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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매에게 남자가? >
건우는 일행들과 함께 자미혈궁에 가입했다.
조옹진에는 자미혈궁의 지부라 할 수 있는 조직이 있었는데 성령기 완경의 수사가 책임자로 있었다.
길매는 그 밑에서 실무를 맡고 있는 수사들 중에 하나였다.
건우는 일행들과 함께 길매를 따라 그곳으로 가서 자미혈궁의 제자로 가입을 하게 되었다.
"어차피 너희는 멸계전이 벌어지는 수미로 가는 것이 급하겠지?"
길매가 앞서서 그들을 데리고 자미혈궁으로 가던 중에 말했다.
그녀의 말처럼 일행 모두가 최대한 빨리 수미 세계로 넘어가길 바라고 있었다.
그들 중에 절반 정도는 다가오는 천겁을 피하는 것이 급했고, 나머지도 진극멸기를 얻고자 하는 욕망이 컸다.
그리고 그것은 어느 것이든 멸계전의 전장인 수미 세계로 가야만 해결될 수 있는 문제였다.
"너희는 운이 좋다."
다시 얼마쯤 이동하다가 길매가 문득 그렇게 앞뒤를 잘라먹은 한마디를 던졌다.
건우와 일행들이 무슨 소린가 하는 눈빛으로 앞서가는 길매의 등을 바라볼 때, 그녀가 다시 말을 이었다.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아직 고계 수사들은 수미 세계로 넘어가지 못하고 있다. 태령기 어르신들 중에 수미로 넘어가신 분들은 열 손가락에 꼽을 정도에 불과하지."
길매가 말을 이었다.
"그럼 저희는 어찌 해야 하는 것입니까?"
건우가 조용히 있는데 양유가 불쑥 나서며 길매에게 물었다.
앞서 몸을 날리고 있던 길매가 힐끗 뒤돌아 양유를 눈에 담고는 다시 앞을 보며 말했다.
"고작 화신기 따위인 너희야 무슨 걱정이 있겠느냐. 너희 정도는 공간 통로를 넘는 것이 그리 힘들지 않다. 내가 앞서 말하기를 너희가 운이 좋다고 한 이유가 그것이다."
"그, 그러면……
양유가 희망이 가득한 눈빛으로 더듬거렸다.
"이번에 계를 넘은 이들의 소속 나누기가 대충 마무리되면, 지체하지 않고 너희도 수미로 보내 줄 것이다."
"아, 감사합니다. 선자님."
길매의 말에 양유가 감격한 표정으로 그녀의 등에 대고 몇 번이나 허리를 숙였다.
건우는 조용히 뒤를 따르며 길매의 말에서 정보를 추려내고 있었다.
그에 따르면 아직 수미 세계와 이곳 사오리 소계의 싸움은 본격적으로 시작되지 않은 것이 분명했다.
"그런데 너희 중에 혹시 길우몽이란 이름을 아는 자가 있느냐?"
그렇게 다시 조용히 이동하던 중에 길매가 갑자기 길우몽의 이름을 거론했다.
건우는 깜짝 놀랐지만 태연한 표정을 꾸미며 모른 척했다.
다른 수사들도 들어본 적이 없는지 다들 옆 사람을 보며 눈치를 살폈다.
"모른다니 아쉽구나."
길매가 수사들의 기색에서 길우몽을 아는 이가 없다는 것을 알아차렸는지 그렇게 중얼거렸다.
"길우몽이란 수사가 어떤 수사인지 알 수 있습니까?"
그때, 그런 길매를 향해 양유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얼마 전에 네 명의 태령기 어르신들이 금역을 통해 계를 넘어 오셨다. 그리고 그 분들이 길우몽이란 성령기 초기의 수사를 탐문하셨지."
길매가 속을 감주고 태연한 표정으로 설명했다.
"탐문이라 하시면 어떤 연유인지 알 수 있습니까?"
양유가 다시 물었다.
"너는 길우몽이란 수사를 알지도 못한다면서 무슨 호기심이 그리 많으냐?"
길매가 그런 양유를 책하듯이 말했다.
"저, 그것이 이곳에 오기 전에 약간 들은 것이 있는데 그것이 옳은지 궁금해서 그렇습니다."
양유가 말했다.
"들은 것이 있다? 어떤 이야기더냐?"
길매가 눈빛을 빛내며 물었다.
"태령기 어르신들께서 삼두육비의 성령기 수사에게 크게 낭패를 당하셨단 이야기가 떠돌았습니다. 물론 그 말을 믿는 이는 없었습니다만."
"그러니까 그 삼두육비의 길우몽이란 수사가 태령기 어르신들을 낭패케 했다?"
"그, 그렇습니다."
"호호호. 그렇구나, 그랬어."
양유의 말을 들은 길매의 얼굴이 밝아지며 득의만만한 기색이 떠올랐다.
하지만 곧 표정을 담담하게 고치고 일행들을 조옹진 자미혈궁으로 이끌기 시작했다.
***
길매는 기분이 날아갈 듯이 좋았다.
