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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젠 이렇게 단체로 통수를? >
원래 홍애지는 물이 많고 늪과 호수가 많은 곳이다.
그중에 질포소택성(秩泡沼澤城)은 유독 늪과 저수지가 많은 곳으로 유명하다.
그런 질포소택성 한 곳에 볼록하게 솟아오른 바위산이 있는데, 그 높이가 무려 2천 장에 이를 정도로 높다.
하지만 그 바위산은 높기만 할 뿐, 영기가 풍부한 것은 아니어서 수사들의 관심을 끌지 못하는 곳이었다.
적어도 3500년 이전까지는 그러했다.
그런 바위산이 3500년 전부터 홍애지의 금지가 되었으니 그 이유는 곧 건우 때문이었다.
매번 그가 그곳에서 홍애지의 수사들을 수미 세계로 데리고 갔기에 어지간한 수사들은 감히 얼씬거릴 엄두도 내지 못하는 금지가 된 것이다.
100년에 한 번씩 오는 건우를 기다리는 고계 수사들은 자신의 기회를 빼앗아 갈 수도 있는 경쟁자를 허락하지 않았다.
그 상대가 자신보다 경지가 낮은 수사라면 말할 것도 없는 일이었다.
그 바위산에는 기슭에서부터 정상까지 잘 다듬어진 계단이 있는데, 그 계단을 따라가다 보면 중간중간 터를 잡은 다섯 개의 동부를 만날 수 있다.
수미 세계로 가려고 건우를 기다리는 수사들은 그 다섯 동부를 차지하여 자격을 증명할 수 있었다.
수사들은 제일 위쪽의 동부부터 차지하여 아래로 채워 가는데, 당연히 실력이 부족하면 뒤에 오는 수사에게 동부를 빼앗기고 아래쪽 동부로 쫓기기도 한다.
당연히 제일 아래에 있는 동부에서 쫓겨나면 그 수사는 다음 기회를 기다려야 하는 처지가 되고, 보통 태령기 중기가 가까스로 다섯 번째 동부를 차지하곤 했다.
그렇게 동부를 차지한 다섯 명의 수사가 정해지고 건우가 홍애지로 넘어오면 그들 다섯이 대가를 지불하고 수미 세계로 넘어가는 것이다.
이런 질서는 건우가 수사들을 수미(須彌)로 데리고 가기 시작하고 몇백 년이 흐른 후부터는 한 번도 무너진 적이 없었다.
그런데 그렇게 잘 지켜지던 규칙이 이번에는 완전히 무너져 버렸다.
건우가 수미산 상징을 통해 홍애지의 바위산 정상에 나타났을 때, 그곳에는 수십 명의 태령기 수사들이 제각각 적당한 거리를 두고 모여 있었다.
바위산 정상의 주변 허공에 각기 다른 방식으로 떠 있는 수사들의 모습은 장관이었다.
“왔군!”
건우가 모습을 드러내자 그 수사를 대표해서 한 명의 수사가 밑으로 내려와 그를 맞이했다.
머리에 두 개의 뿔이 나 있고, 피부가 검은 그 수사는 요족(妖族) 수사임이 분명했다.
건우는 그가 태령기 완경, 그중에서도 등선을 준비할 수준의 수사임을 알아보고 곧바로 공손하게 인사를 했다.
“어린 후배가 어르신을 뵙습니다.”
“거창한 예는 필요 없다.”
요족 수사가 손을 저어 건우의 몸을 바로 세웠다.
그리고 건우를 차가운 눈빛으로 바라보며 말했다.
“네가 300년의 기한을 두고 이번에 다수의 수사들을 수미 세계로 데리고 간다 했다지?”
“그렇습니다 어르신.”
건우가 고개를 숙이며 대답했다.
“좋다. 그러하면 이번에는 몇 명이나 데리고 가려느냐? 300년이나 간격을 두었으면 수가 제법 되겠지? 그리고 다음은 있겠느냐?”
“후배가 고심하여 수를 내었으나 만족스럽지는 않습니다. 그리고 짐작하시는 것처럼 다음은 어려울 듯 합니다.”
“다음은 없다? 그렇다면 이번이 끝이란 이야기구나. 그래서 몇 명이나 데리고 갈 수 있느냐? 다른 소리 할 것 없이 숫자나 이야길 하거라.”
건우의 말에 요족 수사가 차가운 음성으로 말하며 건우에게 강력한 영기 압박을 가했다.
“송구합니다. 최선을 다했지만 고작 마흔다섯이 한계입니다.”
