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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만 아니면 되지 않겠나 >
“어떻게 생각해?”
건우가 루야를 보며 물었다.
- 어쩌긴요. 그야 건우 님 하고 싶은 대로 하시면 되지요. 건우 님은 어쩌고 싶으세요?
“모르겠다. 모두들 처지가 딱하기는 하다만.”
- 그냥 수미로 보내 주시는 게 어때요?
“응?”
- 물론 대가는 받아야죠. 공짜로 해 줄 수는 없으니까.
“그야 그렇겠지.”
- 그리고 특히 저 예예와 종관이란 수사의 쌍수수련법은 꼭 받아 내세요.
“응? 쌍수수련법을? 그걸 어디에 쓰자고 받아?”
- 몰라 물으세요?
“모, 모르겠는데?
- 양심 어디로······ 아, 수사가 원래 양심 따위는 안 키우는 족속이긴 하죠. 그래도 쌍수수련법을 어디 쓸지 저한테 묻는 건 너무 철면 아니에요?
“정말 몰라서 그런 거지. 그리고 고작 영계의 수련법을 얻어 어디에 쓰냐?”
- 고작 영계란 말 나왔네요? 그럼 그 정도 수준으로는 쓸 수가 없다는 이야기네요. 우와, 특정 대상이 있으니 그런 말이 나오는 거죠?
“쯧. 나갔다가 오마.”
루야의 추궁에 건우는 그렇게 한마디를 던지고 아공간 밖으로 뛰쳐나갔다.
- 헹, 그래봐야 다 보인다고요. 그리고 의식 연결이 있는데 도망가 봐야 무슨 소용이라고요?
‘조용히 해라. 이제부터 이쪽에 집중하게.’
건우가 그렇게 루야에게 의념을 보낼 때, 괴뢰선 등은 다시 모습을 드러낸 건우를 바라보며 서로 눈치를 보고 있었다.
누가 먼저 건우에게 말을 걸 것인가.
즉, 성령기 중기를 동배로 대우하는 방울을 누가 먼저 달 것인가 하는 미루기였다.
“역시 계셨습니다. 다시 봐도 고명하기 짝이 없는 수단이네요. 여기 그 누구도 건우 수사의 그 수법을 알아차릴 수가 없으니 말이에요.”
“커엄. 이리 다시 나와 주니 고맙기 짝이 없소. 우리 잡스러운 소리를 빼고 이야기합시다. 건우 수사 우리를 수미 세계로 데려다주시오. 아까 이야기했던 것처럼 가진 것을 모두 내어 주겠소.”
“그래요. 특히 우리가 익힌 쌍수수련은 그 가치가 어마어마해요. 원래 영계의 공법이 아니라 선계 진선들의 공법이랍니다. 영계에서 수련할 때 제약이 좀 있기는 하지만 그럼에도 그 효능은 굉장하지요.”
“그렇소. 우리가 지금 이런 상황이 되었지만 그것은 공법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의 문제였을 뿐이오. 이만한 공법은 진선들 사이에서도 찾기 어려운 것입니다. 그것을 내어드리리다.”
예예와 종관은 건우를 두고 경지의 차이 따위는 전혀 따지지 않고 같은 항렬의 수사처럼 대했다.
그리고 대화도 시원시원하게 에둘러 말하는 법이 없이 터놓았다.
“나 역시 마찬가집니다. 건우 수사. 우리의 인연을 생각해서라도 나와 갈 수사를 수미 세계로 데려가 주시오. 우리 역시 기기현문의 보물들과 기관 진법의 진수를 숨김없이 내어 드리겠소. 그러니 부탁하오.”
여기에 종선생도 서슴없이 고개를 숙였다.
남은 것은 이제 괴뢰선 밖에 없는 상황.
건우의 시선이 자연스럽게 괴뢰선에게로 향했다.
“커어엄. 건우 수사. 솔직히 말하지. 나는 가진 것이 별로 없네. 그렇다고 여기 갱과 굴을 내어 줄 수는 없지 않은가.”
“대천겁이 무섭지 않으신 모양입니다. 어차피 대천겁이 들이친 다음에는 갱과 굴도 무소용일 텐데요?”
“결국 갱과 굴을 내어놓으라는 것인가?”
“천겁 없는 세상으로 가는 일입니다. 갱과 굴이 과한 대가는 아니지요. 게다가 괴뢰선께서 제게 하신 것을 생각하면 많이 부족하고요.”
“갱과 굴로도 부족하다고?”
“이를 말이겠습니까.”
“하지만 이미 말한 바와 같이 나는 가진 것이 없다.”
- 왜 없겠습니까. 천겁독과 그 해약을 주시지요. 당연히 천겁독을 쓸 수 있는 독공법 역시 함께 주셔야 하고 말입니다.
“그것 참 곤란하군요.”
건우는 다른 수사들이 듣지 못하도록 괴뢰선에게 의념을 보내며 의념의 내용과는 달리 곤혹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 어쩌시겠습니까? 주시겠습니까?