이전에 자오로란 태령기 수사가 다른 태령기 수사 셋과 함께 조옹진에 도착한 후, 갑자기 삼두육비의 길우몽을 찾은 적이 있었다.
그때, 길매는 길우몽이란 이름에 깜짝 놀라고 말았다.
자칫했으면 자신이 길우몽과 연이 있음을 들킬 뻔할 정도로 놀랐었다.
하지만 그 태령기 수사들이 길우몽을 찾는 이유를 알 수 없었기에 모르는 척했는데, 이후 오래지 않아서 그들은 어디론가 사라져 모습을 감추었다. 어쨌건 그 후로 길매는 삼두육비의 길우몽을 은밀히 수소문하고 있는 중이었다.
그런데 화신기 후배의 입에서 길우몽이 태령기 수사들을 낭패스럽게 만들었다는 이야기를 듣게 되니 '역시'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어서 가서 상공께이 소식을 알려야지. 상공께서 기뻐하실 거야. ' 길매는 저도 모르게 입가에 미소를 머금었다.
뒤따라오는 놈들에게 얼굴을 보일 일도 없으니 굳이 숨기려 애쓸 일도 아니었다.
이후, 길매는 서른두 명의 화신기 후배들을 자미혈궁의 외궁에 데려다 놓고 곧바로 자신의 거처로 향했다.
그에게 소식을 전할 생각을 하니 저도 모르게 마음이 급했다.
"상공. 길매입니다."
길매는 거처로 쓰는 동부로 오자마자 가장 깊은 곳, 은밀한 밀실에 들어가 전언(傳言)보패에 의념을 불어 넣고 상공을 찾았다.
잠시 후, 보패를 통해 그토록 듣고 싶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 길매, 어쩐 일인가. 이리 기약하지 않은 전언을 다 보내고?
"상공, 이전에 태령기 수사들이 길우몽이란 삼두육비 수사를 찾는다고 했었지요?"
길매는 안부조차 살갑게 물어주지 않는 상공의 태도가 조금 섭섭했지만 그래도 목소리를 듣는 것만으로 만족하며 급히 용건을 말했다.
= 그 일에 대해서 뭔가 새로운 이야기가 있는 모양이군?
"네, 상공. 이번에 매당의 운송선을 타고 온 화신기 수사 하나가 그 일에 대해서 말했습니다."
= 뭐라 했지?
"길우몽이란 성령기 초기의 수사가 태령기 수사 넷을 낭패케 했다는 소문이 있었답니다."
= 크, 크하하하하. 역시! 그래, 그 정도는 되어야지. 그런데 고작 성령기 초기라고?
"소문이 그러했다 합니다?"
= 그건 좀 아쉽군. 지금쯤이면 태령기는 되었을 줄 알았더니.
법보에서 전해지는 목소리에 아쉬움이 담겼다. 길매는 그가 상심하는 것 같아서 마음이 쓰였다.
"그런데 길우몽이라니 그것은 이전에 상공께서 쓰시던 이름이 아닙니까?"
비록 지금은 다른 이름을 쓰고 있기는 하지만 길우몽은 상공의 본래 이름이다.
그런데 어떤 자가 그 이름을 쓴단 말인가.
길매는 그것이 불쾌하기 짝이 없었다.
= 보아하니 네가 또 심통이 나는 모양이구나. 하지만 이르건대 혹시라도 그를 만나게 되면 나를 본 듯이 대해야 할 것이다.
그런데 그런 길매의 마음은 몰라주고 상공이란 이는 이름을 도용한 자의 편을 든다.
길매는 또다시 속이 상하지만 상공께서 바라시는 일인데 어찌하겠는가, 그저 고개를 숙일 뿐이다.
"알겠어요. 상공께서 하라는 대로 하겠어요."
= 그래. 그러면 된다. 그는 내가 대계를 위해서 안배한 자란 사실만 명심하거라.
"아! 그런 건가요? 그렇군요. 알았어요. 걱정하지 마세요."
= 그리고 너는 조만간 수미 세계로 넘어갈 준비를 하거라.
"네? 이곳에서 할 일이 많다 하지 않으셨어요?"
= 네가 자미혈궁에서 조금 더 높은 자리를 차지하려면 승경을 해야 하는데, 아무래도 진극멸기를 얻기 위해서는 수미가 좋지 않겠느냐.
"그야 그렇지만……?"
= 내가 함께 가지 못하는 것을 아쉬워하는 것이냐?
"수미에선 전언보패도 쓸 수가 없지 않겠어요? 저는 그냥 있다가 상공께서 가실 때에 함께 가면 아니 될까요?"
길매의 목소리에서 아쉬움이 절절하게 묻어난다.
= 그리해서 네가 자미혈궁의 주인이 될 수 있겠느냐? 언젠가는 네가 자미혈궁의 힘으로 나를 도울 일이 있을진대?
하지만 상공은 그런 길매를 보듬기보다는 질책했다.
