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환장 통수 선협전-274화 (274/4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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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앙천적의는 보물이다 >

사각! 사각! 사각!

쯔르르르르르 쯔르르르륵!

붉은 개미들은 두 개의 집게와 날카로운 입으로, 응결된 극멸기를 갉아먹었다.

그리고 그 가까운 곳에서는 붉은 핏물이 금제를 이루는 선과 문양을 따라 흐르며 그 기운을 감염시켰다.

지수갈의 혈계 술법이었다.

지수갈은 피를 움직여 금제를 이루는 극멸기를 잠식하는 방법으로 금제를 해결하는 능력이 있었던 것이다.

“하하하하. 이것 참, 쉬워도 이리 쉬울 수가 있나. 아우의 앙천적의는 정말 보물이 아닐 수 없네. 대단해.”

지수갈이 혈계 공법을 운용하면서도 여유를 보이며 큰 소리로 떠들었다.

건우는 그와 멀지 않은 곳에 가부좌를 하고 앉아 앙천적의를 통제하는 척 하고 있었다.

실제론 화의모(火蟻母)라 불리는 여왕개미가 앙천적의를 부리기에 건우가 신경 쓸 것은 거의 없었지만 지수갈에게 그런 사실을 알려줄 이유는 없었다.

“내가 금제만 확인되면 이렇게 쉽게 금제를 파훼할 수 있는데 말이지. 문제는 그 금제를 찾아서 드러나게 만드는 것이 잘 안 되었다는 것이었지. 그런데 아우의 개미들이 그것을 해결해 주니 금제를 해결하는 것이 이리 쉬워지지 않나. 크하하하하.”

건우가 대꾸를 하지 않아도 지수갈은 저 홀로 흥에 겨워 연신 떠들어댔다.

그러면서도 피를 움직여 금제를 잠식하고 무효화 하는 일에는 앙천적의와 호흡을 맞추어 어떤 문제도 일으키지 않았다.

금제가 작동하지 않도록 앙천적의들의 작업 순서를 놓치지 않고 잘 따라가고 있다는 이야기다.

그것을 보면 지수갈의 능력도 만만한 것이 아님을 능히 짐작할 수 있었다.

사가가가가각! 파지지지직!

그러던 중에 드디어 금제가 그 뿌리를 잃고 허무하게 무너져 내렸다.

금제를 구성하는 선과 문양, 문자들이 한계 이상으로 사라지자 금제 자체가 파훼된 것이다.

그것을 감지한 건우가 감았던 눈을 뜨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지수갈 역시 떠들던 입을 닫고 자리에서 일어나 건우와 나란히 섰다.

“또 가 보자고.”

그리고 앞장서서 통로를 따라 걷기 시작했다.

앞으로 얼마간은 금제가 없을 것이다.

이런 식으로 금제를 뚫어내며 앞으로 가다보면 반대쪽 금역 입구를 만나게 된다.

이것이 금역을 통해 계를 오고가는 방법이었다.

건우는 소매를 저어 앙천적의를 지수갈보다 앞서가도록 하고는 천천히 그 뒤를 따라갔다.

***

‘대단한 놈. 저것만 있다면 금역을 얼마든 오갈 수 있을 텐데.’

맹처령(氓?鈴)은 금제를 갉아먹고 있는 앙천적의를 보며 탐욕을 억누르기 어려웠다.

설마하니 저 미련해 보이는 삼두육비의 수사 놈이 저런 보물을 가지고 있을 줄이야.

‘어떻게 저걸 내 것으로 할 수 있을까. 저 놈을 잡아서 영체를 고문하면 될까? 이미 저 놈을 주인으로 삼았다면 바꾸기가 쉽지 않을 텐데? 그럼 어쩔 수 없이 저 놈을 제압하여 노예로 만들어야 하나?’

귀찮은 일이다.

덩치도 큰 놈을 노예로 끌고 다니자면 맹처령 자신의 특기를 제대로 살리기 어렵다.

맹처령은 본래 약초밭을 일구는 모종삽에 달린 방울에서 태어난 영족이었다.

모종삽 자루에 달렸던 방울이 우연찮게 떨어져 약초밭 구석으로 굴러들어 종적이 묘연해졌다.

약초밭을 일구던 수사는 잃어버린 방울을 잠시 찾아보다 포기했고, 이후 방울은 약초 사이에 숨어 이리저리 굴러다녔다.

그리고 매번 약초밭을 일구는 수사들의 눈을 피하는 것이 습관이 되어 결국 영족으로 태어났을 때에는 몸을 감추는 특기를 지니게 되었다.

원래 소리를 내게 되어 있는 방울이, 스스로의 모습과 기척을 감추는 은신의 특기를 지닌 것.

타고난 본성을 극복해서일까, 맹처령의 은신 능력은 특별한 바가 있었다.

게다가 운이 좋았는지 영족이 된 이후로 은신이나 은폐 따위에 어울리는 공법들을 여럿 얻게 되어 생존력이 크게 늘었다.

