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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환장 통수 선협전-280화 (280/4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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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등에 빨대를 꽂으려고?>

"지랄한다!"

쩌저저저적!

건우의 한 마디에 분위기가 소스라치게 얼어붙었다.

유세명은 정말 얼음동상이라도 된 듯이 딱딱하게 굳은 채로 서 있었다.

"어떻게?"

잠시 후 유세명이 두어 걸음 뒤로 물러나며 중얼거렸다.

건우가 자신의 유혹에 전혀 걸려들지 않은 것을 받아들이기 어려워하는 모습이었다.

"이 끈적거리는 기운은 네 특기인가?묘하게 기분이 나쁜데?"

건우가 한 손을 내밀어 아공간에 뭉쳐 놓았던 유세명의 기운 중 일부를 뽑아 보여주며 물었다.

유세명은 건우의 손에 자신의 기운이 응결된 것을 확인하고 입을 떡 벌렸다.

그 기운은 멸계의 태고마수인 흑천호(崔天호)로부터 물려받은 종족 계승 능력이 포함된 특별한 극멸기였다.

흑천호는 멸계 여우 종족의 근원에 가까운 태고 마수로, 그 흑천호의 진혈이 이리저리 갈라져 멸계의 여러 여우 종족이 태어났다.

그중에 어쩌다가 진혈이 특히 진하게 발현된 여우가 유세명이었다.

그녀는 태고마수 흑천호의 진혈 덕분에 영성을 깨우쳐 수사가 되었는데, 흑천호의 여러 능력 중에서 유독 매혹의 힘을 크게 이어받게 되었다. 그 힘이 태고마수에 근원을 둔 덕분인지 동급 수사들 중에서 그녀의 유혹을 이겨내는 이가 없었다.

주위 수사들을 쉽게 유혹할 수 있었던 유세명은 수련 진도를 빠르게 올릴 수 있었다.

하지만 너무 과하게 일을 벌이다 정체가 들통나 쫓기는 신세가 되고 말았다.

그런 때에 멀리서 멸계전에 대한 소식이 들려왔고, 유세명은 그것을 기회라고 생각하여 사오리 소계로 향하던 중이었다.

그런데 멸계전 전장에 도착할 때까지는 최대한 정체를 감추려 했던 유세명이었지만 건우를 보고는 그 결심이 무너지고 말았다.

지금까지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엄청난 보물이 눈앞에 나타났으니 어찌 욕심을 참을 수 있을까.

결국 제 버릇을 버리지 못하고 건우를 노예로 삼아 골수를 빨고자 했던 것이다.

퍼억!

"카아악!"

삼두육비 수사 놈이 자신의 기운을 아무렇지 않게 뽑아낼 때에도 유세명은 크게 걱정하지는 않았다.

어차피 금역의 마지막 금제도 뚫린 마당에, 일이 안 풀리면 도망을 가면 그만이라 생각한 것이다.

설마하니 고작 성령기 초기인 놈의 손에서 몸 하나 빼지 못할까 하는 자신감도 컸고.

하지만 본체를 드러내고 삼두육비 수사 놈을 노려보며 경계할 때에, 느닷없이 뜻밖의 기습이 날아와 꼬리 절반이 잘려 나갔다.

그 뒤로 유세명은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오직 두려움 이외엔 아무 생각도 들지 않았다.

'죽는다! 죽는다! 죽어! '

금수에서 수사가 된 이들이 극한 상황에 몰리면 이성을 잃고 짐승일 때의 단순한 사고로 돌아가는 경우가 있는데, 지금 유세명의 상태가 그랬다.자신의 꼬리를 자른 성령기 완경의 암습자가 삼두육비 놈과 한패라는 것을 깨닫자 곧바로 정신 줄을 놓아 버린 것이다.

"어찌할까요?"

맹처령이 은색의 작은 삽으로 반인반호(半人半孤) 상태인 유세명의 목을 누르며 물었다.

