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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간 통로는 어디로 이어져 있었을까 >
- 호호호, 닭 쫒던 개 꼴이지 뭐예요?
루야가 재미있어 죽겠다는 듯이 허리까지 접어가며 웃어댔다.
건우도 루야가 즐거워 하는 모습에 아빠 미소를 짓고 있는 중이었다.
- 공간 통로가 열리긴 했는데 나오는 사람은 아무도 없으니 얼마나 당황했겠어요? 그것도 화신기들을 보낸다고 했는데 통로의 기운은 성령기 급으로 강해져 난리법석을 피웠는 데 말이죠.
"그래도 혹시나 했는데 태령기의 수사들이 나타날 거라곤 생각도 못했다."
- 그러게요. 게다가 한 명도 아니고 둘이나 나타나다니 이상한 일이죠.
"길매도 이쪽에 대해선 제대로 아는 것이 없다더니, 우리가 모르는 뭔가가 있는 것이 확실해. 이러면 그냥 몸을 빼서 수미선문으로 돌아가는 것이 급한 게 아니야."
- 네? 그럼 어쩌시게요? 설마 멸계 놈들 사이에 좀 더 머무시겠다는 거예요?
건우가 수미선문으로 돌아가는 것을 늦출 뜻을 보이자 루야가 깜짝 놀라며 물었다.
"멸계 놈들이 이곳에서 어떤 수작을 부리고 있는지 알아보면 좋잖아."
길매도 전장으로 넘어간 멸계 수사들이 어떤 상황인지는 제대로 알지 못하고 있었다.
그 이유는 사오리 소계 쪽에서 이쪽으로 소식을 전하는 것은 어렵지 않은데, 반대로 멸계전의 전장인 수미 세계에서 사오리 소계 쪽으로 연락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사오리 소계 쪽에서 알 수 있는 것은 공간 통로에 들어간 이들이 무사히 반대편으로 넘어갔는지 아닌지 까지였다.
그 이상은 전장의 소식을 알 길이 없다는 것이다.
- 하지만 어떻게요? 건우 님이 사오리 소계에서 이쪽으로 넘어온 정황이 없는데 갑자기 모습을 드러내면 문제가 생기지 않을까요?
루야는 건우의 등장을 설명할 방법이 없음을 지적했다.
"문제없다. 적당히 몸을 감추고 지내다가 어느 순간 모습을 드러내면 그만이다. 그리고 길우몽이란 이름을 내세우며 사오리 소계에서 이곳으로 오는 1회용 공간 통로를 열었다고 우기면 그만이지."
- 그걸 누가 믿어요?
루야가 어이가 없다는 듯이 뚱한 표정을 지었다.
"사오리 소계에 있으면서 알아보니까 길우몽이란 이름이 나름 무게가 있더란 말이지. 멸계전의 전장과 본계의 벽을 허문 시초가 길우몽이란 수사였으니까."
- 그래서 그 이름값을 내세운다고요? 멸계 본계에서 전장으로 공간 통로를 열었다고 우기 면서요?
"믿거나 말거나, 내가 그렇다는데 지들이 어쩔 거냐?"
- 태령기 수사들이 나서서 건우 님을 잡아 혼까지 쥐어짜려고 할 걸요?
"수미 세계에 온 이상, 태령기 수사라도 나를 어쩌지 못한다. 기습으로 바로 숨통을 끊지 않는 이상에야 아공간으로 도망치는 것을 막지는 못할 테니까."
- 이번에도 그거 하나 믿고 공간 통로에서 사고를 친 거잖아요. 하지만 건우 님의 아공간이 알려지면 어떻게든 그것을 무력화 할 방법이 나올 지도 몰라요. 조심 또 조심해야 해 요.
루야는 건우가 너무 아공간만 믿는 것이 아닌가 하는 걱정을 늘어 놓았다.
"음, 당연히 그래야지. 태령기 수사들이 내가 아공간을 쓸 여유도 없게 뭔가 수작을 부리면 끝장인 건 나도 알아."
- 그러니까……?
"하지만 그걸 겁내서 아무것도 하지 않을 수는 없잖아?"
