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환장 통수 선협전-266화 (266/4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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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두들 나올 때가 된 모양이다 >

“반갑구나.”

“그 사이에 태령기 중기에 오르시다니 놀랍습니다. 감축드립니다. 괴뢰선 어르신.”

건우가 두 손을 모아 공손한 태도로 허리를 숙이며 인사를 했다.

“원래부터 혼원석이 부족해서 경지가 막혔던 것일 뿐, 내가 크게 모자란 사람은 아니었지.”

“모자라다니요. 별 말씀을 다 하십니다. 그런데 그 몸은 새로운 몸입니까?”

건우가 괴뢰선의 바뀐 외모를 보며 물었다.

여전히 젊은 미남의 모습을 하고 있지만 중요한 것은 그 몸이 살아 있는 일반 수사의 것과 구별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괴뢰가 아닌 인간 수사라 해도 될 듯했다.

“관심이 있는가? 제법 괜찮지 않은가?”

“이를 말이겠습니까? 누가 그런 몸의 어르신을 보고 괴뢰라 하겠습니까?”

“하하하하. 그렇지? 그럼, 그럼.”

건우의 말에 괴뢰선이 크게 웃으며 흡족한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하지만 건우는 그런 괴뢰선을 보며 속으로 긴장을 늦추지 않았다.

‘이 노괴가 어찌 알고 나를 찾아왔을까?’

원용문에서 용랑의 후손 중에 수련 자질이 뛰어난 아이를 골랐다.

300년 뒤에 다수의 수사들을 수미 세계로 데리고 갈 때에 그 아이도 끼워서 가기로 약속을 했다.

용랑과 함께 했던 시간들을 생각하면 그 정도야 못 해줄 것이 뭐가 있을까 싶었다.

그렇게 일을 마치고 떠나려는데 문득 건우를 불러내는 의념이 있었다.

전해오는 의념이 심상치 않아서 아무도 모르게 홀로 빠져나와 수만 리를 날아오니 한적한 산봉우리에 낯선 수사가 있었다.

그런데 가까이 가 보니 그 수사의 의념과 기운이 익숙했고, 곧 그것이 괴뢰선의 것임을 알아차렸다.

검선과 마선을 피해 금선탈각으로 몸뚱이를 벗어 던지고 도망쳤던 괴뢰선이 건우를 찾아온 것이었다.

그것도 태령기 중기의 고계 수사가 되어서.

“그리 경계할 것 없다. 내가 너를 해코지 할 일이 어디 있겠느냐.”

“제가 어찌 어르신을 경계하겠습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그래, 그럼 다행이지.”

건우의 대답에 괴뢰선이 피식 웃었다.

그러더니 문득 정색을 하며 건우를 보며 말하기 시작했다.

“내가 네게 무슨 용무가 있을지는 너도 짐작을 하겠지?”

건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제가 어르신께 도움이 될 일이야 수미 세계로 모시는 것 이외에 뭐가 있겠습니까.”

“그래, 내가 바라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어떠냐? 너는 내 바람을 들어줄 수 있겠느냐?”

괴뢰선이 얼굴 가득 희색을 띄며 물었다.

당연히 건우가 자신의 부탁을 거절하지 않으리라 의심치 않는 표정이었다.

“소문을 듣지 못하셨습니까? 300년 후에······.”

“그건 이미 들었다. 그것이 마지막이라지?”

“그렇습니다. 수미 세계의 고계 어르신께서 제가 하는 일이 홍애지에 크게 해가 되는 일이라 경고를 하셨지요. 그래서 더는 일을 계속하기 어렵게 되었습니다.”

“그 말도 들어서 알고 있다. 하지만 나는 그 300년을 기다릴 생각이 없다. 그리고 내 생각에 너는 나 하나 정도는 언제든 수미로 데려갈 수 있을 것 같구나. 아니냐?”

“아니라 한들 믿으시겠습니까?”

“쯧, 내키지 않는 모양이구나. 반응이 까칠한 것이.”

“······.”

건우는 혼잣말 같은 괴뢰선의 말에 대꾸하지 않았다.

그는 머릿속이 복잡했다.

괴뢰선을 수미로 데리고 가는 것이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또한 100년에 다섯 명씩이라고 세운 자신의 기준을 어기는 것이 문제가 될 것도 아니다.

하지만.

“후배가 어르신께 특혜를 드려야 할 이유가 있겠습니까? 큰 의미는 없지만 이미 3천 년을 이어온 규칙인데, 그것을 깨게 되면 다른 분들께서 기꺼워하지 않으실 것인데 말입니다.”

건우를 통해 수미로 넘어가는 이들은 대부분 태령기 중기 이상의 수사들이다.

때로는 그런 수사들이 다섯 이상 몰려서 줄서기를 해야 할 때도 있었다.

그런데 괴뢰선이 특혜를 받은 것을 다른 수사들이 알게 되면 건우에게 좋을 것이 뭐가 있겠는가.