캬르르르르릉! 캬르르릉!

유세명이 여우 울음소리를 내며 건우를 애처롭게 쳐다봤다.

하지만 건우는 그 순간 아공간으로 스며드는 유세명의 끈적한 기운을 발견하고 단호하게 말했다.

"죽여!"

푸화화화확!

건우의 말과 함께 맹처령의 작은 삽에서 은빛 광채가 뿜어졌다.

결국 금역 밖으로 나온 것은 건우와 맹처령 둘 뿐이었다.

당연히 유세명의 재산은 모두가 건우의 주머니 속으로 들어왔다.

이제 사오리 소계까지는 한 번의 계간 이동만 남았을 뿐이다.

이곳 소계가 사오리 소계와 직접 연결이 되어 있었다.

건우는 최대한 빠르게 사오리 소계로 가고 싶었다.

사오리 소계에 가면 수미 세계로 갈 방법이 있을 것이니 어찌 조급하지 않을까.

그런데 건우는 금역에서 나오고 2년이 지나지 않아서 엉뚱한 이들이 나타나 건우와 맹처령의 뒷덜미를 잡아채는 일이 벌어졌다.

금역에서 나와 장거리 전송진이 있는 대성을 찾아 이동하던 중의 일이었다.

갑자기 태령기 수사 넷이 건우의 앞에 나타난 것이다.

그들은 건우 앞에 나타나자마자 맹처령이 숨어 있는 허공을 향해 고함을 질렀다.

"놈, 나서거라!"

명령을 내린 것은 몸에 문신이 가득한, 수려한 외모의 중년 수사로 이전 혁세림으로 향하는 전송진에서 봤던 바로 그 태령기 후기 수사였다.이에 맹처령은 감히 거역하지 못하고 곧바로 은신을 풀고 모습을 드러냈다.

"네가 저 녀석을 부리고 있었더냐?"

맹처령이 나타나자 중년 문신 수사가 건우를 눈짓으로 가리키며 물었다.

"부리는 것은 아니고 함께 동행을 하고 있기는 합니다."

맹처령이 억지로 머리를 굴려 대답했다.

여기서 자신이 건우의 노예 신세란 말을 할 수는 없었던 것이다.

"그래?내가 기억하기로 너희는 우리보다 늦게 금역으로 들어왔을 터인데?그렇지 않으냐?"

"그, 그렇습니다.어르신."

"그래, 그런데 어찌 너희가 우리보다 먼저 금역을 뚫고 나왔더란 말이냐?"

"그, 그것이……

맹처령은 곧바로 대답을 하지 못했다.

이런 상황에 대해서는 건우와 미리 이야기가 된 것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당장 건우도 태령기 수사들에게 들키지 않고 맹처령과 의념 대화를 할 수 없어 입을 다물고 있었다.

그러니 맹처령이 알아서 대처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그래서 머뭇거리며 대답을 하지 못했는데 무의식적으로 건우 쪽으로 시선을 던지는 실수를 하고 말았다.

그것만으로 태령기 후기의 문신 수사는 성령기 초기인 삼두육비 수사에게 뭔가 있음을 알아차리고 시선을 돌렸다.

그리고 눈을 가늘게 뜨며 말했다.

"저 영족 놈이 아니라 네게 물어야 했던 일인 모양이구나?음, 그러고 보면 너는 조금 특이한 기운을 가지고 있구나?"

건우는 문신 수사의 말에 여섯 개의 눈을 질끈 감고 말았다.

태령기 후기의 경지가 무색하지 않은 듯 자신의 기운에 의문을 가진 것이 분명했다.

건우는 여기서 어떤 말을 해야 그를 속여 넘길 수 있을지 쉽게 판단이 서지 않았다.

"네 이름이 무엇이냐?"

그때, 문신 수사가 취조하듯 건우에게 물었다.