- 에휴, 그건 또 그렇죠.
"지금까지도 그랬지만 앞으로도 잘 할 수 있을 테니까 나를 믿어 봐!"
- 네네. 저야 항상 건우 님을 믿죠. 아자아자!
루야가 작은 주먹을 불끈 쥐고 허공을 향해 힘찬 주먹질을 날렸다.
건우는 그 모습에 피식 웃으며 아공간 밖을 내다봤다.
"모두 물러간 거 같은데?"
그리고 아공간 밖으로 뿌린 의념에 아무것도 걸리지 않는 것을 확인하고 중얼거렸다.
- 태령기들이 숨어 있다면 건우 님의 이목을 속일 수도 있지 않겠어요?
루야가 건우의 얼굴 옆으로 다가와 함께 밖을 내다보며 말했다.
"음, 어차피 한동안은 밖으로 나갈 생각도 없다."
- 그럼 그냥 아공간을 닫아 놓고 수련이나 하시는 게 어때요? 그 동안 영기 수련은 거의 못했잖아요. 성령기 후기의 경지를 되새길 필요가 있지 않을까요?
"그 말도 맞다. 어차피 나타결공법은 성령기 초기에서 멈춘 상태니, 금강패갑공과 검선의 검공법이나 되새겨야겠다."
건우는 그렇게 대답을 하고는 곧바로 아공간 입구를 닫고 가부좌를 틀었다.
그리고 그 시간 수미 세계의 중심, 수미산의 어느 자락에서 연꽃 선자 유정정이 옥간을 쥐고 부르르 떨고 있었다.
"도대체 어디를 돌아다니다가 이제야 돌아온 거지? 게다가 또 기척이 사라지다니! 흥, 나를 이렇게 애타게 하다니, 반드시 그 대가를 치르게 해 주겠어."
건우를 향해 결의를 다지는 유정정이지만 또다시 기척이 사라져버려 당장 어쩔 도리가 없었다.
게다가 조금 전에 느껴진 기척도 아주 먼 곳이라 태령기 완경의 그녀라도 금방 달려갈 수 있는 곳이 아니었다.
그러니 다시 건우의 기운이 느껴질 때까지 기다려야 할 상황이었다.
"그래도 이 녀석이 돌아왔다는 것은 알려줄 필요가 있겠지. 흥!"
유정정은 뭔가 못마땅한 듯이 콧소리를 내며 허공을 향해 손짓을했다.
건우의 복귀를 알리는 내용을 수미선문에 알린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일을 마친 유정정은 다시 슬며시 눈을 감았다.
그녀는 아직도 오랜 봉인의 후유증을 완전히 털어버리지 못한 상태였던 것이다.
그럼에도 눈을 감고 수련하는 유정정의 손에는 건우와 나누어가진 연리지 옥간 하나가 꼭 쥐어져 있었다.
***
"그 삼두육비 수사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나?"
높은 산봉우리 위.
구름을 밟고 선 정자 위에 두 명의 성령기 완경의 수사가 포단을 깔고 앉아 있었다.
한 명은 머리에 우각(牛角)을 달고 있는 검은 얼굴의 수사였고, 다른 하나는 품에 호리병박을 품고 있는 흰머리 노인 수사였다. 감고 있던 눈을 뜨고 옆에 앉은 동료에게 말을 건 것은 소머리를 한 수사였다.
"뭐? 화신기 때에 멸계전을 치렀다는 그 치에 대한 이야기?"
의념을 펼치고 경계를 서느라 무료했던지 호리병박을 안은 늙은 수사도 눈을 뜨며 소머리 수사에게 대꾸를했다.
"그래, 그 길우몽이란 수사 놈 말이야."
"듣기야 들었지? 근래에 이곳으로 넘어왔다지?"
"그렇다곤 하는데, 듣자니 7대 세력 중에 누가 그 자를 데려 왔는지 아무도 나서는 세력이 없다더군."
"그건 좀 이상하군. 그 길가 놈을 포섭했다고 하면 세를 부풀리기에 좋을 텐데?"
