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환장 통수 선협전-284화 (284/4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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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옹진(糟壅津)에서 세(勢)를 살피다 >

매당의 계간 운송선은 사오리 소계의 대성인 조옹진(糖德津)에 도착하자마자 억류되었다.

그 일을 행한 것은 성령기 완경의 수사였는데 목소리와 기세로 경지를 드러냈을 뿐, 정체를 알 수는 없었다.

당연히 운송선에 타고 있던 성령기 수사 몇이 크게 반발했지만 그들은 얼마 후 운송선을 떠나 다시 돌아오지 않았다.

남은 것은 입령기 이하의 수사들뿐이었는데, 성령기 완경의 수사가 일을 벌이는 중이라 감히 광장 밖으로 나갈 생각을 하지 못하고 머물러야했다.

"이게 무슨 상황이라고 보십 니까?"

동글동글한 체구의 양유(兩誘)가 건우 옆에 붙어서 불안한 듯 눈동자를 굴리며 물었다.

"보고도 몰라서 묻는 것입니까?운송선을 타고 온 우리들을 이리 붙잡아 두었는데 이후야 볼 것도 없겠지요."

건우가 양유에게 짜증을 감추지 않으며 말했다.

"이후를 볼 것이 없다니요?무슨 짐작 가는 것이 있기라도 하십 니까?"

양유는 건우의 말을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듯이 다시 물었다.

"지금 우릴 잡아두자는 것이 아닙니까.그 말은 우리를 쓸 곳이 있다는 이야기고."

"그야 그렇겠지요."

"그럼 우리를 어디에 쓰겠습니까?이곳 사오리 소계로 들어오는 수사들을 이리 억류했다면 그 쓸 곳이야 뻔하겠지요."

"그러니까 우리를 멸계전의 군사로 쓸 것이란 말입니까?"

"이제 들어보면 알겠지요.하지만 한 가지는 확실하지 않겠습니까?"

"그, 그게 뭡 니까?"

양유는 의외로 건우의 말에 일리가 있다 싶었는지, 그 해박한 추측을 더 듣고 싶은 모양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주위에 있던 다른 수사들 역시 마찬가지인 듯, 건우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이곳 사오리 소계에도 많은 수사들이 있겠지만 그들 모두가 멸계전에 뛰어들지는 않겠지요."

건우는 그렇게 말을 하고는 길게 한숨을 쉬었다.

"후우, 하지만 우리는 다르지요.여기 있는 대부분이 멸계전의 전장으로 가기 위해 사오리 소계로 온 것이 아닙니까."

"거, 당연한 이야기는 그만하고! 그래서 어찌 될 거란 소리냐?"

건우의 말이 이어지는 중에 입령기 초기의 수사 하나가 버럭 짜증을 내었다.

건우는 입령기 수사의 개입에 살짝 자세를 낮추며 이야기를 계속했다.

"멸계전의 전장으로 가기 위해서는 천지 법칙이 만든 공간 통로를 이용해야 합니다.그리고 그 통로에 아직까지 주인이 없겠습니까?"

"으음"

"그럴수도 있겠군."

"그럴 수도 있겠군."

"통로에 주인이 있다면 대가를 치르지 않고는 들어갈 수 없을 테지."

"그럼 우리를 붙잡아 놓은 것은……."

건우의 추측을 들은 수사들이 저마다 나름의 생각을 전개할 때였다.

= 모두 조용!

쿠구구궁!

다시 한 번 목소리가 등장하며 운송선에 탄 수사들을 짓눌렀다.이에 모든 수사들이 긴장하며 다음 말을 기다렸다.

= 이제부터 너희가 할 수 있는 일을 일러줄 것인 즉, 잘 듣고 선택하도록 하거라.너희는…….

이후 목소리는 사오리 소계와 멸계전의 현재 상황에 대해서 기본적인 설명을했다.

그런데 사오리 소계는 아직까지 멸계전의 전장이 된 것이 아니었다.

언젠가는 그렇게 되겠지만 아직은 멸계전이 수미 세계에서만 진행되고 있는 상황인 것이다.

하지만 결국 시간이 흐르면 사오리 소계와 수미 세계의 전면전이 벌어질 것이고, 그 때는 사오리 소계 역시 멸계전의 전장이 될 것이라했다.

다만 그렇게 전면전이 벌어지기 전에 먼저 수미 세계로 가서 공을 세울 길이 있으니 그것이 바로 천지 법칙의 공간 통로였다.

그리고 그 공간 통로는 모두 일곱 개가 있는데, 그 통로를 각기 다른 세력이 차지하고 있다고했다.

또한 다른 계에서 사오리 소계로 넘어온 이들은 누가 되었든 그 일곱 세력 중에 하나를 택해야 하며 그렇지 않으면 이곳 조옹진 대성을 떠날 수 없었다.

그것은 이미 일곱 세력이 합의하여 세운 규칙이라 태령기 수사라 하더라도 쉽게 어길 수 없는 것이라했다.

