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환장 통수 선협전-267화 (267/4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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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들의 사정 >

“이게 무슨 짓입니까?”

건우가 우뚝 멈춘 상태로 수사들을 보며 물었다.

괴뢰선, 종선생 그리고 예예와 종관.

세 방향에 포진한 수사들이 품자 형태로 건우를 포위하고 있었다.

그러면서 교묘하게 의념을 투사하여 건우를 붙잡아 두고 있는 것이다.

“생각해보면 우리가 네게 바라는 것이 일치하지 않겠느냐.”

“게다가 매번 한 번에 다섯을 수미로 보냈으니 우리 넷이야 어려울 것이 없겠지.”

괴뢰선과 종선생은 그렇게 대답했다.

“기분 나쁘게 생각할 것 없다. 우리도 네게 볼 일이 있는데, 네가 홀연히 모습을 감추면 곤란하지 않겠느냐. 그래서 이야기가 끝날 때까지는 좀 머물러달라는 의미다.”

“당연하지. 우리가 저 몰염치한 것들처럼 너를 강제하려는 것은 아니다. 그저 시간을 좀 내어 달라는 것일 뿐.”

“그렇지. 예예의 말대로다. 그리고 혹여 저들이 너를 어찌하려 한다면 우리가 나서서 네 안전을 지켜주마.”

그런데 같은 상황에서 종관과 예예는 조금 다른 말을 했다.

어차피 건우를 잡아두는 데에 동참하기는 했지만 본심은 다르다는 듯이.

건우는 피식 웃고 말았다.

“하하하. 모두가 내게 원하는 것이 있을 텐데, 나를 이리 대하고도 괜찮겠습니까? 제가 앙심을 품으면 수미가 아닌 공허의 공간 어디로 떨어질 수도 있음을 염려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건우가 그렇게 말하며 고개를 돌려 네 명의 수사를 한 번씩 쳐다보았다.

여차하면 수미 세계로 가는 것에 수작을 부릴 수도 있다는 뜻이니 모두가 경계할만한 일이었다.

“크음. 네가 그런 짓을 한다면 이후로 어느 누가 너를 따라서 수미로 가겠느냐?”

“괴뢰선 어르신, 제가 그런 것을 겁내겠습니까? 지금까지는 대부분 합당한 거래를 통해서 수미로 가는 분을 모셨습니다. 그러니 제가 다른 짓을 할 이유가 없었지요. 하지만 지금 상황은 그것이 아니지 않습니까? 억지와 핍박을 통해 일을 이루려 하시니 그게 평소와 같을 수가 있겠습니까?”

“너는 어차피 나와 함께 수미로 가야 하는데, 내가 그것을 걱정하겠느냐? 내가 그 정도 수단도 없을 듯 하냐?”

“그러니까 저를 묶어서 함께 끌고 갈 것이란 말씀이군요?”

“그 정도 준비가 없고서야 내가 너를 어찌 믿고 공간을 이동한다는 말이더냐?”

괴뢰선은 뭔가 확실한 수단을 준비했는지 의기양양한 모습이었다.

그러면서 슬쩍 고개를 돌려 종선생을 보았다.

“너는 어떠냐? 하는 짓을 보니 너 역시 뭔가 준비한 것이 있으렸다?”

“준비랄 것이 뭐가 있겠습니까? 무리한 요구를 하는 것이니 당연히 그에 합당한 대가를 치르면 될 일이 아닙니까.”

“뭐라?”

“제가 기기현문의 유일한 제자가 되면서 그 모든 유산을 이어받았습니다. 그러니 괴뢰선 당신과는 달리 가진 것이 많은 편이지요.”

“······. 그러니까 합당한 대가를 치르고 갈 생각이었다고?”

“그럼 설마 당신은 그저 저 녀석을 핍박하여 원하는 바를 이루려 했습니까? 설마 정말 그런 생각을 하고 있다면 나 역시 당신을 막아야겠습니다.”