소머리 수사의 말에 호리 병박을 안은 늙은 수사가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사실 그는 호리병박에서 태어난 영족으로, 가슴에 안고 있는 호리병박이 본체인 수사였다.
"자네 생각에도 그렇지? 그래서 떠도는 이야기가 그 길우몽이란 놈이 제 힘으로 이곳으로 왔을 수도 있다고 하더군."
소머리 수사는 어디서 들은 것이 많았는지 꽤나 소문에 밝은 양 호리병박 영족이 모르는 이야기를 꺼내 놓았다.
"으음. 그게 말이 안 되는 이야기긴 하지만, 또 그 자가 과거 패배한 멸계전에서 수사들 몇을 귀환시켰다는 이야기가 있고 보면……?"
"아주 아니라 할 수도 없다는 거지. 그리고 올 수가 있었다면?"
호리병박 영족이 은근히 자신의 말에 동조를 해 주자 신이 난 소머리 수사가 거기서 한 발 더 이야기를 진척시켰다.
"갈 방법도 있을지 모른다?"
다시 맞장구를 치는 호리병박 영족의 표정에 놀라움이 떠올랐다.
정말 그렇다면 이야말로 얼마나 대단한 일인가.
"그렇지! 바로 그거지. 그래서 태령기 어르신들이 은밀히 그 자를 찾고 있다는 말이 있더라고."
"어르신들이?"
"그렇지. 그런데 7대 세력 모두가 나서서 그 길우몽이란 자를 은밀히 찾고 있다는 것 때문에 소문이 더 신빙성을 갖게 된다는 말이지. 그 길우몽이란 놈이 본계로 돌아갈 방법을 가지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소문 말이야."
"아니 그게 왜 또 그렇게 되는 건가? 7대 세력이 그 자를 찾으려 할 것이야 당연한 일인데?"
영족 수사는 소머리 수사가 말하는 바를 제대로 알아듣지 못했는지 그렇게 물었다.
"7대 세력 모두가 나섰다는 것은 그 길우몽이란 자가 속해 있는 세력이 없다는 이야기지 않나. 그렇다면 그가 어떻게 이곳으로 넘어왔겠나?"
"아! 그렇군. 아까의 이야기로 돌아가서 그 치가 제 힘으로 여길 왔으면, 돌아갈 방법이나 실마리를 가졌을 가능성이 높다는 말이 되는 게로군?"
"그렇지. 바로 그거네."
호리병박 영족이 이제야 자신의 말을 이했음을 알고 소머리 수사는 환한 표정을 지었다.
"잠시! 뭔가 다가오는 듯 하네."
그때, 호리병박 영족 수사가 소머리 수사에게 양해를 구하고는 허공에 이리저리 손짓을 하며 극멸기를 쏘아 넣었다.
그러자 그의 가슴에 있던 호리병박에서 한 줄기 검은 물이 흘러나오더니 허공에 넓게 펼쳐졌다.
이후 그 검은 표면에 하나의 영상이 떠올랐는데 영기 수련 수사들이 베틀 북 모양의 비행 법기를 타고 날아가는 모습이었다.
"뭔가, 또 누가 이곳으로 다가오는 것인가?"
소머리 수사가 그 모습에 의념을 집중하며 물었다.
"괜찮네. 고작해야 입령기 초기 하나가 섞여 있는 놈들일 뿐이네. 이곳에 펼쳐진 고위 진법을 알아차릴 확률은 낮네."
호리병박 영족 수사는 영상 속의 영기 수련 수사들을 모습을 세심히 살피면서도 그리 걱정하는 표정은 아니었다.
그도 그럴 것이 이곳은 전쟁을 대비하여 7대 세력이 함께 조성한 혼돈역으로 그 입구가 워낙 교묘하게 감추어져 있어서 어지간해선 발견할 수 없는 곳이었다. 그리고 그의 생각대로 베틀 북에 탄 영기 수련 수사들은 곧 까마득히 사라져 모습이 보이지 않게 되었다.
"요즘 점점 주위를 돌아다니는 놈들이 많아진 것 같지 않나?"
호리 병박 영족 수사가 검은 물을 다시 호리 병박으로 불러들이는 모습을 지켜보며 소머리 수사가 물었다.