그리고 건우는 이름을 묻는 말에 어쩌면 위기를 넘길 수도 있는 방법을 떠올렸다.

"길우몽이라 합니다."

"그래?길우몽?그런데 다시 봐도 네 기운이 이상한 점이 있구나.너는 그것을 설명할 수 있느냐?"

"어떤 것이 이상하다 하시는지 알 것 같습니다.후배에게 영기와 혼돈기의 흔적이 있음을 말씀하시는 것이 아니신지요."

건우는 곧바로 선수를 쳐서 문신 수사가 의심할 만한 것을 제 입으로 먼저 언급했다.

"그래, 너도 알고 있었겠지."

"이상할 수 있겠으나 또 따지고 보면 너무도 간단한 이유입니다."

"들어 보자."

문신 수사는 호기심을 풀 수 있겠다는 생각인지 흔쾌히 대꾸했다.

"이름이 널리 알려지지는 않았겠지만 저는 선태 수사란 이명을 가졌던 적이 있습니다."

"선태 수사?"

"그렇습니다.제가 부렸던 멸계수가 선태괴수였던 까닭입니다."

"성령기 따위의 명성이 내게 무슨 의미가 있다는 말이냐?"

문신 수사는 건우의 이야기가 겉돌고 있다고 여겼는지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

건우는 급히 여섯 손을 모으고 허리를 숙이며 말을 이었다.

"송구한 말씀이지만 선태 수사란 이름은 사실 성령기나 입령기도 아닌 화신기에서 얻었던 것입니다."

"뭐라?고작 화신기?"

"저 놈이 어른을 놀리려 든단 말인가?"

"지금 고작 화신기 때의 이야기를 떠들다니!"

건우의 말에 문신 수사 뒤쪽에 말없이 서 있던 태령기 초기와 중기의 수사들이 버럭 화를 냈다.

문신 수사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한 손을 들어 그들의 말을 막더 니 묘한 눈빛으로 건우를 바라봤다.

"흐음.네 말을 들으니 짐작이 가는 일이 있구나.너는 네가 화신기 경지에서 멸계전을 치른 경험이 있다는 말을 하려는 것이구나?"

문신 수사는 선태 수사 길우몽에 대한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었던 모양인지 그렇게 물었다.

"바로 그렇습니다.비록 패배한 싸움이었지만 저는 멸계전을 경험한 바가 있습니다."

"그래 멸계전에 뛰어들었다가 승리하지 못하고도 다시 본계로 돌아온 경우가 있었다 하였지.그래서 꽤나 시끄러웠던 적이 있었어."

그렇게 중얼거리는 문신 수사의 눈빛은 이전보다 훨씬 묘한 빛을 담고 있었다.

그 눈빛에는 기이한 열기가 떠돌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뭐 아는 것이 있습니까?"

"뭡니까?"

그런데 문득 문신 수사 뒤쪽에 있던 세 명의 태령기 수사 중에 하나가 깜짝 놀란 듯이 탄성을 지르다 입을 닫았다.

당연히 곁에 있던 두 태령기 수사가 궁금하게 여겼지만 그는 눈동자만 굴리며 문신 수사의 눈치를 보았다.

이번에는 문신 수사가 몸을 돌려 그를 노려보고 있었던 것이다.

"쯧, 입이 가벼우면 명이 짧은 법인데."

"자 수사.요, 용서해 주십시오."

문신 수사의 말에 지적을 받은 수사가 화들짝 놀라며 무릎을 꿇고 엎드렸다.

"되었다.내가 너와 함께 하기로 약속을 했는데 이만한 일로 벌하기야 하겠느냐.하지만 앞으로는 언행을 조금 더 신중히 해야 할 것이다."

"가, 감사합니다.자오로(灰汚爐) 수사."

태령기 중기의 수사가 감격하여 당장 눈물이라도 흘릴 듯이 말하는데, 건우는 그 때서야 문신 수사의 이름이 자오로 임을 알았다.