당연히 성령기도 못 된 입령기 이하의 수사들이야 감히 항의를 해 볼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그렇게 대략적인 상황 설명이 끝나자 광장을 벗어나 조옹진 성이나마 자유로이 돌아다닐 수 있도록 허락이 떨어졌다.

"이거 큰일이 났습니다.사오리 소계에 머문다고 천겁을 피할 수 있는 것이 아니란 말이 아닙니까."

목소리의 설명이 끝난 후, 양유는 떨떠름한 표정으로 건우의 소매에 매달리며 말했다.

"그렇다고 하지 않습니까.그리고 굳이 묻지 않아도 이미 천겁이 그대로 유지되고 있음을 느낄 수 있으실 텐데요?"

백호진의 모습을 한 건우가 눈썹을 평소보다 더욱 치켜세우며 짜증을 냈다.

"미안하오이다.하지만 제가 지금 너무나 궁지에 몰린 상황이라……:"

"아니 궁지랄 것이 뭐가 있습니까.적당한 세력을 찾아가서 휘하에 들면 공간 통로를 이용할 수 있다지 않습니까."

"그야 그렇지만 그 일곱 세력 중에 어디를 택해야 할지……."

"쯧! 아니 양 수사, 그걸 왜 자꾸 나를 붙잡고 물으십니까?나 역시 양 수사와 같은 날 같은 시에 이곳에 온 사람일 뿐인데요."

"아이고, 백 수사.그리 매몰차게 굴지 마시고 좀 도와주십시오.백 수사의 남다른 식견이라면 우리가 어떤 선택을 하는 것이 좋을지 길을 밝혀 주실 수 있지 않겠습니까.하다못해 7대 세력 중에 어디를 택하면 좋을지라도……."

건우의 짜증에 양유가 애처로운 표정을 지으며 소매를 잡았다.

건우는 신경질적으로 소매를 휘둘러 양유의 손을 떨쳐냈다.

"놓으십시오.나는 누가 나를 잡는 것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아이구, 미안하오이다."

"후우, 좋습니다.일단은 시간을 두고 일곱 세력에 대해서 알아봅시다.그리고 어디에 몸을 담아야 할지를 결정하지요."

건우는 짜증을 내며 양유의 손을 털어냈지만 결국은 마지못해 승낙한다는 듯이 그와의 동행을 허락했다.

어차피 이곳 조옹진을 떠날 수 없는 상황이니 굳이 갈라서서 혼자 있겠다고 할 이유가 없었던 것이다.

"어이구, 감사합니다.이 양 모는 백 수사가 이리 허락을 해 줄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하하하.자자, 그럼 어서 가서 머물 곳을 찾아보십시다.이 양 모가 앞장을 서겠습니다."

건우가 동행을 허락하자 곧바로 양유의 기가 살아났다.

그리고 양유는 당연하다는 듯이 운송선에서 친분을 다졌던 수사들 서른 정도를 불러 모았다.

결국 건우는 서른두 명의 수사 패거리에 속한 한 사람이 된 셈이지만 그것 역시 짐작했던 일이라 별말 없이 조용히 그들과 함께 움직였다.

양유가 건우에게 매달린 것은 같은이 무리로 끌어들이기 위한 것이지 둘만 함께 하자는 뜻이 아님은 이미 알고 있었던 일이었다.

***

'가까운 곳에 유혼결의 분혼이 있는 모양이군.'

- 그게 정말이에요 건우 님?

'그래, 하지만 가깝다고 해도 사오리 소계의 어디란 것만 알 수 있을 뿐, 그 이상은 알 수 없다.'

- 전처럼 분혼의 오감을 직접 느낄 수는 없다는 거군요?

'그래.그저 잘 지내고 있다는 정도만 알 수 있을 뿐이고, 경지조차 가늠할 수가 없다.'

- 경지랄 것이 있기는 하겠어요?아무리 빨리 경지를 끌어 올렸다고 해도 화신기 정도가 고작이겠죠.

'아니지.분혼이 곧 나라고 보면 이미 입령기에 올랐을 수도 있지.'

- 하지만 분혼은 아공간이 없잖아요.

'대신에 내가 진극멸기를 가득 담은 멸기함분을 줬잖아.거기다가 선태 괴수도 딸려 보냈고.'

- 아, 그 진극멸기를 몽땅 흡수했으면 입령기 완경도 가능했겠군요?건우 님이 비슷한 양으로 성령기에 올랐으니까요.

'그러니 운이 좋다면 분혼이 성령기에 올랐을 수도 있다는 말이지.'

- 와, 무섭네요.그게 고작 인계 멸계전에서 모은 진극멸기로 그렇게 경지를 올린다는 거잖아요?

'그 멸계전은 좀 비정상적인 형태였지.억지로 멸계전을 끝내지 않고 몇 백 만년을 유지한 것이었으니.'

- 하긴, 그건 그렇죠.

