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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단 성질대로 물어뜯긴 했는데 >
= 좋습니다.어쩔 수 없지요.그리 합시다.그렇게라도 해야지 자 어르신의 분노를 조금이나마 피할 수 있겠지요.
결국 건우는 어쩔 수 없다는 듯이 맹처령의 말을 수긍했다.
= 하하하, 이제야 정신을 차린 모양이구나.
맹처령은 그런 건우의 태도에 그동안 건우에게 휘둘렸던 것을 조금이라도 갚아 속이 시원하다는 듯이 크게 웃었다.
그 모습에 건우는 속이 상한 듯이 한동안 고개를 숙이고 말을 하지 않았다.
= 그럼 맹 수사께서 먼저 들어가 잘 좀 이야기를 해 주십시오.
그러다 어느 순간 건우가 고개를 들며 맹처령에게 조심스럽게 말했다.
= 응?함께 들어가지 않고?
맹처령이 의아한 표정으로 건우를 보며 물었다.
= 죄가 있는 놈이 뻔뻔하게 함께 들어갈 수가 있겠습니까?맹 수사께서 먼저 들어가서 적당히 어르신들의 화를 희석해 주시면 저는 그 때에 들어가는 것이 좋을 듯합니다.
= 응?그래?하하하.그것도 그렇군.알았다.알았어.
맹처령은 건우의 말에 잠시 생각을 해 보고는 크게 웃으며 좋아했다.
'분명 혼자 들어가 저에게 유리한 말들을 늘어놓을 생각으로 저리 좋아하는 것이겠지.'
건우도 그런 맹처령의 속을 짐작했지만 모르는 척 다시 고개를 숙였다.
= 알았다.내가 먼저 들어가서 좋게 말씀을 올리지.그러니 너는 여기서 기다리고 있거라.
잠시 후 맹처령은 그렇게 말을 하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벌써 자오로의 비행 법보에 오른 것이 1년이 지나고 있었다.
이제 오래지 않아 가까운 대성에 도착하면 전송진을 이용해서 금역으로 갈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맹처령은 비행 법보가 대성에 닿기 전에 일을 마무리 하려는 생각에 오늘 건우에게 이야기를 꺼낸 것이었다.
"어르신! 소인, 맹처령이 아뢸 말씀이 있습니다."
맹처령이 선실 문 앞으로 다가서서 조심스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그러자 곧바로 자오로의 목소리가 들렸다.
"무슨 일이냐?"
맹처령은 급히 두 손을 모으고 허리를 굽히며 대답했다.
"어르신의 청정을 방해하여 송구합니다.하지만 들으시면 어르신께서 기꺼워하실 이야기가 있습니다."
"그래?그럼 해 보거라."
"그게, 저기 길 수사와 관계가 있는 이야기라 뻔히 듣고 있는 데서 말씀드리기가……."
"쯧.귀찮게 하기는 들거 라!"
덜컥!
맹처령의 말에 자오로가 선실 출입문을 열어주었다.
맹처령은 힐끗 건우를 한 번 보고는 곧바로 선실 안으로 들어갔다.
"무슨 일이더냐?!"
선실 안쪽은 겉보기와 달리 공간이 드넓었다.
수백 장 넓이의 넓은 대청이 있었는데, 그 중간에 자오로가 품자 형태로 앉은 세 명의 태령기 수사와 마주보며 가부좌를 하고 있었다.
그들 네 명의 태령기 수사들은 딱 보아도 특별한 공법을 수련하는지 대청 바닥에 신묘한 진법이 복잡하게 일렁거리고 있었다.
"할 말이 있다 하지 않았더 냐?"
맹처령이 대청의 상황을 살피느라 잠시 미적거리자 자오로가 백안(白眼)을 번뜩이며 신경질을 내었다.
맹처령은 극멸기가 역류하며 온몸을 찌르는 느낌이 들자 곧바로 바닥에 엎드렸다.
"아룁니다.밖에 있는 길우몽이 감히 어르신들을 속였습니다."
맹처령이 다급한 목소리로 앞뒤를 가리지 않고, 말을 돌릴 것도 없이 곧바로 떠들었다.
"나를 속였다고?"
자오로가 두 눈에서 백색 섬광을 뿜어내며 맹처령을 노려봤다.
"그, 그 놈이 일전에 어르신께 앙천적의 1만 마리를 바치겠다고 하였습니다."
"그래, 그런데?그게 뭐가 문제란 말이냐?"
"어르신, 사실 그 놈의 말은 거짓이었습니다."
