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환장 통수 선협전-297화 (297/4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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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이고, 소위의 두 얼굴이 어쩌다가 >

유정정은 세 수사까지 더하여 네 명 모두 자신에게 관심을 보이자 더욱 의기양양한 표정이 되었다.

그리고 어깨를 활짝 펴며 말했다.

"이곳에 오면서 혹시 하는 생각에 뒤를 부탁한 아이가 있다. 성령기 후기에 불과하지만 재기가 넘치는 아이지."

그런 그녀의 목소리에는 감춰 놓았던 보물을 꺼내 보이는 듯 자랑하는 기색이 가득했다.

"성령기 후기라고? 그래서 소위의 문을 통과할 수 있었던 것인가?"

네 수사들 중에 꼬챙이처럼 가늘고 길게 생긴 수사가 뭔가 헤아리는 표정으로 말했다.

"그렇겠지. 저번에 우리가 들어올 때에 소위가 더는 수사의 출입을 허락할 수 없겠다 했었지?"

그 말을 받은 것은 입고 있는 옷에 온갖 고대 문자를 황금색으로 수놓은 수사였다.

"맞다. 한동안 그럴 여유가 없다고 했지. 자칫하면 금제 결계에 문제가 생길 수도 있다고 말이야."

꼬챙이 같은 체격의 수사가 다시 그 말을 받았다.

"그랬지. 하지만 성령기 하나 정도라면 어떻게든 수가 났던 모양이군."

"그렇지 않았다면 어찌 유 수사의 안배가 소위의 문을 통과했겠습니까? 유 수사는 과연 영만하신 데가 있으십니다."

문자수복을 입은 수사의 말에 머리에 열여덟 개의 계인을 찍은 젊은 승려가 끼어들었다.

"그러고 보니 유 수사가 아끼는 후배가 있다고 했었지? 인계에서 멸계전도 한 번 치렀고, 홍애지에서 고계 수사를 다수 데리고 오기도 했고."

문득 생각난 듯이 건우의 행적을 늘어놓은 것은 지금껏 말이 없던 곰 형상의 수인족 수사였다.

그는 가부좌를 한 무릎 위에 거대한 참마도(朝馬刀)를 올려놓고 있었다.

"옳거니. 그럼 바로 그 녀석이겠군. 지금 소위의 문을 지난 녀석이."

"유 수사, 지금이 말이 옳습니까? 진정 그 건우란 녀석이 오고 있는 것입니까?"

꼬챙이 수사와 승려 수사가 연이어 떠들더니 결국 건우의 이름까지 거론되었다.

네 명의 수사가 저들끼리 대화를 하며 어느새 상황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하고 건우의 등장까지 점찍은 것이다.

"호호. 맞다. 바로 건우 그 아이가 소위의 문을 지나 지하 세계에 발을 디뎠다. 이제 남은 것은 그 아이가 여기까지 무사히 닿기만 하면 된다. 그리되면 지금의 곤란함을 벗어날 방 도가 생길 수도 있다."

수사들의 대화를 들은 유정정이 웃는 얼굴로 희망을 이야기했다.

하지만 막상 그 말을 듣는 수사들은 반신반의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유 수사가 공을 들였다니 뭔가 있긴 하겠지만……?"

"그렇지. 그렇기는 한데, 고작해야 성령기 후기라는 것이 걸리는군."

"그래도 기대를 해 봄직 하지 않겠습니까. 우리들의 처지가 아슬아슬 균형을 맞추고 있는 상태니 성령기라 하더라도 균형추의 한쪽을 내리 누를 정도가 될 수도 있음이지요."

"아무리 그래도 고작 성령기……."

다시 유정정을 제외한 네 수사들의 갑론을박이 시작되었다.

그러자 유정정의 표정이 서늘하게 굳어졌다.

"지금 너희가 내 말을 의심하는 것이냐? 그 후과를 어찌 감당하려고?"

유정정이 네 수사를 모두 한 번씩 노려보며 말했다.

그 서슬에 네 수사가 슬쩍 고개를 돌려 유정정의 시선을 외면하며 헛기침을 하거나 수염을 쓰다듬었다.

"어디 계속해서 경망된 입을 놀려 봐라. 그 아이가 왔을 때에 톡톡히 대가를 치르게 할 테니까."

유정정이 다시 한 번 날선 말과 표정으로 수사들을 압박했다.

"커엄. 유 수사. 그리 화를 낼 일은 아니지. 솔직히 성령기 후기 꼬챙이 체격의 수사가 그래도 할 말은 해야겠다는 듯이 어물거렸다.

하지만 그의 말은 이어진 유정정의 말에 허리가 잘렸다.

"척(尺) 수사! 그 아이가 성령기든, 입령기든, 무슨 상관이냐? 어찌 되었든 내가 그 아이를 안배했다는데! 그걸 의심하는 것은 곧 나를 의심하는 것이 아니냐!"

"그렇지. 유 수사의 말이 옳지. 이번 일은 척 수사가 잘못했군."

유정정이 다시 화를 터트리자 문자수복(文子編服문자 수를 놓은 옷)의 수사가 슬그머니 끼어들어 그녀의 편을 들고 나섰다.

