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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환장 통수 선협전-301화 (301/4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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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젠 정정 수사라 불러도? >

"여전히 태령기 괴수들이 자리를 지키고 있구나."

= 어르신께서 먼 곳에서 승경을 하셨기에 저것들이 거기까진 쫓아오지 않았던 것이지요.

= 어르신께서도 그걸 고려해서 그리 먼 곳에서 승경을 하셨던 것이 아니십니까.

멀리 지평선 위에 공간 균열이 보이는 곳까지 돌아온 건우그의 말에 소위의 두 얼굴들이 간이라도 빼 줄 것처럼 웃는 얼굴로 아부를 떨었다.

속으로야 어떤 마음을 품고 있는지 몰라도, 겉으로는 건우에 대한 외경을 여과 없이 드러내는 두 얼굴이었다.

"너희는 어찌 생각하느냐? 내가 태령기 괴수들을 사냥하는 것이 옳겠느냐, 아니면 안에 있는 수사들을 먼저 만나는 것이 옳겠느냐?"

= 그야 어르신의 뜻이 중요하지 않겠습니까.

= 다만 제 의견을 말씀드리자면 안에 있는 수사들을 먼저 만나는 것이 옳을 듯 합니다.

"어째서?"

= 그들에게 시간이 그리 많지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 어쩌면 위급한 상황일 수도 있습니다.

"음? 그래?"

건우는 두 얼굴의 말에 급히 연리지 옥간을 소환해 살폈다.

그런데 그 옥간의 빛이 이전보다 훨씬 더 어두워져 있었다.

그만큼 유정정의 상태가 좋지 않다는 의미일 것이다.

게다가 건우가 옥간을 꺼냈음에도 불구하고 유정정의 의식이 연결되지 않았다.

이전 건우가 이곳에 도착했을 때에는 곧바로 알아차리고 먼저 전언을 보냈던 유정정이 지금은 아무 반응도 없는 것이다.

건우는 곧바로 연리지 옥간에 의념을 불어 넣어 유정정과 소통을 하려했다. 하지만 유정정 쪽에서 돌아오는 대답은 없었다.

"너희 말대로 안쪽의 상황이 좋지 않은 모양이구나. 이렇게 되면 안으로 들어가는 것은 오로지 내 힘으로 해결을 해야 한다는 말이구나."

건우는 그렇게 말을 하고는 의념을 펼쳐 공간 균열까지의 공간을 두루 살폈다.

그리고 허공을 밟으며 공간 균열을 향해 나아가기 시작했다.

= 어르신, 이대로 곧장 가시는 것입니까?

= 괜찮겠습니까?

그 모습에 소위의 두 얼굴이 곧바로 따라 붙으며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물었다.

"시끄럽다! 내키지 않으면 예서 기다리면 될 일이 아니냐!"

건우는 두 얼굴에게 그렇게 일갈을 하고는 공간 균열을 향해 나아가며 의념을 넓게 펼치기 시작했다.

태령기가 된 이후 처음으로 전력을 다해서 펼치는 그의 의념은 광범위하고 또 강대했다.

이에 건우의 행동을 도발로 여겼는지 공간 균열 주변을 지키며 흘러나오는 기운을 흡수하던 여섯 태령기 괴수들도 긴장하며 경계의 념(念)을 뿌리기 시작했다.

당연히 건우의 의념과 여섯 괴수의 의념이 서로 부딪히며 대치하는 상황이 벌어졌다.

하지만 얼마 후, 여섯 괴수들은 건우와의 대치를 끝내고 공간 균열로 갈 수 있는 길을 내어주었다.

여섯 괴수가 의념을 엮어서 건우의 발밑에서 공간 균열까지 이르는 직선 통로를 깔아 준 것이다.

건우가 의념을 통해서 싸울 뜻이 없음을 드러내자, 태령기 괴수들은 길을 열어주고 딴 짓을 하지 못하도록 선을 그은 것이다.

괴수들은 건우가 공간 균열이 있는 곳으로 들어가는 것은 문제 삼지 않았다.

