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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방진 것! >
건우가 길매와 만나고 2년의 시간이 흘렀다.
그 사이에 운송선을 타고 왔던 수사들 대부분이 7대 세력 중 한 곳에 소속되었다.
그렇게 영입 경쟁이 마무리되자 자미혈궁에서도 드디어 신입 제자들을 수미 세계로 보내는 문제를 논의했다.
"그럼 우리들이 1차로 공간 통로를 넘게 되었다는 말씀입니까?"
양유가 기쁨을 감추지 못하고 활짝 웃으며 길매에게 물었다.
길매는 조금 전에 공간 통로를 넘을 1백 명의 대상자를 발표한 참이었다.
그중에 건우 일행 서른두 명이 모두 포함되어 있어 양유를 흥분시킨 것이다.
"모두 본궁의 제자가 되었기에 골고루 섞어 보내자는 이야기도 있었지만, 그래도 안면이 있는 이들끼리 보내는 것이 화합에 좋겠다는 의견이 많았다. 그래서 너희들 서른두 명은 특별히 따로 갈라놓지 않기로했다.
"감사합니다. 선자님의 은혜, 절대 잊지 않겠습니다."
길매의 말에 양유가 과하다 싶을 정도로 인사를 올렸다.
길매는 그 모습에 살짝 인상을 찌푸렸지만 곧 이해한다는 표정을 지었다.
"네가 천겁이 멀지 않았다는 것은 잘 알고 있다. 그래서 너희 무리를 제외한 나머지는 천겁이 가까운 순으로 뽑았느니라."
"배려에 감사드립니다!"
길매의 말에 양유가 다시 한번 허리를 접었다.
하지만 길매는 그런 양유를 외면하고 백호진의 모습을 한 건우를 바라봤다.
= 저는 이곳 조옹진에 남아야 하니 함께 가지 못합니다. 보중하십시오.
그리고 의념을 통해 건우에게 작별 인사를 올렸다.
건우는 말없이 짧게 고개를 끄덕였다.
이후, 선별된 백 명의 제자들이 조옹진의 전송진에 올라 어디론가 이동했다.
7대 세력은 그들이 가지고 있는 공간 통로 가까운 곳에 전송진을 만들어 대성의 전송진과 호응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 덕분에 건우를 포함한 백 명의 수사들은 순식간에 공간 통로가 있는 곳에 도착할 수 있었다.
다만 그곳이 어 딘지는 알려주지 않아서 알 수가 없었다.
길매의 말로는 멸계전의 공간 통로 위치는 최대한 감추려 한다고했다.
간혹 7대 세력에 속하지 않은 고계 수사들이 난입하여 공간 통로를 이용하려 하는 경우가 있어서 감춘다는 것이었다.
그래봐야 7대 세력에 속한 고계 수사들은 일곱 곳 공간 통로의 위치를 대부분 알고 있다던가.
- 아깝지 않아요?
건우가 공간 통로에 진입하기 위해서 대기하는 동안 루야가 말을 걸었다.
'뭐가? '
- 네 명의 태령기 수사들이요. 그 놈들을 그냥 두고 가는 것이 아깝지 않냐고요.
'어쩌겠어? 당장 어디에 있는지 찾을 방법이 없는데.'
루야의 말에 건우가 살짝 인상을 찌푸렸다.
넷 모두 천겁독에 중독되어 있을 것이 분명한데 조옹진 근처에서 그들을 찾을 수가 없었다.
길매를 통해 자미혈궁의 힘까지 빌렸음에도 그들의 행방을 찾지 못한 것이다.
-그 놈들, 천겁독을 해독하지 못했겠죠?
'그렇겠지. 천겁독이 괜히 천겁독이 아니지. 중독이 되지 않으면 모를까 일단 중독된 후에는 해독이 쉽지 않을 거야.'
- 그러니 건우 님이 해독을 핑계로 부려먹기 딱 좋은 상황이잖아요. 그걸 그냥 두고 가야 한다니…….
'대신에 분혼에게 천겁독을 활용할 수 있는 독공을 남겼잖아. 그걸 이용하면 분혼이 그 네 명의 태령기 수사들을 부려 먹을 수 있을 걸?'