“당연하지. 괴뢰선 당신이 그런 짓을 한다면 우린 어찌 수미로 간다는 말이냐? 그러니 괜한 수작을 부릴 생각은 말아야 할 것이다.”

“당연하죠. 종관, 절대 그렇게 둬서는 안돼요.”

“걱정하지 마시오 예예. 나를 믿으시오.”

‘이것들이 지금 떡줄 사람은 생각도 않는데, 지들끼리 찧고 빻고 난리법석이네.’

건우는 네 수사의 말싸움을 지켜보며 내심 한숨을 쉬었다.

보아하니 제일 문제가 되는 것은 괴뢰선이고, 다른 이들은 그래도 수미로 가는 대가를 치를 생각은 있는 모양이었다.

“이 놈들이!”

괴뢰선이 주먹을 쥐고 부들부들 떨며 종선생과 종관, 예예를 노려봤다.

모두가 입을 모아 자신을 비난하니 크게 화가 난 모습이었다.

“쯧!”

그때, 건우가 나지막하게 혀를 찼다.

그러자 모든 수사의 시선이 건우에게로 몰렸다.

그 순간 건우의 모습이 허공에 녹아들 듯 사라졌다.

“어어?”

“아니?”

우우우웅! 쿠과과과과과!

곧바로 괴뢰선과 종선생의 강력한 의념이 건우가 있던 곳을 짓눌렀고, 둘의 의념이 강력하게 충돌했다.

“사라지다니! 내 눈앞에서 종적을 남기지 않고?”

“어떻게 이럴 수가?”

“종관! 당신은 어때요?”

“없소. 아무리 살펴도 녀석의 기척을 찾을 수가 없소.”

하지만 네 수사 모두, 사라진 건우의 흔적을 찾지 못했다.

“이게 어떻게?”

“고작 성령기 중기 따위가 내 이목을 피할 수가 있다고?”

“허탈하네요. 건우 수사는 평범한 수사와 많이 달랐지만 그렇다고 이리 눈앞에서 사라질 능력이 있을 줄은 몰랐네요.”

“그러게 말이오. 기가 막힐 일이오.”

네 수사는 몇 번이고 의념을 펼쳐 주변을 수색하며 자리를 뜨지 못했다.

태령기 수사가 한 번에 의념을 펼쳐 살필 수 있는 범위는 수만 리에 이른다.

그런데 네 수사가 모두 나서고도 건우를 찾을 수 없었다.

“혹여, 너희가 무슨 수작을 부린 것은 아니냐?”

그때, 문득 괴뢰선이 예예와 종관을 노려보며 말했다.

“무슨 소리냐?”

“우리가 무얼 어찌 했다는 것이냐?”

종관과 예예가 곧바로 발끈하며 괴뢰선을 노려봤다.

“너희가 앞서 그 녀석의 편을 들지 않았더냐. 더구나 일이 벌어지면 안전하게 보호해 주겠다고도 했고.”

“그래서 지금 우리가 그 녀석을 숨겼다는 것이냐?”

“정말 우리가 그렇게 했다 여긴다면, 남모르는 능력을 지닌 우리에게 너는 조금 더 조심을 해야 하지 않겠느냐?”

종관과 예예는 괴뢰선을 죽일 듯이 노려보며 의념을 부풀렸다.

두 수사 사이에 활과 화살의 모습이 드러나고 화살이 시위에 걸리자 둘의 의념이 증폭되며 주변을 장악하기 시작했다.

이에 괴뢰선 역시 좌우로 갱과 굴, 두 석수 괴뢰를 소환하며 천지영기를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것 참.”

상황이 그리되자 종선생 역시 질 수 없다는 듯이 영기를 끌어 올리기 시작했다.

‘하하하. 재미있네.’

그리고 아공간에 몸을 숨긴 건우는 작은 입구를 열어 그 모습을 지켜보며 웃고 있었다.

어차피 저들이 크게 싸움을 벌일 일은 없을 것이다.

작정하고 누군가를 해치고 이득을 취하겠다면 모를까, 건우도 사라지고 없는 마당에 서로 싸워 좋을 것이 뭐가 있겠는가.

