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환장 통수 선협전-298화 (298/4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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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잠깐 승경 좀 하고 가실게요 >

"저곳인 모양이군?"

= 그렇다.

= 강력한 공간의 엇갈림이 느껴지지 않느냐?

허공에 발을 딛고 선 삼두육비의 건우가 까마득한 발밑을 보고 인상을 찌푸렸다.

저 멀리 지평선에서 느껴지는 불규칙한 공간의 파장은 분명 그가 찾고 있는 장소를 알려주고 있었다. 하지만 그곳까지 가는 길이 만만치 않았다.

"내가 잘못 느낀 것이 아니라면 태령기 괴수들이 못해도 여섯은 되는 거 같은데?"

건우가 인상을 찌푸린 이유는 바로 이것이었다.

공간의 비틀림을 중심으로 태령기급의 괴수 여섯이 원을 이루고 대치한 상태였다.

"이거 너희도 알고 있었던 거지?"

건우가 소위의 두 얼굴을 보며 물었다.

그러자 소위의 얼굴들은 난처한 표정을 보이며 머뭇거렸다.

"괜한 거짓말은 하지 마. 있는 그대로! 그거 면 되는 거야."

건우의 세 머리가 거친 이빨을 드러내며 소위의 얼굴들을 위협했다.

= 말도 안 되는 소리다.

= 우리가 이곳의 상황을 어떻게 안단 말이냐.

= 그저 짐작할 수는

= 있었다. 이곳을 노리는 고계 괴수나 마수, 요수가 있을 = 거라는 예상을 했었음은 인정한다.

= 이곳에 먹음직한 기운이 넘쳐 흐르니

= 당연한 일이지.

"저것들이 그 기운을 받아먹기 위해서 모여 있는 거라고?"

소위의 두 얼굴이 늘어놓는 변명은 건우에게 별 도움이 되지 못했다.

하지만 그마나 소위(WK) 이외엔 이곳의 상황을 물어볼 상대가 없었다.

= 몰라서 묻는 것이냐?

= 느껴봐라. 저곳에 응결되어 있는 기운의 크기를.

= 오랜 세월 천지 법칙의 흐름이 끊어진 상태로 고인 기운이 = 저곳에 있다.

"저기 있는 공간 통로는 멸계와 연결된 거라고 했잖아! 거짓말이었던 거냐?"

= 무슨 소리.

= 그건 분명한 사실이다. 그리고

= 그 통로가 제 모습을 갖추게 되면 멸계의

= 또 다른 세력이 이곳으로 넘어와 자리를

= 잡을 테니, 그것은 반드시 막아야 할 일이다.

= 그를 위해 태령기의 고계 수사가 다섯 명이나 나섰던 것이다.

"그럼 멸계와의 공간 통로와, 천지 법칙의 응결된 기운 사이에는 무슨 연관이 있는 거지?

= 응결된 기운이 비틀린 공간 통로를 불렀다. 그리고 유지하고 있다.

= 수미 세계의 봉인이 풀리고 멸계전이 시작되며 천지 법칙의 흐름이 다시 소통하게 되었다.

= 그 때문에 지금은, 비틀려 있던 공간 통로가 원래 모습으로 복구 되는 중이다.

= 그것을 태령기 수사들이 막고 있고

= 바깥에 있는 괴수들은 다섯 태령기 수사들이 풀어내고 있는 기운을 받아먹는 중이다.

= 태령기 수사들이 모든 기운을 풀어내면 공간 통로를 유지할 힘도 사라질 것이다.

"그래서 그게 언제 끝나는데?"

= 괴수들만 없다면 오래 걸리지 않을 것이다.

= 하지만 괴수들 때문에 최대한 느리게 일을 진행해야 한다.

= 자칫 괴수들이 공간 통로로 난입하면 모든 일이 물거품이 될 것이다.

"미치겠네. 그럼 결국 내가 저기 몰려 있는 괴수들을 처리해야 한다는 거야? 태령기급도 있는데?"

