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환장 통수 선협전-269화 (269/499)

(268)

< 아니, 연꽃 선자님 이건 좀 >

- 괜찮으세요?

‘빌어먹을 늙은이.’

건우가 아까운 표정으로 투덜거렸다.

- 그렇긴 하죠. 태령기 완경이나 된 수사가, 꼴랑 그거뿐이라니.

‘이젠 빌어먹지도 못할 거다. 그 늙은이.’

이렇게 건우가 악담을 하는 대상은 이름도 알려주지 않고 수미 선문의 수사들과 떠나버린 흑안백염의 태령기 완경의 수사였다.

그 흑안백염의 수사도 결국 다른 네 명의 수사들과 함께 수미 세계로 넘어왔다.

그런데 문제는 건우가 그 수사를 수미 세계로 데려오는 대가로 받은 것은 그리 크지 않았다는 것이다.

물론 건우가 받은 것은 고작해야 평소 홍애지 수사들을 수미 세계로 옮겨 주며 받는 것의 평균 정도에 불과하다고 하지만 아주 못 받은 것은 또 아니다.

‘아니, 특별한 상황에 특혜를 받으며 넘어오는 거면, 응, 그만한 급행료를 더해 줘야지!’

다만 기대에 영 미치지 못했다는 것이 문제일 뿐.

- 그러니까요.

그래도 루야는 여전히 건우 편에서 맞장구를 쳐 준다.

‘아무튼, 있는 것들이 더하다니까.’

- 그래도 다른 수사들은 나름 성의를 다했잖아요. 특히 예예와 종관 수사에게 얻은 쌍수수련법은 정말 대박이라고요.

루야가 그나마 힘이 날 법한 소득으로 화제를 돌렸다.

‘뭐, 괜찮긴 한 거 같더라만.’

건우도 루야의 말을 수긍하기는 했는데 어쩐지 마지못한 감이 있다.

- 네? 그게 그렇게 말하고 끝낼 공법이 아닌데요? 자그마치 선계의 진선들이 익히는 수련법이라고요. 진선들이 그 뭐냐 생의 반려를 택해서 수련하는 그런······.

‘좋은 건 나도 알아.’

- 그런데요?

‘있으면 뭐하냐? 없는데.’

- 아! 수련 공법은 있는데 함께 익힐 사람이 없다 그런 이야기예요?

‘······.’

건우는 굳이 루야의 말에 대꾸할 필요성을 느끼지 않았다.

말을 섞을수록 어쩐지 허한 느낌이 커졌기 때문이다.

‘이제 대충 마무리되었으니 승경 준비를 해야겠다. 300년이 되기 전에 성령기 후기는 달성을 해야지.’

대신 화제를 영 다른 쪽으로 옮겼다.

- 금강패갑공과 검선의 검공법이면 어렵지 않겠죠. 건우 님이 가지고 계신 수련 자원이 얼마나 많아요? 그거면 정말 어디 숨어서 폐관만 해도 시간이 문제지 태령기까진 그냥 갈 수 있을 걸요?

‘뭐, 그 동안 주머니가 많이 넉넉해지긴 했지.’

- 그냥 넉넉해졌다는 말로 설명이 안 될 정도죠. 솔직히 공간낭으론 감당이 안 돼서 아공간에 아무렇게나 쌓아 뒀잖아요. 그중에는 아직 제대로 확인하지 않은 것도 많이 있다고요.

‘그렇지. 따지고 보면 지금 내가 보물 상자나 다름이 없지. 아마 나를 잡아서 상자를 열고 싶어 하는 놈들도 많을 걸?’

재물이 많은 것이 무조건 좋은 것만은 아니다.

소문이 안 날 수는 없는 일을 하고 있으니 언젠가는 사냥감이 될 수도 있음을 건우는 잊지 않고 있었다.

- 네, 여기가 수미선문이 아니었다면 분명 건우 님을 노렸을 수사가 한 둘은 아니었겠죠.