당연히 특기가 그러하니 주로 누군가를 속이고 암살하며 살아온 것은 당연할 수밖에 없었다.

지수갈이 맹처령을 영족이 아닌 요괴라고 생각한 이유도 스스로를 속이고 감추는 맹처령의 뛰어난 재주 때문이었다.

‘그냥 뒤를 밟아 금역을 편하게 통과하기만 할 생각이었는데······.’

맹처령은 지수갈이 만만치 않은 상대임을 잘 알고 있었다.

특히 편복족 특유의 능력 때문에 맹처령의 은신 특기가 잘 통하지 않는 상대라 더욱 그랬다.

편복족은 선천적으로 은신이나 은폐를 찾아내는데 능했다.

태어날 때부터 의념에 특이한 파장을 섞을 수 있는 종족이라 맹처령도 지수갈에게 들키지 않기 위해 극도로 신경을 써야 했다.

‘금역에 들어온 후에 잠시 경계를 하더니 이후로는 전혀 뒤를 걱정하지 않아서 다행이지.’

저들의 뒤를 쫓아서 금역으로 들어온 후에는 얼마나 긴장을 했던가.

자신의 은신 능력을 최고로 끌어올려 몸을 숨기고 죽은 듯이 모든 기운을 잠재웠다.

자칫 그 상태에서 지수갈에게 들켰다면 낭패도 그런 낭패가 없었을 것이다.

그나마 길우몽이라는 삼두육비의 수사가 지수갈의 탐색에 작은 혼선을 만들었기에 들키지 않았을 뿐이다.

물론 그 삼두육비의 수사 놈이 없었다면 맹처령이 금역으로 따라 들어와 몸을 숨기겠다는 생각조차 하지 않았겠지만.

‘지수갈 혼자 있었다면 내가 들켰을 가능성이 열에 아홉은 되었겠지. 하지만 저 녀석 덕분에 반대로 들키지 않을 확률이 열에 아홉이 되었지. 내게 필요한 작은 틈을 저 녀석이 만들어 줄 거란 예상이 제대로 맞았지. 그나저나 어떻게 하면 저걸······.’

맹처령은 다시 앙천적의라는 붉은 개미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이봐 길 아우. 이런 재주를 지녔다면 매당(賣堂)보다 좋은 조건으로 장사를 할 수 있지 않을까? 계를 넘는데 고작해야 몇 달이라면 너나없이 몰려들걸?”

손목에서 뽑아낸 붉은 피로 금제 술식을 잠식하고 있던 지수갈이 문득 건우를 향해 말을 걸었다.

가부좌를 하고 눈을 감고 있던 건우가 세 개의 머리 중에 중앙에 있는 회색의 머리만 눈을 떠 지수갈을 바라보았다.

짧은 시간이라도 함께 지내다 보니 앙천적의를 부리는데는 세 개의 머리 중에 하나만 집중하면 된다는 것을 지수갈도 알아차렸다.

물론 그것도 건우가 그렇게 알도록 지수갈을 속인 것인데, 앙천적의를 부리는 자신을 쉽게 암습하지 못하게 하려는 의도였다.

앙천적의를 부리며 눈을 감고 있어도 실제론 두 개의 머리가 깨어 있다는 것을 알면 조심하지 않겠는가.

“나는 매당(賣堂)과 경쟁을 하고 싶지 않습니다. 그들의 일에 끼어들어 좋은 꼴을 보기는 어렵지 않겠습니까?”

“뭐, 그야 그렇지. 하지만 이참에 매당에 가입을 하면 되지 않나. 매당에서도 아우의 능력이라면 버선발로 달려나와 환영할 텐데?”

“그래봐야 혼자 몸이 아닙니까. 큰 이익을 내기는 어렵지요.”

“하지만 저 앙천적의라는 놈들은 괴수가 아닌가. 잘 번식시켜 나눈다면 얼마든지 퍼트릴 수 있는 것이 아닌가?”

“아, 그런 이야기였습니까?”

건우는 지수갈이 이런 이야기를 꺼낸 의도를 짐작할 수 있었다.

그가 앙천적의를 욕심내고 있는 것이다.

지수갈이 피를 이용해서 금제를 잠식하는 것은 대단히 뛰어난 능력이었다.

그런데 지수갈도 이미 이야기를 했던 것처럼, 그는 금제를 찾아내는 능력이 고만고만했다.

게다가 금제를 찾아 드러나게 만든 후에 그 해체 순서를 알아내는 것도 쉽지 않았다.

금제를 찾고 그 해체 순서를 알아내는 것이 선행되지 않으면 지수갈의 능력도 가치가 떨어질 수밖에 없다.

그런데 그 두 가지 선행조건을 한 번에 해결해 줄 수 있는 것이 앙천적의였다.

감춰져 있는 금제를 찾아내고 그것이 발동하지 않도록 하면서 갉아 먹으니 지수갈에게 그만한 금제 해체 길잡이가 없는 셈이다.

“앙천적의는 무리를 나눌 수 없습니다. 괜한 욕심은 부리지 마십시오.”

