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환장 통수 선협전-287화 (287/4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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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미혈궁의 제자가 되고 길매를 따로 만나다  >

자미혈궁의 신입 제자 입궁식은 간단하게 끝났다.

그저 스스로 입궁의 의사를 밝히고 궁의 제자로서 그 책임과 의무를 다할 것을 맹세하는 것이 주된 내용이었다.

물론 과정이 간단하다고 그 안에 담긴 의미까지 가벼운 것은 아니었다.

"이거 꽤나 강력한 주박(脫M:주술적인 힘으로 묶어 놓음)이 아닙니까."

입궁식을 마친 후 거처로 돌아가는 길에 양유가 슬쩍 건우 곁으로 다가와 투덜거렸다. 입궁을 맹세하면서 몸과 영혼에 아로새겨진 자미혈궁의 금제에 대한 이야기였다.

"그럼이 정도도 각오하지 않고 궁의 제자가 되려 했단 말입니까?"

건우가 백호진의 모습으로 냉정하게 대꾸했다.

"솔직히 좀 심하단 생각이 드니 하는 말이 아닙니까. 이리 주박을 걸어 놓으면 궁의 지시를 거부하기 어렵지 않습니까."

"왜요?  거부한다고 죽는 것도 아니지 않습니까.  작정만 하면 주박을 깨는 것도 불가능하진 않을 텐데요?"

"그랬다가는 적잖은 내상을 입는 것은 물론이고, 추후 자미혈궁의 공적이 되는 것을 뻔히 알면서 그런 말을 하십니까?"

"그게 싫었으면 입궁을 말았어야지요."

건우가 속으로 비웃으며 양유를 놀렸다.

사실 건우가 나타결공법을 운용하여 성령기 초기의 경지만 되찾아도 입궁 맹세로 걸린 금제 따위는 가볍게 깨트릴 수 있었다.

그러니 입궁 맹세나 그에 따른 주박 따위로 징징거리는 양유가 우스울 수밖에.

"태평도 하십니다. 아닌 말로 우리가 멸계전의 전장으로 가려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게 다 나름의 욕심 때문이 아닙니까. 그런데 이제 궁의 소속이 되어 묶였으니 얼마나 손해가 클지 예상이 되지 않습니까?"

양유는 이제 별채에 거의 도착하여 듣는 귀가 일행들뿐임을 확인했는지 노골적으로 불만을 드러냈다.

"답답한 말을 어찌 그리 하십니까. 멸계전의 전장으로 가기 위해서는 공간 통로를 지나야 하는데, 그곳을 7대 세력이 차지하고 있습니다. 거길 지나는 대가로 자미혈궁의 제자가 되어 봉사하기로 한 것이 아닙니까. 이미 결정된 일을 가지고 계속 그리 투덜거려 보아야 무슨 의미가 있답니까?"

건우는 양유에게 그렇게 쏘아 붙이고는 자신의 거처를 향해 움직이려했다.

"백 수사야 우리에 비해서 부담이 크지 않으니 그런 말을 하는 것이 아닙니까? 그리 내 자리를 빼앗으니 좋았습니까?"

그런데 그런 건우를 향해 양유가 결국 본색을 드러내고 말았다.

길매가 건우를 서른두 명 화신기 수사들의 우두머리로 이름을 올린 덕분에 건우는 일행들 중에 가장 나은 조건을 받게 되었다.

이를테면 하급 관리 정도의 직책을 받은 것이다.

양유는 원래 자신이 그 자리를 받아야 했다는 생각에 건우를 미워하게 된 것이다.

"일이 이렇게 된 것은 모두가 양유 수사의 탓이 아닙니까. 그걸 지금 나한테 따져서 어쩌자는 것입니까?"

당연히 건우의 대응도 날이 설 수밖에 없었다.

"백 수사, 후회하지 않겠습니까? 이제 우리 모두가 전장으로 향할 터인데, 우리들의 미움을 사고 그곳에서 무탈할 수 있겠느냐 그 말입니다."

"마음대로 하시구려. 그리고 그 뒤에 있는 여러분도 참 한심하십니다. 여기이 양유 수사가 구밀복검의 인사임을 뻔히 알면서도 내가 받는 작은 혜택을 질시하여 뜻을 모으다니 요. 쯧쯧쯔."

건우는 양유에게 힘을 실어주는 다른 수사들까지 싸잡아 면박을 주고는 둔술을 펼쳐 자신의 거처로 모습을 감췄다오그러자 남은 이들이 양유의 곁으로 모이며 불쾌한 표정으로 건우의 거처가 있는 쪽을 노려봤다.

*    *    *

길매는 이번에 새로 제자가 된 화신기 이하의 수사들을 전장으로 들여보낼 책임자로 임명되었다.

그래서 자미혈궁이 점 령하고 있는 공간 통로까지 이동할 계획을 짜느라 고심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런 길매에게 어느 순간 은밀한 의념이 찾아들었다.