"뭐라?"
"으으윽!"
거짓이라는 말에 자오로가 백색 안광을 더욱 사납게 뿌리며 손을 저어 입구 앞쪽 바닥에 엎드린 맹처령을 자신의 앞으로 끌어갔다.
맹처령은 자오로와 세 태령기 수사 사이에 놓이게 되었는데, 그들의 기세가 워낙 사나워 저도 모르게 신음소리를 내고 있었다.
"말해라! 거짓이라니 무슨 소리냐!"
자오로가 그런 맹처령을 내려 보며 다그쳤다.
"노, 놈에겐 숨겨 놓은 앙천적의가 2만 마리나 더 있습니다.어르신께는 고작 셋에 하나만 바치려 한 것입니다."
"절반도 아니고 고작 삼할삼푼이라고!"
쿠구구구구궁!
다급하게 털어놓는 맹처령의 말에 자오로가 격분한 듯 고함을 질렀다.
그러자 대청이 우르르 떨었고, 마주 앉은 세 태령기 수사의 얼굴빛이 창백해졌다.
그들은 서로 대치하여 극멸기를 겨루는 수련을 하는 중이었다.
비행 법보로 이동하는 시간이 길지 않으니 그렇게 겨루며 서로의 공법 숙련도를 높이는 것이 그나마 효율적인 수련법이었던 것이다.그런데 서로 대치한 상태가 풀리지도 않았는데 자오로의 기운이 거칠어지자 상대하는 세 태령기 수사들이 충격을 받은 것이다.
덥썩!
"그 놈에게 2만 마리의 앙천적의가 더 있다는 말이 진정이냐?"
자오로가 맹처령의 뒷목을 잡아 그 얼굴을 끌어 올리고 눈을 맞추며 물었다.
백색 안광을 받은 맹처령은 고통스러워했다.
"으으으으, 그, 그렇습니다.그래서 소인이 놈을 추궁하여 결국 남은 앙천적의까지 모두 자 어르신께 바치도록 만, 만들었습니다."
"호오?그러니까 그 놈이 결국 나머지 앙천적의도 나에게 바치기로 했다고?"
"그, 그렇습니다.소인이……."
"그만, 어쨌거나 앙천적의가 모두 내 손에 들어온다면 그것으로 족하지.구구절절한 이야기는 필요 없다!"
맹처령은 어떻게든 자신이 공을 부각시키려 했지만 자오로는 관심이 없다는 듯이 맹처령을 다시 내던지듯 놓아 주었다.맹처령은 자오로의 차가운 말에 더는 입을 열지 못하고 바닥에 납작 엎드렸다.
"맹랑한 놈이군.2만 마리 나 숨겨 놓았다고?"
자오로가 중얼거렸다.
"엄히 다스려야 할 것 같습니다."
"담이 큰 놈이 아니겠습니까.어찌 자 수사를 속일 생각을 했는지."
"이참에 놈의 영혼에 금제를 거는 것이 좋을 듯 합니다만."
자오로의 말에 다른 세 명의 태령기 수사들이 한 마디씩 의견을 내놓았다.
그런데 바로 그 때였다.
엎드려 있던 맹처령이 갑자기 몸을 떨기 시작했다.
"으으으으으! 으으으으!"
그리고 제대로 말도 하지 못하고 어중간한 신음소리만 흘렸다.
자오로를 비롯한 네 수사들은 그 전까지는 맹처령의 몸 안에서 벌어지는 일을 알아차리지 못했다.
하지만 신음소리를 듣는 순간 문제를 파악하는 것은 순식간이었다.
"이 놈?"
"공법이 폭주를?"
"이,이 런 폭발! "
"막아야 합니다!"
넷 모두 까마득한 세월을 살아온 태령기 경지의 노괴들이었다.
급박한 상황을 겪은 것이 어디 한두 번일까.
그들은 말을 하면서도 이미 나름의 방어 술법을 펼치기 시작했다.
그들은 맹처령의 몸에서 일어나는 폭발이 그리 강하지 않다는 것을 이미 파악한 후였다.
그래서 그들의 대비도 그리 대단할 것은 없었다.
고작해야 성령기 수준의 공법이 잘못된 정도에 호들갑을 떨 필요는 없다 여긴 것이다.
그 정도는 기본적인 방어 술법으로도 충분히 막을 수 있다고 판단했다.
푸화화화확!
그리고 그렇게 네 수사의 준비가 끝난 순간 맹처 령의 몸에서 녹색의 섬광이 거칠게 뿜어져 나왔다.