“남모르는 다른 수사들과 내가 같으냐? 우리의 연이 있는데 같을 수는 없는 게지.”

“······.”

뻔뻔스러운 괴뢰선의 예상치 못한 말에 건우가 대꾸를 하지 못했다.

“내가 수련을 하느라 세상을 잊고 있다가 문득 나와 보니 네 소식이 들리더구나.”

그런 건우를 향해 괴뢰선이 조금 진지해진 얼굴로 말했다.

“그런데 하필이면 이번 기회는 끝이 났고, 다음은 300년 후에나 있을 것이라더구나.”

“300년이 그리 긴 시간은 아니지 않습니까. 설마······.”

건우는 말을 하다가 문득 떠오르는 것이 있어 입을 닫았다.

“그렇다. 그 사이에 시간이 흘러 내게도 대천겁이 다가왔느니라.”

“그것이 300년 안쪽이란 말씀이군요?”

“250년에서 300년 정도. 그 사이에 대천겁이 찾아올 것이다. 그런데 내가 그동안 승경에만 힘을 쓰다 보니 대천겁을 대비할 수가 없었느니라.”

“말씀을 들어보니 사정은 이해가 됩니다. 하지만······.”

“안 된다는 말을 하지 말거라. 나는 네게 그 정도 여유는 있으리라 확신하고 있으니.”

“곤란한 말씀이군요.”

건우는 괴뢰선의 말을 부정하지 않았다.

사실 검선과 마선을 수미로 데려간 후에 몇 번의 검증을 받았는데 그 때에는 정해진 시간 없이 홍애지와 수미를 오가곤 했었다.

그러니 100년에 다섯 명이란 것은 그 후에 정해진 규칙 같은 것으로 건우가 가진 능력의 한계는 아닌 것이다.

그런 사실은 또 알 만한 이들은 모두 알고 있는 것이고.

“곤란하다는 것은 내 부탁을 들어주지 않겠다는 뜻이냐?”

건우의 말에 괴뢰선이 눈썹을 치켜세웠다.

감히 자신을 거역하려는가 하는 표정이 얼굴에 드러나고 있었다.

“그것 참, 염치도 없습니다. 맡겨 놓은 것도 없이 어찌 후배를 그리 몰아세운답니까?”

“누, 누구냐!”

그런데 의외의 상황이 벌어졌다.

갑자기 새로운 목소리가 건우와 괴뢰선의 대화에 끼어든 것이다.

그리고 일순 황토색의 둔광과 함께 누군가 모습을 드러냈다.

“종선생? 종선생이 아니십니까?”

“네 놈이?”

건우와 괴뢰선이 동시에 그를 알아보았다.

그는 다름 아닌 괴뢰선의 부하였던 종선생이었던 것이다.

종선생은 과거의 몸을 그대로 지니고 있었지만 그 경지만은 놀랍게도 태령기에 이르러 있었다.

“네가 어찌?”

괴뢰선이 그 경지를 알아차리고 놀란 표정으로 종선생을 보았다.

“하하하. 뭘 그렇게 놀라십니까? 기기현문의 금제 공간에서 죽어야 할 놈이 살아 돌아와서 그런 것입니까?”

= 그렇기도 하겠지. 네가 죽었다 여겼을 것이니. 아, 둘 다 나와도 안면이 있었지?

그런데 종선생에게서 다른 수사의 목소리가 함께 흘러나왔다.

“이, 무슨?”

건우가 깜짝 놀라 당혹감을 드러냈다.

그것은 괴뢰선 역시 마찬가지였다.

“어찌 된 것이냐? 너, 혼에 문제가 있구나!”

그리고 건우보다 괴뢰선이 먼저 종선생의 문제점을 알아차렸다.

“어쩌다보니 그리 되었지요.”

= 수도계에 한 몸에 여러 개의 혼이 함께 하는 경우가 아주 드문 것도 아닐 텐데 놀라긴.

“그러게 말입니다.”

= 게다가 이 모두가 저 괴뢰선이란 놈의 천겁독 때문이었는데, 저 놈은 뻔뻔하게도 우리를 이상하다고 몰아세우는구나.

“갈편주!”

“으음.”

한 몸에서 흘러나오는 두 목소리의 대화에서 괴뢰선과 건우는 동시에 그 정체를 알아차렸다.

종선생의 몸에 갈편주의 혼이 함께 있었던 것이다.

= 시끄럽고! 일단 우리 볼 일을 보자꾸나.

“그러지요. 갈 수사.”

= 너, 건우란 아이야. 너는 우리를 수미 세계로 보내줄 수 있겠느냐?

그런데 그들의 용건 역시 수미 세계로 넘어가는 것이었던 모양인지 갈편주가 곧바로 건우를 노려보며 그렇게 물어왔다.

“응? 무슨? 내가 먼저 이야기를 하고 있었는데, 네 놈들이 끼어든단 말이냐?!”