“가진 것이 없다 하시지만 그렇다고 그냥 보아 드리긴 괴뢰선께서 앞서 하신 언행들이······.”
- 놈! 주겠다! 갱과 굴, 천겁독 모두!
건우가 말꼬리를 흐리는데 괴뢰선이 짧게 의념을 보내왔다.
그런 괴뢰선의 눈빛은 사납게 이글거리고 있었는데, 더는 선을 넘지 말라는 뜻이 확연히 담겨 있었다.
“······. 하지만 그렇다고 괴뢰선 어르신만 빼는 것도 곤란하고······. 알겠습니다. 갱과 굴, 거기에 더해서 새로 만드신 그 몸에 대한 비전을 주시면 모두 잊고 수미로 보내 드리지요.”
“끄으응. 알았다. 그리 하마.”
다른 수사들이 흥미진진한 눈빛으로 둘을 지켜보는 가운데, 결국 괴뢰선과 건우의 협상이 마무리되었다.
그러자 모두의 얼굴에서 근심이 사라지며 표정이 밝아졌다.
“그럼 이제 맹약을 하지요. 이번에도 역시 마귀를 불러 맹약을 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종선생이 빠르게 나서서 일을 진행시키고자 했다.
지난 3천 년 동안 매번 비슷한 맹약을 맺어왔기에 건우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다른 수사들 역시 그런 상황을 알고 있었기에 반대가 없었다.
“그럼 이제······.”
그렇게 모두의 의견을 확인하고 종선생이 기관 진법을 펼쳐 마귀를 불러내려 할 때였다.
갑자기 그들이 있는 봉우리를 중심으로 모든 천지영기가 꽁꽁 얼어붙은 듯이 움직이지 않았다.
“이, 이게 무슨?”
“어느 고인께서 왕림을 하셨습니까?”
“후배들이 감히 선배님을 뵙기를 청합니다.”
“태, 태령기 완경의 선배 고인께서 오신 듯 합니다.”
건우를 제외한 태령기 수사 넷이 모두 억지로 몸을 세우며 하늘을 우러러보고 있었다.
건우가 그곳을 바라봤을 때, 거기에는 비단장포를 입은 백발, 백염, 백안의 흑인 수사가 뒷짐을 지고 서 있었다.
피부색은 검은데 눈과 모발은 흰색인 기묘한 수사였다.
“너희는 잠시 물러나 있거라.”
그가 소매를 저어 괴뢰선 등을 십여장 밖으로 밀어냈다.
그리고 스르륵 건우의 몇 걸음 앞으로 날아 내렸다.
“어르신을 뵙습니다.”
건우가 두 손을 모으고 공손히 읍을 했다.
“나는 너를 해할 생각이 없으니 괜히 모습을 감추거나 하지 말거라.”
흑안백염 수사의 첫 마디는 그것이었다.
건우는 그가 자신의 아공간을 파악하지 못함을 알았다.
아공간을 알아차렸다면 저리 조심스럽게 말하진 않았을 것이다.
“알겠습니다. 그리 하겠습니다.”
“그래. 고맙구나. 그런데.”
“네 어르신.”
“너는 내가 누군지 아느냐?”
“송구합니다. 후배가 어리석어······.”
건우가 황급히 고개를 숙였다.
“되었다. 내가 홀로 거처에 머물며 등선을 준비한 것이 벌써 10만 년 전이다. 그 동안 몇몇 벗들과만 교류를 했으니 네가 모르는 것이 당연하겠지.”
‘그럴 거면 왜 물어?!’
건우는 속으로 투덜거렸지만 그런 기색은 전혀 드러내지 않았다.
“내가 너를 찾은 것은 특별한 용건이 있기 때문이다.”
“듣고 새기겠습니다. 말씀하시지요.”
“네가 홍애지의 고계 수사들을 수미로 보내고 있음은 얼마 전에야 들었다. 그리고 그 사실을 듣는 순간 내 의문이 풀렸지. 너는 내가 무슨 의문을 가지고 있었는지 짐작하겠느냐?”
“송구합니다.”
“나는 어느 날 알았느니, 홍애지의 기운이 조금씩 쇠하고 있음을.”
“······!”
건우는 내심 뜨끔했다.
홍애지의 기운이 쇠한 까닭이 이곳의 고계 수사가 수미로 대거 넘어간 탓일 거라 짐작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너는 홍애지의 기운이 쇠한 이유를 알겠느냐?”
“이곳의 고계 수사들 수가 줄었기 때문입니까?”
“노옴! 너도 알고 있었구나.”
건우의 대답에 흑안백염의 수사가 고함을 질렀다.
순간 건우는 정신이 아득해지는 것을 느끼고 급히 아공간으로 숨을까 갈등했다.
하지만 다행히 그보다 더한 공격은 이어지지 않았다.
“너 때문에 홍애지의 기운이 급격히 쇠하고 있다. 이리 되면 자칫 홍애지가 인계로 분할 될 수도 있음이다. 너는 그것을 아느냐?”