- 그래도……?
'넌 여전히 분혼과 내가 하나란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모습이구나. 쯧쯔.'
건우가 우물쭈물하는 루야의 태도에 짧게 혀를 찼다.
유혼결로 만들어 낸 분혼이 결국은 자신과 하나임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모습이 안타까운 것이다.
- 그래도 첫 번째 분혼이었던 위문진은 항상 가까이에서 지켜볼 수 있어서 그런지 거리감이 없었는데, 이번 분혼은 다르잖아요. 한 번도 제대로 본 적이 없으니 루야는 건우의 타박이 섭섭한 듯 그렇게 웅얼거렸다.
그리고 그때, 마침 수미 세계로 가는 공간 통로를 책임진 성령기 후기의 수사가 허공에 모습을 드러냈다.
그 수사는 귀가 길고 뾰족한 붉은 피부의 요족 수사였다.
"모두 들어라."
그 요족 수사는 지름이 백여 장에 이르는 원형의 진법 위에 떠서 일행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내 발 아래에 있는 진법이 보이느냐? 이것이 바로 너희가 쓰게 될 진법이다. 이 진법이 발동되면 강력한 극멸기가 응결되어 공간 통로의 입구를 열 것이다."
요족 수사는 그렇게 말을 하며 손을 들어 신호를 보냈다.
그러자 진법 밖에 있던 자미혈궁의 제자들이 진법에 진극멸기가 응결된 멸석을 끼워 넣어 진법을 가동하기 시작했다.
멸석의 기운을 받은 진법은 붉은 혈기와 검은 극멸기를 뿜어 냈는데, 이내 그것들이 뒤엉켜 기묘한 문양과 선을 이루었다.
건우는 그 모습을 놓치지 않고 눈에 담으며 변화를 읽어 내려 애썼다.
그리고 그런 노력이 헛되지 않아서 공간 통로를 여는 진법의 이치를 대부분 파악할 수 있었다.
'공간 통로를 여는 진법은 꼭 필요한 진법이지. 일단 통로를 열어야 이동이 가능하니까.'
멸계전의 전장에서 멸계 본계로 되돌아갈 방법을 궁리중인 건우였다.
정말 그런 방법이 있다면?
멸계전에 임하는 멸계 수사들의 각오가 달라지게 될 것이다.
적당히 싸워보다가 여의치 않을 경우, 다시 멸계로 도망을 칠 수 있다면 결사의 각오 따위를 할 필요는 없을 테니까.
그래서 건우는 될 수 있으면 그런 방법을 만들어 볼 궁리를 하고 있었다.
사실 그런 방법으로 인계의 멸계전에서도 좋은 결과를 만들어 내지 않았던가.
물론 이전처럼 이번에도 멸계전 중에 본계로 돌아갈 방법을 꼭 찾아낼 수 있으리란 확신은 없었다.
도리어 실패할 가능성이 더 많을 것이다.
그래도 방법을 만들 수만 있다면 슬 곳이 많기는 할 것이다.
자오로 수사도 그런 이유로 길우몽을 부려 방법을 찾으려 했던 것이 아닌가.
"모두 긴장해라. 알고 있겠지만 공간 통로로 들어가게 되면 반대쪽에 도착할 때까지 강한 반발을 겪게 될 것이다. 그것을 이기지 못하면 죽거나 혹은 다시 이곳으로 되돌아오게 된다."
성령기 후기의 요족 수사가 건우를 비롯한 백 명의 화신기 수사들에게 그렇게 경고하며 주의를 주었다.
하지만 이미 그와 같은 이야기를 몇 번이나 들었던 화신기 수사들은 언제 공간 통로가 열릴지에만 관심이 있었다.
요족 수사는 그런 어린 후배들의 모습에 혀를 차고는 훌쩍 몸을 날려 진법 밖으로 벗어났다.
그때는 이미 진법에서 피어오른 흑적색의 선과 문양들이 어지럽게 뒤엉키며 허공을 잠식하는 때였다.
요족 수사가 있던 자리도 금세 진법에서 응결된 혈극멸기로 채워졌다.
