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환장 통수 선협전-272화 (272/4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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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오리(沙墺裏) 소계(小界)로 가야 한다네? >

= 이제 되지 않았소? 그만 놓아 주시오.

윤곽이 뚜렷하지 않은 영체 하나가 애원을 했다.

그 사슴벌레의 머리를 가진 충족 수사의 영체는 얼마 전 건우가 사로잡은 바로 그 멸계 수사였다.

그 동안 건우가 멸계의 정보를 알아내기 위해 그 영체를 모질게 다룬 탓에 금방이라도 소멸할 듯 기운이 흐려져 있었다.

“좋다. 네가 초반에는 저항이 심했지만 이후로 제법 고분고분했던 것을 봐서 이만 윤회로 돌려 보내주마.”

건우는 흔쾌히 충족 수사의 바람을 들어주기로 했다.

그의 말처럼 충족 수사가 제법 협조적이었던 것을 고려해 선처를 베풀기로 한 것이다.

= 고맙소이다.

충족 수사는 건우의 말에 후련한 표정을 지으며 인사를 했고, 건우는 손을 저어 영체를 흩어 버렸다.

하지만 영혼을 소멸시킨 것은 아니니 이제 윤회에 들어 새로운 삶을 시작하게 될 것이다.

- 사오리(沙墺裏) 소계(小界)까지 어떻게 가죠?

충족 수사의 영체를 흩어 버리고 생각에 잠긴 건우에게 루야가 말을 걸었다.

사오리 소계는 지금 수미 세계와 멸계전을 치르고 있는 소계의 이름이었다.

의외로 수미 세계와의 멸계전은 제법 널리 알려져 있어서 충족 수사도 아는 것이 적지 않았다.

‘어떻게든 가긴 가야지. 소계와 소계를 넘나드는 방법이야 여럿 있다잖아.’

- 그렇긴 하지만 그 방법들이 모두 쉽지 않잖아요. 그나마 제일 쉬운 것이 객선을 타는 방법인데 비용도 비용이지만 대기 시간이 얼마가 될지 모른다는 문제가 있죠.

‘제일 안전하긴 하지. 비용이 많이 들고 운이 없으면 시간도 오래 걸려서 문제지만.’

- 그러니까요.

‘하지만 나는 객선을 탈 생각이 없어. 그보다는 금역을 통과하는 쪽이 좋겠어.’

- 금역이라고요?

건우의 말에 루야가 깜짝 놀란 반응을 보였다.

여기서 객선이라는 것은 멸계 전역에서 소계와 소계 사이에 운송업을 하는 매당(賣堂)의 도움을 받는 것을 말한다.

매당은 멸계 전체에 퍼져 있는 거대 세력으로 각각의 소계에서 일정 기간에 한 번씩 인접한 계로 이동하는 교통 수단을 제공한다.

그것을 보통 배(船)라고 부르지만 실제론 계와 계 사이의 불안정한 공간을 운행하는 특별한 비행 법보를 말하는 것이다.

죽은 충족 수사는 그 매당이 이익을 위해서라면 제 팔다리도 잘라 팔 놈들이 모인 곳이라고 했었다.

그래도 대가만 확실하면 결과도 어긋나지 않게 만들어 내는 곳이라 그런 쪽으론 믿을 수 있다는 평가였다.

하지만 그 매당을 이용하는 것은 비용도 문제지만 시간이 너무 오래 걸렸다.

배가 뜨기를 기다리는 시간도 시간이지만 계와 계 사이를 이동하는데 수백 년의 시간이 걸리기도 한다니 건우로선 쉽게 올라타기 어려운 면이 있었다.

그래서 나온 것이 금역을 뚫는 것.

‘소계와 소계를 연결하는 통로 중에서 가장 위험한 길이기도 하지만 또 가장 빠른 길이기도 하다잖아. 그러니까 한 번 알아보려고.’

- 그야 그렇지만 충족 수사의 말대로라면 태령기 수사들도 쉽게 오가지 못하는 곳이라고 했잖아요. 게다가 한 번에 들어갈 수 있는 인원도 많아야 다섯이고요.

루야는 건우가 금역으로 가는 것을 어떻게든 말리고 싶은 모양이었다.

시간이 좀 걸리더라도 안전한 매당 쪽을 이용하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인 것이다.