“다들 흥분을 가라앉히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싸워봐야 득이 없음을 모두 알지 않습니까?”

그 예상에 걸맞게 종선생이 슬그머니 괴뢰선과 예예, 종관의 사이로 의념을 끼워 넘으며 중재를 시도했다.

그러자 괴뢰선도 갱과 굴을 자신의 뒤로 물렸고, 종관도 활시위에서 화살을 걷어냈다.

“참으로 용한 녀석입니다. 태령기 넷이 있는데 그 이목을 속이고 모습을 감추다니요.”

“종선생도 아시지 않나요? 건우 수사는 과거에도 홀로 유산을 감출 정도로 뛰어난 은폐능력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렇지요. 예예 수사의 말이 옳습니다. 그 녀석의 특기가 그러했지요.”

“그렇다고 하더라도 어찌 성령기 중기에 불과한 놈이 내 이목을 속일 수 있단 말이냐. 더구나 그 놈에게 붙여 놓은 괴뢰와의 의식 연계까지 끊어 버리고.”

“괴뢰선께서 건우 수사에게 괴뢰를 붙였단 말입니까?”

“그것까지 네가 자세히 알 필요는 없다.”

괴뢰선은 그렇게 말을 자르고는 의념을 일으켜 산봉우리의 바위를 태사의 모양으로 뽑아 올려 그 위에 앉았다.

그러자 종선생과 예예, 종관도 각각 자리를 잡고 앉았는데 종선생은 지름이 5장에 이르는 둥근 석판을 꺼내 앉았고, 예예와 종관은 지붕이 달린 정자를 세우고 그 바닥에 금침(衾枕)보료를 깔고 앉았다.

“모두의 생각이 같은 모양이구나.”

괴뢰선이 그 모습을 보며 말했다.

“오고 감이 항상 일정하니, 이곳에서 갔으면 이곳으로 오겠지요.”

“우리 역시 같은 생각이에요.”

“언제가 될지는 모르지만 길어봐야 300년이겠지.”

괴뢰선의 말에 종선생과 예예, 종관이 아무렇지도 않은 듯이 그렇게 말했다.

그러자 괴뢰선의 얼굴에 깊은 수심이 차올랐다.

“대천겁이 무섭기는 한 모양입니다.”

그런 괴뢰선을 보며 종선생이 말했다.

그런데 그런 종선생의 표정도 좋지는 않았다.

“우리 허심탄회하게 서로의 처지를 털어놓는 것이 어떤가요?”

그때, 예예가 종관과 눈빛을 교환하고는 괴뢰선과 종선생에게 그렇게 제안했다.

“달리 털어놓을 것이 뭐가 있단 말이냐? 승경에 급급하다 정신을 차려보니 대천겁이 눈앞에 와 있었다. 그런데 막상 승경에 가진 자원을 모두 털어 넣은 후라 대천겁을 대비할 준비가 어렵게 되었을 뿐이다.”

“커엄. 그건 나도 비슷합니다.”

괴뢰선의 말을 들은 종선생이 그렇게 두루뭉술하게 말할 때였다.

= 뭘 그렇게 숨기고 가리는 것이냐? 어차피 한 몸에 두 개의 혼을 지닌 이들이 몸에 따라서가 아니라 혼에 따라서 천겁을 겪는 것은 일반적인 일이다. 그래서 혼이 여럿인 경우 오래 살지 못하는 경우가 많은 것이고. 게다가 너와 내가 합쳐지며 경지가 태령기 초기로 떨어졌는데, 내가 맞을 천겁은 태령기 중기의 수준일 것이니 그것을 어찌 버티겠느냐?

갑자기 무슨 생각인지 갈편주가 나서서 그들의 처지를 털어놓았다.

“하나의 몸에 여러 혼이 있는 것은 순리에 맞지 않으니 천지 법칙이 응징을 하는 것이겠지요. 그건 저와 종관도 마찬가지랍니다.”