"하아, 네에. 상공 말씀대로 기회를 얻어 수미로 넘어갈게요."
길매는 어쩔 수 없이 비 맞는 병아리처럼 처량한 표정으로 마지못한 대답을 한다.
= 그래, 그리고 그 전에 한 번은 내가 너를 부를 것이니 그리 알고.
그러자 상공도 그런 길매의 모습을 눈으로 보기라도 한 듯이 직접 만나주겠다는 포상을 내밀었다.
"네에! 알았어요."
길매는 그 약속 하나에 모든 섭섭함을 잊은 듯이 활짝 개인 목소리로 대답했다.
***
조옹진의 자미혈궁 외궁.
건우를 비롯한 서른두 명의 화신기 수사들은 각각 별채 하나씩을 받아 머물고 있었다.
잠시 머무는 것이라 해도 화신기 수사를 아주 무시할 수는 없는 일이다.
그러니 별채 정도를 내어주는 것은 그리 대단한 일이 아니었다.
사실 조옹진의 자미혈궁은 어지간한 중소 수도문파보다 넓은 영역을 차지하고 있었다.
그것은 다른 칠대 세력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게다가 사오리 소계에 다른 계에서 넘어오는 계간 통로가 있는 곳이 이곳 조옹진만이 아니었다.
사오리 소계는 네 개의 다른 소계와 계간 통로로 연결되어 있었다.
그런데 하필 건우가 도착하는 이곳에 흑선풍과 길매가 있다는 것은 참으로 묘한 우연이라 할 것이다.
'7흑선풍에 길매라니, 인연의 오묘함은 정말 알 수가 없구나. '
자미혈궁의 외궁 별채에 홀로 앉은 건우가 그 기묘한 우연을 떠올리며 내심 중얼거렸다.
- 그러게요. 그런데요.
그런 건우에게 루야가 의념으로 맞장구를 치며 슬쩍 말꼬리를 늘렸다.
'음? '
- 그 분혼이요, 아직 연결이 안 되는 거예요?
'전에도 이야기했던 것 같은데? 사오리 소계에 있는 듯하지만 그 이상은 알 수가 없다고. '
- 제 생각에는 길매나 흑선풍 중에 하나는 그 분혼과 관계가 있을 거 같거든요.
건우가 억지로 분혼을 찾으려 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면서도 루야는 분혼에 대한 궁금증을 버리지 못했다.
'흑선풍이야 악연이었으니 분혼과 엮이긴 어려웠을 거고. 관계가 있다며 길매겠지. 유매매란 이름을 버리고 길매가 된 것을 보면. '
- 그럴 가능성이 높죠. 길매의 뜻을 풀어보면 아무래도 길우몽의 여동생 정도가 될 거 같으니까요.
'그렇지.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 그럼 한 번 만나 보시는 것이 좋지 않을까요?
루야가 은근히 길매를 만나보라 권한다.
그 말은 백호진의 모습이 아니라 삼두육비의 길우몽으로 길매를 만나란 소리였다.
'자오로가 수배를 걸어 놓은 것 같던데? 길우몽의 모습을 드러내라고? '
절대 백호진이 길우몽이란 사실을 드러낼 수는 없었다.
길매가 아군이란 확신도 없는데 그런 모험을 할 수는 없다.
삼두육비의 길우몽이라면 입령기 완경의 길매 정도야 겁날 것이 없으니 문제가 없지만.
- 그냥 길우몽의 모습을 한 건우 님을 찾는다는 거잖아요. 솔직히 건우 님에게 당했다는 말은 체면 때문에도 못했을 걸요?
'그렇기는 하다만. '
- 그리고 나타결공법을 이용해서 성령기 초기의 경지가 되면 태령기들만 조심하면 되는 거 아니에요? 들키지도 않겠지만 들킨다고 해도 어떻게든 몸을 뺄 순 있잖아요.
'그러다가 최악의 상황이 되면 아공간으로 숨어야 하는데 그건 좀 곤란하지 않나? 이제 남은 수미 상징은 두 조각밖에 없는데? 그거 하나를 날릴 각오를 하고 길매를 만날 가치가 있을까? '
- 그래도 다른 건 몰라도 분혼에 대한 소식은 들어봐야죠. 건우 님은 궁금하지도 않으세요?
'으음. '
루야의 말에 건우는 고민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건강하게 잘 있다는 것만 알면 되지 않을까? 이곳 멸계의 일이야 분혼이 알아서 잘 하겠지. 그 놈이 난데. ' 건우가 슬쩍 이전과 같이 분혼을 믿고 맡기자는 태도를 드러냈다.
- 그래도 서로 대화를 하면서 의논을 할 수 있으면 더 좋지 않을까요? '그렇기는 하지. '
건우도 그 말에는 동의했기에 슬쩍 길매를 만나보는 쪽으로 마음이 기울었다.
그런 때에 마침 건우를 비롯한 신입 제자의 자미혈궁 입궁식 소식을 가지고 길매가 그들이 있는 외궁으로 찾아왔다.
<길매에게 남자가?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