‘금역이 위험한 이유는 소계와 소계가 연결될 때 천지법칙의 조화로 만들어진 금제 때문이라고 했지.’

- 그렇죠.

‘그럼 앙천적의(殃天赤蟻)를 이용하면 되지 않을까?’

- 네? 앙천적의를요?

‘그래.’

- 하지만 영기 수도계 태생의 앙천적의를 이곳 멸계에서 쓸 수 있을까요?

루야는 그렇게 물으면서도 그게 된다면 금역 통과도 충분히 가능할 거라는 생각을 했다.

앙천적의는 이미 태령기 완경이었던 고태 수사의 공역궁을 뚫은 전적이 있었다.

그런 앙천적의라면 소계와 소계사이를 막고 있는 금역도 충분히 뚫을 수 있으리라.

‘일단 시험은 해 봐야지. 그 동안 화의모(火蟻母)도 소화를 마치고 충분히 쉬었으니까.’

- 뭐, 시험을 해 보는 거야 문제될 것 있겠어요? 해 봐요. 어떻게 되나.

루야도 조금 전과는 달리 적극적으로 건우의 계획을 지지했다.

그리고 그 후, 죽은 충족 수사의 동부를 대상으로 앙천적의의 능력 시험이 시작되었고, 3년의 시간이 흐른 후, 충족 수사의 동부는 폐허만 남았다.

앙천적의가 충족 수사의 동부를 완벽하게 무너뜨려 버린 것이다.

사각! 사각! 사각! 사각!

- 쟤들 무서워요.

이전과 달리 집게발이 생겨난 앙천적의들이 거대한 멸계 괴수를 갉아먹는 모습에 루야가 진저리를 쳤다.

루야는 이전보다 앙천적의를 더 꺼려하며 멀리하게 되었다.

원래도 금제를 갉아 먹는 앙천적의를 좋아하지 않았는데 이번에 앙천적의가 멸계에 적응하면서 이전보다 훨씬 흉악해졌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금제를 갉아 먹는 것에 특화되었던 앙천적의가 멸계의 극멸기에 시달리며 돌연변이를 일으키더니 생명체에 대한 공격 성향까지 늘어났다.

화의모까지 멸계에 적응하여 돌연변이가 된 후로는 앙천적의의 힘이 이전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늘어났다.

수천, 수만 마리의 앙천적의가 달려들면 어지간한 멸계 괴수들은 뼈도 남기지 못한다.

지금 앙천적의 수준이 아직 입령기에 이르지 못했는데 지금 갉아먹고 있는 것은 입령기 수준의 멸계 괴수다.

숫자의 폭력으로 경지 차이를 넘어서는 것이다.

루야가 진저리를 칠 만도 하다.

하지만 아공간을 터전으로 살아가는 앙천적의는 루야의 상대가 될 수 없다.

언제든 한 마리의 앙천적의까지 따로 나누어 격리할 수 있는 루야에게 앙천적의가 저항할 수단은 없는 것이다.

앙천적의가 아공간을 이루고 있는 모든 금제와 술식을 파헤쳐 뚫지 못하는 한, 이 우열이 바뀔 일은 없었다.

‘엄살 부리지 마라. 불개미들이 너한테 뭘 어쨌다고 그렇게 미워해?’

- 하지만 무섭다고요.

‘쯧.’

- 챗!

‘내가 애를 키우는 것도 아니고······. 이제 농담은 그만하고 움직여 보자. 지난 3년 동안 나타결공법으로 운용할 수 있는 술법들을 제법 준비했으니 충족 수사와 싸울 때처럼 어설프진 않을 거다.’

- 네에. 그럼 곧바로 계간(界間) 금제로 가실 건가요?

‘그래야지. 충족 수사가 가진 것이 그리 많지는 않았지만 한동안 쓰기에 부족하지 않을 거다. 쓸 일이 있을까 싶기도 하다만.’

- 또 보이는 족족 죽여서 빼앗을 생각은 아니시죠?

건우의 말에 루야가 혹시 하는 느낌으로 물었다.

‘따지고 보면 멸계 역시 영기 수도계와 다를 바가 없다. 수도자가 독불장군으로 유아독존하는 것은 불가능하니 이곳 역시 최소한의 규칙은 있다. 내가 경험한 영기 수도계에 비해서 조금 더 폭력적이고 상명하복의 성향이 강하긴 하다만, 그래도 수사들이 모여 사는 곳임에는 분명하지.’