“어르신, 어찌 그런 일이 벌어지겠습니까. 수미의 어르신께서는 천지법칙이 그것을 두고 보지 않을 거라 하셨습니다. 그래서 크게 문제가 되지 않을 거라 생각했습니다.”
“천지법칙, 그래 그럴 수도 있겠지. 하지만 어쨌거나 이곳 홍애지의 기운이 많이 쇠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리고 그런 까닭에 등선을 준비하는 나와 같은 이들이 곤혹스러워졌지.”
“등선에 그것이 문제가 된다는 말씀입니까?”
“티끌 같은 차이라도 차이가 생기는 것은 문제인 것이다. 아무리 미약해도 그 차이로 등선에 실패할 수 있음이 아니냐.”
“······.”
건우는 대꾸를 하지 못하고 고개만 숙였다.
결국 자기 때문에 눈앞의 등선경 수사가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자신이라면 어떠했을까?
등선을 준비하고 있는데 거기에 걸림돌이 생기면?
찾아가서 따질 것도 없이 목을 쳤으리라.
그런 생각을 하니 건우는 스스로 목이 움츠러드는 것을 어쩔 수 없었다.
“조금 과하게 말하면 네가 하는 짓은 수미를 살리자고 홍애지를 죽이는 것이다.”
“돌이킬 수 없는 일이니 어찌 사죄를 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건우는 그저 다시 고개를 숙일 뿐, 다른 방도가 없었다.
그런 모습을 멀찍하게 밀려난 네 명의 수사가 불안한 눈빛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일이 이렇게 진행되면 결국 그들은 수미 세계로 갈 방법이 막히고 마는 것이다.
하지만 서로 눈빛을 교환해 보아도 태령기 완경, 그것도 등선을 준비중인 수사를 어찌할 방법은 없었다.
그저 속만 시꺼멓게 타들어 갈 뿐이었다.
“스스로 잘못을 알겠느냐?”
흑안백염 수사가 물었다.
“네, 어르신.”
건우가 고개를 숙였다.
“이제 어쩌겠느냐?”
“이미 수미로 모신 분들을 되돌려 올 수는 없으니, 이만 멈추는 것이 옳겠지요. 하지만 저기 네 분은 이미 약속을 한 것이 있으니······.”
“뭐라? 그래서 저들을 결국 수미로 보내겠다고?”
흑안백염 수사가 노기 가득한 목소리로 건우의 말을 중간에 끊었다.
그런데 그런 수사를 보며 건우가 살짝 웃는 표정으로 말했다.
“어찌 저들뿐이겠습니까? 이참에 어르신께서도 함께 가심이 어떻겠습니까? 제가 모시겠습니다.”
“뭐? 뭐라?”
“아까도 말씀을 드린 것처럼 천지법칙이 언제 이 일을 문제삼을지 모르지 않습니까. 그러니 그나마 길이 열려 있을 때에 어르신을 모시고 싶다는 뜻입니다.”
“크하하하하하. 고놈 참. 어찌 알았느냐?”
건우의 말에 갑자기 흑안백염 수사가 앙천광소(仰天狂笑)를 하더니 건우를 똑바로 쳐다봤다.
“세상이 그러하지 않습니까. 대부분의 수사들이 나만 아니면 된다고 여깁니다. 그런데 굳이 어르신께서 스스로 불리함을 찾으실 이유가 어디에 있겠습니까.”
“그것뿐이냐?”
“등선을 위해 10만 년을 애쓰셨다 하셨습니다. 그 정도면 이제 한계가 가깝지 않겠습니까. 그런 상황이라면 차라리 수미로 넘어가 그곳에서 후일을 기약함이 더 나을 듯 싶었습니다.”
“나를 그리 얕잡아 보았다는 소리구나?”
“그, 그게 아니라······.”
“되었다. 틀린 소리도 아닌데 그리 애쓸 것 없다.”
당황한 건우가 변명을 하려는데 흑안백염 수사가 양쪽 소매를 저으며 만류했다.
그런데 그 소매질에 멀리 떨어져 있던 네 수사가 빨려오듯 가까이로 끌려오고 허공에는 커다란 진법이 그려졌다.
“괜한 소리 할 것 있겠느냐. 곧바로 맹약을 맺고 수미로 넘어가자꾸나.”
그가 그려낸 진법은 다름 아닌 마귀와의 계약을 위한 것이었다.
건우는 그렇게 서두르는 모습에 입을 떡 벌렸다.
하지만 그렇다고 이대로 끌려갈 수는 없는 일이었다.
“저기 어르신. 그런데 제게 무엇을 주시려는지요?”
“뭐라!?”
“······.”
“······.”
“허어!”
일순 꽁꽁 얼어있던 천지영기에 금이 가는 듯 느껴졌다.
‘어딜 은근슬쩍 무임승차를 하려고?!’
< 나만 아니면 되지 않겠나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