길매는 그것이 성령기 이상의 수사가 자신을 부르는 것임을 알아차리고 잠시 고민했다.

하지만 그 의념이 은밀하기는 하지만 느낌이 나쁘지는 않았기에 시키는 대로 움직이기로 마음먹었다. 그렇게 결심한 길매가 의념의 뜻에 따라서 도착한 곳은 자미혈궁 외곽의 인적 없는 곳이었다.

다른 7대 세력 중에 몇 곳의 영역과 맞닿은 곳이라 평소에 오가는 이가 없는 황량한 곳.

산과 언덕을 이루는 돌덩이가 가득한 그곳을 가로질러 날아가던 길매는 거대한 바위가 엇갈려 만든 틈으로 훌쩍 뛰어들었다. 그리고 그곳에서 길매는 삼두육비의 거인 수사를 마주했다.

"소녀 길매가 어르신을 뵙습니다/,

길매는 상대가 성령기 초기의 수사임을 알아보고 곧바로 손을 모으고 허리를 숙여 인사를했다.

"오랜만이구나."

건우가 그런 길매를 보며 말했다.

그러자 길매가 고개를 들고 건우를 보며 의아한 눈빛으로 물었다.

"진정 그 때의 그 길우몽 어르신이 맞으십니까?"

건우는 그 물음에 잠시 머리가 복잡했다.

자신을 못 알아보는 것은 아닐 텐데 왜 저렇게 물어보는 것일까 싶었다.

"네 보기에는 아닌 것 같으냐?"

건우가 길매를 보며 물었다.

"제가 만약 상공과 오래 함께 하지 않았다면 정말 감쪽같이 속았을 것입니다."

"응?"

"상공께서 어르신과 대계를 꾸민다 하시더니 어르신께서는 그 모습으로 전장에서 세력을 키우실 요량이십니까?"

길매는 나름 길우몽이란 이름이 쓰일 법한 계책을 떠올리며 그렇게 물었다.

하지만 건우는 길매가 상공이라 말하는 이가 분혼일 가능성이 높다는 것을 알아차리고는 묘한 기분을 느끼고 있었다.

'저 길매가 내 분혼을 두고 상공이라 부르는 거것I지? 그것 참!, 따지고 보면 건우는 대천세계에 오기 전, 지구에서조차도 홀몸으로 살지 않았던가.

그리고 그것은 대천세계에 온 후로도 다를 것이 없었다.

변변한 연애는 고사하고 간보기도 못 해 본 건우였다.

그런데 분혼은?

"어찌 그러십니까. 제가 어르신을 불편하게 해 드린 것이라도 있는지요?"

건우의 표정이 묘한 것을 보았는지 길매가 그렇게 물었다.

"아니다. 잠시 옛 생각을 했을 뿐이다. 그런데 듣자니 너는 그 친구의 계획에 대해서 아는 바가 없는 모양이구나?"

"송구합니다. 상공께서는 혹여 어르신을 만나게 되면 최선을 다해서 도우라는 말씀만 하셨을 뿐입니다."

"음? 그렇단 말이지? 그럼 혹시 내가 그와 직접 이야기를 해 볼 방법은 없느냐?"

건우는 이왕 길매에게 모습을 드러낸 상황이라면 분혼과도 이야기를 해 보려했다.

"제 동부에 상공께 연락할 수 있는 전언법보가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이리저리 옮길 수 있는 것이 아닌지라 어르신께서 내궁으로 들어가셔야 합니다."

"자미혈궁의 내궁으로?"

"그렇습니다. 하지만……?"

"네가 나를 데리고 들어가는 것이 쉽지 않다는 것이렸다? 게다가 그런 곳이면 내가 들키지 않고 들어가는 것도 쉽지 않고?"

건우는 말끝을 흐리는 길매의 속마음을 짐작하고 그렇게 물었다.

"송구합니다."

길매가 죄스럽다는 듯이 고개를 숙였다.

"그럼 네가 그 친구에게 연락해서 만남을 주선하는 것은 어떠하냐? 아, 그럴 마음이 있었다면 그 친구가 너에게 나를 도우란 말만 하지는 않았겠구나?"

"미천한 제 짐작도 그렇습니다. 상공께서 어르신을 만날 의향이 있으셨다면 미리 말씀을 하셨을 것입니다."

"그래서 너도 적극적으로 그 친구와 나를 연결할 생각을 하지 않은 것이고?"

"......."

길매가 말없이 고개를 숙였지만 그것이 건우의 말에 대한 긍정임은 분명했다.

"그럼 결국 이곳에선 내가 할 일이 없구나. 계획대로 수미 세계로 넘어가야겠어."

건우는 혼잣말처 럼 그렇게 중얼거렸다.

"필요하시다면 제가 수미 세계로 넘어갈 공간 통로에 자리를 만들어 보겠습니다."