건우가 간신히 버티며 힘겹게 대답했다.
“오호? 마흔다섯이라?”
그런데 다행히도 마흔다섯이란 숫자가 요족 수사의 심기를 건드리진 않은 모양인지 요족 수사의 표정이 밝아졌다.
“그렇습니다. 다만 이전과 달리 이곳에 큰 진법을 만들어야 합니다.”
“진법이 필요하다고? 그럼 시간이 꽤나 걸리겠구나?”
“약속이 10년 정도 남았으니 그 전에 마무리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으음. 그럼 그 사이에 우리는 숫자를 마흔다섯으로 줄어야 하겠지? 혹여 그 이상이 되면 어찌 되느냐? 문제가 생기겠지?”
지금 바위산 근처에 있는 수사들의 수만 헤아려도 예순을 훌쩍 넘는다.
또한 지금 모습을 보이지 않고 지켜만 보는 이들도 여럿 있다.
이들 중에 수미로 갈 수 있는 수사는 고작 마흔다섯 뿐이니 당연히 인원을 선정해야 할 것이다.
“저는 이런 일에는 만에 하나의 위험도 있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사실 몇 명 정도 더할 수도 있습니다만, 그리하면 실패할 가능성이 생깁니다.”
“마흔다섯 까지는 그런 가능성이 아주 없다는 것이고?”
“그렇습니다.”
건우는 루야와 함께 몇 번이나 진법에 대한 가상 실험을 해 보았다.
승경 도전 전부터 준비를 해 온 일이었다.
물론 직접 진법을 만들어 실제 시험을 할 시간은 내지 못했지만 가상 실험이라도 실제와 다르진 않을 거라고 확신했다.
다른 것은 몰라도 그런 계산에 있어서는 루야를 따를 사람이 없을 것이다.
건우가 승경 수련에 몰두하는 동안에도 루야는 홀로 온갖 변수를 고려하여 가상 실험을 하며 진법을 고치고 또 고쳤다.
그 결과 마흔다섯 명까지는 안전하게 수미 세계로 옮길 수 있다는 확신을 얻을 수 있었던 것이다.
“마흔다섯이라······.”
요족 수사가 손가락으로 관자놀이를 톡톡 두드리며 중얼거렸다.
건우는 그렇게 고심하는 요족 수사를 바라보다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다섯 정도는 위험을 최소한으로 해서 더해 볼 수도······.”
그러자 곧바로 요족 수사가 고함을 질렀다.
“무슨 소리를 하는 것이냐? 왜 수를 늘여? 나는 지금 마흔다섯이 최대한 진법에 맞춘 것이라면 두셋 정도를 빼야 할지 고민을 하는 것인데!”
‘아, 정말 수사들 인성 터진 건 알아줘야 한다니까. 어차피 자기는 갈 수 있을 거니까 안전하다는데도 숫자를 더 줄이겠다는 거잖아!’
“어르신, 그리 수를 줄이실 필요는 없습니다. 마흔다섯 까지는 절대 문제가 없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리 줄이시면 이 후배도······.”
“네 놈 주머니에 들어갈 것이 줄어든다는 것이겠지? 고얀!”
“소, 송구합니다.”
건우는 요족수사가 뿜어내는 기세를 이기지 못하고 말을 더듬었다.
“되었다! 네 놈이 그러하다면 그렇다고 해야겠지. 쯧.”
요족수사는 건우가 몸 둘 바를 모르겠다는 듯이 연신 허리를 숙이자 귀찮다는 듯이 손을 내저어 건우의 움직임을 제한했다.
아닌 듯해도 수미 세계로 넘어가는 것은 오직 건우만 할 수 있는 일이다.
경지의 차이는 분명하지만 따지자면 건우가 갑인 상황이 아닌가.
요족 수사는 잠시 건우를 노려보다가 시선을 돌려 주변에 모인 수사들에게 외쳤다.
“모두 들었을 것이다. 마흔다섯이다! 그러니 재주가 되지 않는 놈들은 냉큼 물러나라. 혹여 주제가 안 되는 놈들이 남았다가는 경을 칠 것임을 모르지 않을 것이다.”
요족 수사는 그리 외치고는 다시 건우를 보았다.
“너는 늦지 않게 진법을 완성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이전과 달리 진법을 만들어 이동하는 것이니 당연히 우리가 검수를 할 것이니라.”
“알겠습니다.”
