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환장 통수 선협전-296화 (296/4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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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위(WK)와 지하 세계로 들어가다 >

빛 한 점 들지 않는 동굴.

그 깊은 어느 곳에 술법으로 띄운 광구(光球)에 의지하며 건우가 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그리고 그런 건우의 곁에는 손바닥 두 개를 합친 크기의 문짝 하나가 둥실둥실 떠다니고 있었다.

"정말 이리로 가는 것이 맞습니까?"

= 지금 나를 믿지 못한다는 것이냐?

말없이 걸음을 옮기 던 건우가 답답한 표정으로 물어보자 소위(陳K)가 버럭 화를 냈다.

손바닥 두 개 크기의 문짝에 길게 늘어진 강철 얼굴이 도드라져 있었는데, 바로 소위였다.

"벌써 몇 달이 흘렀습니다. 그 동안 수많은 갈림길을 지나왔는데 아직도 끝이 어딘지 모른다 하시니 그런 것이 아닙니까."

건우가 조금은 책망하는 기색을 담아 소위에게 투덜거렸다.

그가 소위를 회유하여 절벽의 문 안으로 들어온 것이 벌써 이백 일이 가까워지고 있었다.

그런데 그동안 한 일이라곤 줄곧 이렇게 좁은 동굴을 쉬지도 않고 걷기만 하는 것이었다.

마음 같아선 술법을 쓰고 싶지만 이곳은 소위가 축이 되는 결계 금제의 내부라 마음대로 둔술이나 이동 술법은 물론이고 법보나 괴뢰 따위도 쓰기가 어려웠다.

소위가 그런 것들이 결계 내부에서 발동되면 곧바로 결계 금제가 반응할 것이라고 경고했었다.

그래서 광구(光球) 하나를 띄우는 것만 겨우 허락을 받은 상태였다.

= 내 분명 이르지 않았더냐. 이곳은 나의 몸속이나 다름이 없는 곳이다. 그런데 어찌 내가 길을 잃는단 말이냐?

"그러면 앞으로 가야 할 길이 얼마나 남았는지 정도는 알려주실 수 있는 것 아닙니까. 그런데 그것도 모르겠다 하시니 제 속이 오죽 답답하겠습니까."

소위가 나름 근거를 가지고 건우를 달래려 했지만 건우 또한 이유가 없이 불만을 터트리는 것은 아니었다.

= 요놈아, 너도 네 뱃속에는 들어가 보지 않았을 게 아니냐. 나라고 내 뱃속에 들어와 봤겠느냐?

"아니 그게 말이 됩니까? 진짜 뱃속에 들어가는 것과 지금 상황이 어찌 같을 수가 있습니까?"

건우가 이제 와서 딴 소리를 하는 소위의 언행에 기가 막혀 버럭 성질을 내고 말았다.

= 고놈 참, 인내심이 결국 바닥이 난 게냐? 잘 참는다 싶었더니 결국?

그러자 소위가 건우의 얼굴 앞으로 날아와 정면으로 얼굴을 마주하며 물었다.

건우는 그런 소위의 눈빛 깊은 곳에 차가운 기운이 담겨 있는 것을 알아차렸다.

"어휴, 알았습니다. 갑니다 가요. 어르신 말씀대로 가다보면 언젠가 끝이 있겠지요."

건우는 곧바로 한 걸음 물러 났다.

지금 상황이 소위가 건우에게 내리는 일종의 시험일 수도 있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과거 천지 법칙의 흐름에 이상이 생겨 지하 세계가 만들어지고, 그곳의 기운이 폭주하여 수미 세계에 위험이 닥쳤다.

그러자 수미 세계의 고계 수사들이 모여 그 원인을 찾고 해결책을 모색하던 중, 소위를 동원하여 결계를 만들게 되었다.

당시에 그 일을 주도했던 이들은 이미 모두 천겁에 쓰러져 사라지거나 스스로 봉인하여 모습을 감추었지만 소위는 지금껏 의연하게 수미를 지켜왔다.

따지고 보면 건우가 그를 회유하여 스스로의 의무에서 벗어나게 하려던 시도가 제대로 먹혔는지는 확실치 않다.

그저 소위가 건우의 말에 관심을 보이며 이렇게 지하 세계로 동행하겠다고 했기에 그러려니 하고 생각했을 뿐이다.

그런데 막상 함께 동행한 시간을 돌아보면 소위에겐 다른 뜻이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했다.

= 왼쪽 통로로 들어가면 된다.

그 때, 다시 세 개의 갈림길이 나타났고, 소위가 가야 할 길을 알려주었다.

건우는 조금 전에 한바탕 말싸움을 했기에 이번에는 군소리 없이 소위가 시키는 대로 왼쪽 통로를 택해 걸어 들어갔다.

그런데 얼마쯤 걸었을까, 건우는 뭔가 지금까지와는 다른 변화가 있음을 느꼈다.

"어르신, 동굴 벽의 색이 바뀌었습니다. 그리고 벽에 흐르는 기운도 바뀌었습니다."