우우우우우웅 ! 쿠구 구구구궁 !
그리고 오래지 않아서 뒤엉킨 혈극멸기의 진법 문양들 중앙에 공간의 틈이 생겨났다.
처음에는 동전처럼 작던 것이 빠르게 넓어지더니 결국 지름 3장 정도의 구멍이 되었다.
"지금이다 모두 입장하거라!"
그때, 뒤로 물러나 있던 요족 수사가 크게 고함을 질렀다.
"차앗!"
그리고 그 고함 소리에 제일 먼저 몸을 날린 것은 양유였다.
"양유! 감히!"
건우가 그 모습에 분노를 터트리며 뒤이어 몸을 날렸다.
원래 건우가 제일 먼저 들어가기로 정해져 있었는데 양유가 그 순서를 어긴 것이다.
그 모습에 뒤에 남은 화신기 수사들이 저마다 고개를 젓고 혀를 차며 공간 통로의 입구로 분분히 몸을 날렸다.
***
"양유!"
건우가 공간 통로로 뛰어들며 양유에게 고함을 질렀다오
"죽어라!"
그런데 공간 통로로 들어오는 건우를 향해 양유가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이 두 손에 황금빛 덩어리를 모아 던졌다.
건우는 생각지도 못한 양유의 기습공격에 인상을 찌푸렸다.
건우는 빠르게 황금빛 덩어리를 분석했다.
강력한 열양의 기운에 폭발의 기운, 거기에 극멸기의 천적이랄 수 있는 기운.
건우도 처음 보는 기이한 기운이었다.
"감히 나를 놀리고도 네 놈이 무사하리라 생각했더냐? 크하하하. 성광기(聖狂氣)의 맛을 보아라."
양유는 건우가 자신의 공격을 피하지 못할 것이라 확신한 듯 기뻐하며 크게 웃었다.
콰과광! 파지지지지직!
그리고 그의 말이 끝나기 전에 두 개의 황금빛 덩어리는 건우가 들어 올린 두 손과 충돌하며 폭발했다.
그런데 기이한 것은 그 금빛의 기운이 건우의 손에 맺힌 극멸기와 뒤섞이며 더욱 맹렬해진다는 것이었다.
마치 건우의 극멸기를 먹이로 삼아 몸집을 부풀리는 듯했다.
그때, 건우는 양광이 말한 성광기란 것에 흥미를 느끼고 그것을 관찰하는 중이었다.
- 위험해요. 극멸기가 빠르게 소진되고 있어요.
그리고 그런 건우를 향해서 루야가 다급하게 경고의 의념을 보내왔다.
'괜찮아. 어차피 곧 입구가 닫혀. '
하지만 건우는 태연했다.
이제 곧 양유는 상상도 못했던 일이 벌어질 것이라 건우는 내심 기대하며 설레는 중이었다.
"어엇? 성광기라고? 설마 극태존의 후예란 말인가?"
"그렇지 않고서야 누가 성광기를 쓰겠나!"
"하지만 어찌 극태존의 후예가 이런 곳에 온단 말인가. 그 일족은 본계의 깊은(深) 곳에 머물고 있다 했는데."
"그걸 어찌 아나? 그나마 극태존이 니 성광기 니 하는 것을 아는 이도 우리들 중에 몇 되지 않을 텐데."
"그도 그렇긴 하겠군. 어지간한 뒷배가 있지 않고서야 그런 이야기를 어디서 듣는단 말인가?"
"그건 그렇지."
건우의 뒤를 이어 공간 통로 안쪽으로 들어온 수사들 중에 성광기란 것에 대해 아는 이들이 있는 모양이었다.
건우는 그들의 이야기에서 성광기가 멸계에서도 특별한 일족이 쓰는 것임을 알 수 있었다.
그리고 일족의 명성이 결코 낮지 않다는 것도 미루어 짐작할 수 있었다.
"제법 버티는구나. 하지만 그래봐야 오래 가지 못할 것이다."
양유가 여전히 황금색 불길을 태우고 있는 건우를 비웃으며 말했다.