“여기 모두가 네가 만드는 진법을 지켜볼 것인 즉, 혹여 부족한 것이 보인다면 각오해야 할 것이란 말이다. 알겠느냐?!”
“네, 어르신.”
건우는 요족 수사의 다그침에 곧바로 자신만만하게 대답했다.
다른 것은 몰라도 이번 일을 위해서 준비한 진법은 절대 문제가 있을 수 없었다.
진법과 금제에 대해서만큼은 태령기 수사라도 겁나지 않은 건우였다.
***
건우는 진법에 이상이 없는지 마지막으로 확인하다가 문득 고개를 들었다.
저 멀리, 수십만 리 밖에서 천지영기가 요동을 치고 있었다.
분명 수미 행을 두고 마흔다섯 번째 자리를 얻은 수사가 누군가와 싸우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오랜만에 도전자가 생긴 모양이네.”
건우는 그렇게 중얼거리고는 다시 진법을 살피기 시작했다.
사실 수미로 갈 마흔다섯 명의 수사는 오래전에 결정이 되었다.
그런데 간혹 뒤늦게 질포소택성으로 찾아오는 수사들이 있어 문제가 되었다.
그들은 이미 결정된 마흔다섯 중에서 자신보다 못하다 싶은 수사가 있으면 싸움을 걸어 자리를 빼앗고자 했다.
그래서 간혹 싸움이 벌어지곤 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제 그것도 끝이었다.
건우는 지금 벌어지는 싸움이 마지막일 거라고 생각했다.
진법은 완성되었고, 약속했던 10년의 기한도 끝이 났기 때문이다.
마침, 멀리서 뒤흔들리던 천지영기의 기운도 조금씩 안정을 찾는 것이 느껴졌다.
싸움은 끝났고, 승자도 결정이 되었을 것이다.
건우는 이런 상황에서 더 시간을 끌 것 없다는 생각에 의념을 넓게 펼쳐 뜻을 전했다.
= 진법의 준비가 끝났습니다. 이제부터 어르신들을 모시고자합니다.
건우의 뜻이 전해진 후, 수사들이 하나둘 바위산의 꼭대기에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그것도 조금 전에 싸움을 벌였던 것이 분명한 서열 사십오위부터 서둘러 모습을 드러냈는데 그조차도 완경에 가까운 태령기 후기의 수사였다.
그 말은 어지간한 태령기 후기 수사도 이 자리에 낄 수 없다는 의미였다.
건우는 수사들이 모두 모일 때를 기다리며 진의 중심에 조용히 서 있었다.
“모두 나서지 않고 뭣들 하는가! 그리고 내가 나왔는데 나보다 늦는 것들은 또 무엇이고!”
그때, 검은빛의 둔광과 함께 두 개의 뿔에 검은 피부를 지닌 태령기 완경의 요족 수사가 나타나 고함을 질렀다.
그러자 바위산 정상에 번쩍이는 둔광들이 빠르게 터져 나왔다.
태령기 완경이 먼저 나왔다는데 동급의 수사가 아니라면 누가 미적거릴 수 있을까.
요족 수사보다 서열이 낮은 수사들이 빠르게 움직이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요족 수사의 호통에 여러 수사들이 바삐 모였을 때였다.
“거 성격하고는.”
“그러게 말이에요.”
“저런 과격한 성격에 수련을 어찌했을까 몰라.”
“······.”
다섯 명의 수사가 붉은 구름을 타고 무리를 지어 모습을 드러냈다.
앞서 수사들을 불러낸 요족 수사와 더불어 서열 1위에서 6위를 격차 없이 나누어 가진 이들이었다.
사실상 1위에서 6위까지는 그들 여섯이 서열 구별 없이 차지하고 있었는데 그 경지가 모두 같았기 때문이다.
서열 7위 아래로도 태령기 완경이 여럿 있지만 그들 여섯 명과는 차이가 컸다.
태령기 완경 중에서도 등선을 준비하는 등선경으로 따로 구별하는 이들이 바로 그 여섯 수사들인 까닭이었다.
“자, 다 모였구나. 너는 이제 곧바로 진법 실험을 하거라.”
다섯 명의 등선경 수사가 구름을 타고 나타나자 요족 수사가 건우에게 명령을 내렸다.
마귀를 불러내어 맹약을 맺기 전에 마지막으로 진법을 활성화시켜 확인하기로 한 것은 미리 의논이 된 내용이었다.
모두들 진법이 만들어지는 것을 처음부터 지켜본 이들이지만 그래도 만에 하나 있을지 모를 오류를 확인하기 위해서 시험 운용을 해 보기로 한 것이다.