건우의 세 얼굴이 모두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러자 소위의 두 얼굴이 다급한 표정으로 말했다.

= 무슨소리!

= 그럴 필요는 없다.

= 너는 어떻게든 저 안쪽으로 들어가기만 하면 된다.

= 그곳에서 네가 기운의 조율을 대신 맡아주면

= 태령기 수사들이 나서서 바깥을 정리할 것이다.

= 너는 그 시간만 벌어주면 되는 일이다.

건우는 소위 얼굴들의 말을 듣고 고개를 들어 지평선 저 멀리 불길하게 일렁이는 공간 균열을 바라보았다.

실제로 눈이 아니라 의념으로 느끼며 살피는 것이지만 그 사이?  가로막는 괴수,요수, 마수들의 기운이 촘촘하기 이를 데 없었다. 입령기 이하를 무시하더라도 성령기급이 백여 마리에 태령기급이 여섯 마리나 된다.

'저것을 뚫고 안쪽까지 무사히 들어갈 수 있을까? '

문득 그런 계산을 두드려 본 건우가 고개를 저었다.

그리 가능성이 높아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그 때였다.

건우는 문득 뭔가를 느끼고 허공에 손을 저어 길게 생긴 청금색의 옥간 하나를 꺼내었다.

유정정이 둘로 나눠 전해줬던 연리지 옥간이었다.

- 왔구나.

건우가 그 옥간을 손에 쥐자 유정정의 목소리가 들렸다.

건우는 그 즉시 옥간을 통해서 유정정과 소통할 수 있는 방법을 깨우쳤다.

"유 선자님 무탈하십니까?"

호호호. 내가 너를 걱정시켰구나. 괜찮으니 염려 말거라.

"하지만 선자님의 기운이 쇠하여 끊어질 듯 안타깝습니다."

괜찮다는데 그러는구나. 그보다.

"네, 선자님."

우리가 틈을 만들어 줄 것인 즉, 너는 기회를 보아 이곳으로 들어올 수 있겠느냐?

"선자님께서 도움을 주신다는 말씀입니까? 그렇다면야 무엇을 하지 못하겠습니까?"

건우는 호기롭게 말했다.

하지만 이어진 유정정의 말은 그가 바라던 것에 미치지 못했다.

아, 네가 무슨 기대를 가지고 있는지 모르지만 우리의 도움은 그리 크지 않을 것이다.

"네?"

고작해야 괴수들에게 잠깐의 혼란을 줄 수 있을 뿐이니, 나머지는 네가 알아서 해야 한다는 말이지.

"하지만 성령기급을 빼고도 태령기가 여섯 마리나 됩니다. 그 여섯 태령기가 서로 대치하여 그 틈이 바늘 꽂을 곳도 없을 정도입니다."

어떻게든 이곳까지 들어오기만 하면 문제가 없을 것인데, 그것이 어렵다는 말이구나.

"송구스럽습니다. 후배가 미흡하여......"

건우가 앓는 소리를 했지만 유정정은 한동안 말이 없었다.

'어라? 선자님이 정말 설마 정말 나를 모자란 놈으로 보는 거야? 왜 대꾸가 없어?"

그리고 건우는 말이 없는 유정정이 섭섭하게 느껴졌다.

"선자님, 그렇다면 조금만 더 기다려 주심이 어떻겠습니까?"

결국 그 섭섭함이 다른 방향으로 터져 나왔다.

기다려 달라?

"그렇습니다. 후배가 어떻게든 태령기까지 올라가겠습니다."

- 뭐라?

"영기 수련으로는 어렵겠지만 진극멸기를 이용하면 태령기도 넘보지 못할 벽은 아닙니다. 이미 모아놓은 진극멸기가 적지 않으니 조금만 더 애를 쓰면 태령기에 올라설 수 있을 것 입니다."

그러니까 네가 태령기가 될 때까지 기다려 달라는 소리구나? ?