무턱대고 보이는 족족 죽이고 빼앗는 짓은 하기 어렵다는 말이다.

들키지 않거나 작은 명분이라도 있다면 문제가 되지 않지만 묻지마 살육은 멸계에서도 수배가 내려질 짓이었다.

더더욱 거대 세력에 속한 놈들은 경지가 낮은 놈들이라고 무턱대고 눌러 죽일 수가 없었다.

그런 것을 보면 멸계나 영기 수도계나 엇비슷하다고 생각하는 건우였다.

‘영기 수도계의 마기나 사기 수련자들과 다를 것도 없어 보이긴 하지. 이들이 극멸기를 쓴다는 것만 빼면······.’

영기 수도계와 뭐가 다를까.

건우는 그런 생각을 하다가 앙천적의들을 모두 아공간으로 불러들인 후 훌쩍 몸을 날렸다.

이제 앙천적의의 준비가 끝났으니 사오리(沙墺裏) 소계(小界)로 가는 본격적인 여정을 시작할 때였다.

***

극멸기의 흐름이 너무도 강렬하여 가까이 있는 것만으로도 피부가 아려 오는 곳.

세상의 종말이 온 듯이 모든 것이 부서지고 깨져 흩날리는 공간에 삼두육비의 모습을 한 건우가 서 있었다.

그리고 그의 앞, 좌우에는 두 명의 수사가 있어, 셋이 대치하는 형국을 이루고 있었다.

“고작 성령기 초기에 불과한 놈이 금역을 지나겠다고?”

“그것도 우리를 지나쳐 먼저 앞서가겠다는 소릴 하다니 겁이 없구나.”

건우 앞의 두 수사가 못마땅한 기색을 감추지 않고 건우를 노려봤다.

한 명은 등에 박쥐의 날개가 달린 편복족이고, 다른 하나는 삼십대 영준한 외모의 인간 남성 모습을 한 수사였다.

둘 모두 성령기 완경의 경지에 있는 이들로 건우보다 앞서서 금역에 이른 자들이었다.

그들 역시 금역을 지나 다음 소계로 가려던 것인데, 문제는 그들이 일행이 아니라는 것이었다.

비슷한 시기에 금역 앞에서 만난 그들은 누가 먼저 갈 것인지를 두고 다투며 헛되이 시간만 보내던 중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앞서 들어간 수사가 금제를 헤집어 놓으면 뒤따라 들어간 수사는 변수가 커진 금역을 지나게 되니 선두를 쉽게 양보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물론 몇십 년 정도 후에 들어가면 그런 변수도 잠잠하게 가라앉아 있겠지만 그런 양보를 누가 한단 말인가.

“듣자니 벌써 이곳에서 대치한 것이 백 년에 가깝다지 않았습니까? 어차피 이후로 다시 백 년이 지나도 둘 사이의 일이 결판날 것 같지도 않은데, 내가 먼저 들어가는 것이 무슨 문제랍니까?”

“뭐라?”

“건방진 놈이 감히 우리를 우롱해?”

건우의 말에 편복족 수사와 인간 수사가 동시에 눈을 부라렸다.

“이런 금역을 지나려는 이는 대부분 시간이 부족할 사람일 것은 짐작하지 못한단 말입니까?”

건우가 다시 둘을 보며 타박하듯 말하자 둘의 표정이 더욱 구겨졌다.

“네 놈이 스스로 명을 재촉하는 것이냐? 내가 나서면 네 놈의 목이 온전할 성 싶으냐?”

“저기 편복 놈이 아니어도 내가 먼저 네 목을 뽑을 수도 있거늘 너는 두렵지도 않으냐?”

편복족(??族) 수사와 인간 수사가 못 참겠다는 듯이 건우를 협박했다.

하지만 건우는 겁날 것이 없다는 듯이 피식 웃었다.

“나는 당신들 둘이 힘을 모으지 않으면 겁날 것이 없습니다. 그만한 재주도 없이 이렇게 당신들과 말싸움을 하고 있겠습니까?”

“고작 초기 녀석이?”

“정말 궁금하구나, 네가 나를 감당할 자신이 있다는 이야기렸다?”

도발과 같은 건우의 말에 두 수사의 압박이 거세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건우는 자신에게 쏟아지는 둘의 의념을 아무렇지도 않은 듯이 받아냈다.

