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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맹처령 따위야 뭐 그냥 >
“그 요괴를 놓쳤으니 앞으로 후환이 무궁하겠군. 놈의 성격을 생각하면 이대로 물러나진 않을 거야.”
지수갈이 석연치 않은 표정을 지으며 건우의 눈치를 살폈다.
“지 수사와 내가 함께 있다면 반드시 우리를 쫓겠지만 여기서 우리가 갈라지게 된다면 둘 중에 하나는 안전해지지 않겠습니까?”
“으음?”
지수갈은 이런 건우의 대응을 예상치 못했는지 움찔하는 모습을 보였다.
사실 지수갈은 자신이 가진 편복족 특유의 탐색 능력을 내세워 건우를 회유하려 했다.
자신이 그 요괴를 막을 수 있으니 함께 움직이는 것이 어떠냐고 할 생각이었는데, 서로 헤어지면 절반의 확률로 요괴를 떨칠 수 있다니.
“아니, 그러다가 그 놈이 아우를 따라가면 어찌하려고 그래? 아니지, 아우의 경지가 조금 낮으니 분명 아우를 먼저 쫓겠지. 그리고 아우를 해친 다음에는 나를 찾아올 것이고.”
지수갈이 서둘러 건우가 자신과 함께해야 할 이유를 늘어놓았다.
“제가 그리 쉽게 당할 거라고 생각하십니까?”
건우가 기분이 상한 듯이 지수갈에게 물었다.
“물론 아우가 숨겨 놓은 재주가 많다는 것은 짐작하지. 하지만 그래도 함께 하면 안전할 것을 굳이 갈라설 것이 뭐란 말이냐.”
“그도 일리가 없는 이야긴 아닙니다만.”
건우는 짐짓 고민하는 모습으로 한동안 입을 닫았다.
지수갈은 그런 건우를 보며 속을 태우고 있었다.
소계 사이의 금역을 통과하는 것도 건우가 있어야 빠르고 편하게 할 수 있다.
게다가 그 요괴 놈이 나타난다고 해도 혼자서는 백중세를 유지할 뿐이지만 이 삼두육비 놈이 있다면 조금 전처럼 어렵지 않게 요괴를 막거나 쫓을 수 있다.
‘게다가 저 놈이 가진 보물이 많은 것 같으니 기회를 봐서 취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어?’
이런 생각까지 더해지면 눈앞의 삼두육비 놈과 반드시 동행을 해야 한다.
“뭐, 좋습니다. 그렇다면 이번 소계의 금역을 지날 때까지는 일단 함께하지요.”
“응? 왜 이번까지만이야?”
지수갈이 인상을 구기며 물었다.
“우리가 이번에 금역을 지나면 그 요괴 수사가 어찌 우리 뒤를 따르겠습니까? 당연히 다음 소계부터는 그 요괴를 걱정할 이유가 없지요.”
“하지만 결국은 그 놈이 사오리 소계까지 쫓아올 텐데?”
“하하하. 그렇다고 평생을 내가 지 수사와 붙어 지낼 수는 없지 않습니까. 그것은 지 수사 역시 마찬가지일 것이고요.”
“커엄. 그건 또 그렇군.”
“그러니 이번 소계의 금역을 지날 때까지만 함께 하자는 것입니다.”
“아우의 생각이 그렇다면 일단 그렇게 하지. 이후의 상황이 또 어찌 될지는 모르는 거 아니겠어?”
“그렇지요. 앞날을 어찌 장담하겠습니까.”
건우는 그렇게 대충 대꾸하며 다음 소계에서의 일에는 확답을 주지 않았다.
어쨌건 그렇게 해서 건우와 지수갈은 다시 한동안 동행을 하게 되었다.
***
소계(小界)라 하지만 그 넓이를 따지자면 수미 세계나 홍애지와 같은 수준의 세상이다.
당연히 소계의 금역으로 가는 길은 까마득히 멀 수밖에 없다.
그 먼 거리를 둔술을 펼치거나 비행 법보를 타고 이동하는 것은 성령기 수준의 수사들에겐 평생을 허비해야 할지도 모를 일이다.
그러니 당연히 먼 거리를 순식간에 이동시켜주는 전송진을 이용해야 한다.
건우와 지수갈이 대성을 찾아온 것은 그런 이유였다.
“사오리 소계를 가기 위해서는 혁세림(革細林)의 금역으로 가야 하니 앞으로 전송진을 두 번은 갈아타야겠군.”
지수갈이 건우와 다탁을 마주하고 앉아 옥간 하나를 들고 그 내용을 읽으며 말했다.
건우는 중앙의 회색 머리로 차를 마시며 지수갈의 이야기를 듣고 있었다.
지금 지수갈이 읽고 있는 옥간은 이곳 소계에 대한 대략적인 정보가 담긴 것으로 대성에 오기 전에 만난 성령기 수사에게 얻은 것이다.
건우와 지수갈의 부탁에 그 목령족 수사는 흔쾌히 가진 것을 내어 주었고, 지수갈은 그 성의를 봐서 영혼을 소멸시키는 극단적인 수는 피해 주었다.