"이런, 문출도. 네가 그 사이에 줄타기를 하는 것이냐?"

그러자 곧바로 꼬챙이 체격의 수사가 못마땅한 기색으로 문자수복의 수사를 향해 으르렁거렸다.

"어허, 척 수사, 문 수사. 진정들 하십시오. 지금 우리끼리 다툴 때는 아니지 않습니까. 그리고 이번 일에서 유 수사가 화를 내는 것도 당연하지요. 어쨌거나 후일을 대비하여 건우 란 아이를 여기로 오게 한 것이 유 수사 아닙니까."

이에 다시 젊은 승려 모습의 수사까지 나서서 싸움을 말리며 은근히 유정정의 손을 들어 주었다.

"옳다. 나도 척가처럼 믿지 못하고 의심한 바가 있으니 유 수사에게 사과하지."

마지막으로 참마도의 수인 수사가 담백하게 유정정에게 사과를 하며 분위기를 진정시켰다.

"에잇! 괜한 일로 다툴 필요는 없겠지. 어차피 모두 같은 처지로 이곳에 묶여 있는 형편에 싸울 일이 뭐겠어? 그만하지."

유정정 역시 서로 기싸움을 해 봐야 좋을 것이 없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기에 그렇게 양보하고 물러났다.

이후 유정정과 네 수사들은 건우가 도착하면 어떤 도움을 받을 수 있을지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시간, 건우는 두 쪽의 소위 얼굴과 함께 수미산 지하 세계에 발을 디디고 있었다.

***

"죽어라!"

콰과과과광! 콰지지지직!

캬랴랴랴략! 캬략! 크롸롹!

삼두육비의 거인이 극멸기를 몸에 두르고 날뛰었다.

그 서슬에 고양이 꼬리를 가진 승냥이 마수들이 떼죽음을 당한다.

여섯 개의 손을 휘저을 때마다 천지가 요동을 치며 검은 불과 번개가 내리치고, 땅거죽이 뒤집어진다. 그 속에서 화신기 급의 승냥이 마수들이 악을 쓰며 달려들다 보람 하나 없이 쓰러지는 중이었다.

= 너! 극멸기를 쓴다고?

= 재미있구나. 영기와 극멸기를 함께 쓰는구나. 그 둘을 엮어 혼돈기로 만들고.

= 옳지 않다! 너는 바르지 않아!

= 수사가 어차피 역천의 존재인데 올바른 길이 어디에 있을까. 네 마음대로 해라!

강철 얼굴과 검붉은 얼굴의 두 소위가 삼두육비로 변한 건우의 모습에 깜짝 놀라며 제각각 떠들었다.

하지만 건우는 그런 참견에는 전혀 신경도 쓰지 않았다.

그는 마침 승냥이 중에서도 제법 강한 녀석을 발견하고 검은색 얼굴의 입을 쩍 벌려 극멸기 광선을 쏘아냈다.

푸화화확! 캬랴랴랴략! 퍼벅!

건우가 쏜 극멸기 광선은 입령기 중기에 이른 승냥이 마수의 가슴을 그대로 꿰뚫었다.

"어딜 도망가느냐!"

그리고 그 가슴에서 튀어 나와 급히 몸을 감추려던 영체는 건우가 내민 손으로 빨려왔다. 입령기가 되도록 영성을 얻지 못한 마수의 영체는 건우의 손에 붙잡혀 버둥거렸다.

"감히 주제를 모르고 대항하면서이 런 결과를 예상치 못했단 말이냐기"

뿌지지지직

건우는 손에 잡힌 영체를 망설임 없이 뭉개버렸다.

그리고 뒤이어 그가 몇 번 신형을 번뜩이며 종횡하자 살아 있는 승냥이는 하나도 남지 않게 되었다.

고작 입령기 한 마리가 이끄는 화신기 마수떼가 건우의 상대가 될 수는 없었던 것이다.

"겁도 없이 어르신의 앞을 가로막다니,모두가 자업자득이다!"

건우가 시산혈해로 변한 폐허를 훑어보며 소리쳤다.

그러자 소위의 얼굴들이 건우의 세 머리 앞으로 날아들어 제각각 떠들기 시작했다.

= 아니, 이것들이 네게 무엇을 했단 말이냐? 네 놈이 이것들의 영역에 난입하여 무참한 살겁을 저지른 것이 아니냐?

= 그런 것은 중요하지 않지. 어차피 지하 세계의 마수들은 모두가 일그러진 것들일 뿐.

= 극멸기를 써서 살겁을 일으키고 거기서 진극멸기를 얻다니.

= 그야말로 다른 놈들은 알아도 행할 수 없는 절묘한 수단이 아닌가.

두 쪽의 얼굴이 눈앞에서 왱왱거리며 떠들자 세 개의 머리가 한꺼번에 인상을 찌푸렸다.

그리고 커다란 손 하나를 휘둘러 소위의 얼굴 문짝을 거칠게 밀어냈다.

"시끄럽다! 조용히 해라!"

그리고 중앙에 있는 회색 머리가 크게 고함을 질렀다.

