."

"그래서 선계에서도 쌍수수련이 있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서로 의지하여 영생토록 함께 하기 위함이겠지요."

건우가 소매에서 연리지 옥간을 꺼내 유정정에게 보였다.

그러자 유정정 역시 소매에서 같은 연리지 옥간을 꺼내들었다.

"어떻습니까? 앞으로 이곳에서 보내야 할 시간이 짧지 않을 터인데, 함께 이것을 수련해 보면 좋지 않겠습니까?"

건우가 그런 유정정을 보며 은근한 목소리로 쌍수수련을 권했다.

"호호호. 그래, 좋은 선택이다. 애써 수련을 하면 떠나기 전에 태령기 완경을 이룰 수도 있겠지. 게다가 이것을 제대로 수련하면 네가 겪을 승경 시험에 내가 도움을 줄 수 있으니 완경에 이르는 동안 어려움이 크지도 않을 것이다."

"이 쌍수수련을 많이 궁구해 보신 모양입니다."

"이를 말이겠느냐? 언제든 너와 함께 수련할 생각으로……? 흥! 하지만 네가 알까 모르겠지만 여기 적힌 쌍수수련은 인계나 영계의 그것처럼 조잡하지 않다. 그러니 너는 혹시 삿 된 생각을 가졌다면 머릿속에서 그 생각을 지워야 할 것이다."

"그, 그렇습니까?"

건우는 유정정의 말에 애써 표정을 수습했다.

'뭔가 내 생각과는 다른 것이 있는 모양이네? 설마 그게 정말 없다는 건가? '

건우는 유정정이 자신에게 줬던 반쪽의 옥간을 이미 몇 번이나 살펴보았다.

그래서 쌍수수련이라 하기엔 확실히 부족한 부분이 있음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유정정이 가진 옥간에 그 부분이 들어 있으리라 짐작하고 있었다.

그런데 지금 유정정의 말은 그 빠진 부분이 원래부터 없다는 말처럼 들리지 않는가.

"정정 수사,혹시 제가 그 옥간을 잠시 살펴볼 수 있겠……. 아닙니다. 그럴 필요는 없겠군요."

건우는 도중에 말을 바꿀 수밖에 없었다.

노려보는 유정정의 매서운 눈빛을 이기지 못한 것이다.

'흐으, 반응을 보아하니 없는 것이 아닐 수도 있겠다. , 그래도 다행이라 생각하는 건우였다.

<제 연심을 드리겠습니다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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