"멸계전이란 혼자의 힘으로 큰 일을 이룰 수 있는 것이 아니다.그러니 당연히 무리를 지어야 하고, 무리를 지으려면 응당 신뢰가 있어야 한다.나는 이번 일 로 너희에게 내 신뢰를 보여 주려 함이다."

그때, 문신 수사 자오로(灰汚爐)는 마치 크게 선심을 쓴다는 듯이 세 태령기 수사들에게 장황하게 말을 하고는 시선을 돌려 건우를 노려봤다.

"너는 내 물음에 한 치의 거짓도 없이 답해야 할 것이다."

"네, 어르신.반드시 그렇게 하겠습니다."

자칫하면 목이 날아갈 상황인데 그 외에 무슨 대답을 할 수 있을까.

건우는 곧바로 허리를 접었다.

"네가 참가했던 멸계전은 분명 패하였다 하였지?"

"그렇습니다."

"지금껏 패배한 싸움에서 본계로 수사들이 돌아온 것은 네가 참가했다는 그 한 번뿐임을 너는 아느냐?"

"알고 있습니다.소인이 그 방법을 만들기 전까지는 멸계전의 승리 이외에는 본계로 돌아올 방법이 없었다고 알고 있습니다."

"옳다.그래서 그 때, 본계로 돌아온 아이들이 중요할 수밖에 없었지.나 또한 뒤늦게 그 이야기를 듣고 아이들을 찾으려 했지만 찾지 못했다.

"네?찾지 못하셨다니 무슨 말씀인지 모르겠습니다.분명 적잖은 이들이 본계로 돌아갔는데……

건우은 자오로의 말을 이해하지 못해 고개를 갸웃거렸다.

"쯧, 너는 그런 중요한 비밀을 다른 놈과 나누겠느냐?"

그런데 자오로가 그렇게 묻자 건우의 머릿속이 훤하게 트였다.

멸계전 중에 본계로 복귀할 수 있는 방법이 꽤나 귀한 비밀로 여겨졌다는 말이다.

당연히 자신만 알고 싶다는 욕심이 있었을 것이고, 많은 이들이 비밀을 빼앗기고 죽임을 당했을 것이다.

"이해한 듯하구나."

자오로가 건우를 보며 자상하게 웃는 얼굴로 말했다.

하지만 그 웃음을 보는 건우는 등이 서늘해지는 느낌을 받았다.

자신 역시 비밀을 빼앗긴 후에 죽게 될 가능성이 높다는 말이 아닌가.

"하하하.걱정하지 마라.나는 재능 있는 놈을 좋아한다.그러니 너는 이번 전쟁 중에도 언제든 본계로 돌아올 수 있게 방법을 찾아보아라.이번에는 영기 수 도계의 인계가 아니라 영계와의 싸움이니 그때와는 많이 다르겠지.하지만 너라면 방법을 찾을 수 있을 거 같구나."

세 개의 얼굴 표정이 모두 굳어진 건우를 보며 자오로는 여전히 푸근한 웃음을 머금고 달래듯이 그렇게 말했다.

하지만 건우는 여섯 개의 눈을 다시 한번 한꺼번에 질끈 감고 말았다.

'이렇게 등짝에 빨대를 꽂나?하지만 지금까지 나를 이리 대하고 무사했던 놈이 없었던 걸 알아야 할 거다.'

하지만 그가 눈을 감은 것은 오기와 각오를 숨기기 위함일 뿐 절망이나 좌절을 뜻하는 것은 아니었다.

"자, 일단 가면서 이야기를 하자꾸나.모두 내 비행 법보에 오르거라."

건우가 그러거나 말거나 자오로는 먼 하늘에 손짓을 하여 그의 비행 법보인 돛 없는 배를 불러왔다.

건우와 맹처령은 곧바로 태령기 수사들과 함께 그 배에 올라탔다.

< 등에 빨대를 꽂으려고?>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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