“길 아우도 한 번 살펴봐.”
지수갈이 들고 있던 옥간을 건우에게 내밀었다.
건우는 말없이 옥간을 받아 의념을 불어 넣었다.
“따로 볼 것이 뭐가 있겠습니까. 수도계야 어디든 비슷하지요. 다만 충돌을 피해야 할 세력과 고계 수사들에 대해서나 잘 알면 될 일이 아니겠습니까. 음? 그런데 그 사이에 변화가 많았던 모양입니다.”
“어쩔 수 없지. 이곳에서도 사오리 소계로 떠난 수사들이 많은 모양이니까. 그리고 그건 우리에게도 좋은 소식이지.”
“좋은 소식이라고요?”
“그렇지. 우리가 혁세림 금역으로 가야 한다고 했지?”
“그렇지요. 그쪽에 다음 소계로 통하는 금역이 있으니 당연하지 않습니까.”
“그래, 그런데 혁세림에는 금역만 있는 것이 아니지. 다음 소계로 가는 여러 통로가 그 혁세림에 있단 말이지.”
“그야 당연한 일이 아닙니까. 금역은 그중에서도 가장 사나운 통로일 뿐이지요.”
“그러니 하는 말이야. 지금 사오리로 향하는 수사들이 많다 하지 않았나. 그럼 이곳 소계의 수사들이 혁세림으로 몰리고 있을 것이고. 당연히 우리가 혁세림으로 가는 것도 평소보다 편하겠지.”
“아, 손님이 많으니 전송진도 활발하게 발동을 시킬 거라는 말이군요.”
“이제야 그 영민한 머리가 돌아온 모양이군.”
지수갈은 그렇게 말을 하고는 자신의 찻잔을 들어 후루룩 삼켰다.
그리고 벌떡 일어나며 건우를 보았다.
“나는 가진 것을 처분하여 진극멸기를 좀 충당할 생각인데 아우는 어쩔 거야?”
“그렇다면 열흘 후에 다시 이곳에서 보는 것으로 하지요. 설마 이런 대성에서 요괴 수사가 멋대로 소란을 피우기야 하겠습니까?”
“그럴 가능성이 아주 없진 않지만 그래도 조금은 안심을 할 수 있겠지. 알았다. 그럼 열흘 후에 다시 보자.”
지수갈은 건우가 잠시 떨어져 있겠다는 말을 하자 눈빛이 떨렸지만 곧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이 열흘 후의 만남을 기약하고 훌쩍 다루(茶樓) 밖으로 사라졌다.
건우는 남은 차를 마저 마시고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전송진을 이용할 재화는 충분하다. 굳이 지수갈처럼 교류회나 상점을 돌아다닐 이유가 없지.’
이전에 죽인 충족 수사에게 얻은 재물이 아직은 많이 남아 있었다.
게다가 이곳에 오는 길에 지수갈과 함께 잡은 목령족 수사의 재산도 반씩 나눠 가졌다.
그럼에도 지수갈은 진극멸기를 더 모아 보겠다고 나선 모양이지만 건우는 그럴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다.
‘어차피 들어올 곳도 있는데 굳이 발품을 팔 일은 없지.’
건우는 다루에서 멀지 않은 객관을 찾아 별채 하나를 얻었다.
그리고 가만히 명상을 하며 뿌려 놓은 씨앗이 열매가 되어 돌아오기를 기다렸다.
= 놈, 어찌 한 것이냐!
건우가 객관에서 명상을 시작하고 사흘이 흘렀을 때, 드디어 반응이 왔다.
건우는 눈을 뜨고 한 곳을 노려봤다.
빈 허공.
하지만 그곳에 요괴 수사가 있음을 건우는 분명하게 알고 있었다.
= 나를 찾았다고?
건우의 시선이 자신을 향하자 맹처령이 깜짝 놀라며 물었다.
“이제 너의 은신술은 의미가 없다. 나는 네가 어디에 있더라도 찾아낼 수 있으니까.”
= 노옴! 내 몸에 무슨 짓을 한 것이냐!
맹처령이 노성(怒聲)을 터트렸다.
“그것은 천겁독이라 한다. 하지만 그 이름을 안다고 무얼 해 볼 수는 없을 것이다. 그 천겁독은 특별한 방식으로 다시 배양된 것이라 일반적인 천겁독과는 다르니까.”
= 천겁독? 그게 무엇이냐? 설마 천겁과 연관된 것이냐?
맹처령은 천겁독에 대해서 아는 바가 없었다.
천겁독은 워낙 오래전에 사라진 것이라 그에 대해 말할 일이 없었다.
망각이 없는 수도계라 하더라도 후대에 알리지 않으면 잊혀지는 것은 당연한 일.
천겁독 역시 그렇게 잊혀진 것들 중에 하나였다.
“천겁독에 대해서는 네가 알아봐야 할 일이겠지. 하지만 그 전에 내가 너를 돕지 않는다면 너는 얼마 지나지 않아서 한 줌의 독수(毒水)로 녹아내릴 거다.”