'어쨌거나 분혼이 사오리 소계에서 잘 버티고 있다는 것은 분명하다.

- 도움을 얻기는…….어렵겠죠?

루야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건우의 분혼이 멸계에서 어떤 위치에 있을지 모르니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만날 수 있으면 좋겠지만 억지로 일을 꾸밀 필요는 없겠지.어차피 분혼의 목적은 멸계전을 수미 세계의 승리로 만들고 이후 나와 합체하는 것이니 그냥 두 어도 알아서 하겠지.'

- 그렇긴 하죠.그런데 어쩌실 거예요?

'뭘 말이냐?'

- 어느 세력에 들어가서 수미 세계로 넘어가실 건지를 묻는 거죠.솔직히 건우 님도 상황이 급하잖아요.

'그렇기는 하지.'

루야의 말에 건우의 표정이 굳었다.

그도 그럴 것이 이대로 건우가 사오리 소계에 머물게 되면 수백 년 이내로 천겁을 맞이할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었다.

물론 건우가 천겁을 두려워할 이유는 별로 없었다.

승경 시험은 경지에 따라서 강해지지만 천겁은 겪은 횟수에 따라서 강해지는데, 건우는 워낙 빨리 경지가 올라서 경지에 비해서 천겁을 겪은 횟수가 적었다.그러니 건우가 겪을 천겁은 경지에 비해 무척 약한 수준이었다.

'문제는 멸계의 천겁이 영기 수도계와 다를 것이란 점이지.멸계에서 천겁을 맞으면 어떤 일이 생길지 알 수 없다.'

건우는 멸계의 천겁이 자신에게 어떤 영향을 줄지 몰라 불안했다.

그러니.

'천겁이 오기 전에 수미 세계로 넘어가야 한다.'

따지고 보면 건우 역시 양유의 처지나 다를 바가 없는 셈이었다.

- 문제는 어떤 세력에 속하느냐 그게 문제네요?

'그렇지?기개 세력이라…….'

건우는 양유를 비롯한 일행이 물어다주는 여러 정보들을 떠올리기 시작했다.

그렇게 고심하던 어느 날, 건우는 함께 손님을 만나자는 양유의 부름에 거처를 나섰다.

그리고 그곳에서 건우는 뜻밖의 인연을 만나게 되었다.

"어서 오게.여기이 어르신은 흑선풍이라 하시는 분이라네."

"선풍 어르신?"

양유의 소개에 건우는 깜짝 놀라 말을 더듬고 말았다.

그의 눈앞에 입령기 완경의 흑선풍이 나타났기 때문이다.

"뭘 그리 놀라는 것이냐?"

그 모습에 흑선풍이 의심스러운 눈빛으로 건우를 노려봤다.

"아, 아닙니다.어르신의 존체를 보고 그만……, 송구합니다."

백호진의 모습을 한 건우가 곧바로 두 손을 모으고 허리를 접었다.

자신의 놀람은 흑선풍의 특이한 모습 때문이라 변명을 한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흑선풍은 수많은 벌레들이 모인 군체의식에서 탄생한 수사여서 외모가 특이할 수밖에 없었다.

"커엄.하긴 네 견문에 나와 같은 이를 본 적이 없긴 하겠지.하지만 그리 경박하게 굴다가는 언제 죽을지 모른다.명심해야 할 것이야."

건우의 인사에 흑선풍은 그렇게 가볍게 을러대는 것으로 실례를 용서했다.

그가 이곳에 온 이유가 양유 등의 무리를 세력으로 끌어들이기 위함인데 상대를 윽박질러서야 좋을 것이 없었던 것이다.

"저 여우 일족 녀석이 너희의 책사라고?"

그렇게 상황이 정리되자 흑선풍에 양유를 보며 물었다.

양유가 건우를이 자리에 부른 핑계가 그것이었던 모양이었다.

"그렇습니다.저 친구가 나름 식견이 있어서 저희가 의지하는 바가 있습니다.저 친구가 거취를 결정하면 저희는 그에 따르기로 했습니다."

양유가 그렇게 말하며 무리의 거취 결정권이 건우에게 있음을 아뢨다.

그것은 이미 건우와 의논이 된 일이었기에 건우도 놀라지 않고 공손하게 서서 흑선풍을 바라봤다.

'조금 달라지긴 했지만, 그 흑선풍이 맞군.'

이전에는 날개가 없는 매미처럼 생긴 벌레로 몸을 이루고 있던 흑선풍이었다.

하지만 지금 흑선풍의 몸을 이루고 있는 벌레들은 검은색의 투명한 날개를 가지고 있었다.

경지가 올라 몸을 이루는 군체 벌레들 역시 성장을 한 듯이 보였다.

'그때 죽지 않고 살아남아 멸계까지 돌아왔다니 놀랍군.'

건우는 이런 곳에서 흑선풍을 만난 것에 내심 크게 놀라며 끈질긴 인연을 느끼고 있었다.

< 조옹진(糟甕津)에서 세(勢)를 살피다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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