그런 건우를 향해 길매가 결연한 표정으로 말했다.

공간 통로에 들어갈 자리를 만드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닐 것임은 그 표정만 보아도 짐작할 수 있었다.

건우는 그런 길매를 보며 잠시 망설였지만 그녀를 불러내야 했던 문제를 거론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렇지 않아도 내가 너에게 부탁할 것이 있다."

건우가 말했다.

"하명하십시오. 소녀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할 것입니다."

길매는 이미 상공으로부터 받은 지시가 있었기에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대답했다.

"내가 수미 세계로 가려 한다. 그리고 그러자면 공간 통로를 지나야 하지. 그런데 내가 경지를 감추고 공간 통로로 들어간다 하여도, 통로를 지나는 중에 경지가 드러날 수밖에 없다. 그렇지 않으냐?"

"아, 그렇습니다. 저계 수사로 위장하여 통로에 들어갈 수는 있으나 전장에 도착하는 순간 들통이 날 것입니다."

"그래 그렇다. 그럼 너는 이 문제까지 해결할 방도가 있느냐?"

건우가 혹시 하며 그렇게 물었다.

"송구합니다. 소녀는 조금 전까지 어르신께서 이번에 전장으로 갈 화신기 제자들 중에 하나로 위장하는 것을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길매 역시 건우가 했던 것과 같은 실수를 하고 있었다는 이야기다.

"결국 공간 통로까지는 들어갈 수 있지만 그 후에 전장에 도착해서는 정체가 드러날 수밖에 없다는 말이구나."

"그것도 그렇지만 어르신께서 공간 통로에 들어가시면 함께 가는 저계 수사들은 모두 공간의 압력에 찢겨져 죽을 것입니다."

"응? 그런 문제가 있더냐?"

"그렇습니다. 멸계전의 전장으로 가는 공간 통로는 경지가 높은 수사일수록 반발이 심합니다. 그런 공간 통로의 힘을 저계 수사들이 견딜 수는 없는 일이지요."

"그럼 따로따로 가면 될 것이 아니더냐?"

건우는 공간 통로가 어떻게 운용되고 있는지 몰랐기에 그렇게 물었다.

"아직은 공간 통로에 진입하기 위해서 특별한 진법의 도움을 받아야 합니다. 진법의 힘으로 공간 통로의 입구를 여는 것입니다."

"그건 계와 계 사이의 금역 입구를 여는 것과 비슷한 모양이구나."

"그런 면이 없잖아 있습니다."

"그래서 진법의 힘으로 공간 통로의 입구를 열면 한 번에 몇 명이나 되는 수사가 들어갈 수 있느냐?"

"화신기 이하로는 한 번에 백 명이 진입할 수 있습니다."

"백 명? 제법 수가 많구나?"

"하지만 입령기가 되면 고작 열 명 이하가 되고, 성령기가 되면 셋, 태령기는 한 명도 장담하지 못합니다."

"진법을 이용해도 입령기 이상은 공간 통로에 들어가기 쉽지 않다는 말이구나?"

"그렇습니다. 그리고 들어간다 하더라도 통로의 반발을 견뎌내야 합니다. 그렇지 못하면 다시 튕겨져 나오게 되는데 그럴 때에는 매우 심한 내상을 입기도 합니다."

길매는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그렇게 말했다.

"그럼 나와 함께 통로에 들어가는 아이들은 모두 죽게 될 가능성이 높겠구나?"

"그렇습니다. 물론 그런 저계 수사 따위야 별 상관없겠으나 통로 반대쪽에서 어르신이 곤욕을 치를 수 있어 그것이 걱정입니다."

건우도 화신기 따위야 죽거나 말거나 상관없었다.

어차피 모두가 멸계전에서 적이 될 놈들이 아닌가.

"반대쪽에 태령기 수사가가 있느냐?"

건우가 길매를 보며 물었다.

혹시라도 태령기가 없다면 성령기 따위야 어떻게든 힘으로 눌러볼 요량이었다.

"자미혈궁의 궁주는 태령기 후기의 수사입니다. 그녀는 이미 오래전에 전장으로 넘어갔습니다."

그런데 길매의 대답은 건우가 기대한 것이 아니었다.

태령기 후기라면 건우가 감당할 수 있는 상대가 아니었다. 천겁독을 쓴다고 해도 성공할 가능성이 무척 낮았다.

남은 천겁독도 그리 많지 않았고.

"그런데 너는 혹시 자오로 일행에 대해서 아는 바가 있느냐?"

천겁독을 떠올린 건우가 문득 생각난 듯이 자오로 일행의 행방에 대해서 물었다.

"그들은 7대 세력 중 어디에도 속하지 않고 조옹진을 떠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길매가 대답했다.

"그렇다면 수미 세계로 넘어가지 못했겠군?"

건우가 묘한 웃음을 지으며 길매에게 물었다.

<자미혈궁의 제자가 되고 길매를 따로 만나다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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