= 대담하구나. 죽고 싶은 모양이구나. 내가 고작 이런 독에 굴복할 성 싶으냐?
맹처령은 목소리만으로도 건우를 죽일 듯이 매서운 살기를 뿌렸다.
하지만 건우는 세 개의 얼굴로 한꺼번에 피식 웃어 그런 맹처령의 속을 뒤집어 놓았다.
“해 볼 테면 해 봐라. 이미 네 위치가 드러난 마당에 네가 무엇을 할 수 있단 말이냐. 성령기 완경이라 하지만 이미 내 독에 중독되었는데?”
= 독 따위!
“하하하하. 독 따위라?”
건우는 맹처령을 비웃으며 오른손 하나를 들어 올렸다.
그리고 모종의 공법을 운용했는데 그것은 괴뢰선에게 얻은 천겁독을 다루는 독공법이었다.
원래 천겁독을 써 보려는 수사는 많았지만 그 누구도 성공하지 못했다.
그러다가 천지법칙에 의해서 독을 이용한 천겁이 금지된 후로 상황이 달라졌다.
이전에 사용된 천겁독이 시간이 흐르면서 조금씩 희석되거나 혹은 변이를 일으킨 것이다.
괴뢰선이 얻은 천겁독은 그중에서 변이를 일으킨 종류였다.
그 덕분에 독공법을 이용하여 활용하는 것이 가능했는데, 고대의 어떤 수사가 그것을 연구하여 제대로 된 독공법과 독의 배양법을 완성했다.
문제는 그것을 완성한 고대 수사가 공법을 제대로 익히기도 전에 죽었다는 것이다.
독공법과 독의 배양법을 연구하던 중에 중독이 되었는데 그것을 이겨내지 못했다고 한다.
어쨌건 그것이 괴뢰선의 손에 들어왔던 것이고 그것을 건우가 배워 맹처령에게 처음으로 선을 보였다.
= 끄으으으윽! 이게, 이게 무슨?!
건우가 세 개의 오른손 중에 중간 손을 내밀어 녹색의 빛을 번뜩이자 맹처령이 창자 끊어지는 신음 소리를 냈다.
그리고 스르륵 허공에서 제 모습을 드러냈는데 그는 배를 움켜쥐고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태령기 중기의 수사조차 감당하지 못했던 독이다. 겨우 너 따위가 이겨낼 수 있을 것 같았더냐?”
건우가 한껏 몸을 웅크리고 고통을 삼키는 맹처령을 비웃으며 말했다.
“내 몸에 들어온 독을, 네, 네가 움직이는······ 크아아아아악!”
맹처령이 힘들게 고개를 들고 건우를 노려보며 말하다가 다시 비명을 질렀다.
그러고는 체면도 없이 바닥을 구르며 버둥거렸다.
“천겁독이다. 일반적인 독과 같을 것이라 생각했더냐?”
“끄으으윽! 머, 멈춰다오! 끄아아!”
“네가 지금 내게 명령을 내리는 것이냐?”
건우는 맹처령의 태도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듯이 소리를 지르더니 녹색 빛을 머금은 손을 이리저리 휘저었다.
그러자 맹처령의 비명은 더욱 커지고 처절해졌다.
“끄으으으으으 끄으으으 요, 용서··· 끄드드득 용서해······ 주시······.”
맹처령은 애원의 말조차 제대로 하지 못하고 바닥에 엎어져 건우를 바라보았다.
건우는 슬쩍 독공법이 깃든 손을 흔들었다.
그러자 맹처령의 몸이 바닥으로 완전히 늘어져 버렸다.
고통이 사라지자 몸에서 모든 힘이 빠져나간 듯이 맥이 풀린 것이다.
“이제 네 신세를 알겠느냐?”
건우가 그런 맹처령을 서늘한 눈빛으로 내려 보며 물었다.
맹처령은 급히 눈빛을 피하고 미적미적 자리에서 일어나 무릎을 꿇고 머리를 조아렸다.
“사, 살려주십시오.”
맹처령이 할 수 있는 것은 없었다.
당장 떠오르는 것은 죽기를 각오하고 싸우거나 혹은 굴복하거나 둘 중에 하나 뿐.
이전 같으면 도망쳐서 몸에 들어온 독을 풀어낼 방법을 찾아 볼 수도 있었겠지만 지금 상황에선 도망을 가는 것도 불가능해 보였다.
이곳 별채로 들어온 순간부터 맹처령은 건우의 손아귀에 잡힌 것이다.
죽기 싫으면 굴복하는 수밖에 없는데 맹처령은 죽기 싫었다.
“살려 달라? 그래, 당장 죽이지는 않으마. 하지만 네 스스로 가치를 증명하지 못하면 나는 너를 살려둘 이유가 없다. 그건 알겠지?”
“그, 그······.”
“그러니 이제 너는 네가 살아 있어야 할 이유를 내게 내놔 봐라.”
건우가 더듬거리는 맹처령에게 녹색 빛이 흐르는 손바닥을 내밀었다.
< 맹처령 따위야 뭐 그냥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