지수갈의 속내를 짐작한 건우가 회색 머리의 눈을 크게 부릅떠 힘을 주며 말했다.

“으음. 그래? 그것 참 아쉽군. 무슨 방법이 없을까?”

“내가 모르는 방법이 있을지는 알 수 없겠지요. 하지만 내게는 앙천적의의 무리를 나눌 방법이 없습니다.”

“흐으음.”

건우의 단호한 대답에 지수갈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그럴 거라 예상하긴 했지만 앙천적의에 대한 탐심이 무척 크군.’

그 모습에 경계심을 가지는 것은 당연한 일.

건우의 차가운 시선이 지수갈을 노려봤다.

“알았다. 방법이 없다는데 어쩔 수 없지. 그 대신에······.”

“할 말이 있습니까?”

“우리 목적지가 같잖아. 그러니 사오리(沙墺裏) 소계(小界)까지 동행하는 것이 어떨까? 저 개미들 덕분에 내 재주도 크게 쓰일 수 있으니 동생에게 나쁘지 않을 텐데?”

“이곳 말고도 지나야 할 금역이 두 개가 더 있으니 그걸 함께 넘자는 말입니까?”

“그렇지! 어때? 서로 좋은 일이잖아. 안 그래?”

지수갈이 환한 표정으로 대답을 독촉하듯 건우를 바라봤다.

“나쁘지 않은 이야기긴 하지만 일단 이곳을 벗어난 후에 진지하게 의논을 해 봅시다. 솔직히 지금 당장은 결정을 하기 어렵겠습니다.”

하지만 건우는 지수갈의 말에 현혹되지 않았다.

아직 그들의 관계는 적당한 거리를 두고 경계하는 수준을 벗어나지 않았음을 상기시킨 것이다.

“그래? 그럼 어쩔 수 없지. 하지만 잘 생각해 보라고. 그리고 우리가 굳이 서로 믿고 의지할 필요는 없지. 그저 지금처럼 협력하기만 해도 좋지 않을까 싶은데 말이지.”

“그건 나도 생각이 같습니다. 하지만 앞으로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르는데 쉽게 약속을 할 수는 없지요.”

건우는 그렇게 말을 하고는 회색 머리의 눈을 다시 감았다.

더는 같은 이야기를 하고 싶지 않다는 무언의 표현이었다.

그 모습에 지수갈이 살짝 입맛을 다시며 아쉬워했다.

그리고 얼마 후, 다시 하나의 금제가 무너지고 지수갈과 건우는 다시 통로를 따라 이동하며 금제를 탐색했다.

물론 그 선봉에는 삼천 마리의 앙천적의가 자리잡고 있었다.

***

팔 개월 후.

“극멸기의 흐름을 보아하니 이번이 마지막 금제일 듯 한데?”

“내 생각도 그렇습니다. 금제가 금역의 외부 극멸기와 호응하여 이전보다 훨씬 사납습니다.”

“그렇지. 그래서 어떻게 할까? 깨고 나갈까? 아니면 이전처럼 해체하고 나갈까.”

건우와 지수갈은 결국 금역 금제 통로의 끝에 도착할 수 있었다.

그사이에 해체한 금제의 수만 서른다섯 개였고, 그 중 어느 하나 간단한 것은 없었다.

그럼에도 앙천적의와 지수갈의 혈계 능력으로 빠르게 금역을 통과한 두 사람이었다.

“보통 능력만 된다면 마지막에 있는 금제는 그냥 힘으로 뚫고 지나가지 않습니까?”

건우가 충족 수사를 통해 들었던 바를 지수갈에게 물었다.

“그렇지. 마지막 금제가 워낙 복잡하고 변화무쌍한 경우가 많아서 그런 방법을 택하지. 하지만······.”

“우리에겐 앙천적의와 지 수사의 혈계 능력이 있으니 그런 위험을 감수할 필요가 없다는 말을 하고 싶은 겁니까?”

“바로 그렇지. 역시 아우는 눈치가 빨라. 어때? 아우도 그게 좋지 않겠어?”

“시간을 따지자면 그냥 깨고 나가는 것이 좋을 듯합니다만······.”

건우가 말을 흐리며 슬쩍 지수갈의 눈치를 살폈다.

자신은 금제를 뚫고 나가는 것도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뜻이다.

그만큼 실력에 자신이 있으니 쉽게 보지 말라는 의미도 담겨 있었다.

“아니지 위험은 피해야지. 그리고 쥐도 한 마리 잡아야 하고.”

그런데 그런 건우의 반응에 지수갈은 이전과 달리 냉정한 표정을 지으며 생각지도 못한 말을 했다.

“쥐를 잡다니요?”

건우는 예상치 못한 지수갈의 반응에 문득 뒷머리가 서늘해지는 것을 느끼며 급히 의념을 끌어올려 지수갈을 경계했다.

하지만 지수갈의 시선은 건우가  아니라 그들이 지나온 금역의 통로로 향해 있었다.

“쥐새끼! 이만 나와라!”

< 앙천적의는 보물이다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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