그리고 그의 말이 끝날 때, 드디어 지금까지 열려 있던 공간 통로의 입구가 닫혔다.
쿠구구구구구궁!
"커 억!"
"아악!"
"쿠에에 엑!"
그리고 바로 그 순간 공간 통로 안에 들어와 있던 수사들 모두가 비명을 지르며 쓰러졌다.
이후 쓰러진 이들은 공간 통로의 기운이 흐르는 대로 이끌려 한 지점으로 모이기 시작했다.
원래 공간 통로는 텅 비어 있는 곳이라 발 디딜 곳이 없었다.
그러니 쓰러졌다 하더라도 허공에 뜬 상태.
통로의 흐름에 따라 흘러가는 것이 당연했다.
"으으음. 이건 어쩔 수 없이 본신의 능력을 다 드러낼 수밖에 없군."
그때, 아흔아홉 수사들이 모두 쓰러진 중에 홀로 버티던 건우가 신음소리를 내며 나타결공법을 운용하기 시작했다. 공간 통로의 압력이 성령기 초기인 건우의 경지에 맞춰서 증가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대로 두면이 놈들이 다시 사오리 소계의 공간 통로 앞으로 튕길 수도 있겠지?"
건우가 몸을 날려 아흔아홉 수사들이 뒤엉켜 있는 곳으로 다가갔다.
모두 정신을 잃고 쓰러진 상태로 공간 통로의 중심에 뭉쳐 있었다.
"하지만 이대로 돌아가게 둘 수는 없지. 어차피 멸계 수사는 영기 수도계의 천적, 서로를 용납할 수 없는 관계이니."
건우는 그렇게 중얼거 리고 냉정한 표정으로 아흔아홉 수사들을 노려보며 손을 쓰려했다.
하지만 다음 순간, 건우는 자신이 직접 그들의 목숨을 끊을 필요가 없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공간 통로의 반발이 워낙 강해서 화신기 수사들이 버티지 못했다.
건우가 손을 쓰기도 전에 벌써 수십 명이 숨이 끊겨 윤회에 들어가 있었다.
후우우우우웅!
그때, 건우가 들어왔던 방향에서 공간 통로의 입구가 다시 열리는 기미가 보였다.
그리고 그 구멍에서 강력한 흡입력이 생겨 쓰러진 수사들을 빨아들이려했다.
"그렇게 둘 수는 없지."
건우가 의념을 불러일으키고 소매를 저어 흡입력이 다가오지 못하게 막았다.
"크으윽, 어르신, 제발 살려주십시오."
건우가 흡입력을 막아내자 기이하게 공간 통로의 압력도 많이 줄어들었다.
그 때문인지 양유가 정신을 차리고 건우를 향해 목숨을 구걸했다.
건우의 시선이 양유에게로 향했다.
양유는 시선을 피하며 불쌍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흥! 나는 후환을 남기는 사람이 아니다!"
하지만 건우는 가볍게 코웃음을 치고 손을 들어 올렸다.
흡입력을 막느라 공간 통로의 압력이 줄었으니 지금껏 살아 있는 놈들은 직접 정리를 할 생각이었다-
"나를 죽이면 극태존(極太尊)께서 반드시 너를 찾으실 것이다."
양유도 건우의 결심을 알아차린 듯이 단번에 표정이 변하며 그렇게 위협했다.
그 말에 건우가 눈썹을 치켜세웠다.
"고작 화신기 따위가 감히이 어르신에게 대거리를 해? 곱게 죽여주는 것을 감사하게 생각지 않고? !"
푸화화화확!
말과 함께 삼두육비, 건우의 세 머리 중에 왼쪽에 있는 살색의 피부색을 가진 머리가 영기를 뿜어내어 멸계 수사를 감쌌다.
그리고 그것으로 살아 있던 모든 멸계 수사의 숨이 끊어졌다.
양유가 조금 더 버 티는 듯했으나 고작 숨 한 번을 더 쉬었을 뿐이었다.
"건방진 것!"
건우가 화를 내며 소매를 저어 죽은 수사들의 흔적을 지우고 그들의 재물을 챙겼다.
<건방진 것!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