"어 헉!"
"엇! "
"이, 이게, 이게 어떻게?"
"방어를 무시하다니 이게 뭐랍니까?"
그리고 다음 순간 네 명의 태령기 수사는 경악으로 말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
기본적인 방어술법이라고 하지만 태령기 수사들이 펼친 것인데, 그것이 허무하게 뚫려버린 것이다.
"이놈은 죽었군!"
그때, 엎어져 있던 맹처령이 한 줌의 독수로 녹아내리는 것을 보고 자오로가 중얼거렸다.
"길가 놈이 사라졌습니다."
그리고 또 다른 수사는 갑판에 있어야 할 길우몽이 사라진 것을 알아차렸다.
조금 전까지 갑판에 있었던 놈이 감쪽같이 사라진 것이다.
"찾아!"
자오로가 고함을 질렀다.
그 순간 세 명이 태령기 수사들이 대청에서 모습을 감추었다.
사라진 건우를 찾기 위해 밖으로 나간 것이다.
으드드드득!
자오로가 거칠게 이를 갈았다.
성령기 완경 놈은 죽었다.
죽은 놈이 일을 꾸미진 않았을 테니, 결국 성령기 초기의 그 길우몽이란 놈이 이번 일을 꾸몄을 것이다.
결국 자신이 성령기 초기 놈에게 놀림을 당한 것이 아닌가.
절대 용서할 수 없는 일이었다.
"으으음?그런데 이건 무슨 독이지?"
잠시 후, 자오로는 몸 안에 들어온 독이 범상치 않음을 느끼고 인상을 찌푸렸다.
그리고 그가 독에 집중하고 있을 때 밖으로 나갔던 세 명의 태령기 수사들이 차례로 대청으로 돌아와 가부좌를 하고 앉았다.그런데 그 세 수사의 표정은 하나같이 귀신에게 홀린 듯이 넋이 빠진 모습이었다.
"자(灰) 수사님.해독을 하셨습니까?"
그중 하나가 자오로를 보며 물었다.
자오로는 그들 셋이 모두 자신과 같은 독에 당했고, 그것을 해독하지 못했음을 짐작했다.
"이제부터 시도를 해 보려고 하는 중이다."
자오로는 그렇게 말을 하고는 의념을 집중하여 자신의 몸에 들어온 독을 파헤치기 시작했다.
그리고 얼마 후.
"이게 도대체 뭐란 말이냐?혹시 너희 중에 누가 알고 있는 것이 있느냐?"
자오로가 세 태령기 수사들에게 물었지만 아무도 대답하지 않았다.
그 세 수사들은 자오로도 독을 해독하지 못함을 깨닫고 얼굴 표정이 더욱 어두워졌다.
"뭔지는 모르지만 심각합니다."
"그렇습니다.독이 심지어 영체와 영혼까지 스몄습니다."
"그렇지 않았다면 이미 몸을 버렸을 테지요."
"허어 이런 일이!"
자오로는 세 수사의 말에 어이가 없어서 혀를 차고 말았다.
하지만 그 역시 점차 독이 온몸에 퍼지는 것을 느끼고 있었고, 그것을 따로 떼어 내거나 혹은 몰아넣을 방법이 없음을 깨달았다.
'무서운 독이다.'
그 중에도 법보의 비행은 계속되고 있었는데 그들이 그것을 깨닫고 법보를 멈춘 것은 그로부터 사흘 후의 일이었다.
"새끼들! 어디 한번 죽어봐라!"
자오로와 세 수사가 천겁독에 당황하고 있을 때, 건우는 아공간 안에서 이를 갈고 있었다.
- 맹처령이 완전히 속았군요. 영족이라 영혼에 독이 스미기 전에 대처를 할 수 있었다지만 자오로는 그도 아니니 어찌 되었을지 정말 궁금하네.하하하하하."
건우는 오랜만에 속이 시원해지도록 크게 웃었다.
하지만 그 앞에 있는 루야의 표정을 매우 좋지 않았다.
- 지금 웃을 때가 아니잖아요.멸계에서는 아공간 안으로 들어오지 않겠다면서요?이제 어쩔 거예요?
결국 루야가 건우를 보며 따져 물었다.
순간 건우의 표정이 순식간에 어두워졌다.
잠시 잊으려 했는데 루야가 결국 덮어 놓은 상처를 헤집은 것이다.
< 일단 성질대로 물어뜯긴 했는데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