‘수미선문의 수사들이라고 욕심이 없을까? 그렇진 않을 걸? 그나마 선문의 문주령으로 내 안전을 보장해서 지금까지 무사한 거지.’

- 그렇긴 하죠. 수미선문의 문주령으로 내린 명령은 문주조차도 어길 수가 없는 맹약이 되니까요.

‘하지만 언제까지나 마음을 놓고 있긴 어렵지. 내가 수미 선문의 영역을 벗어나면 곧바로 문주령의 보호가 사라질 테니까. 그 때는 곧바로 나를 잡아 죽이려고 득달같이 달려들 걸?’

- 너무 과한 추측이라고 말하고 싶지만, 제 생각에도 그 때가 되면 위험해질 가능성이 높네요. 그나마 정정 선자가 있으니 기대볼 여지가 있기는 하지만요.

이 문제는 이미 정정 수사와도 몇 번 이야기를 했었다.

건우가 가진 것이 과할 정도로 많으니 그 때문에 언젠가는 화를 당할 수도 있다고.

그리고 그런 이야기를 할 때면 유정정이 소매를 걷어붙이며 언제든 자신이 건우를 지켜주겠다고 큰소리를 치곤했었다.

‘그런데 유 선자는 내가 홍애지에 다녀왔는데도 찾아오지를 않네?’

건우가 줄곧 신경을 쓰고 있었으면서도 문득 생각났다는 듯이 말했다.

- 그러게요? 무슨 일이 있나 본데요?

루야는 잠시 건우를 놀려볼까 하다가 나중을 기약하며 모르는 척 말을 받았다.

‘유 선자가 누군가에게 해를 당했을 거란 생각은 안 들고, 아마도 뭔가 깨달음이라도 얻은 모양이지. 그 정도 경지가 되면 작은 거라도 수습하는 데 적잖은 시간이 걸리겠지.’

- 그렇겠죠?

‘그게 아니어도, 내가 걱정한다고 무슨 의미가 있겠어? 이럴 때는 그저 내 할 일이나 잘 하는 게 최고다.’

건우는 그렇게 루야와 대화를 나누며 자신의 거처를 돌보기 시작했다.

성령기 후기 승경을 위해서 수련에 들기 전에 거처에 금제와 공방 술법진 따위를 설치하는 것이다.

당연히 이번에 새로 얻은 기기현문의 비전 공법도 당장 쓸 수 있는 것들은 모두 떠올려 녹여 넣었다.

그렇게 준비를 마친 건우는 수미 선문의 수사들에게 전언을 보내고 곧바로 성령기 후기의 승경에 도전하기 시작했다.

***

콰르르르르릉! 파차차창!

하늘에서 쏟아진 수십 갈래의 노란 번개, 그 무시무시한 천겁뢰에 겨우겨우 버티던 황금색의 갑옷이 유리처럼 깨져 나갔다.

하지만 그 순간 기다렸다는 듯이 건우의 몸에서 칠채의 서광이 피어올라 하늘을 짙게 가린 보라색 구름을 쫓아냈다.

그의 승경 시험이 성공했다는 증거였다.

“으음.”

건우는 극성으로 끌어 올렸던 금강패갑공의 운공을 멈추었다.

그러자 부풀어 올랐던 신체도 원래의 크기로 줄어들고, 수없이 터지고 갈라진 황금색 갑옷도 씻은 듯이 자취를 감췄다.

거기에 더해서 건우를 중심으로 검진을 이루며 떠 있던 삼백육십 개의 성광검들이 무릎 위에 놓인 검으로 날아들어 흡수되었다.

번쩍!

반개하여 빛이 없던 건우의 눈에서 섬광이 치듯 칠채(七彩) 서광이 번뜩였다.

이어서 건우의 손짓 한 번에 거처를 감싸고 있던 갖가지 금제와 술법진이 빛을 감추며 기세를 갈무리했다.