건우를 들여보내 주면 그가 안쪽에 있는 수사들과 마찬가지로 응결된 기운을 풀어내는 일을 하게 될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것은 좋은 일꾼 하나를 더하는 것과 같으니 괴수들 입장에서는 나쁠 것이 없었다.

물론 괴수들이 깔아준 길을 벗어나게 되면 곧바로 힘을 모아 응징을 하려 하겠지만 건우도 그럴 생각은 없으니 문제될 것이 없었다.

건우는 길이 열지자 망설이지 않고 빠르게 공간 균열로 향했다.

유정정과 네 명의 수사들은 응결된 기운을 통제하는데 한계를 느끼고 있었다.

수미 세계의 봉인으로 천지 법칙의 흐름 일부가 멈추며 그 기운이 이곳에 응결되었다.

대천 세계 전체와 연관된 천지 법칙의 흐름이니 그 기운이 얼마나 크고 강할까.

그런 기운이 수미 세계가 봉인을 벗은 후로 순리를 따라 응결이 풀리기 시작했다.

막혔던 천지 법칙이 흐르기 시작했으니 그것은 당연한 일이고 축하할 일이다.

하지만 하필 거기에 멸계와 통하는 공간 균열이 얽혀 있을 일이 뭐란 말인가.

응결된 기운이 풀리는 것을 따라서 뒤엉켜 있는 공간 균열이 자리를 잡으며 멸계와의 통로를 만들게 될 것이 문제였다.

그것이 아니라면 다섯 수사들이 이곳에 와서 풀리는 기운을 틀어막고 조율을 할 이유가 없었을 것이다.

지하 세계의 괴수들이 그 기운을 받아먹고 힘을 키우는 것도 문제가 될 것은 없었다.

어차피 괴수의 성장에도 한계가 있을 텐데, 굳이 그것을 막아설 이유가 뭐란 말인가.

또 완전히 성장한 괴수라도 필요하면 잡아서 수련 자원으로 만들 자신도 있으니 좋은 사냥감을 기른다 생각할 수도 있는 일이었다.

공간 균열, 멸계로 통하는 일그러진 공간 통로만 없었다면 문제될 것이 없었을 것을.

"끄응, 오는 모양입니다."

젊은 얼굴의 승려 수사가 신음소리를 내며 말했다.

찡그린 표정이지만 그래도 기대에 찬 눈빛에 힘이 들어가 있었다.

"고 놈, 욕심이 과하다 싶었는데 그 사이에 태령기가 되었군."

그 말을 받아 꼬챙이 체격의 척(尺) 수사가 탓하는지 칭찬하는지 모를 투로 중얼거렸다.

"어쨌거나 최악은 피할 수 있을 듯 하니 다행이지. 어렵게 맞추던 균형추에 태령기 수사 하나가 더해지면 상황을 뒤집는 것은 어렵지 않을 테니까."

"그렇지. 지금껏 영체의 근원까지 긁어 넣으며 어렵게 균형을 맞추었지만 이젠 그럴 필요가 없겠지."

문자가 가득한 옷을 입은 문출도와 참마도의 주인인 웅족 수사도 오랜만에 입을 열었다.

그렇게 네 수사가 건우의 등장을 반기고 있을 때, 유정정은 말없이 한쪽 허공을 쳐다보고 있었다.

스슥!

이윽고 그 허공에서 눈부시지 않은 밝은 금광이 터지며 건우가 모습을 드러냈다.

둔술을 펼쳐 다섯 수사들이 있는 결계 공간 안으로 들어온 것이다.

"유 선자님!"

건우는 모습을 드러내자마자 곧바로 유정정을 부르며 그녀를 바라보았다.

"왔구나. 호호호. 이제는 나를 유정정이라 불러도 되겠구나."

유정정이 건우의 부름에 활짝 웃는 얼굴로 그를 맞이했다.

건우는 그녀에게 다가가려 했지만 아직은 그럴 수가 없었다.

다섯 수사들이 이루고 있는 원진 안쪽에는 공간의 균열이 위험하게 자리 잡고 있었던 것이다.