"그렇긴 하지. 영기 수사 놈들이 뭔가 이쪽을 의심하고 있는 정황은 분명해 보여."
호리 병박 영족 수사도 소머리 수사의 말에 동감을 표했다.
지난 수십 년 사이에 근방을 수색하는 이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었다.
"아직은 준비가 되지 않은 때라 이곳이 들키면 안 되는데 말이지."
"그야 이를 말인가. 일찍이이 혼돈역을 찾아 본계에서 오는 공간 통로 일곱을 이곳으로 열리게 했지. 물론 그렇다고 해도 열에 서넛 정도는 엉뚱한 혼돈역으로 입구가 열리곤 하지만."
호리병박 영족 수사는 이곳 혼돈역 개척에 초기부터 참가한 공이 있는지라 저도 모르게 흥분하며 목소리를 높였다.
지금까지 이룩한 것들에 대한 자부심과 애착이 드러나는 부분이었다.
"입구가 아직 다른 곳으로 열리는 경우가 있긴 해도, 이곳이 우리의 본거지임은 분명하지. 본계에서 넘어와 살아남은 전력의 8할 가까이가 이곳에 있는 것이니."
"그러니 우리가 이런 곳에서 이리 수고를 하는 것이 아닌가. 외부의 접근을 감시하고, 혹여 허락도 없이 외부로 나가려는 놈들을 단속하기 위해서."
"허락 없이 나가려는 놈들이야 마땅히 그 죄를 물어야지. 아무리 담이 크다 해도 우리가 이곳을 지키는데 헛된 생각을 해서야 되나."
갑작스럽게 호리병박 영족의 말을 받는 소머리 수사의 목소리가 격양되었다.
그 모습에 호리병박 영족이 피식 웃었다.
"그래야 하는데 생각이 짧은 놈들 중에 벌써부터 진극멸기를 욕심내어 조바심을 가지는 놈들이 적지 않아. 그게 문제지."
"커엄. 혼돈역 대부분이 개척된 마당이라 이제는 밖으로 나가지 않으면 딱히 진극멸기를 얻을 길이 없기는 하지. 같은 본계 출신들을 해치지 않는 이상에야……?"
소머리 수사가 말을 하다가 은근히 말꼬리를 흐렸다.
그러자 호리 병박 수사의 눈빛이 기묘하게 번들거렸다.
소머리 수사의 말에 가슴속에 눌러 두었던 살의가 꿈틀거리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아울러서 진극멸기에 대한 탐심도 부풀어 올랐다.
그것은 소머리 수사라고 다를 것이 없었다.
어느 순간 소머리 수사와 호리병박 영족 수사의 눈빛이 교차했다.
"마침 가까운 곳에 겁 없이 밖으로 나가려는 놈이 하나 있는 것 같은데 마땅히 잡아 죽여서 일벌백계의 본으로 삼아야 겠지?"
"이를 말인가! 당연히 그렇게 해야지. 그런데 누가 가야 할까? 전에는 네가 갔으니 이번에는 내 차례지?"
"무슨 소리를! 전에는 고작 화신기 놈들 몇이었지만 이번에는 성령기 초기인데, 어찌 저울이 같을까!"
"커엄. 그건 그렇지. 그럼?"
"함께 가지."
"그러지. 잠시 자리를 비운다고 큰 일이 생길 것도 아니고!"
오랜만에 피를 볼 수 있는 기회임과 동시에 성령기를 죽여 진극멸기도 노려볼 수 있다는 생각에 둘은 빠르게 타협점을 찾았다. 이러다가 사냥감이 경계 범위 밖으로 나가버리면 명분이 없어질 것이다.
둘은 합의를 보자마자 마주보며 고개를 끄덕이고 둔광과 함께 정자에서 모습을 감추었다.
그리고 수만 리 떨어진 곳에서 삼두육비의 수사를 앞뒤로 포위하며 모습을 드러냈다.
"게 섯거라!"
"놈 감히 금지 구역으로 들어온……? 어? 설마 길우몽?"
<공간 통로는 어디로 이어져 있었을까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