"고작 태령기 초기라 할지라도 지금과는 하늘과 땅 자이가 아니겠습니까. 그 정도가 되면 선자님이 계신 곳까지 가는 것이 그리 어렵지는 않을 것입니다."

하아, 나쁘지 않은 방법이기는 하지만, 사실 우리에겐 시간이 그리 많지 않단다.

"그렇다고 해도 어설프게 도전했다가 제가 괴수의 먹이가 되는 것보다는 낫지 않겠습니까."

- 그야 당연하지!

"......."

- 잠시 기다리거라. 여기 있는 동도들과 의논을 해 보고 다시 연락하마.

결국 유정정은 그렇게 전언(傳言)을 끊었다.

네 개의 다리.

목에는 풍성한 갈기를 달고 있는 거대 도마뱀.

목도리를 두른 것 같은 갈기는 자세히 보면 모두가 제각각 꿈틀거리며 움직이는 뱀이다.

긴 꼬리는 끝에 여섯 갈래로 갈라져 칼날을 이루고 있는데 시커먼 독기가 풀풀 날린다.

꾸 루루루루 루루 루 !

푸화화확! 푸화화확! 푸화화확!

길이가 백여 장에 이르는 거대한 도마뱀이 기괴한 소리를 내며 울더니 입을 크게 벌리고 녹색의 화염을 토해낸다.

"크하하하하. 좋다! 좋아!"

그리고 그런 거대 도마뱀 앞에서 키가 삼십 장에 이르는 삼두육비의 거인이 큰 소리로 웃고 있었다.

그런데 그는 도마뱀의 녹색 화염을 피하지도 못하고 고스란히 뒤집어쓰고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삼두육비 거인의 여섯 손은 도마뱀의 앞발과 목의 뱀들을 틀어쥐고 있느라 몸을 뺄 수가 없는 상태였던 것이다.

"우푸푸푸풉! 우푸푸풉! 이게 정말!"

녹색 화염을 몇 번이나 뒤집어쓴 거인이 인상을 와락 구기며 왼쪽 검은색 머리의 입을 벌리고 극멸기 광선을 쏘아냈다.

푸확! 퍼버벙!

꾸루룩! 꾸루루루루루!

얼굴 정 중앙에 극멸기 광선을 맞은 도마뱀 괴수가 고통스러운 듯이 온 몸을 비틀며 괴성을 질렀다.

하지만 건우는 여섯 개의 손으로 양쪽 앞발과 뱀으로 된 갈기를 틀어잡고 도마뱀이 빠져 나가지 못하게 버텼다.

"이거 질기네."

그리고 몸을 뒤틀면서도 끝내 숨이 끊어지지 않는 도마뱀의 생명력에 감탄하며 발길질을 시작했다.

상대의 목을 틀어잡고 무릎과 발로 강요하는 무자비한 폭력.

성령기 완경급의 도마뱀 괴수는 고통스러운 비명을 지르면서도 좀처럼 건우의 손을 벗어나지 못했다.

물론 중간에 몇 번이나 독기가 가득한 화염 토사물을 뱉어 냈지만 그래봐야 나타의 진혈을 이은 삼두육비의 괴수를 당할 수는 없었다.

건우도 쌍두단미 영원에게서 얻은 피에 나타태자의 진혈이 숨어 있을 줄은 몰랐다.

그 피로 얻은 공법이 나타결공법이긴 했지만 그 나타가, 진정 신화에 등장하는 나타태자를 말하는 것일 줄이야.

어쨌건 건우도 그 동안 진극멸기를 흡수하여 결국 나타결공법을 성령기 완경까지 끌어 올리고서야 나타태자라는 신화 속의 존재를 알아차릴 수 있었다. 그런 것을 보면 건우가 얻은 무명공이란 공법은 그야말로 보물중의 보물이 분명했다.