아니 도리어 두 수사에게 의념을 되돌려 주기까지 했다.

예상치 못한 의념의 반격에 놀란 것은 두 수사였다.

그들은 건우의 의념이 생각보다 강력한 것을 알고는 슬쩍 서로 눈치를 보았다.

“뭘 그렇게 고민을 하십니까? 설마 둘이 작당을 해서 나를 어찌해 볼 생각을 하는 것은 아니겠지요? 만약 그렇다면 세상 부끄러울 일이 아니겠습니까?”

“무슨 헛소리냐?! 내가 저 따위 박쥐 놈과 손을 잡을 것 같으냐?”

“나 역시 요망한 요괴 따위와 손을 잡을 일은 없다. 그리고 너 역시 알아두어라. 저 놈은 인간의 탈을 빼앗아 쓰고 있는 요괴니라.”

건우의 말에 두 수사는 다시 서로 싸우기 시작했고, 편복족 수사는 의외로 인간 모습을 한 수사가 요괴임을 알려주었다.

하지만 건우는 그런 것은 별 상관이 없었다.

중요한 것은 금역을 통해 계를 넘는 것 뿐이었다.

“어쩌겠습니까? 나는 금역을 지나야겠는데.”

건우가 말했다.

“어디 한 번 지나가 보거라.”

“너는 우리가 지난 다음을 기다려야 할 것이다.”

그러자 두 수사는 거의 동시에 어림도 없다는 듯이 말했다.

“그럼 이건 어떻습니까? 두 분 중에 한 분이 저와 함께 금역으로 들어가는 것은?”

“뭐라?”

“함께 가자고?”

건우의 말에 두 수사가 깜짝 놀라 되물었다.

고작 성령기 초기의 수사가 완경의 수사에게 금역으로 함께 들어가자니.

설마 그런 말을 할 줄은 생각도 못한 것이다.

언제 어떻게 해코지를 당할지 모르는데 자신보다 높은 경지의 수사와 위험 지역을 동행하다니.

그것은 절대 상식적인 제안이 아니었다.

자신보다 약한 수사를 제물로 삼아 위기를 넘기는 것은 너무도 흔하게 일어나는 일이다.

편복족 수사나 인간 형상의 수사, 둘 모두 그런 일을 수도 없이 벌이며 지금까지 살아왔다.

그래서 건우를 회유해서 데리고 들어갈 생각조차 하지 않고 있었던 것인데.

스스로 함께 금역으로 들어가는 것이 어떠냐니, 정말 그렇게 할 생각이 있다면 쌍수를 들어 환영할 일이었다.

“이리 오너라. 내가 너를 데리고 가 주마.”

“무슨 소리냐! 어찌 저런 박쥐 놈을 믿을 수 있단 말이냐. 나와 함께 가자. 내가 너를 잘 돌봐 주겠다.”

“헛소리. 돌보기는 무슨! 급한 상황이 되면 함정으로 등을 떠밀겠지.”

“박쥐, 네 놈이 하던 짓을 내게 씌우지 마라. 나는 신의가 있는 사람이다!”

“하하하하. 인간 탈을 쓴 요괴 놈이 신의라니! 웃다가 턱이 빠질 일이다.”

“그래봐야 내가 박쥐 네 놈의 음흉함을 따를 수야 있겠느냐. 자, 아이야, 이리 오거라. 내 다시 말하지만 최선을 다해 너를 돌보겠다.”

“믿지 마라. 나는 너를 동료로 인정해 주겠다. 그 정도면 나쁘지 않을 터!”

건우가 한 예상 밖의 제안에 두 수사가 곧바로 먹이를 본 들개처럼 달려들었다.

어쨌건 건우를 끌어들이면 상대보다 금역으로 먼저 들어갈 것은 분명했다

.

그런 후에 금역 안에서야 성령기 초기를 어찌 써먹든 그건 그 때에 생각할 일이었다.

일단 눈앞에 있는 놈을 한 편으로 만들면 모든 것이 해결될 것이라 생각하니 마음이 급해진 것이다.

“하하하. 두 수사의 속이 훤히 들여다 보입니다 그려. 그것 참.”

건우가 그 모습에 혀를 찼다.

< 사오리(沙墺裏) 소계(小界)로 가야 한다네?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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