게다가 그 공간균열의 아래에는 깊은 구멍이 뚫려 있었는데, 그 안에서 엄청난 기운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건우는 다섯 수사가 그 구멍에서 흘러나오는 기운을 조절하고 있음을 어렵지 않게 알아보았다.

그리고 지금 자신이 들어와 있는 결계 공간에 엄청난 진법들이 중첩되어 있음도 알아차렸다.

그 진법의 대부분은 공간 균열과 구멍 안의 기운을 억제하고 조율하는데 쓰이는 것이었다.

"후배가 선배님들께 인사가 늦었습니다. 유 선자님과 인연이 깊어 먼저 짧게 회포를 푼 것이니 이해해 주십시오."

건우는 결계와 다섯 수사의 상황을 살피고는 곧바로 두 손을 모으고 고개를 숙이며 인사를했다.

그 역시 태령기에 오르기는 했지만 그렇다고 태령기 완경의 수사들과 대등하게 설 생각은 없었다.

비록 같은 태령기라 하더라도 초기와 완경을 어찌 같은 선상에 둘 수 있을까.

"하하하, 유 선자와 먼저 인사를 하는 것이야 당연한 일이지. 그것을 두고 고까워 할 놈은 여기에 없으니 걱정하지 마라. 나는 문출도(文黜圖)라 한다."

"그렇지. 유 수사가 네게 안배를 남겨 지금이 자리가 있는 것인데, 어찌 고까움을 가질까. 나는 척제(尺制)라 한다."

"비거둔(臂巨純)이다."

"소승은 혜형이라 합니다."

건우의 인사에 네 수사가 모두 밝은 표정으로 자신들을 소개했다.

"흥! 지금은 그런 인사나 할 때가 아니다. 건우 수사는 어서 이리로 와서 일을 파악하고 도울 방법을 찾아야지!"

건우와 네 수사의 통성명에 유정정이 코웃음을 치며 건우를 불렀다.

건우는 그런 유정정의 부름에 곧바로 그녀의 등 뒤로 몸을 날렸다.

"부르셨습니까 유 선자님."

"이젠 정정 수사라 불러! 언제까지 선자라 할 것이야?"

"어떻습니까? 선자(仙子)는 곧 신선이요, 아름다운 분을 이름이니 어디 틀린 곳이 하나라도 있습니까?"

"흥! 네가 그 사이에 어디서 못된 것을 배운 게로구나? 설마 이것을 나눠 받고도 딴 짓을 한 것은 아니겠지?"

유정정이 소매 밖으로 손을 빼어 쥐고 있던 연리지 옥간을 들어 어깨 너머로 보이며 말했다.

건우는 그녀의 등 뒤에서 빙긋 터지는 웃음을 억지로 참으며 대답했다.

"무슨 그런 말씀을 하십니까. 제가 어찌 그런 짓을 할 수가 있었겠습니까. 그런데 지금 상황을 보아하니 저 구멍에서 나오는 기운을 조절하는 것입니까?"

"흥, 말을 돌리는 것이냐? 좋다, 그 이야기는 나중에 하자꾸나. 우선은 이것이 급하니."

유정정은 그렇게 말을 하고는 구멍에 의념을 집중하며 건우에게 물었다.

"어떠하냐? 알겠느냐? 내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

"하하. 물론이지요. 제가 선자님께 오죽 훈련을 많이 받았습니까. 다른 것은 몰라도 진법이나 금제, 결계에 대해서는 제법 재주가 있습니다."

"그러면 지금 우리가 어떤 상황인지도 알겠구나?"

유정정이 짧은 시간동안 건우가 얼마나 정확하게 상황을 알아냈는지 궁금한 듯이 그렇게 물었다.

"다섯 분이 구멍 속에서 솟아나는 기운을 억누르고 있는데, 문제는 그 위에 있는 저 공간 균열이지요. 공간 균열이 구멍에서 나오는 기운을 받아 멸계 통로로 복구되는 것을 막아 야지요. 동시에 응결에서 풀리는 기운도 적절히 밖으로 흘려보내야 하는 것이 아닙니까."