그것은 지금껏 단절했던 외부와의 소통을 다시 시작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이었다.

스스슷!

바로 그 순간 기다렸다는 듯이 건우가 앉은 포단의 앞쪽에 하얀 점 하나가 생겨났다.

그리고 그 빛은 순식간에 부풀어 연꽃 하나를 만들어냈다.

부풀어 오른 연꽃이 활짝 열리자 세상에 없을 좋은 향이 흘러나왔다.

건우는 그 향을 맡자 성령기 후기에 오르며 안정되지 않았던 심신이 편안해지는 것을 느꼈다.

“유 선자님!”

건우가 활짝 웃으며 연꽃에서 나오는 유정정을 반겼다.

“꾸준히 경지가 오르기는 하는데 이래서야 언제 태령기에 올라 나를 정정이라 부를 것이냐?”

“하하하. 감사합니다. 선자님.”

건우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투덜거리는 유정정에게 손을 모으고 감사 인사를 했다.

유정정이 평소와 달리 연꽃까지 펼치며 나타난 이유가 건우의 승경 안정을 돕기 위한 것임을 짐작했기 때문이다.

“흥! 그래도 아슬아슬하게 때맞춰 나오기는 했구나.”

건우의 인사에 아랑곳하지 않은 유정정이 뭔가 그나마 다행이라는 듯이 말했다.

건우는 그 의미를 생각하다가 자신이 승경을 하며 시간의 흐름을 잃어버린 것이 꽤나 길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그러자 자칫 홍애지에서의 약속을 어길 수도 있겠다 싶어 마음이 급해졌다.

“얼마나 지난 것입니까?”

건우가 물었다.

“네가 홍애지에 약속을 한 것이 이제 겨우 10년이 남았을 뿐이다.”

“10년밖에 남지 않았단 말씀입니까?”

건우가 깜짝 놀라며 되물었다.

다른 때와는 달리 이번에는 300년 만에 손님을 맞아야 한다.

아마 홍애지의 수사들도 이번이 마지막이란 사실을 짐작하고 있을 것이다.

갑자기 300년의 간격을 두었고, 다수의 수사를 한 번에 이동시키겠다 했으니 이유를 찾으려 했을 것이다.

그렇다면 당연히 천지법칙의 간섭에 대한 이야기가 누구의 입에서건 흘러나왔을 것이 분명했다.

어쨌거나 마지막으로 다수의 수사들을 수미 세계로 데리고 오는 일이라 건우도 평소처럼 할 수는 없다.

데려올 수사의 수가 늘었으니 당연히 그를 보조해 줄 거대한 진법을 만들어야 했다.

그런데 남은 시간이 고작 10년이라니.

서둘러야 할 상황이었다.

“곧장 홍애지로 가야 하겠군요.”

“흥, 그래서 내가 이리 너를 찾은 것이 아니냐.”

“유 선자님의 배려에 몸 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이리 신경을 써 주시니······.”

“어린 너를 보살피려니 내가 항상 걱정이 앞선다. 물가에 내 놓은 아이도 아니고······.”

“송구합니다.”

“그래도 이번이 마지막이라니 잘 하거라. 그리고······.”

유정정이 평소와 달리 말꼬리를 흐렸다.

“네, 선자님.”

건우가 무슨 일인가 싶어 유정정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듣자니 마지막으로 데리고 온 아이들 중에서 재미있는 공법을 가진 아이들이 있었다던데?”

유정정이 눈빛을 반짝이며 물었다.

건우는 자신이 마지막으로 데리고 왔던 흑안백염의 수사와 괴뢰선, 종선생, 예예, 종관을 떠올리고 그들에게 받았던 대가를 되새겨 보았다.

그리고 그중에 공법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은 두 가지밖에 없음을 기억했다.