그러자 괴뢰선이 어이가 없다는 표정으로 목소리를 높였다.

조금 전에는 뻔뻔스럽다느니 어쩌느니 하더니 하는 짓은 다를 바가 없지 않은가.

건우 역시 종선생과 괴뢰선을 번갈아 바라보며 곤혹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었다.

“두 분이 모두 같은 것을 물으시니 참으로 곤란합니다.”

= 그래서 안 된다는 것이냐?

“내가 먼저 왔음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갈편주와 괴뢰선이 동시에 건우를 압박했다.

건우의 얼굴에 쓴 웃음이 피어올랐다.

이렇게 되면 차라리 아공간으로 숨어든 후에 수미로 넘어가는 것이 최선일 듯싶었다.

‘이것들이 한 번 닭 쫓던 개 신세가 되어 봐야 이게 아닌데 하고 반성을 할까?’

꼭 수미로 넘어갈 필요도 없다.

그 사이에 아공간과 겨자씨의 동화율이 올랐는지 태령기 완경의 그 대단한 유정정도 아공간을 잡아내지 못한다.

건우가 아공간으로 숨기만 해도 저들이 그를 어찌할 것인가.

건우가 저들 태령기 수사 앞에서도 여유를 부릴 수 있는 이유는 바로 거기에 있었다.

“흥! 하는 짓을 보고 있자니 내가 다 얼굴이 뜨겁구나. 선배가 되어서 그리 후배를 핍박하다니 부끄럽지도 않단 말인가?”

“그러게 말이에요. 참으로 안타까운 일입니다.”

그런데 숨어 있던 것이 종선생 뿐만은 아니었는지 또 다른 이들이 나타났다.

“누구냐!”

“어느 분이 찾아오셨소?”

“하아, 또 누가······. 으음?”

괴뢰선과 종선생, 건우가 새로운 이들의 등장에 각각 다른 반응을 보였다.

그런 중에 건우는 문득 새로운 목소리의 주인들을 알 법도 하다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그들이 둔광과 함께 모습을 드러냈을 때, 건우의 예상은 정확히 들어맞았다.

“종관(縱貫) 수사? 예예(刈叡) 수사?”

건우가 놀라며 그들의 이름을 확인했다.

그가 그렇게 놀랄 때에 종 선생 역시 예예를 알아보았다.

“예예 수사를 여기서 보게 됩니다. 실로 오랜만입니다.”

“그렇군요 종선생. 십이비선의 등선로를 열던 때 이후로 본 적이 없었는데 말입니다.”

“그러게요. 그런데 그 사이에 태령기가 되었습니까?”

“종 선생이 한 일을 저라고 못하겠습니까?”

“하하하. 저야 함께 있는 갈 수사 덕분에 이리된 것이니 예예 수사와 비길 수가 있겠습니까?”

“호호호. 저 역시 여기 종관 수사와 함께 수련한 덕을 봤을 뿐이지요. 물론 그런 것이 무슨 상관이겠습니까만.”

“예예, 인사는 그쯤 하지. 그리 연이 깊은 사이도 아닌 듯 한데. 그리고 중요한 것은 그 괴뢰가 아니라 이쪽 녀석이지.”

종선생과 예예가 회포를 풀려는데 문득 종관이 끼어들며 건우를 가리켰다.

“호호호. 고작 종선생과 이야기를 좀 했을 뿐인데, 그걸 못 봐줘요? 질투심을 아직 끊어내지 못하면 어떻게 해요?”

“누가 질투를 했다고!”

“알았어요. 알았어. 그나저나 건우 수사는 참으로 하는 일마다 간단한 것이 없구나.”

“예예 어르신을 뵙습니다. 종관 어르신께도 인사를 드립니다.”

건우는 갑자기 나타난 두 수사가 모두 태령기 경지에 오른 것에 놀라며 급히 인사를 했다.

특히 예예는 과거 건우와 비슷한 경지였는데, 이제는 태령기가 되어 완전히 건우를 앞질러 있었다.

종선생에 더해서 예예까지 태령기에 오른 것은 건우에게 적잖은 충격이었다.

지금껏 누구를 추월하기는 했어도 추월당해 본 경험이 거의 없는 그였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지금 이게 뭐 하자는 거지? 왜 이렇게 내 일을 방해하는 것들이 많은 것이냐!”

건우와 예예 등이 서로 인사를 하며 돈독한 분위기를 만들려는데 문득 괴뢰선이 고함을 지르며 강력한 의념을 펼쳐냈다.

이에 종선생과 예예, 종관 등도 질 수 없다는 듯이 의념을 펼치고 천지영기를 장악했다.

‘이것들이!’

그런데 문득 보니 그들이 어느새 건우를 포위한 모습으로 대치하고 있었다.

일단 건우의 도주는 막아놓고 보자는 뜻이 분명했다.

그것을 깨달은 건우가 인상을 찌푸리며 어금니를 깨물었다.

< 모두들 나올 때가 된 모양이다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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