=이 놈 아무리 처지가 바뀌었다고 나를 이리 홀대할 수 있느냐?

= 크하하하. 처지가 바뀌었음을 인정했다면 박한 대우도 받아들여야지 어쩌겠어? 하지만 뒷감당은

= 네 놈이 알아서 해야겠지.

= 그렇지.

삼두육비 거인의 손이 닿지 않을 거리로 물러난 소위의 두 얼굴이 심통난 표정으로 떠들었다.

하지만 건우는 싸움으로 폐허가 된 곳곳에 모습을 드러내는 극멸기를 거두느라 소위 얼굴들에겐 신경도 쓰지 않았다.

이곳에서도 극멸기로 무언가의 목숨을 거두면 확률적으로 극멸기가 생성되었다.

그래서 건우는 지하 세계에 들어온 후로는 쉬지 않고 사냥에 사냥을 거듭하는 중이었다.

소위 얼굴에게 지하 세계에는 오직 마수, 요수, 괴수 따위만 있을 뿐, 수사는 태어나지 않는다는 이야기를 들은 후였다.

틀어 막힌 천지영기의 흐름에서 탄생한 지하 세계는 그 이유로 천지법칙의 제약을 받았다고 한다.

지하 세계에서 허다하게 태어난 마수, 요수, 괴수들 중에 영성이 트여 수사가 되는 것이 하나도 없는 이유가 그 제약 때문이라했다.

그러니 건우가 지하 세계에서 살겁을 일으키는데 거리낄 것이 뭐가 있겠는가.

그저 죽이고 죽여서 진극멸기로 만들면 그 뿐이었다.

"자, 다시 출발하지. 어느 방향으로 가면 되나?"

진극멸기를 모두 수습한 건우가 여섯 팔을 모아 팔짱을 끼고 소위의 얼굴들을 향해 물었다.

= 저 쪽이다.

= 옳다. 저 방향이다.

건우의 물음에 소위의 얼굴이 양각된 문짝이 함께 한쪽 방향을 바라보았다.

"그렇군. 그럼 다시가 보지. 저 쪽에 또 다른 요괴 무리가 있는 것 같으니 들러 가는 것이 좋겠네."

건우는 그렇게 말을 하고는 소위 얼굴들이 가리키는 방향에서 살짝 어긋난 쪽으로 걸음을 내딛었다.

= 또?

= 매번 이런 식이군.

= 어쩔 수 없지?

= 어서 따라가자고. 늦으면 또 패악을 부릴 것이니.

= 커언

= 허어, 그것 참.

삼두육비의 거인이 빠르게 걸음을 옮겨 허공으로 녹아들자 소위의 두 얼굴이 낙심한 표정으로 중얼거리더니 곧바로 둔광과 함께 모습을 감췄다. 그리고 얼마 후, 건우는 자신의 어깨 위에 모습을 드러낸 소위의 얼굴 문짝을 확인하고 세 얼굴이 피식 웃음을 터트렸다.

'속이 타겠지만 어쩌겠어. 지금은 제 놈들 수준이 고작해야 성령기 중기에 불과한 것을. , 건우는 그런 생각을 하며 그들이 검붉은 색 소위의 문을 지나 지하 세계에 들어왔을 때를 떠올렸다. 막상 그들이 지하 세계에 발을 디디자 소위의 두 얼굴은 본체와의 연결이 끊어져 버렸다.

그 때문에 그들의 경지는 성령기 중기 정도로 낮아졌고, 건우는 그 사실을 알고 곧바로 그들을 그에 맞게 대했다.

알고 보니 소위의 두 얼굴은 본체가 아니라 본체에서 파생된 분체 인격이었던 것이다.

수미 세계 쪽의 문과, 지하 세계 쪽의 문으로 나누어진 인격은 시간의 흐름에 따라서 서로 다른 성향을 지니게 되어 각각의 영역을 지키고 있었단다.

그들은 금제 결계 안에 있을 때에는 본체의 힘을 모두을 수 있지만 밖으로 나오면 성령기 중기의 경지밖에 되지 않았다.

그것을 알게 된 건우가 그 두 얼굴에게 성령기 중기 수사로 막대하게 된 것이다.

그들 두 얼굴이 본체가 아니라 독립된 분체이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이후에 그들 중에 하나가 본체에 흡수되어 주(主) 인격(人格)이 될 수는 있겠지만 그것은 그 때에 따져 볼 일이었다.

"본체에 흡수되어 태령기 완경이 된다면 당연히 대우를 해 주겠지만 그 전까지야 나보다 못한 경지가 아니냐."

건우가 성령기 중기로 경지가 떨어진 두 얼굴을 보며 한 말이 이것이었다.

어차피 수도계에서 어제의 제자가 오늘 동기가 되었다가 내일 스승이 될 수도 있는데 무얼 따지랴.

"오호? 성령기급 괴수가 있는 것 같은데? 제대로 몸을 풀 수 있겠어!"

얼마쯤 갔을까?

삼두육비의 건우가 여섯 손을 모아 손가락을 꺾으며 활짝 웃었다.

< 아이고, 소위의 두 얼굴이 어쩌다가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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