하나는 괴뢰선에게 받은 천겁독을 활용할 때에 필요한 독공이었고, 다른 하나는 예예와 종관에게 받은 쌍수수련법이었다.

“뭘 그리 생각하는 것이냐? 진선들의 수련 공법을 얻었다고 들었는데? 아니더냐?”

그중에 진선의 수련법이라면 하나밖에 없다.

“어, 얻었습니다. 그런데 그것이······.”

“내게 보여주지 못할 이유라도 있느냐?”

“아닙니다. 여기 있습니다.”

건우는 유정정의 눈꼬리가 치솟는 기색이 보이자 앞뒤 따지지 않고 곧바로 옥간 하나를 꺼내 내밀었다.

영롱한 청금색의 옥간은 곧바로 유정정의 손으로 들어갔다.

유정정은 잠시 의념을 불어넣어 그것을 살폈다.

뚝!

그리고 어느 순간 옥간을 세로로 갈라 두 개로 만들어 한쪽을 내밀었다.

“자, 받아라.”

“네, 선자님. 그런데 이것은······.”

예예와 종관에게 옥간을 받았던 건우조차도 이게 이렇게 반으로 갈라지는 것임은 알지 못했다.

“흥! 원래 한 쌍으로 되어 있던 것이니라. 그중에 네가 알아야 할 것은 거기 다 담겨 있느니.”

“······.”

차마 묻지는 못해도 유정정이 가진 쪽에는 그에 대응하는 수련법이 들어 있을 것이다.

건우가 들고 있는 수련법과 맞춰진.

“이리 나눠 가지고 있으면 어느 한 쪽에게 문제가 생기면 서로의 상태를 알아볼 수 있느니라. 이제 네가 홍애지 아니라 그 어디에 있더라도 생사 정도는 확인할 수 있겠지.”

“그렇습니까?”

“원래 선계에서도 흔치 않게 태어나는 연리지(連理枝) 종으로 만든 것이다. 연리지는 아느냐?”

“두 뿌리를 지닌 나무가 하나의 줄기로 얽히는 것이 아닙니까?”

“간단히 말하자면 그러하지만 선계에서 연리지라 불리기 위해서는 그만한 영기를 품고 의미가 담겨야 한다. 뭐 어쨌건, 그런 연리지로 만든 것이라 나눠가진 서로의 안부를 알 수 있느니라. 그 외에도 다른 기능이 있겠지만 영계에선 발현이 되지 않는 것이니 나중에 알아도 된다.”

유정정은 나눠진 옥간으로 서로의 상태를 알 수 있다는 이야기를 세세하게 설명했다.

자신이 옥간을 나눠 준 이유가 바로 그것임을 강조하기라도 하듯이.

- 아니이, 그보다는 쌍수수련법을 나눠 가졌다는 것에 의미가 있는 거지요. 단순히 생사를 파악할 것이라면 수명부 같은 걸 만들어도 된다고요.

루야가 어이가 없다는 듯이 의념을 보냈지만 건우는 무시했다.

유정정이 쌍수수련에 의미를 두고 옥간을 나눠 전했다는 것이 훨씬 부담스러웠기 때문이다.

“흥! 홍애지의 일이 급하니 일을 보고 오거라. 그 후의 일은 돌아와서 의논을 하자꾸나.”

어쩐 일인지 얼굴이 살짝 붉어진 유정정이 그렇게 말을 하더니 다시 연꽃 안으로 들어가 봉우리를 닫아 버렸다.

건우는 하나의 점으로 수렴해서 사라지는 유정정의 연꽃을 배웅하고는 곧바로 거처를 나서서 수미 선문의 수사들을 만났다.

그 후, 수미 선문의 수사들과 다수의 홍애지 수사를 데리고 오는 문제를 의논한 후, 건우는 급하게 수미산 상징을 이용해서 홍애지로 이동했다.

< 아니, 연꽃 선자님 이건 좀 > 끝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