피에 따라서 그에 알맞은 수련 공법을 만들어 내는데, 하물며 깊이 숨겨져 있는 비밀스러운 혈계까지 알아차린다.

이런 공법이 세상에 어디에 있단 말인가.

꾸루루루루 꾸루루루루루!

"거참 끝까지 끈질기네. 그냥 죽으라니까!"

건우가 잠시 생각에 빠져 드러난 허점을 노리고 다시 힘을 모으려 하는 도마뱀 괴수.

건우도 그 사실을 알아차리고는 여섯 팔의 힘을 모두 동원해서 도마뱀 과수의 목을 끌어안았다.

이번에는 앞발을 잡았던 두 손까지 동원해서 목을 조이기 시작한 것이다.

뿌드드드 꽈드드드득!

그리고 결국 건우의 우람한 여섯 팔이 도마뱀 괴수의 목을 부러뜨렸다.

"놓칠 것 같으냐?"

그리고 이어서 도마뱀의 이마에서 솟구치는 영체를 가운데 머리인 회색 머리가 입으로 빨아들였다. 하지만 곧 그 영체는 건우의 제일 위쪽 오른손에 잡혀서 끌려나온 뒤, 엄지와 검지 사이에 잡혔다.

도마뱀의 영체는 어떻게든 빠져나가려 손가락 사이에서 꿈틀거렸다.

하지만 건우는 이내 옥병 하나를 불러내어 영체를 그 안에 넣고 뚜껑을 끼워 버렸다.

샤라라라라 라라랑!

= 봐라. 진극멸기가 나왔다!

= 드디어 목표를 채웠군.

그 때, 죽은 도마뱀의 몸체에서 커다란 진극멸기 덩어리가 만들어졌다.

어디에 있다가 나왔는지 그것을 본 소위의 두 얼굴이 더없이 기뻐하며 호들갑을 떨었다.

건우는 공법을 극성으로 펼쳐 30장까지 늘어났던 몸을 작은 크기로 줄이며 손을 내밀어 진극멸기를 잡아당겼다.

그리고 다시 허공을 더듬어 포악하게 생긴 앙천적의 한 마리를 꺼냈다.

둥글고 큰 배에 마귀의 얼굴을 가지고 있는 돌연변이 앙천적의였다.

하지만 그것은 겉으로만 그렇게 보일 뿐, 실상은 건우가 새로 만든 멸기함분 즉 진극멸기를 보관하는 그릇이었다.

돌연변이 앙천적의를 특별히 연화하여 만들어낸 그 멸기함분은 둥근 배에 있는 마귀 얼굴의 입을 크게 벌려 도마뱀 괴수의 진극멸기를 빨아들였다.

건우는 그 배가 둥근 돌연변이 앙천적의를 마귀면밀관의(魔鬼面蜜確!儀:마귀의 얼굴을 가진 꿀단지개미)라 부르고 있었다.

"이제 준비는 끝난 거 같군."

도마뱀 괴수의 진극멸기를 모두 흡수하고 이전보다 한층 검은 색이 짙어진 마귀면밀관의 멸기함분을 보며 건우가 만족스러운 웃음을 지었다. 드디어 태령기에 오를 수 있을 정도의 진극멸기가 모인 것이다.

"이제 머지 않았다."

건우가 훌쩍 몸을 띄워 높은 하늘로 올라서서 저 멀리 여섯 괴수들이 차지하고 있는 영역을 노려보다가 둔광과 함께 어디론가 모습을 감췄다.

=이런, 이 놈의 종자가 또!

= 가면 간다, 오면 온다 말을 해야 할 거 아니냐고!

뒤늦게 남겨진 것을 알아차린 소위의 두 얼굴이 버럭버럭 불평을 터트렸다.

그리고 급히 건우의 종적을 쫓아 둔술을 펼쳤다.

이제 건우가 태령기에 도전할 것인데, 그런 구경을 놓칠 수야 없지 않은가.

< 잠깐 승경 좀 하고 가실게요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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