"크하하하. 대단하군. 그 사이에 그것을 모두 파악했다고?"

건우의 대답에 문출도가 크게 웃으며 감탄했다.

그리고 그건 다른 네 수사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건우는 볼 수 없었지만 건우를 등지고 있는 유정정 역시 입꼬리가 슬쩍 올라갈 정도로 만족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럼 이제 어찌 해야 하겠느냐? 그 답도 댈 수 있겠느냐?"

유정정이 다시 건우에게 물었다.

"그야 제가 조금만 도움을 드려도 다섯 분이 지금 상황을 뒤집을 수 있지 않겠습니까. 그리 어려워 보이지는 않습니다만."

건우는 보고 느낀 그대로 대답했다.

그리고 그것은 유정정을 비롯한 다섯 수사들이 기대하던 정답이기도했다.

하지만 거기에 불안 요소가 아주 없는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건우 수사. 문제가 좀 있습니다만 그것도 아시겠습니까?"

승려 혜형이 그것을 지적하며 운을 떼었다.

"밖에 있는 여섯 태령기 괴수들 말씀입니까?"

건우가 물었다.

그 역시 정답이라 다섯 수사가 기꺼운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그렇지. 그렇다면 어찌 하면 좋을까?"

이번에는 다시 문출도가 건우를 보며 물었다.

"갑자기 흘러 나가는 기운이 커지면 그것들이 본능을 이기지 못하고, 혹은 욕심을 이기지 못하고 이곳으로 뛰어들 가능성이 높겠지요?"

건우가 생각을 정리하며 질문을 던졌다.

하지만 그것은 대답을 듣자고 한 질문이 아니었기에 곧바로 말을 이었다.

"그렇다면 두 가지 방법이 있겠습니다. 하나는 시간을 두고 천천히 기운을 풀어내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어느 정도 여유를 만든 후에 밖에 있는 괴수들을 처리하는 것입니다."

"옳다. 우리도 그리 생각한다. 그렇다면 너는 두 방법 중에 어느 것이 좋을 것 같으냐?"

이번에는 과묵한 듯 보였던 참마도의 주인 비거둔이 건우를 보며 물었다.

건우가 질문을 던진 비거둔을 보며 웃으며 대답했다.

"그야 이를 것이 있겠습니까. 준비를 하고 뛰쳐나가 괴수들을 잡아 죽이는 것이 좋겠지요. 물론 이곳을 지킬 둘을 뽑아 방비를 하는 것도 필요할 것입니다."

"유 수사, 확실히 그대의 안배는 탁월한 바가 있다. 저리 영특한 후배를 데려 왔으니이 문 모는 그대에게 감탄하지 않을 수 없다."

"호호호. 무슨 그런 말을……? 어쨌건 결론이 난 듯 하니 이제 내가 제안 하나를 하려는데?"

유정정은 문줄도의 인사에 기분이 좋은 듯이 웃더니 문득 제안이란 말을 꺼냈다.

그러자 다른 수사들이 모두 유정정을 보았다.

"호호, 다른 것은 아니고. 이곳의 상황을 어느 정도 바로잡은 후에 나와 건우 수사가 이곳에 남을까 한다. 밖에 있는 괴수들을 처리하는 것은 그대들 넷에게 맡기고."

"으음?"

"그야 문제될 것이 있나?"

"원한다면 그리 하도록 하지."

"그렇지요. 유 선자께서 원하시면 그거야 어렵지 않은 일이지요."

밖으로 나가서 싸우는 일을 넷에게 맡긴다는 말에도 그들은 전혀 문제없다는 듯이 대꾸했다.

하지만 유정정의 말은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그리고 그 후로 이곳의 기운을 정리하는 일도 나와 건우 수사가 맡도록 하지. 괴수를 모두 처리하고, 결계를 보완하면 굳이 우리 모두가 이곳에 있을 필요가 없을 테니."

'어라? 나하고 유 선자 둘만? ' 건우가 움찔 놀라며 살짝 입을 벌렸다.

<이젠 정정 수사라 불러도?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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