“알겠습니다. 그럼 시작하겠습니다.”
건우도 마흔다섯의 태령기 수사들 앞에서는 긴장하지 않을 수 없는지 평소보다 굳은 표정으로 대답했다.
그리고 곧바로 아공간 현실 구현을 펼치고 수미산 상징을 불러냈다.
건우는 불러낸 수미산 상징을 천천히 움직여 진법의 중심축에 준비된 자리에 올려놓았다.
“으음. 저것은 령보를 훌쩍 뛰어넘은 것 같군. 선계의 물건이 아니었을까?”
“그걸 누가 알겠어요? 지금껏 아무도 저것이 무엇인지 알아낸 이가 없다는 걸 모르진 않을 텐데요?”
“어쨌거나 저런 보물을 고작 성령기에 불과한 놈이 지금껏 지키고 있으니 저놈이 확실히 난 놈은 난 놈이오.”
“······.”
“아, 이제 진법을 발동시키는 모양이니 잘 살펴보지요. 혹여 문제가 있으면 곤란하니.”
구름에 탄 다섯 수사는 서로 이야기를 나누는 중에도 건우의 일거수일투족을 놓치지 않고 살피고 있었다.
그때, 건우가 수미산 상징을 완전히 진법 중심에 고정시키고 진법을 발동하여 천지 영기를 끌어모으기 시작했다.
우우우우우우웅! 즈즈즈즈즈즈!
그러자 바위산 정상에 황금색의 반구형 막이 생겨 진법을 감싸 안았다.
수사들은 모두 진 밖에 있었기에 그 안에는 건우만 홀로 서서 진법의 변화를 살피고 있었다.
“문제는 없는 것 같군.”
“그러게요. 진법이 저 기묘한 법보의 힘을 증폭시키고 있지만 그렇다고 문제가 있을 흐름은 보이지 않네요.”
“문제없어.”
“······. 좋다(好)!”
“자자 그럼 더 기다릴 것 없이 맹약을 맺고 진법에 오르도록 하지요. 시간을 끌어 뭐하겠습니까?”
붉은 구름 위의 다섯 수사가 그렇게 의견을 모았고, 홀로 떨어져 있던 요족 수사도 고개를 끄덕였다.
건우도 그들의 말을 들었기에 진법을 멈추려 했다.
쿠르르르르르르릉!
콰르르르르르르릉!
“어엇? 이게 무슨?”
“보, 보라색 구름이다! 처, 천겁이야!”
“도대체 누구의 천겁이란 말이냐! 여기 천겁을 불러온 놈이 누구야!”
하지만 뜻밖의 변수가 발생했다.
순식간에 바위산 위쪽에 보라색 구름이 모여들며 엄청난 뇌성이 그 안에서 들려오기 시작한 것이다.
그 때문에 모든 수사들이 깜짝 놀라 바위산 정상에서 벗어나려 했다.
꽈릉! 버언쩍! 꽈르르르르릉!
하지만 태령기의 수사들조차 제대로 반응하기 전에 보랏빛 구름에서 샛노란 번개가 내리쳤다.
그 번개는 건우의 진법이 만든 황금색 반구를 곧장 뚫고 내려가 진 중앙의 수미산 상징을 때리며 엄청난 빛을 터트렸다.
“허어, 이런 일이.”
“건우, 그 놈이 사라졌군.”
“천지법칙이 하필 이럴 때에 응보를 내리다니!”
“쯧, 아까운 시간만 버리지 않았나. 이제 수미 세계로 갈 방법은 없겠군.”
“그럼 나는 어쩌면 좋단 말인가. 곧 대천겁이 찾아올 터인데.”
“어쩌긴, 대천검을 넘길 자신이 없으면 등선에 도전이라도 해 봐야지.”
“하아, 어떻게 이런 일이 있답니까. 왜 하필 우리 차례에······.”
“진즉 갔어야 하는데··· 젠장!”
벌써 보라색 구름은 씻은 듯이 사라졌지만 그 구름이 떨어뜨린 한 다발의 천겁뢰가 남긴 결과는 분명했다.
바위산 정상의 진법은 무너졌고, 진법 중앙은 움푹 파이며 통째로 증발해 버렸다.
태령기 수사가 마흔다섯이나 있었지만 그것을 막지 못했고, 사라진 건우가 어디로 갔는지도 알지 못했다.
< 이젠 이렇게 단체로 통수를?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