= 나도 알고 있으니 그리 호들갑 떨 것 없다.

"이미 이럴 것을 아셨습니까?"

= 이제 절반을 왔느니라. 너는 그것만 알면 된다.

건우의 물음에 소위가 굳은 얼굴로 그렇게 말하곤 입을 다물었다.

건우는 어쩔 수 없이 다시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그런데 한참 후, 새로운 갈림길이 나왔는데도 소위가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어르신, 어느 쪽으로 가야 하겠습니까?"

어쩔 수 없이 걸음을 멈춘 건우가 소위에게 물었다.

= 기다려 보거라.

소위가 건우는 쳐다보지도 않고 두 개로 나누어진 갈림길만 노려보며 말했다.

= 크하하하. 왔구나 왔어!

쉬이이이잉! 퍼버버벅!

그런데 갑자기 어두운 갈림길 안쪽에서 뭔가가 소리를 지르며 빠르게 날아와 소위와 충돌을 일으켰다.

건우가 급하게 그것을 막으려 했으나 동굴 안에서 영기를 쓰지 말라는 경고 때문에 뜻을 이룰 수가 없었다. 그가 소위의 앞으로 나섰을 때에는 이미 소위가 갈림길에서 날아온 것과 충돌한 후였다.

"어르신, 괜찮으십 니까?"

건우가 깜짝 놀라며 소위의 상태를 살폈다.

"아니, 어르신!"

그런데 소위의 상태가 이상했다.

= 호들갑 떨 것 없다.

= 아무렴 그렇지. 이게 뭐 그리 놀랄 일이라고?

하나였던 문짝이 두 개가 되었고, 문짝에 붙은 얼굴도 두 개가 되었다.

그런데 찍어낸 듯이 꼭 같은 얼굴이 색은 달랐다.

새로 생긴 얼굴은 변해버린 동굴 벽처럼 검붉은 색을 하고 있었다.

"어르신은 뉘십니까?"

건우가 검붉은 색의 강철 얼굴을 보며 물었다.

= 누구긴, 내 이름이 소위라고 말하지 않았더냐?

그러자 그 얼굴이 화난 표정으로 건우를 노려보며 말했다.

건우의 시선이 자연스럽게 지금까지 함께 했던 얼굴을 바라보게 되었다.

그런데 그 얼굴이 그 말을 부정하지 않고 도리어 긍정해 주었다.

= 맞다. 그 역시 소위다.

"이게 무슨 상황인지 알 수 있겠습니까?"

결국 건우가 두 얼굴을 보며 설명을 요구했다.

= 단순한 이치다. 수미의 수사들이 벽을 만들고 기운의 숨통을 트려고 나를 이용해 문을 세우지 않았더냐.

= 하지만 지하 세계의 기운을 조절하기 위해서는 하나의 문으로 부족했지.

= 그래서 반대쪽에도 문을 만들었지. 하지만 그 문 역시 내게 속할 수밖에 없었지.

= 나는/

= 이곳 금제 결계의 중심축이었으니까.

두 개의 얼굴은 서로를 인정하는 모습이었다.

서로 싸우지도 않았고, 다른 말을 하지도 않았다.

건우는 그런 모습을 보며 상황을 쉽게 이해하기로했다.

"결국 같은 분이란 말이 아닙니까?"

= 멍청한 것인가? 아니면 그런 척 하는 것인가?

= 네 놈이 알아서 생각해라.

검붉은 색의 얼굴이 물었고, 원래의 강철 얼굴이 대답했다.

그리고 그 순간 건우의 얼굴 표정은 딱딱하게 굳었다.

지금 상황을 보면 두 얼굴이 하나라고 보기는 어려웠던 것이다.

두 얼굴이 같은 소위라면 굳이 대화를 할 이유가 어디 있단 말인가.

"양쪽에 문을 만들었지만 그 역시 소위 어르신을 중심으로 했다 하지 않으셨습니까. 게다가 두 분의 얼굴 모습이 같으니 그 말씀이 거짓은 아닐 테고요. 그런데 지금 서로 다른 분 처럼 말씀을 하시는 연유가 있겠지요?"

건우가 본래의 강철 얼굴을 보며 물었다.

= 하나였지만.

= 지금은 아니지.

= 그럼에도 나는

= 소위임엔 분명하지.

두 얼굴이 번갈아가며 말했다.

둘 모두 스스로 소위라 하면서 또 하나는 아니라했다.

둘로 쪼개졌다는 이야기다.

= 멸계전이 시작되면서부터 생각한 것이다.

= 네 놈이 말한 대로 이제 천지 영기가 막힘없이 흐르게 되었으니 벽과 문의 역할이 끝났다고 볼 수도 있다.

= 하지만 지하 세계의 상황이 분명하지 않으니 당장 내 소임을 버릴 수도 없다.

= 그래서 재주 있는 수사들 몇을 들여보냈는데 소식이 없었다.