“커엄. 우리가 너무 욕심을 부린 탓이지.”

다음으로 예예가 나서자 종관이 헛기침을 하며 덧붙였다.

“우리는 쌍수 수련을 했는데, 그 과정에서 크게 욕심을 부렸습니다. 순리대로라면 우리가 벌써 태령기가 될 수는 없었겠지요. 그리고 그 욕심 탓에······.”

“둘이 떨어질 수 없는 사이가 되었으니 천겁을 두 배로 겪어야 하고, 거기에 더해서······.”

“훨씬 강력한 천겁을 맞아야 하지요. 사실 우리는 어떤 수를 써도 앞으로 닥칠 천겁을 넘지 못할 거라고 판단했어요. 그래서 건우 수사를 찾아온 거랍니다.”

“어허, ······.”

“······.”

“끙. ······.”

예예 수사의 말이 끝나자 모두가 말을 잃고 한숨만 쉬었다.

사실 그들 모두의 처지가 순탄지 않은 상태였던 것이다.

“쯧, 그런 상황이면 건우 그 녀석에게 잘 설명을 하고 도움을 구했어야지. 대뜸 핍박을 한단 말입니까?”

종선생이 괴뢰선을 보며 눈을 부라렸다.

“대가를 주고 싶어도 가진 것이 없으니 생각나는 방도가 그것뿐이었지. 그러는 너는 어떠하냐? 갈편주가 나서서 그 녀석을 몰아세우지 않았더냐?”

“갈 수사야 원래 말투가 그런 것이지 딱히 나쁜 뜻을 품었겠습니까? 어차피 부탁하는 입장인데.”

“끄응.”

괴뢰선이 저만 못된 놈이 된 것 같아 앓는 소리를 냈다.

“그나저나 이만하면 상황을 알았을 터이니, 건우 수사는 모습을 드러내는 것이 어떤가요?”

그때, 문득 예예가 건우가 사라졌던 곳을 바라보며 말했다.

다른 수사들이 모두 의아한 눈빛으로 그런 예예를 바라봤다.

“건우 수사가 비록 성령기라 하지만 이제부터 저는 건우 수사를 동배로 대우하겠습니다. 그러니 건우 수사께선 이 예예의 청을 들어 다시 기회를 주시지 않으시겠습니까?”

“우, 우린 가진 것이 대단치 않지만 모두 내어 줄 생각이 있습니다. 건우 수사.”

예예의 말에 조금 허둥거리며 종관이 따라 말했다.

괴뢰선과 종선생이 어이가 없다는 눈빛으로 두 수사를 바라보았다.

태령기 수사가 성령기 중기 따위에게 존대를 하며 동배로 취급하겠다니.

수도계를 이루는 큰 축이 무너질 일이었다.

하지만 수도계의 축 따위야.

“건우 수사. 이 종모 역시 경지의 높낮음으로 건우 수사를 얕보지 않겠습니다. 약속하지요. 그리고 저는 처음부터 수사를 핍박할 생각이 없었습니다. 말씀드리지 않았습니까. 합당한 보상을 생각하고 있다고 말입니다.”

“이, 이런 종가 놈아! 경지에 따라서 고하를 나누는 것은 수도계의 불문율이다. 그런데 그것을 이리 허문단 말이냐?”

“아니, 괴뢰선. 그걸 누가 정했답니까? 그 속을 들여다보면 결국 큰 칼 든 놈을 대우하는 것이 아닙니까. 그리고 지금은 정황상 건우 수사가 우리보다 칼이 크다 봐야지요.”

“끄응!”

괴뢰선이 앓은 소리를 냈다.

거기에 예예가 일침을 날렸다.

“그래서 괴뢰선께선 정녕코 그리 못하시겠다는 말씀인가요?”

“······. 아니 누가 절대 못한다고 했나, 그저 수도계의 질서가······.”

가장 경지가 높은 괴뢰선의 목소리가 자꾸만 목구멍 안으로 기어들어갔다.

< 그들의 사정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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