= 그런 중에 네 놈이 나를 찾아 온 것이지. 안에서 좋지 않은 일이 벌어지고 있다는 정황을 가지고.

두 얼굴은 그렇게 말을 하고는 조용히 건우를 바라봤다.

건우는 생각에 잠겼다.

그리고 얼마 후 둘을 번갈아 보며 말했다.

"자, 그래서 저를 여기까지 데리고 오신 이유가 뭡니까?"

= 음?

= 알아차린 것이냐?

건우의 물음에 두 얼굴이 놀란 표정을 지었다.

"제가 필요하니 여기까지 데리고 오지 않았겠습니까? 지금 상황이 다급한데 고작 성령기 후기의 제게 길을 내어주신 이유가 있겠지요."

건우는 소위가 뜻한 바가 있어 자신을 이곳으로 데리고 왔다는 결론을 내렸다.

그렇지 않았다면 차라리 수미산에 머물고 있는 태령기 이상의 수사들을 불러 모았을 것이다.

= 네 말대로 우리는 네게 원하는 것이 있다.

= 그리고 그 때문에 지금까지 네게 동굴을 따라 걷게 했던 것이다.

= 물론 앞으로도 왔던 만큼 더 가야 하겠지.

= 그리해야 네 몸이 지하 세상의 기운에 적응할 수 있다.

= 성령기인 네 경지가 아쉽지만 또 태령기 이상이 되면 기운에 적응하는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린다.

= 태령기라면 동굴을 따라 걷는 시간만 십여 년은 족히 걸릴 터.

= 그래선 늦어 버릴 수도 있겠지.

= 이제 네가 선택된 이유를 알겠느냐?

두 얼굴은 번갈아가며 상황 설명을 해 주었다.

하지만 건우는 아직도 풀리지 않은 궁금증이 남아 있었다.

"가장 중요한 것이 빠지지 않았습니까? 성령기 경지인 저를 데려다 어디에 쓰시려는 것인지, 그것이 빠졌습니다."

= 그야 우리 둘이 네게 붙어서 지하 세계를 둘러보려는 것이지.

= 다른 것이 뭐가 있단 말이냐?

= 너를 통해 상황을 살펴 우리의 거취를 결정하려는 것이다.

= 다른 것도 있다만 그것은 네가 알 필요가 없는 일이고.

= 그렇지. 너는 그저 우리에게 지하 세계의 상황을 그대로 보여주기만 하면 되느니.

= 자, 알았으면 이제 그만 출발하자. 생각보다 너를 기운에 적응시키는 데 시간이 오래 걸리는 것 같으니.

"그런데 꼭 이렇게 동굴을 걸어야만 기운에 적응할 수 있는 것입니까?"

= 이미 내 기운은 충분히 쌓았으니 이제

= 내 기운을 쌓을 차례인 것이지. 그러면서 결계 금제도 통과를 하는 것이고.

건우의 말에 두 얼굴이 번갈아가며 말했는데, 뒤에 말을 한 것은 검붉은 색의 얼굴이었다.

그렇게 다시 길고 긴 동굴 여정이 이어졌다.

***

지하세계의 심처.

일렁이는 공간 균열을 중심에 두고 다섯 수사가 원진을 이루고 앉아 있었다.

그런데 그들 모두 안색이 창백한 것이 정상적인 상태는 아닌 듯했다.

"어떤가?"

모두 가부좌를 하고 눈을 감고 있는 중에 문득 한 수사가 눈을 뜨며 유정정을 보며 물었다.

마침 유정정도 눈을 반쯤 뜬 상태로 있던 터라 그 수사의 시선을 알아차렸다.

"언제 죽어도 이상하지 않지. 보고도 몰라서 묻는 건가?"

유정정은 반쯤 농이 담긴 음색으로 대꾸했다.

그러자 말을 걸었던 수사도 장난기가 감도는 표정으로 다시 유정정을 향해 말을 걸었다.

"그저 얼굴에 혈색이 돌기에 혹시 하여 물어본 것이네. 무슨 좋은 일이 있는가 해시 말이지."

그러자 유정정이 눈을 똥그렇게 뜨고 그 수사를 쳐다보더 니 이내 밝은 표정으로 웃음을 터트렸다.

"호호호. 눈치하고는. 그래 좋은일이 있지. 지금 나를 찾아오는 이가 있으니."

"유 수사를 찾아오는 이가 있다고?"

유정정의 대답에 장난삼아 말을 하던 수사가 놀라며 물었다.

"어린 아이 하나가 결국 소위의 문을 통과해서 지하 세계의 발을 디뎠어. 크게 기대하지는 않았던 것인데 기특하게도 끝내 일을 벌였어. 호호호."

유정정이 그렇게 말하며 전보다 더 크고 맑은 웃음소리를 터트렸다.

그 웃음에 지금껏 대화를 나누던 수사 이외에 다른 수사 셋이 슬그머니 눈을 떴다.

< 소위(陳聞)와 지하 세계로 들어가다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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